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이 눈을 뜬 것은 그날 오후 늦게였다.

 

“죽겠구만.”

 

목구멍 저 깊숙한 곳에서부터 허기진 갈증이올라왔다. 그제 초저녁부터 먹지도 못하고 마시지도 못한 탓이었다. 그는이러다가 자신이 선채로 굶어죽는 것은 아닐까 고민했지만, 이내 그 생각이 터무니없는 생각임을 알게 됐다.

 

다다닥!

 

누군가 삐걱거리는 나무계단을 빠르게 올라왔다. 홍윤은 등을 돌린상태였지만, 발걸음의 주인이 누군지 쉽게 알아차릴수있었다.

 

‘빌어먹을 돈주 놈.’

 

놈의 더러운 쌍판대기를 떠올리자 구역질이올라왔다. 이번에는 허기진 갈증 같은 것이 아니라 정말 구역질이었다.

 

“우웩!”

 

목구멍은 연신 움직이며 헛구역질을 했는데, 먹은것이 없어서 내용물은 나오지 않았다. 홍윤은 눈물을 글썽이며바닥을 바라봤다. 입에서 늘어진 침이 신발코에 달라붙은 모양이 꽤나 우스웠다.

 

“너 이자식! 또 여기서 구역질이나 하고있었냐?”

 

터질듯한 근육을 자랑하는 대머리가 홍윤의어깨를 우악스럽게 붙잡았다. 그리고는 앞뒤로 사정없이 흔들었다.

 

“우웁!”

 

홍윤이 다시 한번 볼을 부풀리자 대머리의손이 멈췄다.

 

“이봐, 그렇게 죽는 시늉을 해도 소용없다고. 빌린 돈을 다 갚을 때 까지는 넌 죽고싶어도 못 죽어!”

 

대머리가 으름장을 놨다. 홍윤은 늘어진 침을 소매자락으로 닦으며 말했다.

 

“죽는 시늉이 아니라 진짜 죽을꺼 같다 이 대머리야!”

 

쓰라린 배속이 고통스러웠다. 폭풍우를 만난 조각배처럼 장기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듯 했다.

 

“이자식이 주제를 모르고!”

 

대머리가 홍윤의 머리를 내리치려고 할때, 뒤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허! 이 무식한 자식아! 그놈 몸값이 얼마인줄 알고 함부로 대해! 자그마치 은자로 2만냥이야 2만냥!”

 

뒤에서 뒷짐을 진채 구경하고 있던 박대원이 호통을 쳤다. 한 사람의 빛이 2만냥이 될수 있는지 잠시의문이 들었지만, 그건 중요한게 아니였다. 빛을 지운 사람이박대원이라는 것이 중요한 것 이었다. 박대원은 안휘성 근방에서 소문난 돈 놀이 꾼이었다.

그가 얼마나 대단하고 고매하신 돈 놀이꾼이었는 지는 두말하면 입아프다. 그저, 이근방 무림인들중에박대원의 돈을 꾸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것만 알아두면 된다. 그리고 홍윤은 그런 박대원에게 단단히 물린상태였다.

 

“집에서 기르는 개새끼도 밥은 준다는 데, 거너무 한거 아니오?”

 

홍윤이 흐리멍텅한 눈으로 말했다.

 

“너는 개새끼가 아니라 사람 아니더냐? 자고로사람 이란것들은 일을 해야 밥이 나오는 법이다.”

 

박대원이 예의 그 음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가 돈을 꾸고 갚지않는 사람들에게만 짓는 표정이었다. 물론, 힘있는 고관대작이나 뒷배가 든든한 사람들은 예외였다.

 

“개팔자가 상팔자 라더니. 빌어먹을 견생만도못한 인생이네.”

“하하하! 그래 이 개만도 못한 놈아! 어서 밥값 하러 가자구나!”

 

박대원이 크게 웃으며 손짓을 했다. 그가 웃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그저 돈을 벌러간다니까 기분이좋아졌을뿐이다.

홍윤은 검을 배워도 채 일주일을 못가고, 글공부를 해도 삼일을 못넘겼지만 그런 그도 잘하는 것이 딱 한가지 있었다. 바로도박이었다. 무릇 어른들이 말씀하시기를 도박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요,백해무익한것이라 하셨지만, 그것은 돈을 잃는 다수에게 해당되는 말이었다.

