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정신도 없다.

오늘은 무얼 했더라.

아침에 먹으라던 약은 먹었었나?



"선배님, 이건 꼭 드셔야 해요! 이젠 홀몸도 아니시면서...!"



그래서 내가 뭐라 대답했더라.

홀몸이 아니긴 뭐가 아니냐고 했던가.

녀석은 뭐라 말했던가.

자기가 있으니 선배는 홀몸 아니라고, 그렇게 말했던가.



"시유씨, 이 ppt 다하고 저기다 보내주실 수 있어요? 오늘 중으로 보내야 하는건데."



오늘 중으로 보내야 하고, 완성하는데 시간이 엄청 걸린다면서, 그걸 왜 이제야 하는건지.

나는 그걸 또 왜 해줬더라.

그렇게라도 하면, 사람들이 날 다시 봐주리라 여겼던건가.



"시유씨, 정말 죄송하지만..."



그래서 뭔가 바뀌었나?

아니었다.

아니었는데도, 나는...

아니라면 난 무얼 위해 달려왔던가.

무얼 위해 태어나

이 땅에서 발붙이고

이 하늘의 숨을 머금고

이 바다의 은혜를 누리며

이 삶을 살아왔던가.


나는, 뭘 위해 태어났던가.

뭘 위해 살아갔던가.

아니 난, 뭘 위하긴 했었나?

나는...



"---!"



뭔가 이상한 소음이 내 귀를 간질인다.

하지만 닿지 않는다.



"------!!"



고막 너머 달팽이관에 꽂히는 듯한 소음.

이윽고, 더욱 큰 소음이 내 귀에 닿는다.

그 너머, "나" 에게 닿는다.



"---선배애애애!!!"



누군가의 거세고 억센 손길이 나를 끌어올린다.



"...콜록, 콜록."



나는 그만 기침과 함께 이물질을 토해낸다.

하늘도 나를 저주하는듯 이미 젖은 몸에 빗방울을 내린다.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풍경은, 너로 가득하다.

보기 싫게 일그러져, 방울진 눈물로 얼룩진 너의 얼굴에, 괜히 실실 웃음이 새어나온다.



"지금 웃을때에요?! 대체 왜 그러신 거에요? 왜 뛰어든 거냐고요!! 진짜, 진짜로 죽으려고 그런거에요? 나는, 나는..."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내 세상은 너로 가득하다.

지독한 악의와 경멸의 시선 끝에서도

끝끝내 필 꽃은 피어난다는 것을 가르쳐준 너.

너로 인해, 어느순간부턴가.

내 세상은 가득 핀 너로인해



"......예쁘다."
"...네, 네?!"




화원(花園)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