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란티스에서 로봇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나도 여기 와서야 겨우 알게 된 건데.. 로봇을 찾으러 여기에 온 것이 틀림없는데, 그럼 여기 오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뜻 아닌가. 이놈들, 대체 언제 온 걸까. 내 예상보다도 사태가 훨씬 심각하다. 이제 두들겨 패는 정도로는 안 되겠군. 퀸즐에게 손목형 레이저 총을 겨누었다. 너희들, 대체 여기 언제 온 거냐.


"빌어먹을.."
"프로스트!"


리스도 퀸즐만큼이나 당황한 듯하다. 


"정말 죽일 셈이야?"


리스, 이건 당신과 당신 동포들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아줬음 좋겠어. 갈드는 말할 것도 없고, 이 아틀란티스란 놈들은 전쟁으로 돈을 버는 놈들이야. 소규모 단위 전투 정도가 아니라, 국가와 국가 간의 전쟁까지 손대는 놈들이지.


"하지만 프로스트.."


이 새끼들 손에 로봇이 넘어가면 당신들 세상이 구원을 못 받을 뿐 아니라 내가 사는 세상의 판도도 완전히 바뀌게 돼. 저런 괴물 같은 놈들이 아틀란티스의 손에 넘어가면.. 


"말해, 당장 말해! 언제부터 알고 있었고, 지금 너희들 패거리들이 여기 얼마나 더 있는지! 그 고퍼스란 놈을 마지막으로 본 곳이 어딘지도!


아일란트고 퀸즐이고 가리지 않고 마구 찍어댔다. 어디, 어디까지 그렇게 입 다물고 버티는지 한번 보자! 오냐, 그래! 나도 총! 칼! 이런 거 안 쓰고 맨손으로 사람 한 번 때려죽여 보자! 둘 중 하나가 죽으면 입을 열려나? 그럼 그땐 내가 아주 놀라운 묘기를 보여 주지! 정말 죽을 것같이 아프지만 결코 죽지 않을 묘기를.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을 정도로 아프게 팰 수 있는 묘기를!  


"프로스트!"


주먹으로 놈들을 찍어대면서 점차 끼고 있던 장갑에도 피가 묻기 시작했다. 아일란트란 놈의 앞니는 어디로 빠져나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상관없다. 이가 아니라 눈알이 뽑혀 나가도 상관없다. 입만 열면 돼. 놈들이 입만 열게 하면...!


"그만 둬, 프로스트!"


리스가 내 팔을 붙들었다. 


"아무리 위험한 놈들이라고 해도, 이건 아냐, 프로스트. 심지어 이럴 시간조차 없어."


놈들의 위험성은 당신 상상보다 훨씬..


"그렇다고 해도! 그렇다고 해도 여기서 이럴 때가 아니야. 우선순위가 있잖아!"


그래? 듣고 보니 그도 그렇군. 캐물을 시간도 없다면 방법은 하나, 여기서 죽여버리는 수밖에. 


"잠깐!"


그녀가 또 나를 제지한다. 약간 짜증이 치민다. 후우... 리스. 자비를 베풀어야 할 때가 있고 거두어야 할 때가 있는 거야. 이놈들은 자비와 은혜를 원수로 갚을 놈들이고. 게다가, 이놈들은 실수로 들어온 것도 아니고 또 다른 목적을 위해 '작정하고' 들어왔다는 걸 알아야지. 당신이 말린다고 해도 난 이놈들 마빡에 구멍을 내겠어.


"아니, 그러려고 말린 게 아니야. 조용히.. 뭔가가.. 다가오고 있어."


리스는 입가에 손을 대고 우리가 아직 발을 들여놓지 않은 더 깊숙한 곳을 응시했다. 하지만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 보일 텐데. 응시라기보다는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봐야 하나.. 아니, 그것도 아니다. 하지만 뭔가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은 알 것 같다. 


"생명 반응 감지. 30미터 전방에서 접근 중."


30미터? 그렇게나 가까이? 또 괴물들인가? 준비를 해야겠구만. 아틀란티스 용병 놈들은 그다음에 처리해야겠다. 일단 놈들에게서 빼앗은 돌격소총을 등에 메고, 샷건을 꺼냈다. 놈들을 상대하는 데 이것보다 더 나은 것도 없..


