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고 흰 달이 함께 밤을 비추는 때, 피와 눈물의 땅 위의 화려한 모습을 자랑하는 궁은 그보다도 소려(昭麗 : 밝고 아름다움)한 빛으로 가득 찼다.

수 만 년의 천마대전이 끝나고 백 년에 한 번씩 마계의 검은 달과 천계의 흰 달이 만나는 밤에 마족과 천족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해극궁(偕克宮)이라 불리는 흰 화해의 궁에 모여 담소를 나누고 놀이를 즐겼다.

이 연회에서 그들은 모두 탈을 써야 한다.

이들의 탈은 그 주인의 성별을 제외한 모든 외관의 모습을 바꿔주었다.

검은 달과 횐 달이 만나는 가월기에는 각자의 기운이 모두 사라지기 때문에 그들은 태고 적부터 내려온 자신들만의 힘을 쓸 수도 없었고, 가면을 쓴 이상 누가 누구인지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은 모두 상하관계에 상관 없이 너나들이를 하고 서로의 종족에 상관 없이 함께 즐겼다.

오로지 그들 자신이 누군지 아는 건 자신 뿐, 가월기의 해극궁에서는 자신이 누군지 잊으면 되는 즐거운 시간 만이 흘렀다.

그러나 한 명만은 즐겁지 않은지 혼자 구석 성의 밖으로 향하는 툇마루에 서있었다.

연회장 안에 모인 자들 중 그 누구도 그에게 신경을 쓰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즐겁지 않은 것일까.

하나, , , , 다섯! 다들 어디로 숨은 건가? 여섯, 일곱...”

꽤나 멀리서 숨바꼭질 술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발걸음 소리는 매우 가까이에서 나고 있었다.

점점 가까워지던 발걸음이 멈추고 툇마루와 연회장을 구분해주는 묵직한 문이 조심스럽게 소리도 없이 닫혔다.

혼자인 그가 만약 가까워진 발걸음 소리에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면 그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기 위해 발가락 끝에 온 힘을 모으고 육중한 툇마루 문을 닫고 있는 여인의 뒷모습을 보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그는 그 여인의 모습을 보았고 그 여인은 눈만 슬며시 움직인 그를 눈치채지 못했다.

혼자 있다고 생각한 여인이 탈을 벗자 연한 상아빛의 머리카락이 드러나며 백옥을 깎은 듯한 부드러운 이목구비가 나타났다.

꽤나 잘 숨은 것 같은데. 달빛도 좋구... ! 으으읍...!”

그녀는 탈을 벗고 난 뒤에야 자신의 뒤에 있던 낯선 이의 존재를 발견했다.

달도 여인의 미모에 취하련만, 그는 고운 자태를 지닌 그녀의 모습에도 취하지 않았는지, 비명이 새나오는 살굿빛 입술을 자신의 손바닥으로 거칠게 막았다.

의뭉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던 그녀는 그의 눈빛에서 아무런 악의도 발견하지 못하자 더 이상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당혹스런 이 상황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에게 눈으로 웃어주는 것뿐이었다.

그녀만의 인사(人事)였다.

그런 그녀를 당할 이는 없었다.

낯선 그의 눈도 부드럽게 휘어졌다.

그녀는 눈짓으로 그의 손이 아직도 자신의 입술을 막고 있음을 알렸고, 그제서야 깜짝 놀란 듯 그는 자신의 손을 재빠르게 등 뒤로 거뒀다.

낯선 이의 당황스런 움직임은 그녀를 즐겁게 하는지 그녀의 얼굴에는 시종 웃음이 만개했다.

연회가 지루하신가요?”

아니요. 매우 즐겁습니다.”

눈만 동그랗게 뚫어진 아무 특징도 없는 둥그런 탈 아래서 매력적인 중저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어째서 이곳에 혼자 계시는 건가요?”

놀이를 잘 하지도 못하고 재치 있는 말을 나누는 방법도 잘 알지 못하기에 이곳에 있었습니다.”

이 연회에서 그 누가 놀이를 잘 하고 말을 재치 있게 할까요. 그냥 즐거우니 놀이에 참여해보고, 흥겨우니 어떤 말도 재치 있게 들리는 것이지요.”

그렇겠군요. 숨바꼭질은 즐거우십니까?”

사실 숨바꼭질은 재미있지 않군요. 이건 비밀인데...”

“...?”

그녀는 낯선 사내가 아무렇지도 않은지 비밀이라면서 귓속말을 속삭였다.

재미가 너무도 없어서 도망치려고 이 곳으로 무작정 달려왔어요.”

? 하하하하하.”

그와 그녀의 웃음소리가 밤하늘을 더욱 아름답게 수놓았다.

그럼 저와 이야기나 나누시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될까요? 제가 혼자 계시는 시간을 방해한 것은 아닌지 걱정했거든요.”

아닙니다. 혼자가 즐겁기란 어렵지 않겠습니까?”

역시 그렇죠. 말동무가 생겨서 좋아요.”

저도 말동무가 필요하던 차였는데 이곳으로 숨어주셔서 참으로 감사 드립니다.”

상당히 재미있는 분이시군요.”

저는 진심으로 한 말입니다. 달빛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달이 말동무가 될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도 말동무가 되려면 최소한 서로 동등한 입장이 되어야 하지 않나요?”

그렇지요. 그런데 지금 우리가 동등한 입장이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 저는 탈을 벗었는데 그대는 여전히 모습을 가리고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