2. 김지연의 현재.

갑자기 침대가 크게 흔들리는 바람에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떠보니 은천학이 침대 위에 서 있었다.

어째서 침대 위에?

그렇게 태클을 걸고 싶은 마음이 안 드는 건 아니었지만, 그보다 이 인간이 왜 이러는지가 더 궁금했다.

“왜 그래?”

“누군가 찾아왔어.”

그 직후, 초인종이 울렸다.

초인종이 울리기도 전에 이 인간은 인기척을 느끼고 잠에서 깨서 침대 위에 당당히 두 발을 올리고 일어서 있었던 건가.

“초인종을 누른다는 건, 적은 아니라는 거겠지.”

그렇게 혼잣말을 한 은천학은 어깨에 힘을 빼고 긴장을 풀었다.

21세기의 대한민국 수도에서 할 말은 아니지 않나, 그거.

그렇게 생각은 했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누구세요!”

대신 나는 소리쳤다.

싸구려 원룸이다.

인터폰 따위가 있을 리도 없으니 그냥 소리를 치는 게 제일 편했다.

그러자 바깥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나야!”

익숙한 목소리였다.

그야 불과 몇 달 전까지 같은 집에서 살던 여동생이니, 익숙하지 않은 게 더 이상하지.

김지훈의 여동생 목소리를 은천학도 못 알아들을 리는 없었다.

문득 은천학 쪽을 바라보니, 놀란 토끼 눈을 뜨고 있었다.

“지연이 많이 컸네?”

지연이라는 이름은 당연히 김지훈의 여동생을 가리킨다.

하지만 많이 컸다니.

“보지도 않고 아는 거냐.”

“어, 응.”

은천학은 침대 위에서 종종 걸음으로 내려와 현관문을 열었다.

열어버렸다.

그녀의 행동에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어서 나도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여버리고 말았지만, 잘 생각해보면 문제가 안 생길 리 없었다.

“다, 당신 누구야!”

아니나다를까, 비명과도 닮은 여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른 이들과 똑같이 지연이 또한 은천학에 대해 깨끗하게 잊어버린 후였다.

아무리 3년 전까지 매일 얼굴을 보고, 시간만 나면 같이 놀았다고 해도 예외는 없었다.

나를 제외한 이 행성의 모든 인류가 은천학에 대해서 잊어버리고 말았으니까.

오히려 내가 은천학을 기억하고 있는 게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이니 말 다했지.

그런 김지연에게, 은천학은 당당하게 대답했다.

“네 오빠다!”

여기서 밝혀두지만, 김지연은 김지훈과 한 살 터울인 동생이다.

즉, 올해로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게다가 누가 김지훈 동생 아니랄까 봐, 성장기를 거치며 키가 많이 컸다. 172cm라는, 여중생은커녕 한국 여자 평균 키보다도 높은 신장을 이 나이에 벌써 손에 넣은 그녀는 이제는 자신의 키가 더 클까 걱정할 정도였다.

그러니까 은천학보다 20cm는 더 크다.

머리 하나 정도 차이는 난다.

그런 여자가 자기더러, 그것도 오빠라고 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오빠, 이 여자 누구야?”

지연이가 선택한 반응은 무시였다.

지연이는 그대로 은천학 옆을 통과해 집안으로 들어와 내게 그렇게 물었다.

“야! 이 녀석, 오빠를 무시하다니!!”

은천학은 분개했다.

그녀는 펄쩍 뛰어 자기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여자애의 머리를 너무나도 간단히 덥석 잡아 자신의 품에 넣고 꽉 조르기 시작했다.

이른바 헤드 락이라 불리는 기술이다.

3년 전까지는 매일 같이 보던 광경이다.

그런 탓에 나는 나도 모르게 훈훈한 미소를 짓고 말았지만 지연이는 달랐다.

“우와, 뭐야! 아파?! 오빠!”

“그래, 내가 네 오빠다!!”

지연이가 부른 건 나인데, 은천학은 자기를 오빠라고 불렀다고 인식하고 만 건지 지연이를 풀어주었다.

정말로 아팠는지 지연이는 커다란 눈에서 눈물마저 글썽거리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은천학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내게 성토했다.

“으앙! 오빠, 진짜 이 여자 누구야!!”

귀여운 프릴로 장식한 하늘색 원피스가 구겨져서 엉망이다.

더불어 꽤 공을 들인 것 같은 머리 모양도.

어깨를 간신히 덮을 정도 길이의 검은 머리칼을 살짝 컬을 주어 멋을 냈는데, 은천학의 겨드랑이 사이에서 압박당해버린 부분의 머리만 컬이 풀려서 이상한 머리모양이 되어버렸다.

이거야 울상이 될 법도 하다.

이렇게 꾸미다니, 우리 집을 방문한 뒤에 데이트라도 있는 거려나.

그건 좀 용서가 안 되는데.

“오, 오빠?”

지연이가 조금 당황한 목소리로 나를 불러서 나는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아직까지도 약간 물기가 촉촉한 지연이의 큰 눈동자는 이 아이가 얼마나 순진무구한 소녀인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강아지처럼 까만 눈동자도 그런 인상을 보태는데 한 몫 한다.

이런 아이를 더럽히는 녀석이 있다면 항문을 꿰뚫어버릴 테다.

나는 그렇게 다짐했다.

“오빠, 무서운 표정 짓지 마.”

“아, 미안.”

