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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은 멍하니 서있었다.

이른바 "용사" 의 쓰레기같은 만행에, 그는 치가 떨렸다.

수없이 오랜 세월동안, 용사는 "마왕" 과 싸워왔다.

마침내, 용사는 마왕을 죽였지만, 그보다 더한 악마를 불러내고 말았다.

바로 "결정체" 였다.

지구의 중심에 위치한다는 보석 형태의 결정체.

그것은 하나의 살아있는, 생물이었다.

태고의 아주 오랜 시간동안, 끈질기게 그 지식을 이어온, 고고한 존재였다.

그 존재가, 눈을 뜨고는, 폭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 세계에 존재하던 《능력자》들은 모두 힘을 합해 지하 세계를 만들어 문명을 이룩하고는,

서로 힘을 모아 이른바 코드네임 《마더》의 폭주를 막았다.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채, 은신생활을 해오던 능력자들은, 용사의 활약으로,

이제는 행복만이 가득할 것이라 믿었다.

아주 크나큰 오산이었다.

지하세계는 이제 《마더》를 막기위해, 《능력자》에게서 에너지를 착취해내는,

강제징용소로 변해버렸다.

마왕을 쓰러트린 "용사" 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은 이제, 진짜 "용사" 가 나타나, 이 길고 긴 싸움을 끝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권혁도 예외는 아니었다.



"허억...허억...여, 연화야...허억..."



거친 숨을 몰아쉬던 권혁은, 눈앞의 연화라는 소녀를 바라보고는 눈물을 흘렸다.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하며, 은은한 후광이 비춰지는 그 모습은, 그야말로 성녀 마리아에 필적할 정도의 성스러움이었다.

그러나 그런 성스러움과는 대조적으로, 연화라 불린 이 소녀의 입가에서는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오라버니, 저는, 저는 신경쓰지 마시고, 용사, 용사님을...이번엔, 반응이 세개...어쩌면, 진짜로, 구원이..."




그 생기없는 모습에 얼굴이 새하얘진 권혁이 소리쳤다.



"입다물어, 이자식아!!! 너, 그러다 죽는단 말야!!!"



그러자 연화는 슬프게 웃더니, 다시 입을 열며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러면...약속해주세요. 용사님을, 데려오겠다고..."



권혁은 그 필사적인 모습에 다시한번 눈물을 삼키며 손가락을 내걸었다.



"약속하지. 내 목숨과 맞바꿔서라도...데려오겠어. 반드시."



권혁은 달렸다.

달리고 달려서, 다리가 터질 지경이 될때까지 달렸다.

마침내 환한 빛이 그를 맞이하였을땐, 그는 두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태양이 있고, 상쾌한 풀내음이 그의 코를 간질이고 있었다.

태양은 노란색과 빨간색이 섞인 오묘한 색.

지하세계에서 태양을 대신하던 거대한 푸른 랜턴과는 비교가 안됬다.

그러나 그런 경치에 감상할 시간도 없이, 그는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뛰쳐나갔다.



"용사...진정한 용사...《전이자》, 그를 찾아야 해..."



권혁은 어느새 산길을 넘어, 언덕 너머로 모습을 감추었다.

절묘한 타이밍에 져가고있는 석양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



"후우, 잘...해야해."



올해로 17살이 되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그 소년의 이름은, '유가온' 이었다.

이름은 나쁘지 않았으나, 그 성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는 항상 성을 숨기고 이름 만을 밝혀왔다.

이번에도 그럴 것임에는 틀림 없었다.



"뭘 그렇게 걱정하고 있어? 뚱~한 표정 짓고 서는, 마치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도 된다는 듯이 말야."



그가 한참을 그렇게 있자, 보다 못한 그의 소꿉친구 이겨울이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그러자 가온은 그제서야 그녀가 왔다는 것을 눈치챈 것인지 두 눈을 크게 뜨고는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재빨리 사태를 수습했다.



"아, 너 언제왔...이 아니라, 하하...빨리왔넼크엌?!"