"피해애애애!"


그토록 집중하던 리스가 갑자기 내 어깨를 붙들며 몸을 날렸다. 그녀가 사색이 되어 기겁을 하니 나도 덩달아 옆으로 걸음질쳤다. 퀸즐이라는 녀석도 본능적으로 움찔거리며 묶인 상태에서나마 엉성하게 뒤로 몸을 뺀 바로 그 순간,


"으악.. 으악! 으아아아아아악!"


작은 불덩이가 날아와 그대로 아일란트란 놈에게 직격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귀가 찢어질 만큼 처절한 비명이 새어 나왔다. 


"아일란트!"


대체 이게 무슨.. 퀸즐이 어쩔 줄 몰라하며 타 죽어가는 동료의 이름을 불렀지만 방법이 없다. 불길은 그야말로 놈을 잿더미로 만들 기세로 타오르고 있었다. 


"으악.. 으아.. 아.."
"아일란트! 아일란트으으으!"


불길이 거세질수록 아일란트의 비명은 작아진다. 사그라들지 않고 더욱 활활 타오르는 불.. 그리고 죽어가는 동료를 바라보며 외치는 퀸즐의 절규가 불길만큼 커진다. 아일란트라는 인간은 어느새 잿가루가 되어 땅바닥에 흩어졌다. 얼마나 강한 불이길래 순식간에 뼈까지 남기지 않고 잡아먹어버리는가..

"말도 안 돼.. 빌어먹을, 말도 안 돼!"


리스가 이를 악문 채 불덩이가 날아온 방향을 향해 맞불을 던졌다. 그러나 리스가 던진 불덩이는 허공에서 그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그 불을 지워버린 자의 손이, 팔뚝이, 곧이어 몸뚱이 전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놈의 모습을 본 나도, 방금 동료를 잃어 제정신이 아닐 퀸즐의 표정도 창백해졌다. 리스가 읊조리듯 중얼거렸다.


"말도 안 돼. 이런 건 본 적 없어.."


그러자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그놈이 바닥까지 벅벅 긁을 것 같은 굵은 목소리를 내며 천천히 답했다.


"너희들이 봤던 건, 우리 중 극히 일부였을 뿐이다."
"뭐라고?"
"그리고, 그 로봇들이 나를, 나와 같은 자들을 여기까지 오게 했다."


환장하겠군. 처음 괴물을 봤을 때만큼이나, 처음 로봇을 봤을 때만큼이나 미칠 지경이다.  


"너 같은 놈들이 더 있다고?"


 마법을 쓰는 괴물이라니!


===


"곧 갈드 회장도 조사하겠지?"
"안 하겠냐. 아틀란티스 쪽 용병들은 죄다 죽어버렸지만 갈드 쪽 용병들은 생포를 당했는걸."


스턱만의 말을 듣자 올리비아는 뭔가 석연치 않은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놈들 조사해서 자백받았다는데.. 그럼 오히려 혐의가 파렐보다 더 명백할 텐데 왜 더 늦게 조사하는 거지?"
"뭔가 거래고 오고 가는 건가?"
"말도 안 돼! 정부나 대통령이 꼭두각시도 아니고.."
"그런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니잖아. 저런 대기업도 아니고 일개 사인 한 명한테 휘둘리면서 나라 개판 쳐놓은 사람도 있는데 뭘."


그 말에 올리비아의 미간이 더욱더 구겨졌다. 


"만약 그런 거라면, 패러데이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미래가 곧 현실이 되겠지."


===


"옘병할!"


아일란트를 죽인 그 불덩이가 계속 날아온다. 그런데 이때 퀸즐이 욕지기를 뱉으며 묶인 몸으로나마 허둥지둥 도망치기 시작했다. 저거 놓치면 안 되는데!


"한눈파는 거냐? 정말 내 불길에 재가 되고 싶은 모양이구나. 걱정 마라. 방금 도망친 녀석도 곧 내가 죽여 줄 테니."


