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월드컵은 한국이 4강 진출이라는 쾌조의 성적과, 엄청난 거리 응원 인파로 인해
한국인들에게 많은 즐거움을 안겨준 대회였습니다.

하지만, 그 즐거움은 한국인... 정확히는 4년마다 딱 한 번 월드컵을 보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데 급급하다 보니 흥행이나 여러 면에서 실패한 월드컵이었습니다.

우선, 한국의 4강 진출 과정에서 홈 어드벤테이지다 심판 판정에 편파적인 면이 존재했다
라는 논란은 제외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입이 닳도록 했을 말이니...

우선 흥행 부분의 문제.

사실 많은 거리 관중까지 동원할 정도였지만, 그건 한국 경기가 있을때 뿐이었고 다른
경기는 처절할 정도의 무관심으로 일관된 대회였습니다.

명색이 세계 최고의 스포츠 축제, 월드컵인데 막상 유명 국가들 경기에 관중이 텅텅
빌 정도였습니다.

이거에 대해 제가 나름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당시 제가 전경으로 군복무
하던 당시였는데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경기 때엔 경기장에 전의경을 대거 투입했습
니다.

경기장 경비차원에서요? 실제 경비에 투입된 인원은 적었습니다.

많은 수의 전의경 부대원들이 관중석에 앉아있었습니다 --;

관중석이 너무 비다 보니 흥행 차원에서 전의경들을 관중석에 앉아서 관중인원 땜빵을
했던 거죠. 그것도 한 두 경기가 아니라 한국 경기가 아닌 경기에 매번 전의경들을 동원
시켰습니다. 사실 부끄러운 일이죠.

그리고 거리 응원.
많은 인파들이 거리에 나와서 자발적으로 응원하는 걸 보며 해외 언론들이 뜨거운 열기를
느끼고 극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건 호의적인 언론의 반응만을 모은 것이고, 적지 않은 해외의 시선은 그 많은
인원들이 폭도로 돌변하지 않을까 우려의 목소리를 표출했습니다.

실제로 축구경기에 훌리건이 등장하는 건 새삼스러울 것도 아니었죠. 야외 거리 응원의
시초였던(...사실 이건 많은 분들이 기억 못하실 겁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때
광화문 거리에 큰 화면으로 네덜란드 경기를 중계한 적이 있습니다.

네, 0:5의 전설을 남긴 그 경기죠.

그때 저는 조인트(숙명여대와) 종강파티를 하고 밤에 열리는 네덜란드 전을 광화문에
가서 응원하자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전 그냥 집에서 PC 통신 하려고 튀었죠.

그런데 결국 거기에 간 과 동기들은 경기 대판으로 진 거 보고 열받아서 다른 응원무리와
시비 붙어서 패싸움 하고 왔습니다(...)

어찌보면 그 수 많은 응원인구를 폭도로 안 만든 건 당시 국대들의 눈물겨운 활약 덕분
입니다. 사실 4강까지 갔고, 져도 0:1, 2:3 정도로 준수하게 졌으니 폭동을 일으킬 정도가
아니었죠. 지난 북한과 포르투칼 전처럼 0:7으로 졌다면 진짜 폭동일어났을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치안 문제는 항상 화두에 올랐고, 그런 불안한 상황에서 외국인들이 굳이
위험을 부담하면서 한국에 와서 월드컵을 볼 엄두를 못냈던 거죠.

한국인들이 보기 좋은 대회였지만(그것도 한국 경기에 한정해) 외국인들의 시선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는 겁니다.

한국이 4강까지 간게 정말 다행인 겁니다.

그리고 외국인 관광객들의 유치 실패.

이건 애초에 한 일 두 나라로 나누어서 대회를 유치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입니다.

사실 해외에서 열린(외국인들 시점에서) 월드컵까지 보러 갈 정도면 자신의 모국경기만
보고 오기엔 좀 아깝습니다. 진정한 축구팬일수록 호화로운 멤버로 구성된 유명 팀 경기도
보고 싶어하죠.

그런데 그러기엔 경기 자체가 두 나라에 갈라져서 진행되었습니다.

애초에 한국과 일본이 비행기를 타고 오고가야 하는 환경이고, 게다가 두 국가에서 치뤄지는
만큼 양국의 경기를 골라 볼려면 비자를 두 개 발급받아야 합니다(...)

귀찮잖아요.

게다가 거리에는 붉은 색 티셔츠 입은 한국인들이 득실거립니다.
빨간색, 무서운 색입니다 이거...

게다가 승리 후 거리 막고 차 흔들거리는 거, 진짜 이거 무섭습니다. 흔드는 쪽이야
신나 하지만, 외국인들 입장에선 저 사람들이 순간 강도나 강간범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거죠. 한국 치안 상황상 그런 일이 일어나기 힘들지만 그것까지 외국인들이
알 수야 없죠.

이번 남아공에선 부부젤라때문에 원성이 대단했죠?
하지만 2002년 역시 타국의 원성을 받아야 했습니다.

바로 꽹과리 소리.

물론 부부젤라처럼 90분 경기 내내 불어제끼는 것이 아니니 덜하겠지만, 꽹과리 소리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에겐 귀청을 아프게 하는 소음에 불과했습니다.

굳이 표현하면 부부젤라가 더 짜증나는 소리였을뿐, 꽹과리 역시 짜증나는 소리였다는
겁니다.

아쉽게도, 한국은 이미 14년 전에 치뤄진 국제행사를 성공리에 마친 적이 있습니다.

88올림픽이죠.

당시 너무 외국인을 환대하기 위한 조치가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의 2부제 차량
운행, 국가에서 올림픽 흥행을 위해 학생들에게 5일 정도의 방학을 주고 경기를 보도록
적극 권장했습니다. 전 그때 한국 선수가 나오는 경기가 아닌 육상경기를 봤습니다.
당시 여성 스프린터로 이슈를 끌던 3관왕의 그리피스 조이너를 보기 위해서죠.
외국선수들만이 활약하는 경기였지만 많은 관중들이 경기석을 채워주었습니다.

그때에 비해 2002 월드컵은 너무 초라했습니다.

거리의 수많은 인파들의 함성과는 대조적으로, 유명 국가들의 경기임에도 텅텅빈 관중석을
감추기 위해 전의경들을 동원해야 하는 씁쓸한 그림자를 남기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