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두 마리가 끄는 마차의 바퀴 소리가 적나라하게 울린다. 사내는 말들의 고삐를 천천히 당겼다. 마차가 멈췄다. 사내는 마부석에서 내려왔다. 제법 먼 거리를 달려오느라 지친 말들을 달랬다. 

  그는 피곤한 두 눈을 비볐다. 외투 안주머니에서 손을 넣어 시가 한 개비를 꺼낸 그는 잠시 후 눈살을 찌푸렸다. 옷을 아무리 뒤져봐도 불을 붙일만한 게 없었다. 사내는 누구에게도 하소연 할 수 없는 괴로움에 짜증이 났다. 시가를 품속에 집어넣었다. 그는 찌뿌듯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목적지까지의 남은 거리를 재기 위해 마부석 언저리에 놓인 가죽 가방에서 지도를 꺼냈다. 

  지도를 훑어본 사내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울창한 수풀이 우거진 숲이 눈에 들어왔다. 지도를 헷갈리지 않고 제대로 봤고 지금까지 길을 잃지 않았다는 전제하에 숲의 이름은 카랑탄일 것이다. 그리고 숲으로부터 거대한 성, 울돌레이까지는 마차로 이틀 남짓한 거리다. 사내는 지도를 접어 가방에 넣었다. 목적지가 눈앞이다. 

  물건이 비에 젖지 않게 두꺼운 천을 덮어 놓은 화물칸 앞에 섰다. 그는 천막을 젖히며 말했다. 

  “일어나. 다 왔다.”

  젖힌 천막 사이로 들어오는 빛줄기에 화물칸 안에 있던 검은 머리칼의 남자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느닷없는 욕설에 사내는 미간을 좁히곤 천막을 더 활짝 젖혔다. “이게 미쳤나.”

  “멀미하는 놈 배려해서 며칠을 잠도 못자고 운전한 나를 배려해줄 생각이 없다면, 나도 너에 대한 존중을 그만두겠다. 윈터펠.”

  “네가 날 존중해본 적은 있냐?”

  카로스가 씩 웃었다. 당연히 없다는 뜻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뜻이 통한다는 사실에 진절머리를 내며 윈터펠이 몸을 일으켰다. 어지러운 머리와 울렁거리는 속을 진정시키며 윈터펠은 마차 바깥으로 몸을 내밀었다. 

  멀미 때문에 제대로 먹지도 잠을 자지도 못한 윈터펠의 몰골은 초췌했다. 카로스는 금방이라도 토악질을 해댈 것 같은 창백한 얼굴을 보며 말했다.

  “나 이제 잘 건데, 너도 자면 죽는다.”

  “아, 몰라. 죽을 거 같으니까 말 시키지 마라.”

  피식 웃은 카로스는 들고 있던 가방에서 물주머니를 던져주었다.

  “꼬라지 보니 물 동내놨을 거 같아서 내 거 준다. 나 자고 일어나면 물주머니는 가득해야 할 것이야.”

  윈터펠은 몸짓으로 감사 인사를 대신했다. 그는 허겁지겁 물을 마셨다. 그리곤 남은 물을 카로스에게 던지며 마차에서 내려왔다. 

  땅을 밟자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윈터펠은 한결 나아진 얼굴로 힘 없이 후들거리는 두 다리를 붙잡았다. 그는 카로스가 물을 마시는 사이 주변을 둘러봤다. 

  “카랑탄이군. 울돌레이까지 이틀 정도 남았네.”

  지도 없이 한 번에 자신의 위치를 특정하는 모습에 놀랄 법도 했다. 하지만 으레 그랬던 일이었기에 카로스는 놀라지 않았다. 물주머니를 깨끗하게 비운 카로스가 화물칸에 오르며 말했다. 

  “합류까지 얼마나 남았지?”

  윈터펠은 하늘을 한 번 쳐다보곤 답했다.

  “사흘. 생각보다 빨리 왔네. 일 하나 마무리한 것 치곤.”

  이부자리를 깔고 누운 카로스는 머리맡에 놓인 윈터펠의 칼을 마차 밖으로 던졌다. 윈터펠은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칼을 보지도 않고 붙잡았다. 카로스가 발 주변에나뒹굴고 있던 자신의 칼을 머리맡에 두며 말했다. 

  “옆에 여물 있다. 말들 밥 먹이고, 내 물 채워놓고 하는 김에 네 것도 채워 넣고 해.”