제길, 잡을 시간이 없어. 확실히 우린 놈의 공격을 피하기에 급급하다. 그런데, 생긴 건 다른 괴물들처럼 무식하게 생겼는데 우릴 공격하는 방식을 보면 그닥 무식하지가 않다. 놈이 날린 불덩이를 열심히 피하고 있는데 그 불덩이는 그냥 공중에서 사라진다. 이런 동굴에서 불덩이가 여기저기 터져나가면 꽤나 위험해질 텐데.. 놈도 그걸 알고 있는지 오로지 우릴 맞히기 위한 용도로만 불길을 날리는 것 같다. 오히려 그 불길에 대항해 마구잡이로 불꽃을 날리는 리스의 공격 방식이 더 무식해 보인다.


"죽어! 죽어버려!"
"그런 어설픈 공격으론 안 된다."


리스보다 훨씬 더 불을 잘 다루는 모양인지 손가락만 움직일 뿐인데 리스가 연속으로 날려대는 불꽃들이 열기만 남긴 채 사라진다. 그게 어설프다면 레이저는 어떠냐.


"이거 정말 재미있는 공격이다만 내 힘을 뚫기엔 역부족이구나."


이런 망할.. 레이저마저 뭔가에 막힌 듯 놈에게 닿지 않는다. 리스가 외쳤다.


"방어막이야! 놈도 방어막을 사용하고 있어! 모습을 드러낼 때부터 사용하고 있었어!"


뭐? 로봇만 사용하는 게 아니었단 건가? 제길.. 그럼 방법이 없는 건가? 


"저 붉은 머리도 그렇지만, 너.. 이상한 투구를 쓴 녀석도 꽤나 흥미롭구나. 생각이 바뀌었다. 죽이지는 않을 테니 순순히 항복해라."


지랄을 하세요.. 그 로봇들의 방어막도 어느 정도 공격을 받으면 손상이 되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디 그저 살덩이에 불과한 네놈의 방어막이 놈들 것만큼 단단한지 봐야겠다. 


"뭘해도 소용없다니까."


 수류탄도 소용없을까!


"음?"


핀 뽑은 수류탄을 놈을 땅에 굴리듯 던졌다. 곧 놈 앞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로 일어난 먼지 바람과 연기가 퍼져나갔다. 그 먼지가 걷히고..


"이건 더욱 흥미롭구나. 내가 중간에 제어하지도 못했을뿐더러 방금 보인 그 파괴력은.."


놈이 멀쩡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방어막에 닿았던 먼지와 파편들도 사르르 흘러내려 땅에 쌓인다. 난 그 먼지와 파편의 형태를 살폈다. 


"하지만 부질없다. 항복해라. 너희들 실력은 충분히 보았.."
"까고 앉았네, 리스! 놈 측면 벽에다 날려! 최대한 많이!"
"뭐?"
"빨리!"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지만 일단 그녀도 뭔가 하고 놈이 서 있는 곳 바로 옆 벽면을 향해 불덩이들을 여럿 다시 날렸다.


"아뿔싸!"


놈의 손이 황급하게 불덩이들을 제어하려고 손을 뻗었다. 불덩이 몇 개를 제어했지만 모두 막지는 못했다. 나머지 불덩이가 벽에 직격, 그대로 터졌다. 놈이 그 충격을 막기 위해 본능적으로 손을 옆으로 뻗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다시 한번 레이저를 날렸다. 


"으윽...!"


역시 예상대로였다. 레이저가 놈의 복부에 꽂혔다. 난 레이저를 거두지 않고 계속해서 쏟아냈다. 놈의 살점을 넘어 내장까지 홀라당 태울 때까지 지질 거다.  


"빌... 어먹을! 으아악!"


그런데 돌연 괴로워하던 놈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 주먹에서 눈앞을 가득 채우는 빛을 발산했다. 뭐야, 섬광탄 같은 건가? 놈들도 이런 게 가능하다고? 빌어먹을, 전혀 예상 못 했다. 


"제길, 도망치려는 건가!"
"큭!"


빛은 꽤 오랫동안 우리의 눈을 가렸다. 그리고 빛이 걷히고, 우리가 간신히 앞을 보게 됐었을 땐, 이미 놈은 사라지고 없었다. 꽤 상처를 입었을 테니 멀리 도망가진 못했을 텐데.. 


"놓쳤군, 제길.."


놈만 놓친 게 아니다. 퀸즐도 놓쳤다. 이거 골치 아프게 됐군.


"아, 그나저나 프로스트. 방금 어떻게 한 거야? 놈은 분명 방어막을 사용했을 텐데 그 레이저란 걸로.."


