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in, Pain, Go Away

 

 

 

 

 

 

 

왕따와 관련된 주제의 이야기는 답답하고 깝깝합니다.

왜냐면 답이 없는 주제다...라기보다는 

누구도 무관심하고 방관자이고 혹은 가해자일수 있기때문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네요.

 

 

 

인터넷 사람들의 본 모습이 잘 드러난다고 생각하는 디시를 하며 느끼는 건데

학창시절 본인 감정 가는대로 남을 괴롭히고 우습게여긴, 소위 말하는 '양아치'에 대한 분노보다

누구한테도 먼저 기분 나쁘게 말을 하지도 남을 험담하지도 않은 그저 집단에서 소외된, 소위 말하는 '왕따'에 대한 분노가

더욱 심하게 느껴집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인식과 생각을 느낄 수 있는 거 같습니다.

'싫어해도되니깐' '싫어해도 되는 사람이니깐'

뭐 어딜가든 자신감, 자존감은 꼭 필요한 거 같습니다.

심리적으로 위축된 모습은 사람들한테서 폭력성을 불러 일으키는 거 같거든요.

 

 

 

학창시절 왕따는 사회적 약자죠.

또래보다 안좋은 외견,가정사

가난의 대물림을 받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는 미디어에서 약자라고 도와주자 하는 3세계 사람들이나 불우이웃들에 대해서는 연민을 느끼지만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소외된 사람들한테는 이상하리만치 부조리한 분노를 주위 분위기에 편승해서 퍼부어냅니다.

이 두가지는 

전자는 미디어나 사람들이 만든 좋은 인식의 사례고, 후자는 전자같은 혜택을 못받은 사람들인 거 같습니다.

뭐 '왕따'가 자기처신이나 노력이 부족한 것도 있겠지만요. 그래도 괴롭혀도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마 '왕따'든 '양아치'든 인터넷에서 높은 빈도로 입에 올리며 욕하는 사람들은

그 주제에 어떻게든 많이 얽혀있는 사람들이거든요.

학창시절이 전성기고 그 후로는 사회에 착취되는 구조라 그 시절에 자존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든가

학창시절 기억이 끔찍해서 자학을 하거나 본인은 아닌듯 남들을 어떻게든 엮어서 욕할려고한다든가

 

 

 

 

작중 여주인공이 자신을 학대한 사람들에게 복수를 하러다닙니다.

여주인공을 오랜만에 본 복수 대상자가 여주인공을 학대하던 그 시절과 같이 비웃으며 여주인공을 업신 여기는 태도를 취하고

본인이 막대해도 되는 사람인지 감정하는 눈길을 보이는데

이 장면이 조금 인상깊었습니다.

 

 

예전에 제 군시절 피부병때문에 외진을 갔을때 옆에 타 부대 병사 두 명이 있었고

한 명은 초등학교 교사인가 그랬습니다.

듣기 싫어도 그 둘이 이야기 하는 소리가 옆이라 다 들려왔는데

'그러니깐, 학교에서 왕따 당하는 애들은 전부 그럴만하게 자기가 행동을 해서 그래'

선생이라는 작자가 이런식으로 웃으며 이야기하고 옆에 있던 동기가 맞장구쳐주고 있더군요.

 

분명 그 초등학교 교사도 학창시절을 해봤고

선생님이라는 전문직까지 했을 정도면 머리도 좋은 편일테고

집단에서 소외된 사람의 어찔할수 없는 부분도 조금만 생각하면 알텐데

어떻게 저렇게 편협하고 멍청하게 이야기하며 웃고 떠들 수 있을까

그나마 중고딩이라면 몰라도 초딩들 완전 고깃덩이한테

뭐 그때는 그 두 명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던 거 같네요.

 

이런 사람들은 '아 저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욕하고 싫어하네? 나도 싫어해도 돼'

그 주위에 핍박받는 사람에 대한 입장이나 상황을 생각하지않고 

생각을 멈춰버립니다.