 

고로 특별한 손기술도 없고 그렇다고 엄청난돈을 가진것도 아닌 홍윤에게는 해당 되지않는 말이었다. 배운 손기술이 없으니 장난을 치다 손목이 잘릴염려도없었으며 가진 돈이 있는 것도 아니니 잃을 것도 없었다. 그렇다고 홍윤이 지닌 기가막힌 운을 빼앗을수는 없는 노릇아닌가?

 

그렇게 홍윤은 안휘에 있는 도박장이란도박장은 모두 다니며 돈을 쓸어담다시피 했다. 그리고 뭇 어르신들의 말에 따라서 도박장에서 딴 돈은그날그날 모두 써버렸다. 어차피 그에게는 하늘마저 감탄하는 운빨이 있었다. 하늘이 내린 운빨앞에서 인간이 만든 것들은 모두 소용없었다.

 

그렇게 잘나갔던 그가 주춤한 것은 박대원을만나고 나서부터였다. 박대원은 어느날 우연히 홍윤이 도박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는데, 그가 지닌 기가 막힌 운을 두고 눈을 빛냈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그저 감탄만 하며 하늘을 원망할 때, 그는 돈을 벌생각을 했다고 하니 박대원 역시 난놈은 난놈일것이다.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홍윤에게 박대원이달라붙었다. 그리고는 여러가지 수작질을 부렸는 데, 대표적인것이 그가 마실 차에 수면제를 타거나, 눈이 휘둥그래질만한 미녀를 양옆에 붙여놓거나, 그도 아니라면 도박기구들을 의도적으로 조작하는 식이었다.

하늘마저도 감탄하던 운은 박대원 앞에서는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어느새 홍윤의 목에는 2만냥이라는빚이 채워졌다. 그 뒤는 불보듯 뻔했다. 목줄을 채워놨으니, 돈을 벌어야 하지 않겠는 가? 박대원은 천하의 모든 도박장을 쏘다니며홍윤을 굴렸다. 그때마다 홍윤은 그에게 적지않은 돈을 안겨줬다.

 

쏴아아아!

 

하늘에 구멍이라도 났는지, 손가락만한 장대비가 쏟아져내렸다. 홍윤은 객잔의 처마앞에 서서 손을내밀었다.

 

쪼르르륵.

 

손을 웅크리자 금새 처마에서 떨어진 빗방울들이모였다. 요 며칠 밥을 먹지 못해서 뱃속은 뜨거웠으나, 손바닥은시리도록 차가웠다. 늦가을의 비는 그만큼 시린구석이 있었다.

 

“…우리 어머니가 가을비는 맞지 말라고 하셨는데요.”

 

처마 앞에서 홍윤이 농성을 벌였다. 나도 너희들처럼 우산을 달라는 소리였다.

 

“뭐? 이자식이…”

“그만해! 어머니가 맞지 말라고 하셨대잖아.”

 

홍윤에게 달려들던 대머리를 박대원이 말렸다.

 

앞서 가던 박대원과 그 패거리들이 서로를바라봤다. “우산을 줘야하나 말아야하나? 줘야 한다면 누구우산을 주지?”, “그런데 건방지게 우산을 달라고 해? 한번 손을 봐줄깝쇼?”, “골병이 든 놈이니 비를 맞으면 오늘 할달량을 못채울것이 뻔합니다요.” 등. 여러가지 말과 표정들이 오갔다.

 

“야. 네껄 줘.”

 

박대원이 앞서 홍윤과 드잡이질을 했던대머리에게 턱짓을 했다. 대머리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입을 벙긋벙긋 했다. 왜 하필 자신이냐는 뜻이었다.

 

“쓰읍!”

 

박대원이 예의 그 음험한 표정을 지었다. 그제야 대머리는 우산을 내밀었다.

 

“이 개자식 두고보자.”

“남이사 왜 반말?”

 

대머리와 홍윤이 낮은 목소리로 한차례덕담을 주고 받았다. 대머리에게 우산을 받아든 홍윤이 그제서야 만족한듯 발걸음을 옮겼다.

 

후두두둑!

