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호노사.

무림에서는 폭야차(暴夜叉) 능진악이라고 주로 불렸던 그는 전신에 충만한 힘에 흠뻑 취해 있었다,

가볍게 손을 뻗으면 그가 알고 있던 무공의 변화들이 잔영처럼 보이고, 발을 들면 기기묘묘한 보법으로 절로 움직여진다.

일평생 숙원이었던 철종신음(鐵鍾神音)을 극성으로 연마함으로 인해 내공으로서는 천의무봉! 가히 최고의 경지에 오른 것이다.

철종신음은 오래전 한 시대를 풍미한 용음존자(龍音尊者)의 절학이다.

용음존자의 입에서 범종의 소리와도 같은 광음이 울려퍼질 때 누구도 감히 대적하지 못했다는 가공할 절학인 것이다.

능진악은 오랜 고련 끝에 철종신음이 궁극에 달해 천지교태를 이루니.

과거 용음존자를 뛰어넘음은 물론 당대 무림에서 그와 맞설 수 있는 사람이 열 명을 넘지 않으리라.

 

이렇게 능진악 스스로 대종사의 경지에 취해있을 무렵 그의 귓가에 작은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자연히 시선이 신음소리를 향하고 능진악은 기절해 있는 곽기정을 발견한다. 그리고 능진악이 곽기정을 보는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단번에 알게 되었다.

오감(五感)이 아닌 충만한 내공으로 인한 기감(氣感)이 원활하고 광대하게 변하여 이전과 같이 깊이 살펴야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한껏 영민해진 기감으로 인해 곽기정의 오장육부가 서서히 멈추고 있다는 것을 단박에 알게 되었다.

흔히들 말하는 내상의 일종.

능진악은 가볍게 곽기정을 향해 손을 뻗는다. 진기가 요동을 치며 뿜어져 나가 곽기정을 공중에 들어올린다.

그리고 들리는 가벼운 헛기침 소리.

철종신음의 모든 발경은 입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철종신음의 경지가 오르면 평조로 말하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격살할 수 있다.

물론 능진악이 도달한 경지라면 구지 입으로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저 오랜 세월로 인한 버릇일뿐.

그리고 그 한 번의 헛기침으로 곽기정의 내부를 어지럽히고 있는 철종신음의 여파를 싹 씻어내었다. 내상이 치유된 것은 아니지만 내상의 원인이 되는 기운을 몰아내었다.

‘이 상태로 활공을 한번 정도만 하면…….’

능진악의 생각이 활공(活功)에 이르자 진기가 다시 한 번 요동치면서 곽기정의 전신 혈도로 스며든다.

철종신음의 진기는 곽기정의 진탕된 내부를 진정시키고 보호하며 치유한다.

보통 이런 경우라면 손상된 위장에 쌓인 핏물이나 내장조각등이 입을 통해 토해져 나온다. 다만 곽기정의 내상은 그리 심각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탁한 기운이 소리를 내며 뿜어져 나온다.

[끄윽~!]

트림소리에 능진악은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터뜨린다. 그도 오래전에 철종신음에 입문할 때 그랬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능진악의 신경을 거스르는 기운이 느껴졌다.

그것은 곽기정의 어깨에 침투해있는 희미한 기운이었는데, 총 세 갈래로 나뉘어져 각각 어깨부근의 주요 혈도와 신경을 관통하는 모양새로 침투해 있었다.

“조법의 일종인가. 무슨 무공인진 모르겠지만 대단한 것은 아니군.”

능진악이 느낀 것은 다름 아닌 요호투심조의 기운이었다. 구유경이 좀전에 곽기정의 어깨를 건드리며 요호투심조로 수작을 부린 것이다.

특별한 종류의 수법이라기보다는 팔로 큰 동작을 하거나 힘을 주면 고통을 느끼게끔 해둔 것이다. 게다가 남겨둔 힘도 미미하여 하루 이틀이면 없어질 기운이기도 했다.

능진악은 그 기운을 없앨까 하다가 그냥 놔두기로 마음먹는다.

곽기정의 몸이 살포시 바닥에 내려앉고, 능진악의 지풍이 봄바람 마냥 통천혈을 살짝 스친다.

