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복도 전체가 붉은 빛으로 물었다. 경보등 켜지고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곳이 바깥에서는 어떻게 보일지 의문이었다. 만약 알아챈다면 마이크는 발전소의 안쪽까지 들어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잭은 쓸데없는 걱정 같다고 생각했다.
  핑계는 언제나 있는 법이다. 실제로 사이버 좀비가 작동한 이상 소동을 위장할 필요도 없었다.

  [놈이 어디쯤에 왔을지 신경 쓰이는 군.]

  어느새 헬멧을 다시 쓴 레드아이가 말했다. 지금 상황은 그의 전문이 아니었다. 레드아이는 저격수인 것이다. 지원사격과 암살이 주요업무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정면에서 싸우고 있었고, 이것은 저격수의 포지션이 아니었다.

  놀라운 사격 능력으로 그 부분을 보충하고 있었지만, 전문이 아닌 것 또한 틀림없는 것이다.
  사이버 좀비가 도달해온다면 그리 도움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잭은 화면을 주시했다.
  그곳에는 사이버 좀비가 어디까지 돌파해왔는지 표시되고 있었다. 

  “레드아이. 에이드리언은 자네가 엎도록 하지.”

  “그쪽이 들고 있는 것이 낫지 않나? 내가 들면 달리는데 걸리적거릴 것만 같은데.”

  레드아이가 투덜거렸다.

  “사이버 좀비가 따라잡으면 내가 미끼가 되지. 그렇기엔 의뢰인이 걸리적거리는 군. 그리고 자네가 앞서가게. 내가 뒤에 따라가지.”

  잭이 그렇게 말하자 레드아이는 에이드리언을 넘겨받았다.

  “손해 보는 성격이군.”

  “나 밖에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지. 적어도 자네보다는 내가 더 잘견디지 않겠나? 덩치도 있고.”

  “크크크, 그럴지도.”

  레드아이는 낮게 웃었다.

  “그럼 뒤는 맡기지. 뭐, 죽지는 말라고.”

  “걱정 말게. 우리 다리가 빠르면 안 죽을 일 없으니까.”

  잭은 그렇게 말하며 에이드리언에게로 시선을 보냈다. 에이드리언은 불편한 자세로 엎혀온 탓인지 안색이 좋지 않았다. 꼭 토할 것 처럼 보이기도 했고, 그 덕인지 땀을 뻘뻘 흘리며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그보다 우리 의뢰인이 토할지 말지를 걱정하는 것이 좋겠군. 앞장서게, 레드아이.”

  레드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사이버 좀비는 상당히 가까이 다가온 상태였다. 곧 따라잡을 것이다. 중간 중간 블록을 격벽으로 막고 있지만 사이버 좀비는 빠르게 블록을 뚫고 추적해오고 있는 것이다.

  완력이라면 자신이 있는 잭이지만 등 뒤로 내려오는 격벽을 저렇게 순식간에 뚫고 나올 자신은 없었다. 이미 저것은 전차라고 부르기도 어려웠다. 그 이상의 전략 병기 비슷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다가 점점 따라잡히고 있지. 아무래도 얕본 것 같군.’

  이대로라면 셔틀에 도달했을 때 쯤, 따라집힐 것 같다고 잭은 생각했다. 물론 잭 혼자서라면 금방 도망갈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레드아이를 두고 갈 수는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
  바로 래리였다.

  아직 래리가 셔틀에서 완전히 옮겨 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이 잭이 시간을 끌려고 마음먹은 이유였다. 물론, 시간을 끌 수 있을 만한 사람이 자신뿐이라는 사실 역시 판단에 들어 있었다.
  그나마 도움이 되는 사람은 퀵샌드였지만, 퀵샌드에게는 마이크를 포함한 기업 팀들을 처리하는 임무가 있었다.