어디에나 있는 악의고 저도 당연히 갖고 있지만 참 씁쓸합니다.

생각해보면 이건 학대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돼지의 고민인 거 같기도 합니다.

 

 

 

학교폭력으로 힘들어 하는 학생이 뉴스에 나오고

그 뉴스 댓글이나 인터넷 커뮤니티등에서 그 가해자에 대한 비난과 욕이 실리는 경우가 가끔 보이는데

이때마다 저는 조금 위화감을 갖습니다.

제 학창시절때는 학교에서 심하게 왕따를 당하는 학생이 있을때 이렇게 공감해주는 사람도 욕하는 사람, 관여할려는 사람도 없었거든요.

어느정도 지위를 갖고 있는 교사조차도요. 쉬쉬하기나 바빴지.

오히려 그 왕따 당하던 아이에 대해 모두 공통된 악의나 적의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에 대해 어느정도 연민을 느끼는 애들조차도요.

이 두 가지 기저를 제 나름 분석해보자면

전자는 본인들이 완전히 방관자라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고 익명성도 있으니 그 아이에 대해 공감도 하며 자신의 분노도 쏟아낼려하는 거 같고

후자는 군중심리에, 혹여 연민을 느낀다해도 본인한테 피해가는 게 싫고 관여할정도의 마음은 못느끼니깐 그런 거 같고요.

 

 

 

 

 

 

 

 

 

 

 

 

 

서두가 너무 많이 길었는데....

 

 

 

 

아무튼 이 소설은

미아키 스가루답게 소외된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를 그려낸 소설입니다.

 

 

 

작가 후기에서 본인이 함정에 빠진 적 있다고 표현한 거 같은데

본인도 조금 안좋은 유년기를 보낸 거 같네요.

 

 

 

내용은 뭔가 한 10년전 boy meet girl 이능력 라노벨스럽고요.

읽으면서 왠지 모르게 작안의 샤나같은 게 떠올랐네요.

 

 

 

 

 

 

작가 말마따나

주인공과 여주인공은 함정에 빠진,

올라올 수 없는 시궁창 속에 빠진 사람들이고요.

거기서 자신과 비슷한 짝을 만나 사랑을 하고 삶의 따듯함, 희망을 느끼는 이야기입니다.

 

 

 

 

 

 

여주인공은 폭력과 학대로 점철된 끔찍한 인생을 사는데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머리가 아프고 짜증이 납니다.

소원이 있다면 이런 가해자들은 전부 온몸에 항문이 생기는 기이한 병으로 고통속에 빠져 죽었으면 좋겠네요.

시체는 수십억이나 승객을 태운 이 별에 공간은 없으니 우주공간으로 쏘아 올리고요.

(사실은 소설에서 본 욕인데 재밌어서 써보고 싶었습니다)

 

 

 

미움을 사니깐 더한 미움을 사게 된다.

이 악순환은 누구한테도 힘들고 아프죠.

딱히 자기가 뭔가 악의적으로 한 것도 없으니깐 더 깝깝스럽고요.

이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방법 중 제일 심플하고 확실한 건 그 집단에서 벗어나는 거라 생각하네요.

이게 패배의 기억으로 덧칠되기 전에 다른 인간관계를 쌓거나 다른 열심히 할 수 있는 일에 매진한다던가

 

군대, 회사에서 돌이킬 수 없을만큼 인간관계가 파탄이 나있고 고통만이 존재한다면 

군대는 전출, 회사는 퇴직이라는 방법이 있는데 

부모의 영향하에 있는 10대들에게는 불가능한 방법이고요.

뭐 또 학대받은 아이의 부모도 별로 관심이 없기도 하고요.

 

 

 

 

 

 

 

 

 

 

 

 

주인공 유가미 미즈호는 5년동안 편지를 주고받은 소꿉친구 히즈미 키리코가 한 번 보자 하니 무서움을 느끼며 피하게 됩니다. 