곽기정은 그제야 눈을 번쩍 뜨고 자신도 모르게 몸을 일으키려 한다. 하지만 술에 취한 사람마냥 몸을 움직이는 것이 뜻대로 되질 않았다.

그 모습을 모던 능진악은 조용히 손을 내밀어 곽기정을 부축한다.

“고맙습니다.”

능진악은 그제야 곽기정의 얼굴을 제대로 살필 수 있었다. 능진악의 한껏 예민한 기감이 그 말에 거짓이 없음을 알려왔다.

‘이 녀석은 여전히 나를 별로 어려워하지 않는군. 하긴 그래서 매일 아침 차심부름을 시킨 것이지만.’

능진악은 본래 무공을 익히지 않은 자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여긴다.

하지만 어떤 형태라도 무공을 익힌 자가 그의 심기를 거슬렀다가는 대게 죽음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능진악의 철칙인 셈이다.

능진악은 어차피 이틀 안에 사라질 미약한 금제니 구지 해소해줄 마음도 없지만, 무공을 모르는 자에게 이런 수법을 펼친자가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능진악은 곽기정의 어깨를 툭툭치며 말한다.

“이제부터 차는 가져오지 않아도 된다. 다만 내일쯤부터 여러 볼일이 있으니 내 수발을 들도록 해라.”

능진악의 말에 곽기정은 잠깐 뭔가를 생각하는가 싶더니 뭔가 떠오른 듯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역시 모과차는 무공수련에 필요한 것이었구나.”

곽기정의 혼잣말에 능진악은 약간 놀라며 되묻는다.

“그걸 어찌 아느냐.”

“그……. 그것이.”

능진악의 물음이 추궁이라고 느낀 곽기정은 당황하여 말을 제대로 있지 못했다.

“눈썰미가 있는 듯 해서 묻는 것이니 너무 당황치 않아도 된다.”

곽기정은 능진악의 말에 잠깐 말 없이 있다가 이내 입을 연다.

“이곳에 오기 전에 호정방에 있었는데, 거기서 노사가 매달 사가는 물품목록을 조사한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모과야 차로 많이들 마시는데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한 것이지?”

“모과 하나로 차를 끓인다면 최소 열흘은 충분히 마실 수 있을 텐데 매달 서른개 가까이 사시길레 그리 생각햇습니다.”

능진악은 곽기정의 설명이 만족치 못해 잠시 수염을 쓰다듬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뜻밖에도 곽기정 역시 그렇게 생각했는지 잠깐 궁리하는가 싶더니 말을 더한다.

“호정방의 방주는 가끔씩 여우를 잡아다가 풀어놓고 보는 것을 즐겼습니다. 처음엔 호정방의 이름때문인가 싶었지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호정방주의 무공은 여우의 행동을 본딴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모과를 사는 것 역시 무공과 관련있다고 추측한 것이다?”

“예.”

곽기정의 대답에 만족한 능진악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철종신음의 입문단계에서는 모과차를 매일 마셔줘야 한다. 능진악이 모과차를 마시는 것 역시 그런 이유에서 비롯된 버릇인 셈이다.

능진악은 곽기정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몇 가지 경험에 의해 추론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자신의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을 정도의 영민함. 그리고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궁리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생각이 깊다는 뜻이기도 하다.

곽기정이 절세의 기재인지 아닌지 그런 것은 능진악으로서는 당장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몇 수 가르쳐 볼만한 재목임에는 분명한 것이다.

‘혼원장이라도 한번 가르쳐 봐야겠군.’

능진악이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있을 때 곽기정이 별 생각 없이 한마디를 던진다.

“다리를 절지 않으시네요.”

곽기정의 말에 능진악은 피식 웃으며 수련장 쪽으로 손을 쑥 뻗는다.

그러자 낡은 나무 지팡이가 능진악의 손으로 느린 화살마냥 날아온다. 그리곤 지팡이를 짚으며 의미심장하게 웃는다.

“어디를 좀 다녀 올 테니 내일까지 이걸 연습하고 있도록 해라.”

능진악은 그 말과 함께 한손을 위아래등으로 복잡하게 움직인다. 곽기정은 그 동작을 따라 하기는 커녕 기억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 동작이 끝나자 마지 능직악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곽기정은 자신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그리고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한마디 중얼거렸다.

“뭔일이야 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