아, 내 공격이 먹힌 이유 말인가. 그건 로봇들의 방어막과 좀 달라 보였기 때문이다. 놈이 사용했던 방어막은 로봇들의 것과 달리 형태가 보이지 않았다. 로봇들의 방어막은 구체 형태의 빛이었는데.. 


"그런데?"


처음 던진 수류탄이 터졌을 때 생긴 먼지 바람과 연기가 놈 앞에서 좀 이상한 형태로 퍼졌을 때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마치 놈 앞에 유리창이라도 존재하듯 앞면만 막히고 옆으로 퍼져나가는 먼지 바람을 보았을 때 말이다.


"아! 놈의 방어막은 로봇들과 달리 측면이나 뒤쪽까진 못 막는.."


정답. 물론 그때까지도 확신 못 했지만 놈의 방어막에 닿았던 먼지나 파편이 흘러내려 땅에 가라앉은 모양을 보고 거의 확신했다. 놈 앞쪽에 마치 자로 밀기라도 한 듯 일렬로 내려앉은 먼지들, 그리고 그 옆으로는 불규칙한 모양으로 내려앉은 먼지들.. 그걸 보자 놈은 방어막을 한쪽 면밖엔 칠 수 없다고 판단할 수 있었고, 약간 위험하더라도 벽을 공격하라고 말한 거다. 그 여파가 놈의 측면을 위협하면 놈도 그쪽으로 방어막을 칠 테고, 당연히 내가 공격하는 걸 막지 못하리라.. 


"상황 판단이 제법 빠른데?"


그녀가 미소를 짓는다. 나와 손잡은 게 결코 틀린 결정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가. 뭐, 사실 이것도 '거의' 확신한 거지 완전 확신한 건 아니었다. 먼지가 내려앉는 형태를 눈으로 확인하는 것도 정확한 게 아니라서 방어막이 옆쪽까지 뻗었다면 아무 공격도 안 통했을 거다. 물론, 그땐 은폐장을 쳐서 도망쳤겠지만.       

    
"하지만, 나도 몰랐어. 괴물 놈들 중에 마법을, 그것도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놈이 있을 줄은."


말을 들어보니 그 녀석 외에도 꽤 있을 것 같은데.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서둘러 놈을 추격해야.


"아니, 이 근처에 놈들 패거리가 더 있을지 몰라. 섣불리 쫓는 게 더 위험해."


일리가 있군. 그럼 역시 최대한 몸을 숨기며 수정 구슬을 찾아다녀야 하나. 하지만, 퀸즐이라는 녀석도 여전히 신경 쓰인다.


"잊어버려. 어차피 당신이 무기를 모두 회수해서 맨손일 텐데. 게다가 묶인 상태여서 당분간 어쩌지 못할 거야. 물론 눈빛을 보면 당하고 그냥 넘어갈 성격은 아닌 것 같다만.."


그래, 냉정해지자. 놓친 녀석은 이미 놓친 거다. 퀸즐을 쫓고, 그 괴물 마법사를 쫓고, 괴물들을 일일이 상대하며 움직일 시간이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두 녀석 모두 보자마자 죽였어야 했는데.. 아무튼 지금은 움직일 수밖에.


"솔직히 나도 약간 지쳤지만, 일단 여기 계속 남는 것도 위험하니까 움직이자, 프로스트."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그 마법사 놈이 불길을 터뜨리지 않은 덕분에 아이러니하게도 퀸즐과 아일란트에게서 압수한 무기들은 안전하다. 돌격소총과 배터리들은 이미 챙겼고, 놈들 가방 속의 통조림 몇 개, 그리고 권총 한 정, 수류탄, 섬광탄 등 내가 움직일 수 있을 만큼은 챙겼다. 레이저 소총도 탐이 나지만, 그것까지 들고 가진 못하겠다. 손목형 레이저로 만족해야지. 그리고 나머지는 리스에게 불태워서 못 쓰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리스가 씁쓸하게 웃었다.


"참... 이미 충분히 고생한 것 같은데도, 어째 난관이 수십 개는 더 남은 듯한 기분이야."


동감이다. 어째서 고비를 간신히 넘겼는데도 매번 '이제 시작'인 듯한 느낌이 드는지 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