주인공은 편지로 여태까지 거짓말로 꾸며왔던 자신을 들킬바에야 관계를 끊는 게 낫다 생각하고

여태까지 주고받았던 편지교환도 그때부터 그만두게 되고요.

그리고 5년 후 어떤 계기로 미즈호는 키리코에게 만나자고 편지를 쓰고

약속장소에서 하루종일 기다립니다.

당연히 키리코는 오지 않았고 미즈호는 낙담하고 술을 마시고 음주운전을 합니다.

그러다 어떤 여고생을 치어서 죽여버립니다.

하지만 그 여고생 - 소녀는 죽지않았습니다.

그 소녀한테는 하나 능력이 있었습니다.

'미루기'라 칭한 소녀의 능력은 소녀가 싫어하는 모든 일들을 미룰 수 있는 능력입니다. 미룰 수만 있지 언젠가는 다시 불행이 찾아오게 되죠.

그 소녀는 교통사고로인한 죽음에서 10일간의 유예를 얻습니다.

 

 

소녀는 죽기전까지 그 동안 자신을 학대한 사람들에 대한 복수로 그들을 죽이러다닙니다.

미즈호는 소녀에 대한 죄값음. 점수벌이로 그런 소녀를 도웁니다.

소녀는 이미 미즈호의 차에 치여 죽은 걸 '미루기'하고 있을뿐 

이 능력이 끝나면 소녀가 행했던 모든 일들은 없어지기에

소녀의 화풀이 불과했고요.

소녀의 사람을 죽이는 모습을 보고 미즈호는 소녀를 사랑하게 됩니다.(걸크러쉬....나쁜 여자 취향...)

 

 

 

미아키 스가루답게 페이크 히로인...기믹을 넣었는데

그 소녀의 정체는 

22살 미즈호의 첫사랑 히즈미 키리코였습니다.

원래 5년전에 놀이동산에서 주인공 미즈호와 같이 제트 코스터를 타다가 죽은 걸 계속 미루기 해왔던 겁니다.

나이를 먹지않은 것도 그때문이고요.

소녀는 5살 더 먹어 22살의 히즈미 키리코가 되고

서로 사랑과 사죄의 말을 하며 키스를 하고

미즈호는 그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아픈 것아, 아픈 것아, 날아가라'

 

 

 

 

 

 

 

 

그렇게 이야기는 끝나게 됩니다.

 

 

 

 

 

여운이 있는 결말이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여태까지 봤던 미아키 스가루 작품 중 제일 별로이긴했습니다.

 

 

 

고통속에 점철된 삶을 산 사람들이

판타지의 모습을 빌어서만 서로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는 작고 연약한 마음에서 씁쓸한 여운이 느껴지네요.

 

 

 

 

 

 

 

 

 

 

 

 

작중 친구 신고는 노르웨이 숲에서 나온 주인공 대학교 선배가 생각나네요.

모든 능숙하고 잘하지만 어딘가 세상 바깥에 있는 거 같은 사람.

미대생은 공의 경계에 나왔던 일거리 주던 그 안경낀? 여자닮은 거 같고요.

뭔가 생각해보니 주인공이 자취한다던가 사람들에 잘 섞이지 못한다던가 공의 경계 느낌이 나네요.

 

 

 

 

작중 소녀에 대한 대명사가 그녀에서 소녀로 바뀐 게 좀 눈에 거슬렸던 거 같습니다.

 

 

 

 

 

뭐 그런대로 볼만했는데

미아키 스가루 작품 보실 분 있다면

3일간의 행복부터 보시고 취향에 맞으시면 이 소설 읽는 거 추천합니다.

 

 

 

앞으로 한국에 발매된 미아키 스가루 작품은 전화를 걸었던 장소 시리즈 남았네요.

천천히 읽을까 생각합니다.

 

 

 

이 작가 작품을 읽으면 학창시절 기억이 나서 읽는 속도가 느려지네요.

 

 

 

제목이 정감있고 잘 지은 거 같습니다.

딱 뇌리에 박힐만한 대사에 책 내용에도 맞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