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 깃펜이 원목으로 된 책상을 두들겼다. 한편에는 상당량의 종이가 쌓여있고 다른 한편에도 종이가 쌓여있다. 그 종이의 탑 사이에 한 여성이 파묻혀 깃펜을 들고 있다.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미인이다. 여인은 두 종이탑 중 하나에서 종이를 몇 장 들고 읽고서 깃펜으로 거침없이 사인을 했다. 그 뒤 다른 쪽에 있는 종이 탑에 올렸다. 한동안 시간이 지난 후. 시계를 쳐다보더니 기지개를 펴고 일어났다. 여자가 일어나자 입고 있던 드레스 자락이 사르륵 하면서 딸려 움직였다. 여자는 하품을 한번 하더니 일어나 나무로 된 커다란 문을 열고 나갔다. 시계는 11시를 가리키고 있다.

 뚜벅뚜벅 여자가 걸어가는 소리에 어느새 걷는 소리가 추가됬다. 여자가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에는 열 몇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함께 걷고 있었다. 여자는 한숨을 내쉬더니 손을 넓게 휘둘렀다. 같이 걷던 사람들이 일제히 물러나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달칵, 문을 열고 들어가자 휘황찬란한 방이 나왔다. 각종 원목으로 된 가구들은 모서리나 손잡이가 구하기도 힘든 보석들로 치장되어 있고 한쪽에 있는 옷장에선 그야말로 빛이 나오는 것 같았다. 여자는 전혀 눈짓 한번 주지 않고 바로 다섯명이 대자로 누워도 전혀 부족하지 않을 것 같은 침대로 걸어갔다. 한쪽에 걸터앉고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바로 뒤로 누웠다. 바로 잠에 들었다.

 안은 황금으로 된 식탁. 자개와 진주로 장식된 의자. 여러 개의 샹들리에로 빛이 찬란하게 분산되고 벽 전체는 창문이어서 정원이 식탁을 둘러싸고 있는 느낌을 주었다. 식탁 위에는 각종 진귀한 재료들로 만들어진 진수성찬이 올라와 있었고 사람들은 자개와 진주로 장식된 의자위에 또다시 장식을 하는 듯이 엄청난 장신구들을 하고 그 위에 앉아있었다. 여자는 그들을 향해 치맛자락을 잡고 고개를 숙였다. 사람들은 일제히 만족한다는 듯이 웃음을 지으면서 같이 고개를 숙였다. 그중 한 사람이 한쪽 의자를 가리켰다. 여자는 조신하게 걸어가 자리에 앉았다. 대화와 함께 식사는 시작되었다. 여자는 혼자였다. 주위에는 온통 남자뿐이었다. 여자가 해야 할 일은 간단했다. 대화를 듣다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그저 미소를 짓고, 가끔가다 고기를 썰어서 조금 먹고 식탁에 있는 음식을 아주 천천히 조금씩 덜어서 먹으면 됐다. 말을 할 필요도 없었고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한동안의 시간이 지난 뒤 상석에 있던 남자가 일어나자 자리가 파했다. 여자도 일어나 다른 사람들의 인사를 받으며 빠져나왔다.

 여자가 자리에서 나와 간 곳은 아까 그 방이었다. 그곳에서 시계를 잠깐 본 뒤 장신구들을 떼어내어 탁자 위에 내팽겨 쳐 놨다. 그리고 자명종의 태엽을 몇 번 돌린 다음 바로 다시 침대에 누웠다. 이번에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듯 침대 위에 온몸이 올라가 있었다. 그리고 여자는 잠에 들었다.

 따르르릉. 아까 같이 자명종이 울리자 여자는 일어나 시계를 쳐다보았다. 방에 딸린 화장실에 들어가 잠깐 세수를 한 뒤에 방을 나와서 걷기 시작했다. 뚜벅뚜벅 또다시 걷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사람이 늘어나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람이 많이 불어있었다. 여자는 이번에는 아무 표정도 짓지 않고 손을 살짝 거칠게 휘저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기계처럼 그녀에게서 멀어져 걸어갔다. 여자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종이의 탑이 책상 양쪽에 거대하게 쌓여있다. 여자는 그것을 보고 한숨을 내쉰 뒤에 다시 의자 앞에 앉아 한쪽 탑에서 종이를 끌고 와 읽고 사인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다시 시간이 지나갔다.

 톡톡. 다시 깃펜이 책상을 두드렸다. 그리고 여자는 시계를 보고 기지개를 켜고 일어났다. 그리고서는 피곤한 얼굴로 문을 연 뒤에 걷기 시작했다. 뚜벅뚜벅 또다시 사람들은 그녀와 함께 걷고 그녀가 목적지에 도착한 다음 손을 휘두르자 다시 그녀에게서 멀어져 걸어갔다. 문을 열고나서 그녀는 자명종의 태엽을 이번에는 꽤 오래 감았다. 바로 침대로 가 누워버렸다. 그녀는 생각했다. 내일도, 모레도 같을 거라고. 그리고 꿈이라는 피신처조차 없는 깊은 밤에 녹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