  와일드 울프의 마법은 사이버 좀비에게 전혀 통하지 않을 거고, 레드아이의 저격총이라면 피해 정도는 입힐 수 있겠지만, 얼마나 유효할지는 의문인데다가 이런 복도에서 사용하기엔 불리한 물건이었다. 그렇게 소거법으로도 오직 잭 자신만이 사이버 좀비의 상대로 남는 것이다.

  그렇다면 할 수밖에 없었다.
  러너에게 있어 생존은 의뢰보다 우선이었지만, 사이버 좀비를 맞지 못한다는 것은 생존 조차 불가능한 상황이 오게 될 것이 분명했다.

  ‘혼자라면 살아남을 수 있겠지만.’

  슬쩍 앞서 가는 레드아이와 에이드리언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지만 잭은 이내 그 생각을 지웠다.
  이미 그는 나이를 먹을 대로 먹었다.

  오크로서는 이미 수명의 한계에 도달한 나이. 대게 오크는 육체적 전성기를 유지하다 급작스러운 노쇠를 맞이해 죽음에 도달한다. 하지만 잭은 이미 일반적인 오크가 죽음에 도달하는 시기를 지나 있었고, 완만한 육체적 쇠퇴기를 맞고 있었다.

  그가 체질적으로 특이한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잭은 자신의 몸에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이 장치된 상태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보면 최강의 적과 맞서 싸워볼 수 있는 지금은 오크로서 최고의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기회였다.
  전장에서의 죽음. 싸우다 죽는 것이야말로 오크의 명예이며, 바람인 것이다.

  하지만 그건 최후의 순간에서다. 프로로서 잭은 자신이 맡은 의뢰를 완벽하게 끝내야 한다는 의지 역시 있었다. 한다면 최후의 순간.
  잭은 우선 퀵샌드를 호출했다.

  “퀵샌드. 현재 위치는?”

  [이동 중이다. 5분 이내에 도착한다.]

  “기업 팀은?”

  [현재 발전소에 도달했다. 가까운 곳이 위치하고 있더군. 현재 발전소의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해킹을 시도하고 있다. 곧 열고 들어가겠지.]

  “그래.”

  들어가게 되면 볼 것은 임계점에 도달하기 직전인 발전소의 내부일 것이다. 안전장치가 모조리 무력화되어 폭발 직전인 상황에서 갇히게 될 것이다. 골칫덩이 하나가 이렇게 해결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이버 좀비라는 놈. 때어낼 수는 없나? 이대로라면 출발 전에 셔틀이 있는 곳까지 도달 할 텐데.]

  “없군.”

  잭은 담담하게 말했다.
  이미 각오를 했기 때문일까. 감정의 동요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사실 승산은 지극히 적었고, 싸움은 무모 그 이상은 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넷이 덤벼도, 한 명이 덤벼도 결과가 같다면, 차라리 한 명이 희생하는 것이 나을 것이 분명했다.

  “래리는 어때?”

  [표시해주지. 80%까지 도달했다. 셔틀에 도착할 때쯤에 달기지에 옮겨 올 것 같다.]

  “그래. 퀵샌드 도착하게 되면 바로 셔틀 조종에 임해줬으면 하는군. 연구원들에게 맡기는 것은 안 돼. 우리가 주도권을 잡아야지. 가능하겠나?”

  [아마도.]

  불안한 답변이었지만, 아무 답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자동 조종 프로그램이 몇개 있지. 그 중에서 제일 신뢰도가 높은 녀석으로 시험해보지.]

  “그거면 돼. 와일드 울프에게는 연구원들을 제어하라고 시켜. 레드아이도 합류할 테니까.”

  [당신은?]

  퀵샌드의 물음에 잭은 다리를 멈췄다.

  “나는 여기서 놈을 막는다.”

  그렇게 말한 후 잭은 돌아섰다. 슬슬 셔틀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사이버 좀비의 무장이 어떤지 모르지만, 셔틀에 가까지 보내서 좋을 것은 없을 것이다.