  윈터펠은 ‘이제 잘 테니까 건들지 마’라는 말이 생략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활력이 돌아온 얼굴로 일어섰다. 자는 카로스를 위해 빛이 새지 않게끔 젖혀 있던 천막을 내렸다. 윈터펠은 카로스가 놓고 간 배낭을 뒤적였다. 온갖 잡동사니 틈새에서 나침반을 찾은 윈터펠이 중얼거렸다.

  “하. 이번에 돈 좀 벌면 마법 도시에서 파는 비싼 창고나 사러 가야겠다. 매번 필요한 물건 찾을 때 한참 걸리니 원,”

  그는 마저 지도를 꺼내 펼쳤다. 그리고 그 위에 나침반을 얹어 놓고 미리 외투 주머니에서 꺼내든 깃펜으로 지도에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카로스는 수많은 언어와 문자를 알고 있지만 윈터펠은 그와 함께 나고 자란 왕국 페이서스의 말뿐이 모른다. 언제나 다른 언어와 문자를 배울 필요성을 느끼지만 카로스가 있기에 실천은 하지 않는다. 윈터펠은 자신과 카로스의 겨울 용병단이 도착하길 기다리며 울돌레이의 공성 시나리오를 짜냈다. 

  머리 쓰는 일을 마친 그는 후발대를 위해 숲속으로 정찰을 나갔다. 자리를 비운 사이 카로스가 습격을 당할 가능성도 있었다. 며칠을 잠도 안 자고 마차를 몰고 온 사람의 취침이니 쉽게 못 일어날 게 분명했다. 확실히 마차에서 자고 있는 이가 카로스가 아니었다면 윈터펠은 멀리 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윈터펠과 카로스는 자다가 습격당해 죽는 어중이떠중이와는 격이 다르다. 심지어 카로스의 감은 윈터펠보다 더 뛰어났다. 걱정은 사치다. 

  숲을 돌아다니던 중 개울을 발견했다. 지도에는 이런 상세한 정보까진 나타나있지 않았다. 윈터펠은 공성전을 예측해놓아 지저분해진 지도를 꺼냈다. 그리곤 먼지를 털어내듯 입바람을 불었다. 그러자 난장판이 되어 있던 지도는 다시 깨끗해졌다. 깨끗해진 걸 확인한 그는 주머니에서 깃펜을 꺼냈다. 자신의 위치를 확정하며 지도에 개울을 그렸다.

  지도와 펜을 한손에 쥐고 개울을 따라 걸었다. 한참을 지나 윈터펠은 작은 연못에 도착했다. 그는 지금까지 걸어온 방향과 위치 개울의 길이 연못의 폭, 지도의 축적을 고려해 자신이 경험한 걸 전부 새로 써넣었다. 

  일을 마친 윈터펠은 지도와 펜을 집어넣었다. 그는 왼쪽 허리춤의 걸쇠에 걸어둔 칼을 빼 큰 소나무 옆에 세웠다. 반대쪽에 묶어놓았던 물주머니를 풀어 연못으로 다가갔다.

  연못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윈터펠은 총 다섯 줄기의 개울로 빠져나가는 물의 양이 상당할 것인데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모종의 힘이 작용한다는 걸 확신한 윈터펠은 조심스럽게 연못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오늘따라 감이 영 힘을 못 쓰는 상황이 아쉬웠다. 속으로 카로스가 있었다면 바로 마셔도 되는 물인지 알 수 있었을 거라는 푸념을 늘어놓으며 투기를 활성화했다. 

  그는 연못 전체에 자신의 투기를 해방해 풀어놓았다. 그 뒤 투기의 고유한 특성을 변질시켜 연못에 풀린 투기가 어디로 가든 무엇에 맞닥뜨리든 자신의 몸처럼 느낄 수 있게 했다. 그 다음 더 정확하게 연못을 확인할 수 있게끔 실체가 없던 투기 중 일부를 두 눈으로 만들었다. 

  이렇다 할 위험을 찾지 못하자 그제야 물을 떠 딱 한 모금 마셨다. 입을 통해 들어간 물이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지켜본 후 무해하다는 게 확실해지자 연못 속에 물주머니를 집어넣었다. 

  가득 찬 물주머니를 꺼내 마개를 닫았다. 물기를 대충 털어낸 뒤 허리춤에 멘 윈터펠은 손에 묻은 물기도 닦았다. 다시 지도와 펜을 꺼낸 그는 해가 지기 전까지 숲을 돌아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