 

굵은 장대비가 우산을 사정없이 때렸다. 그덕에 뒤에서 따라오는 대머리의 욕짓거리가 들리지 않았다. 대머리가건네준 우산은 싸구려였다. 그래서 우산의 끄트머리에 구멍이 숭숭 나있었고, 비에 젖지 않기 위해서 홍윤은 몸을 한껏 움츠려야 했다.

 

“빨리 안걸어?”

 

웅얼거리던 대머리의 목소리가 빗속을 뚫고들어왔다. 홍윤은 무어라고 입을 중얼거리면서도 걸음을 반박자 빨리했다.대머리의 말을 무시하자니, 그가 뒤에서 자신을 걷어찰것이 무서웠고. 그렇다고 걸음을 빨리하자니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르르 쾅쾅!

 

가뜩이나 지랄맞은 하늘에서 이제는 번개까지내리쳤다. 시간은 한낮인데도 어두운 그늘이 진듯 사방이 어두컴컴했다.

주위가 어두워지자 홍윤을 바라보던 거리의시선들도 하나둘씩 사라져갔다. 적막한 기운이 멤돌자 홍윤의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사실, 자신은 이런 조용한 분위기가 좋았다. 도박장에서 죽치고있는 군상들처럼 소리나 버럭버럭 지르고, 땀을 뻘뻘흘리며나무패를 흔들어대는 인간들과는 달랐다.

 

자신은 이런 도박판이 아니라 서당에서훈장노릇을 할 팔자인것이다. 분명히 어머니께서도 그러셨다. 너는머리가 똑똑하니 어디가서 굶어죽지는 않을꺼라고. 남들 힐들게 일할 때 앉아서 편하게 살것이라고 말이다.

 

“빨리 들어가!”

 

우주충한 거리를 지나자 도박장이 눈앞에보였다. 반쯤 열린 가림막 사이로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나왔다.

 

‘왔구나. 결국엔 또 왔어.’

 

오늘은 또 무슨 짐승들을 만나고, 얼마나 시달려야 끝날까 고민을 해봤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한치 앞도 모르는 게 사람인생인데 하물며 도박판에서야 말한듯 무엇하랴. 그저바람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이다.

 

“와아아!! 땄다!”

“이..! 이 개자식이 감히 누구앞에서 손장난을해!”

 

서걱!

 

“돈 좀 빌려줘! 돈좀! 따서 갚을께!”

 

수많은 짐승들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불과 가림막 한장을 열었을 뿐인데 전혀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밖은 시리도록 차가운 세상이었는데, 이곳은미치도록 뜨거웠다. 저도 모르게 홍윤의 손이 떨렸다. 그것이흥분감인지, 아니면 그저 습관적으로 하는 버릇인지는 분간하지 못했다.

 

“이야 홍윤이야!”

“안휘의 명물! 도귀 홍윤이다!”

“빨리 판 만들라고! 내가 어제 저 녀석한테잃은 돈이 2천냥이 넘어!”

 

홍윤의 얼굴을 확인한 도박꾼들이 홍해처럼갈라졌다. 밖에서는 삼류양아치 건달에게도 치이는 홍윤이었지만, 도박장에서의홍윤은 왕이었다. 도박장에서는 그저 도박잘하는 사람이 형님이요, 황제요, 고수였다.

 

“비켜라! 돈 있는 놈들만 앉아!”

 

박대원이 홍윤의 옆에서 철편을 휘두르며외쳤다.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홍윤은 삐걱거리는 마룻바닥을 지나서 주사위판이 열리고 있는 탁자로 향했다. 그는 걸음을 걸을때 마다 마루바닥이 내는 소리가 사람들의 비명소리와닮았다고 생각했다.

 

“자자! 다들 조용히 하라고! 이 재밌는 판을 놓칠셈이야?”

 

도박장의 바람잡이가 주변을 조용하게 만들었다. 앞뒤구분없이 날뛰던 도박꾼들도 이런 재미를 놓치긴 싫었는지 금새 조용해졌다.

 

“냄새가 보통이 아니군. 이놈들은 냄새도못맡는 놈들인가?”

 

홍윤이 코를 부여잡으며 말했다. 비가 퍼붓는 날씨라 그런지 나무에 찌든 악취가 진동을 했다. 욕망에미친 자들이 흘리는 땀이라서 그런지 더욱 더 고약했다.