  “레드아이. 의뢰인은 맡기지.”

  [걱정 마라.]

  그렇게 말하고 레드 아이는 다음 블록으로 이동했고, 곧 격벽이 닫혔다.
  잭은 심호흡을 하며 기다렸다. 여태까지 느껴본 적 없는 불길한 감각이 잭을 감싸고 있었다. 이 감정의 근원이 무엇인지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사이버 좀비가 다가 옮에 따라 불안은 더욱 강렬해지고, 감정은 더 강하게 흔들렸지만, 고요한 수면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이미 잭은 비슷한 부류의 적과 싸워본 적이 있었다.
  놈은 텔레파시스트였고, 표적에게 불안과 공포, 적의의 감정을 만들어 내 투사함으로서 상대를 보다 손쉬운 위치로 이끄는 타입이었다.

  그 외에도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 사람에게 공포를 불러내는 존재도 있었다. 하수구에 살고 있던 이 강력한 악령을 쓰러뜨리기 위해 잭은 심장이 얼어붙을 것 같은 공포에 맞서 싸워야 했다.
  잭은 사이버 좀비의 능력에 이것과 비슷한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마이너스에 속하는 마력이라는 특이한 반마력을 소유하고 있는 사이버 좀비는 세계의 정형화된 법칙에서 위배되는 존재였고, 충분히 사람에게 위화감가 불안을 조성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잭은 판단했다.
  그러니 흔들릴 이유는 없었다.

  잭은 기다렸다. 단번에 격벽이 박살나면서 사이버 좀비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잔해들이 얼굴을 때려도, 파편이 사방에 흩날려도 잭은 조용히 싸울 준비를 갖췄다.
  무기는 통할지도 알 수 없는 나이프 한 자루 뿐이었다.

  사이버 좀비는 그런 잭 앞에 기괴한 자세로 서 있었다.
  크롬빛 팔을 축 늘어뜨리고, 전신을 매끈한 금속 몸체로 감싸고 있었다.
  생체인 부분은 거의 남아있지 않은 듯 했다. 얼굴 역시 바이저를 쓰고 있어 확인할 수 없었지만, 드러난 부위에 살점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아마 정수의 한계까지 육체를 깎아낸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애초에 그런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잭은 강한 혐오감에 눈살을 찌푸렸다. 정수란 인간이 가진 마법적인 힘 그 자체였다. 정수는 정수를 담은 신체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신체가 훼손될수록 정수역시 줄어들고, 마법적인 힘과 생물로서의 활력 역시 잃게 되게 되어 있었다.

  사이버 좀비는 바로 그 한계 이상으로 정수를 훼손시키고도 생명을 유지시키고, 반마법적인 정수를 세상에 존재하게 한 결과였다.

  살아있는 존재라면 누구나 사이버 좀비의 존재를 혐오할 것이며 경계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지간히도 뒤틀리고 기형적인 감성을 가진 놈일 것이 분명했다.

  잭은 사이버 좀비가 공격해오길 기다렸다.
  모든 면에서 자신보다 우위인 상대와 싸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물론 그 점이 잭에게 더 승산을 준다던가 하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사이버 좀비의 능력은 여태까지 그가 싸워왔던 어떤 적보다 강했고, 그나마 싸워볼 수 있다면 기량 정도이겠지만 그 조차도 어떨지 알 수 없었다.  

  먼저 움직인 것은 사이버 좀비였다.
  의식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본능만 남은 것인지, 짐승 같은 동작으로 양팔을 앞으로 뻗고 놈은 뛰어 들었다.

  총알 같은 빠르기였지만. 잭은 이미 예측하고 있었다는 듯 재빨리 피하며 허리에 킥을 박아 넣었다.

