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펑크 판타지라는 장르를 좋아하긴 합니다만, 글로 쓰는 것은 제법 어렵군요.
신조어같은 것을 만들까하고 생각했지만 일일이 설정을 설명하는 것은 매우 귀찮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냥 용어 같은 것은 뉴로멘서 같은 곳에서 적당히 베껴 올까하는 유혹에 시달리게 되는 군요.

아무튼 홀로컴은 데이터잭에 유선 연결한 후 사용할 수 있는 개인용 컴퓨터입니다. 무게는 1.5kg
정도이며 출력되는 내용은 뇌에 직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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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그렇게 말할 거라고 생각했어.”

  낸시는 별로 설득할 생각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오크의 경우 전장에서 싸우다 죽는 경우가 많다. 딱히 전장에서 죽으면 천국으로 간다는 신앙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싸우다 죽는 것을 선호하는 것은 그들의 유전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드물지 않은 예외에 잭이 속했으면 하고 낸시가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랬다면 진작에 은퇴하고 안정된 삶을 추구했을 것이다. 낸시 자신과 같이 은퇴한다는 선택도 있었고, 낸시 역시 설득했지만 그러지 않았다는 사실만 봐도 잭이 어떤 성향인지 알 수 있는 것이다.

  “래리는 데려가도록 해. 래리도 좋아하겠지. 최근 계속 재워두고 있었거든. 아무튼 그러니까 말이야.”

  낸시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미 죽은 래리와 아직 살아있는 래리. 전자는 소중한 동료지만 후자는 팀이 돌이킬 수 없는 패배를 했다는 상징과 같았다.

  “고맙군. 용건은 이걸로 끝이야. 서둘러 돌아가야 하거든. 바로 래리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여유가 없네. 차 한잔 정도는 마시고 가. 아무튼 사정을 조금 들어보고 싶으니까.”

  “정말로 설명할 시간이 없어.”

  “5분 내로 요약해서 말해. 핵심만 간단히.”

  낸시는 물러설 것 같지 않았다. 이번 일에 흥미가 있는 것은 분명했다.
  잭은 속으로 깊게 한 숨을 쉬었다. 이렇게 될 것이라는 것을 어째서 몰랐던 것일까.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손을 벌릴 수 있는 것은 낸시 뿐이었고, 잭은 불평하기에는 그 시간조차 아까웠다.

  그렇기 때문에 잭은 설명했다. 에이드리언이라는 남자과 셉텐트리온을 배신해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는 사이보그의 폐기를 의뢰한 일. 그리고 샘의 뒤로 제임스라는 남자가 있으며, 아마도 2중으로 중개인이 존재한다는 이야기까지.
  낸시는 흥미롭게 그 이야기를 들었고 잭에게 핀잔을 날렸다.

  “바보 같아. 여기에 넘어간 거야? 그래서 안전장치가 필요하니 래리를 빌리러 온 거고.”

  “그래.”

  잭의 대답에 낸시는 그야말로 한심하다느 듯이 한숨을 길게 쉬었다.
  그녀의 시선이 그야말로 ‘이 화상아. 왜 사니?’같은 시선인지라 잭은 자신이 움츠러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확실히 낸시가 있었다면 받지 않았을 일일 것이다.

  “다음부터 이런 일이 있으면 나한테 상담하고 받아. 정말로. 이걸 덥석 받은 거야? 제정신으로? 나라면 절대 받지 않을 거야.”

  “에이드리언 개인의 일이라고 생각했지. 월급노예라도 최상급까지가서 초월종들의 총애를 받는다면 그 정도의 돈은 마련할 수 있으니까.”

  “전재산을 털면 말이지.”

  낸시는 비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친구의 한심스러운 실수를 덮어줄 생각은 없었다.

  이런 일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부주의는 곧 죽음으로 이어지는 것이 러너이다. 실패하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최후의 안전장치를 붙여두는 것이 그들의 생존비결인 것이다.

  물론 그것이 모든 상황에서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큰일에 그것을 빼놓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잭은 확실히 모든 상황에서 생존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유능한 러너라고 낸시도 인정하지만, 이런 도를 넘어선 상황까지 어떻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초월적인 존재는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 초월종들의 놀이판 위의 말로 잭이 선택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러너라면 절대 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큰 문제는 이 임무가 실패해서는 안 되는 임무라는 것이었다.

