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 시점]

 

"후아암...아함...잘...자지 못했다..."

 

상쾌한 아침을 시작하려 한 기지개로 그만 허리가 나가버렸다. 기지개가 왜 안펴지지 하고 힘을 줬는데, 알고보니 인체의 한계에 도전하는 동작을 취하려 한 것이다. 뒤늦게 후회해 보았지만 야속하게도 수습이 되질 않아서, 거의 30분 가량을 누워있어야 했다.

 

"으으으...허리야."

 

할머니같은 말을 내뱉고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회복된 허리를 부추겨서 부엌으로 향했다.

거실에 놓인 큰 소파와 밤새 켜져있던 TV를 보자, 왠지 외로움이 솟구쳐 올랐다.

부모님이 앉아서 일일 연속극을 볼 것 같은 그 소파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 집엔 나를 빼곤 아무도 없었다. 이젠 익숙해졌다. 아니 익숙해져야만 했다.

 

부엌에서 커피포트를 꺼내 상큼한(?) 에스프레소로 하루를 시작하려는 찰나, 

한동안 쓰지 않던 체중계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자 에스프레소와 몸매관리 사이에서 커다란 갈등으로 인해 전쟁이 벌어지고 말았다.

 

"한번...재보는 것도 괜찮겠지?"

 

두다리를 체중계에 올려놓고서 기다리니, 야속하게도 체중계의 앞자리는 5였다. 정확히 50이었던 것이다.

 

"꺄아아! 5라니! 5라니잇!"

 

17세 여성의 평균 몸무게에 대한 통계표에는 최소 50이상이라고 나와있었다. 정확히 50이라면 약간 저체중에 속했다.

하지만 나는 키가 남들보다 작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이 수치에 좌절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너무 작은 키라 뚱뚱하진 않았다. 오히려 약간 마른 편이었다. 얼굴은 아름답다기다기보다는

약간 예쁘장하고 전체적으로 귀염장하다는 이야길 많이 들었다.

하지만 안된다. 그런 외모로는 살아가기 힘들 것이다. 당장에 그 녀석만 보아도, 예쁜 애만 따라다니는데.

 

"쿵...쾅...쿵...쿵..."

 

어디선가 크게 울림소리가 들리더니, 땅이 약하게 진동했다.

아무 반동이 없다가 진동을 느끼니,약한 진동에도 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대체 무슨 소리지? 이 근방은 외진 시골이라 사람이 별로 살지 않는데.

마트에 장보러 갈 때에도 스쿠터를 타야 할 정도인데, 난데없이 이런 큰 소리는,

도무지 설명이 안됬다.

 

"부아아아아앙!"

 

격정적인 엔진소리에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소엔진에서나 날 법한 날카로운 소리는 방음기를 제거한 것이인지 아니면 동굴이 있는건지 크게

증폭되어 울렸다.

 

이윽고 문이 열리더니, 왠지 낯이 익은 남자아이가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무언가 급한 일이 있던 것인지, 그 아이는 헬멧조차 벗지 않은 채였다.

 

......그런데, 정말 낯이 익은데.

 

 

"아...저기, 누구...아아아아...! 서, 선우잖아앗!"

 

그 아이는 그토록 보고싶던 이선우였다. 그러나 선우는 내쪽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는 쉬지않고

움직였다. 품에서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흰 종이를 꺼내더니 주문을 읊었고, 그의 주문에

하얀 막이 집 전체를 보호하듯 감싸졌다.

 

"서, 선우야...근데 너...옷에 웬 검은 피가...괜찮은거야?"

 

약간 검붉은 그런 혈흔하고는 달랐다. 아예 완전히 새까만 피 였는데,

마치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무시무시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 혈흔의 양도 상당했다. 윗옷에서 왼쪽 어깨와 배꼽 부분을 빼고는 모두 혈흔으로 범벅이었다.

혈흔이 하도 많았는지 바닥에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

 

이윽고 선우는 쓰러졌다.

 

 

                                                                  [2화 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