 

“하하! 도귀가 앓는 소리는! 어제는 술에 잔뜩 취해서는 마루바닥을 혀로 햟았으면서 말야!”

 

맞은편에 앉은 멸치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젠장. 어쩐지 아침부터 구역질이 나오더라니.’

 

퉷!

 

홍윤이 목구멍 깊은 곳에서부터 침을 모아서뱉었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어제 일이 없던 일이 되는것 아니었다. 하지만이렇게 라도 하지않으면 영 찝찝해서 집중이 안될 것 같았다.

 

그사이에 두명의 도전자가 주사위 판에앉았다. 한명은 통이넓은 헝겊옷을 입고 있는 중년인이었는데, 눈빛이 흉흉하기 그지없었다. 기억은 안나지만 어제 자신에게 돈을 잃었던 사람일것이다.

 

‘저 자식, 저 안에 작두라도 숨겨온거 아냐?’

 

홍윤이 불안한 눈빛으로 중년인을 힐끔거렸다. 자신의 감이 말해주건데, 저 중년인 품안에는 서슬퍼런 작두가 숨겨져있을것이다.

나머지 한명은 사람좋은 웃음을 짓는 젊은이였다. 홍윤은 이쪽이야 말로 정말 조심해야할 사람이라고 느꼈다. 무림에서는저런 놈들을 더 조심해야 한다. 자신의 뒤에 서있는 빡빡이야 처음부터 안좋은 인상을 팍팍 풍겨대니, 저절로 긴장이 되고 방비를 할 수가 있다. 하지만, 저런 놈들은 웃는 낯으로 다가와서 등뒤에 칼을 쑤시는 것이다.

 

‘저놈은 칼로 쑤실때도 웃고 있을꺼야.’

 

홍윤이 어깨를 움츠렸다. 오늘은 날이 좋지 않았다. 아까부터 으슬으슬 올라오는 한기도 그렇고, 앞에 앉은 놈들도 그랬다. 자신을 둘러싸고 괴성을 지르고 있는 놈들도좋지않았다. 

 

오늘은…모든것이 좋지 않았다.

 

“자! 도귀! 오늘은 무슨 종목으로 할꺼야?”

 

심판을 맡은 사내가 물었다. 홍윤은 팔짱을 낀채로 턱짓을 했다.

 

달그락!

 

홍윤이 고른 종목은 주사위 였다. 주사위를 도구로 하는 도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이곳 안휘의 도박장들은단 한가지의 종목만 취급했다. 물잔 안에 다섯개의 주사위를 넣고 굴려서,홀짝을 알아맞추는 방법이다. 아주 간단하면서도 복잡한 머리싸움이 필요한 종목이었다.

 

“판돈은 무제한으로. 주사위는 각자가 굴리는것으로 하지.”

 

홍윤이 규칙을 설명했다. 구경꾼들이 수군거렸다. 그들이 놀란것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었는 데, 첫째는 판돈이 무제한이라는 것이었고, 두번째는 각자가 주사위를 굴리는것에 있었다.

 

주사위를 각자가 굴린다는 뜻은, 손장난. 그러니까 손기술을 쓸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뜻이었다. 여타 도박꾼들이 손기술을 철저히 배척하는 성향과 달랐다. 마치, 이번판은 ‘해볼 테면 해봐라!’ 라고외치는 듯 했다.

 

“역시도귀야!”

“도박에 미친 귀신이구만! 오늘 정말 누구하나는 손목 잘린 지박령이 되겠는데?”

“왜 지박령이야?”

“그야 죽어서도 도박장을 떠나지 못할 테니까!”

 

구경꾼들이 박장대소를 했다. 그들에게는 손에 땀을 쥐고 볼수 있는 재미난 판이 필요 했을 뿐이다.

 

“걸렸을때는 손목을 자르는 걸로.”

 

홍윤이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말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도박에 미친 귀신다운 눈빛이었지만, 그저 며칠동안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해서 눈가가 축 쳐진 것 뿐이었다.

 

“좋지. 화끈하게 가자고.”

 

중년인이 품안에서 시퍼런 작두를 꺼내서탁상위에 올렸다.

 

‘이런 빌어먹을 새끼!’

 

홍윤이 입밖으로 튀어 나오려는 욕을 간신히억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