  상황에 따라 초월종들끼리의 정면전이 일어나게 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이 세계를 황폐하게 만들었던 【초월전쟁】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해도 위험한 일이네. 잘못 발을 디디면 어지간한 중소기업은 뭉개질 거야. 역시 그냥 도망치는 쪽이 낫지 않아? 100만도 수지에 안 맞는 걸. 초월종들끼리 싸움이 나게 될 수 있다고 해도 그렇게 쉽지는 않겠지. 최악의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야.”

  “그걸 내가 막을 수 있다면 더 좋겠지. 받아들인 이상 피한다는 선택은 없어. 지더라도 말이야.”

  “응, 그렇지. 미련퉁이 씨. 이걸로 화를 내기엔 나도 제법 나이를 먹었다고 할까. 후-.”

  골치 아프다는 듯이 이마를 짚는 낸시. 하지만 그런다고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은 없었다. 그리고 알게 된 이상 무시하기도 어렵다. 조심스럽게 끈을 당겨봐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어떻게 봐도 자살해위가 될 것 같지만 좋아. 한 번 알아볼게. 샘의 뒤에서 끈을 당기고 있는 녀석이 누군지 파악정도는 해둬야 할 테니까. 자, 그럼 래리를 만나러 갈까.”

  낸시는 일어섰다.
  지켜본다는 선택지는 이미 없었다.

  그러기엔 이미 상황이 굉장히 급박했고, 뒤에서 움직이고 있는 움직임은 은밀하면서도 거대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훗날 큰 반동이 돌아올 수 있는 법이다. 낸시는 어쩌면 크게 몰아쳐올지도 모를 해일에 대비한 대응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잭같은 러너가 고용되었다는 것은 이미 갈등이 상당한 수준까지 올라왔다는 이야기였다. 여기서 무사히 끝날지. 그것이 아니면 대재앙이 닥쳐올지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다.

  낸시는 자신의 책상 아래의 비밀 문을 열었다.
  이 통로는 낸시의 창고로 통하는 길이었다. 들어가기 위해서는 책상 아래에 위장된 패널을 눌러야했고, 패널은 낸시의 손금과 지문 그리고 마력을 인식하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잭은 낸시를 따라 책상 아래쪽이 가라앉으며 만들어진 통로로 따라 들어갔다. 잭의 덩치에 비해 통로는 좁았지만 그래도 빠져나가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직도 여길 쓰는 건가?”

  잭의 물음에 낸시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전주인이 만든 거지만 안전 면에서는 나름 확실하니까. 이렇게 해둬도 절대라는 것이 없다는 것은 무섭네. 그래도 나쁘지 않다고. 뭔가 비밀기지같은 느낌도 나고.”

  “옛 추억이 생각나는군. 창고 건물을 불법 개조해서 비밀 금고를 만들었지.”

  “그래, 덴의 아이디어 였지. 나쁜 생각은 아니었지만, 창고가 통째로 날아갔을 때 금고를 파내는 일이 고역이었던 기억이 나네.”

  “여기라도 다를 것은 없어 보이는데.”

  건물이 가라앉으면 이 통로도 사용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창고 건물이 날아가는 것보다 더 찾기 힘든 상황이 올지도 몰랐다.

  “걱정 마. 이미 대비가 되어 있거든. 여기로 통하는 좀 더 불편한 통로가 있는데. 그쪽은 건물이 날아가는 거랑은 상관없이 들어올 수 있지. 좀 지저분하고 귀찮지만.”

  “그 부분을 통해서 도둑들이 들어올 가능성은.”

  “충분히 있지만, 들어오려면 어지간한 장비로는 안 될 걸.”

  낸시는 자신 있게 말했다. 그녀 나름 뭔가 수단이 있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센트리건을 잔뜩 깔아두기라도 한 것일지도 모른다. 마법적인 결계를 장치해뒀거나, 강력한 파수꾼을 세워뒀을 수도 있고 말이다.

  어느 쪽이건 돌파하는 것은 쉽지 않겠지. 아마 낸시는 자신을 기준으로 방어대책을 세웠을 테니 말이다.

  금고의 문이 열리고 낸시가 안에서 래리를 꺼내는 사이 잭은 얌전이 벽에 등을 기댄 체 기다리고 있었다. 금고의 내용은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잘해봐야 이런저런 증서나 귀중품, 옛 시절의 영광을 증명하는 노회물들이 들어있는 정도일 것이다.