  사이버 좀비는 그래도 벽에 부딪친 후 곧장 천장으로 뛰어올랐다. 잭은 자잘하게 바닥을 밟으며 빠르게 이동했다. 그리고 사이버 좀비가 손을 내질러오자, 놀리던 발을 그대로 틀어 돌아 피했다. 물론 그냥 도는 것이 아니었다. 사이버 좀비를 지나치는 동시에 1회전하면 팔꿈치를 들어 사이버 좀비의 뒤통수를 후려친 것이다.

  잭은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깔끔하게 공격이 들어갔다는 사실을 놀라면서 재빨리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그 자리를 노리듯이 사이버 좀비의 레이저 핸드가 지나갔다. 그 자리에 머물렀으면 그대로 찢어졌을 거라고 생각하며 잭은 태세를 정돈했다.

  겉으로 봐선 사이버 좀비는 피해를 입은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실제로 그다지 피해를 입지 않았을 것이다. 잭에게 사이버 좀비에게 제데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수단은 없었다. 가능한 것은 시간 벌기가 끝인 것이다.

  잭은 전진했다.
  기다리기만 해선 시간을 끌 수 없을 것이다. 기량적으로 우위라고해도, 사이버 좀비가 피지컬로 우직하게 밀고 들어온다면 순식간에 당할 것이기 때문에 이쪽이 선수를 쳐서 빈틈을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행동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잭은 다리를 밀어 넣어 균형을 잃게 만드는데 성공했고, 안면에 주먹을 밀어 넣어 처올린 후, 그대로 몸을 트는 것과 동시에 품안으로 들어가, 사이버 좀비의 팔을 쥐고 바닥에 넘어 뜨리는데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잭은 한 순간 시야가 새까매진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바닥에 쓰러졌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얼마나 걸린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살아있으니 아주 짧은 시간일 것이다.

  그리고 잭은 자신의 감각을 믿고 몸을 굴렸다.
  부웅하고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뒤따라 들려왔다.
  잭은 먹통이 된 헬멧을 손으로 뜯어내며 구르던 기세를 살려 일어섰다.

  하지만 다음 공격은 피할 수 없었다. 복부에 충격을 받고 잭은 굉장한 기세로 날아갔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상체를 얻어맞고 바닥에 내려 꽂혔고, 그 다음 다시 내던져졌다.
  격벽에 부딪치며 잭은 바닥에 떨어졌다.

  [어이, 잭. 괜찮아? 굉장한 소리가 들렸는데. 오우, 저게 그 사이버 좀비인가? 의외로 매끈하게 생겼는데.]

  “래리?”

  잭은 래리의 목소리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부리나케 고개를 옆으로 젖혔다. 사이버 좀비의 발일 격벽을 걷어찼고, 격벽은 일격에 안쪽까지 깊이 파들어갔다.
  잭은 오른손으로 다리를 붙들어 들어올린 후 그대로 천장으로 짚어 던졌지만, 사이버 좀비는 공중에서 자세를 잡더니 천장을 박차고 잭을 내려찍었다.

  “커헉!”

  우주복이 우그러지며 복부를 압박해 들어왔다.
  내장이 터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잭은 전신에 힘을 꽉 주었다. 그러지 않으면 정말로 내장이 터져버릴지도 몰랐다.

  사이버 좀비는 그대로 잭의 머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압도적인 압력으로 잭의 머리를 죄어 오기 시작했다.
  격벽을 한 번에 부수는 악력이다. 아무리 오크의 두개골이 단단하다고 해도 견딜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사이버 좀비의 움직임이 멈췄다.

  [와우! 이거 이런 구조인가.]

  래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잭. 일어설 수 있겠어?]

  잭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대답하는 대신 자신의 몸을 일으켰다. 사이버 좀비는 잭이 일어낟자 덜컹하고 뒤로 넘어졌다.

  [이봐, 잭. 이놈을 해킹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싸움이 안 돼. 내가 막을 수 있는 시간은 얼마 안될 것 같아.]

  “래리.”