그는 하려던 말을 끝까지 마치지 못했다. 곧이어 날아온 그의 소꿉친구가 날린 강렬한 어퍼컷에 맞아 잠시 공중에 떠있는다는 느낌을 만끽하는 중이었다.

이윽고 겨울은 그 예쁜 얼굴을 뾰루퉁하게 볼을 내밀어 부풀리고, 팔은 이리저리 휘저으며, 온몸으로 "나, 진짜로 화났어"!"하고 말하듯이 자신의 기분을 표현했다.

 그 모습이 참으로 흐뭇하여, 지나가는 할아버지가 "청춘이구나~'라거나 지나가던 할머니가 "청춘이네요~"라거나 중얼거리며 지나갔지만, 마냥 보고만 있기에는 상황이 너무나도 안좋았기에, 그는 이 상황을 벗어날 타개책을 생각했다. 

그러는 사이 두번째 어퍼컷이 날아왔다.



"또 이 상황만 넘어가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지이~?! 반성은 안하고 말야!!!"



"히이이익?! 너, 너 초능력자냨쿠헥?!"



그는 두번째 어퍼컷을 맞으며 '아, 이거X됐다'라고 작게 욕을 내뱉으며, 그러나 두려움에 차마 크게는 말하지 못한 채 그의 소꿉친구와 함께 등교를 시작했다.

옆에서 그의 소꿉친구가 "아, 좀, 눈치 좀 채란 말야 이 바보야...근데, 손...정도는, 잡아도 되는데..."라고 중얼거리며 얼굴을 붉혔으나 그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복부에 강렬한 어퍼컷이 꽂혀서,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아 경직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이 바로, 그의 고등학교 입학식이었다.

첫날부터 왠지 느낌이 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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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음..."



그는 조금씩 그의 소꿉친구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의 소꿉친구 이겨울이 벌써 며칠째 학교를 나오지 않는다.

왜일까.

등교는 하는데 학교 내에서 단 한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

그때, 그의 반의 분위기 메이커 윤상혁이 다가왔다.



"왜, 이게 없으니까 걱정되냐? 막 긴장되고 초조하고 그러지, 앙?"



그러면서 분위기메이커 윤상혁이 새끼손가락을 펴보이자, 그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다시 윤상혁이 입을 열었다.



"너, 그 겨울인가 뭔가 하는 애랑 이거라며, 이거? 사.귀.는.거.잖.아?"



그 말을 듣고, 그는 조용히, 그러나 무게가 담긴 말을 내뱉는다.



"그거, 그 녀석 앞에서 말했다간 죽는다."



뼈가 있는, 경험이 담긴 듯한 그 말에 반 전체가 얼어붙었다.

이 일로 인해 훗날 '이겨울 일진설' 이 생겨나 교사들 사이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지만, 그건 다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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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그는 그의 소꿉친구 이겨울의 집에서 돌아오는 길이다.

아무래도 같이 보낸 시간이 길다보니, 그녀가 걱정이 되는 것은 당연.

그리하여 집에도 가 보았으나, 부모님들도 영문을 모른다고 하였다.

경찰이 수색 및 조사를 하고 있지만, 아무런 단서도 나오질 않아 수사는 좀처럼 진전이 없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는 겨울의 부모님에게서 한바탕 눈물을 쏟으며 그녀(겨울)이 얼마나 착했는지, 얼마나 예뻤는지에 대한 설교를 들어야 했다.

분위기가 매우 안좋아서 도중에 돌아가기도 뻘쭘하던 그는, 결국 저녁이 되어서야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빨간 하늘과 구름 위로 빼꼼 고개를 내민채 저물어가는 석양이 아름다웠으나, 오늘따라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그때였다.



"어, 어라?"



주위가 온통 새까매지더니 모든 빛이 전부 사라졌다.

이른바 '정전' 이라고 일컷는 단순한 산업재해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해가 다 지지도 않았는데 사방이 암흑에 뒤덮인 것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가로등의 불빛은 모조리 꺼져있었고, 게다가 하나같이 전구가 모조리 부숴져 있었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방금까지 들려오던 아이들의웃음소리가, 어른들의 이야깃소리와 술취한 아저씨들의 험상궃은 우스갯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던 것이다.