  낸시는 금고에서 손바닥만한 모노리스를 꺼낸 후 금고의 문을 닫았다. 잭은 그리운 표정으로 낸시의 손에 들린 모노리스를 내려다 봤다.

  각변이 1:4:9의 비율을 가진인 직사각형의 입방체는 그들의 마지막 미션에서 얻은 물건으로, 안에는 래리의 전뇌사 시킨 원인인 동시에 래리의 인격을 복사한 AI가 잠들어 있었다.
  즉, 래리를 죽인 살인자인 동시에 래리이기도 한 것이 들어있다는 이야기였다.

  낸시가 이 모노리스에 잠들어있는 래리를 깨우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 역시 그 때문이었다. 친구를 죽인 원인인 동시에 친구 그 자치에기도 한 존재를 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잭은 모노리스를 작동시켰다.

  [어이, 잭 아냐. 음. 이런 지금 내가 한 4년은 잠들어 있었던 건가? 너무 한데. 조금 깨워주지 그랬어.]

  모노리스로부터 떠오른 인간 형태의 홀로그램이 말했다. 어디까지나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뿐으로 구체적인 형상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 한 인간이 자기 자신의 특징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거울을 자주 보는 사람이 아닌 한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보는 입장에서 그것은 아쉬운 일이었다.
  목소리도 조금 다른 것은. 어디까지나 래리 자신이 기억하는 목소리를 재현했기 때문일거라고 생각하며 잭은 대답했다.

  “팀이 해체되었거든. 그 날 덴이 죽은 것도 기억하나?”

  [그랬지. 아아, 알겠군. 그럼 이제 날 깨웠다는 것은 다시 복귀한 건가?]

  “나만이지만.”

  [그래? 낸시는? 낸시에게까지 무슨 일이 생겼다면 끔찍하군.]

  “낸시는 무사해. 지금도 근처에 있지.”

  [오, 보여줘. 렌즈에 비춰주면 돼. 이 안에 있으면 아무래도 시야가 제한되니 말이야. 지금 네 얼굴을 아주 커다랗게 보고 있다고.]

  질색하는 낸시의 표정에도 불구하고 잭은 모노리스의 렌즈에 낸시를 비췄다.

  [낸시, 꼴이 그게 뭐야. 술집 여자같이.]

  “지금 낸시는 레드로즈의 마담이야.”

  라고 잭이 알려주자.

  [진짜로!?]

  래리는 경악한 듯이 고성을 냈다.

  [그 말괄량이가 레드로즈이 마담이라고? 진짜로? 진짜로?]

  “진짜야.” 찌푸린 인상을 유지한 체 낸시는 거칠게 말했다. “나는 인기 좋다고! 얼마나 번성하고 있는데.”

  [우와, 믿어지지 않아. 설마 낸시가 술집 마담이라니.]

  “그럼 뭐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음, 뭐. 일 이야기로 돌아갈까. 도대체 무슨 일인 거야.]

  “잠깐, 말해!”

  덤벼들듯이 으르렁 거리는 낸시를 두고 잭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오우. 물론 살림꾼이지. 알뜰한 낸시. 잊지 않았다…….]

  “그만.” 히죽히죽 웃음기 띈 목소리로 말하는 래리의 모습을 보며 잭은 끼어들었다. 낸시의 얼굴에 열이 차오르는 것을 보면 슬슬 끼어들어 그만두게 해야 할 시기였다.

  이 분위기가 그립지 않은 것도 아니며, 좀 더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더 급한 일들이 있는 것이다.

  “이후는 가면서 이야기하도록 하지. 우린 서둘러야 해.”

  [굉장한 사건의 냄새가 나는 군. 낸시가 이상한 냄새를 맡지 않던가?]

  “위험한 냄새가 난다고 이야기했었지.”

  잭은 그렇게 말한 후 사다리를 타고 올랐다. 무시당한 낸시는 발을 구르다가 숨을 크게 뱉내뱉었다. 저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머저리들과 달리 자신은 성장했다. 여기서 화내봤자 어차피 들어먹지도 않을 것이다.

  낸시는 자신을 그렇게 다독였다. 아무튼 돕기로 한 것이다.
  마냥 내버려둘 수도 없다.
  잭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대충 알고 있다. 지금 이렇게 손을 벌리러 온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은퇴한 이후 어느 정도 선을 긋고 살아온 잭이었다.