  [탈출하려고 하는 기업 놈들을 막는데도 리소스를 써야 하니 말이야. 아무래도 나를 셔틀로 옮길 틈은 없을 것 같군. 지금 모든 자원을 써야 하거든.]

  잭은 주섬주섬 일어섰다. 감동적인 인사를 할 시간은 없었다. 하지만 잭은 발을 쉽게 땔 수 없었다. 이것은 말하자면 마지막 기회였던 것이다. 오크다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임무는 거의 성공했고, 그들은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이다. 퀵샌드가 챙길 것은 다 챙겼을 것이고 말이다. 그리고 설령 복제라고해도 또 한 번 친구를 잃는 꼴을 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이것은 자신의 일이었다.
  희생을 한다면 자신이어야 하는 것이다.

  [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는데. 널 위해서 시간을 끌어주는 것이 아니야. 낸시를 위해서지. 생각해 봐. 어차피 그녀는 엘프하고. 우리보다 오래 살겠지. 하지만 멀쩡하게 살다가는 놈이 한 놈도 없어봐. 게다가 복제인 내가 죽는 것이 네가 죽는 것보다 낫겠지. 안 그래?]

  “알고 있었나?”

  잭이 물었지만 래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봐. 난 신파극을 할 시간이 없다고. 이 녀석을 이기는 것은 무리야. 어서 도망가는 편이 좋을 걸. 퀵샌드에게 이야기해뒀으니 기다리고 있을 거야.]

  긴장감 없는 목소리였지만 상황이 급박하다는 사실 정도는 잭도 이해하고 있었다. 확실히 지체할 틈은 없었다. 래리가 희생하겠다고 한다면 그것도 막을 수가 없었다. 둘이나 이 자리에서 죽는 것은 개죽음이며, 이 자리에 둘이나 필요없다는 사실도 잭은 이해하고 있었다.

  잭은 말없이 몸을 돌렸다.
  다리를 절며, 공격당한 복부를 감싸 쥐고 걸었다.

  우주복을 입고 있지 않았다면 감히 걸을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직 동력 장갑의 근력 보조 기능은 살아있었고 오크 한 명이 걸어갈 수 있을 정도의 근력을 보조하는 데는 문제없었다.
  잭은 육체의 고통을 억누르고 다리를 놀렸다.
  격벽은 열려 있었다. 이미 퀵샌드와 래리가 이야기가 되어 있는 듯 했다.

  하지만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이미 약속한 시간이 다 되어 가고 있었고, 경보는 120초를 남기고 카운트 다운 을 시작하고 있는 중이었다.
  도저히 시간에 맞춰 갈 수 없을 것 같을 때. 잭은 와일드 울프가 달려오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괜찮소?]

  “아직, 죽을 정도는 아니야. 괜찮나?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와일드 울프는 잭에게 마스크를 쉬운 후 번쩍 들어 등에 업었다. 그리고 와일드 울프가 달리기 시작했다. 두번째 격벽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잭과 와일드 울프는 무산소 공간에 진입했다. 그리고 또 한 블럭을 더 가자 셔틀이 대기하고 있는 격납고에 도착했다.

  셔틀은 이미 출발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올라탈 계단은 치워져 있었고, 천장이 열려 언제라도 나갈 수 있도록 되어 있었고, 이미 하나는 우주로 날아올라 지구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서둘러! 곧 폭발할 거야.]

  레드아이가 손을 내밀며 소리쳤다.
  와일드 울프는 등에 업고 있던 잭을 집어 던졌고, 레드아이는 잭을 받았다 셔틀의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와일드 울프가 올라탔고, 셔틀의 문을 닫으며 퀵샌드에게 출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도착했어, 퀵샌드. 출발해.]

  셔틀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곧 이었다. 남은 시간은 40초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탈출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곧 폭발과 함께 충격이 덮쳐왔다.
  셔틀은 크게 흔들렸고 잔해들이 부딪치며 요란하고 끔찍한 불협화음을 만들어 냈다.