마치, 이곳에는 그런 소리가 애초부터 들려오지 않았다는 듯이.



"푸욱"



그 길고 긴 정적을 깨고, 상당히 먼 곳에서 울려오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자세히 보니, 건물들에 가려져 잘 보이진 않았으나, 그 쪽에는 희미하게나마 불빛이 비춰지고 있었다.



"아, 저기 뭔가 있는건가?!"



나는 그곳으로 달려갔다.

지금, 이런 듣도보도 못한 사태에 겁먹고 아무것도 안하는 것은 성격에 맞지 않는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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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눈 앞의 참극을 본다면 누구라도 그러리라.

아무런 흉기도 지니지 않은 성인 남성 한명이, 놀랄만한 힘으로 쓰러져 있는 여자의 살을 잡아뜯으면서 마구 소리치고 있었다.



"그니까 썅! 그냥 한번 대주는 것 같고 뭘 그렇게 비싸게 구냐고 이 XX야! 어차피 알고 있었잖아?! 니 어디가 좋다고 내가 아무 이유없이 돈을 갖다 바치겄냐?! 아앙?
생각을 해보라고! 너도 몸대주고 받는 거란 거 알고 쳐먹은거 아냐, 이 XXXXX가! 어차피 이런 식으로 많이 해먹었을거 아냐!!!이 개XXXXXXX가!!!!"



그 남성은 차마 듣지 못할 정도로 거북한 말을 내뱉으며 여성의 살을 계속해서, 계속해서 잡아뜯고 있었다.

내가 얼어붙어있는 이유는 그것 때문이었다.

이 참혹하고 무자비한 광경에, 그만 공포로 몸이 마비된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믿기 싫었던 건, 바로 그 쓰러져서 살을 쥐어뜯기며, 피투성이가 되어있는 여자가, 바로 그의 실종된 소꿉친구 이겨울 이었던 것이다.

이윽고 남성은 살을 잡아뜯던 손을 멈추고, 이쪽을 바라보더니, 잠시 한숨을 쉬고 입을 열었다.



"아..학생, 아직도 안갔어? 하아...이런덴 학생들이 올 만한 데가 아니라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남성은 내게 다가왔다.

어째서인지 남성의 손이 유난히 날카롭게 보이는 것은, 분명 착각이 아니리라.

그는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도, 앞으로 한발 내딛으며 입을 열었다.



"내...내친구를, 놔,놔줘요..."



어딘가 만화의 주인공이나 할 것 같은 대사였다.

그러나 순수하게 몸이 생존을 위해 보내는 본능적인 공포에 경직된 그로서는, 이게 최선이었다.

그 말을 듣자 남성은 길게 한숨을 쉬더니, 눈빛을 바꾸고서 다시 말했다.



"야, 너, 역시 그냥은 못 보내주겠다. 아니, 다 본 이상, 살려보낼 수는 없겠네. 좋아, 죽어."



그러자 남성을 중심으로 어마어마한 살기가 공간을 헤집듯이 요동쳤다.

그는 목이 턱- 막히는  듯한 그 어마어마한 살기에, 살기위해 발버둥 쳤다.

목에 보이지 않는 줄이라도 매어있다는 양, 마구 목에서 뭔가를 벗겨내려하는 그의 모습에, 남성은 잠시 웃음을 터트렸다.



"푸,푸하하하하하! 크하하하! 크크큭, 뭔가 거창한 말을 꺼내기에 뭐라도 해보일 줄 알았더니...크하하핫!"



이윽고 가온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그리고 가온이 더이상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지자, 남성이 작게 중얼거렸다.



"좋아, 술래잡기라도 하자는 건가?
......지루하지만은 않도록 해달라고."



그 말을 내뱉고 남성은 가온이 달려나간 방향으로 뛰어갔다.

가온, 그의 인생에 어둠이 내려와, 그 삶이라는 무대를 끝내려 하고 있었다.

그의 인생에 어두운 그림자가 내리는 순간이었다.

[-1화, 술래잡기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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