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숨에 빛을 뚫고 튀어나와 패러데이의 뒤쪽으로 다가가 단숨에 나이프로 놈의 목을 그었다. 그어서 벌어진 상처에서 피가 솟구친다. 패러데이는 두 손으로 목을 붙든 채 무릎을 꿇는다. 말 대신 솟구치는 피를 바라보았다. 건너편의 리스도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본다.


"프로스트, 대체 무슨 짓을..."


무슨 짓이라니? 동굴에 막 들어왔을 때부터 날 죽이려던 놈이었다. 방금 전에도 하얀빛으로 날 끌어들여 가뒀지. 내가 빠져나온 거지.


"안타깝구나, 프로스트.."


놈이 목을 부여잡은 채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럼, 안타깝겠지. 안타까울 것이고 말고. 이번엔 날 확실히 가두었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네놈의 한심한 과거 같은 게 무슨 위협이 되겠냐.


"안타까운 건 너야, 프로스트. 이미 진실을 아는데도 멈출 생각이 없으니 말야.."


쫑알쫑알 시끄럽군.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놈이 투명한 모습으로 희미해지더니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어디로 간 거지?"


리스가 당황스러운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패러데이를 찾는다. 


"죽은 건가?"


혼잣말인지 아니면 나에게 묻는 것인지 모호했지만 일단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확신할 순 없지만, 아마 잠시 모습을 감췄을 뿐이리라. 


"그럼, 언제고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거구나."


리스의 얼굴이 어둡다. 또 패러데이가 나타날까 봐 두려워서일까. 하지만 난 이제 놈을 다시 만나도 이길 수 있을 것 같다.


"이길 수 있을 것 같다고? 어떻게?"
"뭐 다 방법이 있어."
"그 방법이 뭔데?"
"일단 가면서 얘기하자고. 아, 뭐 당신은 수정 구슬서 알아낸 거 없어?"
"가면서 얘기하자며."


===


로봇들이 오류로 인해 공황 상태에 빠진 거였단 말이지.. 우리 앞에서 보였던 그 이상한 움직임들이 이제야 설명이 되는군. 


"근데 이상한 말을 했어. 패러데이 자신도 그 오류로 생겼다는데.. 그건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하겠어."
"나, 나도.. 나도 그건 무슨 뜻인지 모르겠군. 아,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내가 너무 성급하게 목을 그었군. 하지만 환상 속에선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어.."


리스의 표정이 미묘하다. 조금 눈치 보인다. 리스가 날 살짝 흘겨 보...는 건가? 음? 아무리 봐도 탓하는 눈빛은 아니다. 느낄 수 있다. 저건, 저건 아무리 봐도 눈치를 보고 있다. 난 몰라도 왜 리스가 내 눈치를? 비록 전면 헬멧을 쓰고 있어서 내 표정을 - 이게 좀 웃긴데, 난 리스와 만난 이후 단 한 번도 전면 헬멧을 벗은 적이 없어서 리스는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 - 살필 순 없겠지만, 그래도 명백하다. 분명 내 눈치를 살피고 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뭔가 숨기는 게 있나? 그녀는 자신의 시선이 들킨 걸 안 모양인지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뭐 별 수 있었겠어. 거기서 반드시 빠져나와야 했는데 말야. 그리고 그 후에 바로 들은 게 있어. 굉장히 중요해. 푸른색 수정 구슬에 대해서 말이지." 


푸른색 수정 구슬? 우리가 봤던 투명한 수정 구슬과 다른 수정 구슬도 있다는 건가? 그 푸른색 구슬이 무슨 다른 기능이..


"..그 말을 이어서 하려는데 당신이 튀어나와 녀석의 목을 그어버린 거지."


아, 이런 무안한 일이. 조금만 늦게 나올 걸 그랬나. 하지만 곧이어 리스가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뭐 하는 물건인지 알 것 같아. 그 푸른 구슬이 바로 로봇 제어장치일 거야."


뭐라고?


"왜냐하면 푸른 구슬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제어권이 내장된 기기'라면서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신신당부했거든."


그럼 거의 확실하겠군. 하지만 동시에 모순도 생겼다. 나와 리스는 분명 한 팀을 이뤄서 로봇의 제어 권한을 추적하고 있었다. 그리고, 패러데이는 날 죽이려 한다. 그런데 리스에게는 반드시 그 제어권한을 찾으라고 말하고 있다. 나와 리스는 한 편인데, 나는 죽이려 들면서 리스는 도와주고 있다니.. 혹시 함정 아닐까? 푸른색 수정 구슬 자체가 죽음의 덫일 수도 있다.


"그렇군. 함정일 수도 있겠구나."


리스도 짐짓 긴장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함정일 리가 없어.'


리스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최대한 프로스트의 말에 맞장구치면서. 방금 전에는 살짝 위험했다. 프로스트의 얼굴도 보이지 않는데 자신도 모르게 프로스트의 표정을 읽으려고 했다. 혹시 프로스트가 눈치챘을까? 


'굳이 함정까지 준비하면서 나와 프로스트를 끌어들일 리가 없어. 패러데이에겐 그 자리에서 날 죽이고도 남을 힘이 있었어. 놈은 분명 다른 목적이 있어.'


리스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두려움, 그리고 말로는 설명 못 할, 마치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는 의뭉스러운 감정들, 그 감정들을 억누르려 애썼다. 


'날 죽이고, 그 환상 속에서 프로스트를 죽이는 게 훨씬 쉬운데 뭐하러? 게다가 애초에 우릴 동굴로 부른 게 패러데이인데 이제 와서 날 죽이려는 것도 말이 안 돼. 죽였으면 한참 전에 죽였겠지. 그래, 놈은 프로스트가 로봇을 차지하는 게 겁나는 거야. 하지만, 프로스트는 이미 내게 로봇을 넘긴다고 약속했는데 왜 그렇게 경계하는 걸까?'


리스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패러데이가 왜 그토록 프로스트를 경계하는지를. 


'게다가 녀석이 마지막에 한 말이 영 마음에 걸려. 분명 프로스트에게 이미 진실을 알고 있는데도 멈추질 않는다면서 안타까워했어.. 대체 진실이 뭔데? 도저히 모르겠어. 정말 함정인가?'


그리고 그녀 스스로도 미처 눈치채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 


'지금이라도 말해야 하나? 나더러 프로스트를 죽이라고 패러데이가 부탁했다는 걸?'


그녀 자신조차도 이미 프로스트를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복잡해, 너무 복잡해. 머리가 터질 것 같아.'


자신의 표정이 이미 상당히 일그러진 상태였다는 것도.


'어떻게 해야 하지?'


그리고 그 표정을 이미 프로스트에게 읽혔다는 사실까지.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