  “제길. 죽을 것 같군.”

  잭은 한숨을 쉬었다. 술 한 잔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도수 높은 증류주에 니트로 하나를 타서 마신다면 이 고통도, 찝찝한 기분도 사라질 것이 분명했다.

  래리는 죽었다.
  복제품이었지만 그는 분명히 래리였고, 래리다운 최후를 맞이했다.
  그러니 분명히 그 인공지능은 래리였고, 이것으로 두 명의 래리를 잃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슬아슬 했소.”

  헬멧을 벗은 와일드 울프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레드아이는 총을 짐칸에 밀어 넣고, 우주복도 벗고 있는 중이었다.

  잭 역시 우주복을 벗었다.
  몸이 터지지 않은 것은 틀림 없었다. 배에 커다랗게 멍이 들어 있긴 하지만, 내장이 터졌다기엔 자신이 너무 멀쩡했다. 어쩌면 그 때 이미 래리가 침투해 있었을지도 모른다. 래리의 덕에 구사일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와일드 울프가 우주복을 벗으며 말했다.

  “편히 쉬어도 좋소. 의료 캡슐을 사용하겠소? 이 셔틀에 타고 있는 연구원들을 다 찬성파들이오. 퀵샌드가 찬성파 연구원들 전원에게 메시지를 보내서 따로 추렸던 것 같았소.”

  “대단한 친구지?”

  레드아이 역시 감탄한 듯 했다.
  확실히 퀵샌드의 실력은 굉장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래리가 없었더라도 퀵샌드 혼자서 어떻게든 해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랬다가는 잭 자신은 사이버 좀비에게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미안하지만 나는 먼저 쉬지.”

  잭은 그렇게 말한 후 의료 캡슐을 찾았다. 비상용 셔틀인 이상 의료 캡슐 한 두 개 정도 있을 것이 분명했다. 예상대로 잭은 의료캡슐을 후방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잭은 PDA에 낸시가 보낸 메시지 하나가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원래 잭이 받을 수 있으리가 없으니 래리가 넣어줬다고 생각해도 될 것이다.
  그 안에는 벨페르트가 이번 건에 대해서 물었다는 소식이 쓰여 있었으며, 만날 장소에 어디인지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었다.

  속이 뒤집힐 것 같고, 가능하면 의료 캡슐에서 얌전히 자고 있고 싶었지만 아직은 쉬고 있을 틈이 없었다. 퀵샌드를 만나서 셔틀이 어디로 가야할지 알려줘야 하는 것이다.
  쉬는 것은 그 다음이었다.

에필로그

레드아이는 다시 러너로 돌아갔다. 여전히 팀을 만들지 않고 활동하고 있으며, 가장 위험한 일들에 발을 디뎠다.

와일드 울프는 은퇴했다. 벨페르트로부터 받은 대가로 그는 새 신분을 얻었다.

퀵샌드의 소식은 끊어졌다. 누구도 아는 이가 없다. 가장 친하던 와일드 울프 역시 그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가 정말로 바라던대로 넷 매트릭스 안으로 떠났을 것이라고 하지만, 진실은 누구도 알지 못했다.

돌아온 잭은 낸시의 바람대로 은퇴했다.
그는 레드로즈의 바운서가 되었으며, 반 년 후 수명의 끝을 맞이했다.
그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어떤 의미를 뒀는지는 모른다. 적어도 죽을 자리를 빼앗은 래리를 원망하지 않은 것은 틀림 없었다.

사이버 좀비와 함께 달 연구소가 파괴된 후 셉텐트리온은 쇠퇴했다.
하나의 게임이 끝나고 초월종들은 새로운 게임을 시작했으며, 여태까지 관망자로서 지켜보고 있던 벨페르트는 이번 일을 계기로 새로이 게임의 참가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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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예정했던 결말에서 조금 변경했습니다.
대신 다른 친구를 죽였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