나는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수습에 들어갔다.

“그래서 저 여자애 정체는 대체 뭐야?”

“지연아. 놀라지 말고 들어.”

나는 그렇게 뜸을 들이고는 심호흡을 한 번 한 후에 말을 이었다.

“믿기 힘들겠지만 이 사람은…, 네 오빠야.”

“오빠, 오빠까지 왜 그래?!”

어라, 헤드 락을 당하면서 기억이 되살아날 줄 알았는데. 역시 너무 긍정적인 예상이었나.

자기를 놀리는 거라고 판단한 지연이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내게 따졌다.

“귀여운 여동생이 휴일에 아침부터 준비해서 집에서 반찬까지 챙겨왔는데 진짜 이러기야!?”

“뭐?! 반찬이라고!?”

은천학이 벌떡 일어나며 지연이의 손에 들려있던 비닐봉지를 빼앗아 들었다.

그리고는 곧장 봉지에서 반찬 통을 열었다. 맛있는 냄새가 방 안을 향긋하게 채워주었다.

“LA갈비잖아!”

은천학이 환호성을 올렸다.

그 환호성을 듣고도 내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뭐, LA갈비라고?! 네 엄마 갈비 솜씨는 정말 죽이는데!”

“오빠, 무슨 소리야! 오빠 엄마잖아!!”

내가 흥분해서 내지른 소리에 지연이가 답답하다는 듯 태클을 걸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상황 전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 것 같은 태도다.

무리도 아니다, 은천학이 자신의 오빠라는 걸 모르는 그녀에게는 이 상황 전체가 자신을 놀리는 것처럼 밖에 느껴지지 않을 테니.

“일단 먹자!”

은천학이 외쳤다. 먹고, 자고, 일어나서 또 먹을 셈이냐.

하지만 시계를 봤더니 시계 침은 이미 정오를 지나고 있었다.

우와, 낮잠으로 몇 시간을 잔거지?

김지훈이 된 뒤로 이런 건 처음이었기에, 나는 다소 당황했다.

“천학아, 밥해!”

그녀가 외쳤다.

나는 대꾸했다.

“사실은 이미 취사예약 눌러놨어. 급하게 굴지 마, 이 때지야.”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대화를 나누었더니, 지연이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그제야 나는 은천학이 나를 천학이라고 불렀음을 알게 되었고, 내가 은천학을 과거 김지훈의 별명으로 불렀음을 깨닫게 되었다.

전기밥솥이 칙칙 소리를 냈다.

밥이 다 되기까지 앞으로 15분.

“크하하, 나를 때지라고 부르는 것도 간만에 듣네. 3년 만?”

지연이가 뭘 어떻게 생각하든 별 상관할 생각도 없는 듯 했다.

“때지라고 불릴 이유가 없었는데도 때지라고 불렀던 건 너뿐이니까 당연한가.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그랬다.

3년 전의 김지훈은 나랑 똑같이 깡마른 소년이었다.

그야 항상 같은 시간을 보내며 같은 걸 먹고 같은 짓을 하고 놀았던 우리는 서로 닮아갈 수밖에 없었다.

“…네가 워낙 많이 먹으니까 그런 거 아니야.”

“그렇게 잘 먹어놨으니 이렇게 컸지.”

은천학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려다 키가 안 닿아서 안 되니 침대 위로 폴짝 뛰어올라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그녀가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두었다.

“날 무시하지 마!”

우리가 하는 꼴을 넋 놓고 보고 있던 지연이가 갑자기 그렇게 소리쳤다.

그러자 은천학이 눈을 샐쭉하니 뜨고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아, 그 말도 간만에 듣네. 우리 둘이 놀고 있을 때, 네가 항상 하던 말이었는데.”

“그러고 보니 그랬지.”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웠다.

3년 전의 추억, 그걸 완전히 재연한 것 같은 이 상황에 향수 비슷한 것이라도 안 느낄 수 있을 리는 없었다.

모든 게 다 3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에 휩싸인, 것도 잠시간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3년 전? 오빠, 이상해. 진짜 이 여자 누구야?”

지연이의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다.

말도 횡설수설하고 있었고.

아아, 가엾게도 패닉 상태에 빠지고 말았구나.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머리에 손을 가져다 얹어주었다.

“진정해, 지연아.”

“…으, 응.”

지연이의 얼굴이 살짝 발그레해지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흥분해버린 것이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귀여운 녀석.

나는 지연이의 머리를 몇 번인가 더 쓰다듬어주었다.

“그래서 오빠.”

“응.”

“이 여자 누구야?”

“네 오빠.”

지연이의 표정이 다시 무너졌다.

은천학이 당당하게 외쳤다.

“내가 네 오빠다! 아임 유어 파더!!”

“파더는 아빠란 뜻인데.”

내 태클을 들은 척 만 척 하고 껄껄걸 웃는 은천학 옆에서 지연이는 몇 초간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러다가…

“으, 으아아아?!”

그렇게 비명을 지르더니,

“으아아아아아앙!!”

울기 시작했다.

“야, 너 왜 울어?”

아무리 은천학이라도 이번만큼은 놀란 듯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 옛날부터 지연이의 눈물에는, 눈물에만큼은 약했지.

마치 다른 사람 일처럼 그 광경을 옆에서 지켜보는 내가 있었다.

* * *

라이트노벨에 여동생은 필수라고 배웠습니다.

실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