  정착에 성공한 낸시와 달리 잭은 여전히 기업과 대립하는 삶을 살고 있었고, 그것은 곧 위험을 달고 다닌다는 이야기와 같은 것이다. 그것도 매우 치명적인 위험을 말이다.

  “그럼 이제 돌아갈 거야? 통신은 어떻게 할래? 래리가 있다면 정보 수집은 가능하겠지만, 당장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거야.”

  “아마 우리는 우주 비행장으로 가게 될 같아. 함께 가게 될 팀은 모두 셋이지. 한 명 더 있었지만 셉텐트리온의 추적자들에게 당했어. 별명은 퀵샌드, 와일드 울프, 레드아이로군. 그리고 퀵샌드와 와일드 울프는 아는 사이였던 것 같았군.”

  “흠, 뭐. 본명으로 활동하는 머저리는 없으니까. 그 녀석들에 대해서도 알아볼게. 뭔가 여노관고리가 있을지도. 그리고 그 사이버 좀비인지 뭔지에 대해서도.”

  낸시가 알아봐 준다고 하면 든든하다고 잭은 생각했다.
  레드로즈는 잭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훌륭하게 자라났다. 어지간히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면 레드로즈를 섣불리 건들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이 도시 내에서 낸시는 상당한 수준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봐도 좋았다.

  [그럼 나는 전자전인가. 그쪽에는 해킹 전문가가 없는 건가?]

  “퀵샌드가 있지.”

  [과연. 그럼 내 일은 그 친구 보조거나 혹은 그 친구가 움직이지 못하는 동안 정보를 모으는 것이겠군. 그리고 덤으로 런의 보조도 하고 말이야.]

  “그래 줬으면 좋겠어. 가능하면 놈들이 모르는 카드를 많이 쥐고 싶으니까.”

  [어떤 일인지 확실하게 알고 싶은데. 하지만 큰일인 모양이군, 뭐, 나는 그 날 이후로부터 의식적 시간은 별로 지나지 않았지만.]

  그 말에 비난 의도는 별로 담겨있지 않았지만 낸시는 찔리는 듯이 움찔했다.
  하지만 그래도 낸시는 속에 담은 말은 하지 않았다.

  래리가 죽은 원인인 동시에 래리의 복제품이 존재. 스스로 자신을 래리라고 믿고 있는 이상 그것을 굳이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으면 실제로 래리와 이야기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넷이 한팀이던 시절의 향수를 끌어오는 것이다.

  “미안하게 되었네요. 하지만 불필요하게 꺼낼 필요는 없잖아. 팀은 해체되었고. 어떻게 보면 너는 이제 불멸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 걸.”

  [음, 그렇지. 언젠가 먼 훗날에 너희들의 자손들에게 너희 이야기를 내가 전해주지.]

  그라면 정말 가능할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잭은 말했다.

  “자꾸 강조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지만 나는 정말 서둘러야 해. 슬슬 돌아갈 시간이 빡빡하다고 말해주고 싶군.”

  “응, 알았어. 가봐. 연락은 래리를 통하는 것이 좋겠지. 아마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그 뿐일 테니 말이야.”

  [음, 그렇겠지. 문제는 넷매트릭스에 어떻게 접촉하는 가이지만. 이 모노리스. 성능은 좋지만 외부로의 연결은 단절되어 있으니까. 아직 답답하지는 않지만.]

  “그거야 다른 기기로 옮기면 그만이지. 그냥 넷 매트릭스로 옮기는 것은 어때?”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닌데. 넷 매트릭스 안에서 내 인격을 완전히 유지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어. 무엇보다 그 공간에서 나는 무방비상태로 있게 될 테지. 나에겐 아이스도 없으니 말이야. 물론 AI화된 만큼 해커들에게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겠지만 그것 뿐이겠지.]

  “뭔가 쓸만한 물건이 없을까?”

  “미안하지만 내가 만물상인 것은 아니야. 하지만 돈을 지불한다면 살 수는 있겠지. 여기의 지하마켓에서.”

  [그런 것도 있어? 레드로즈에?]

  “러너용 상점이 있아.”

  “그렇다면 뒤로 미루지. 미안하지만 정말로 시간이 없으니까.”

  잭은 그렇게 말하며 나가려고 했고, 그런 잭을 낸시가 불렀다.

  “그럼 이거라도 써.”

  서랍에서 꺼낸 것은 홀로컴이었다.

  “이전에 래리가 사용하던 거였지. 뭐, 본인의 물건을 본인이 되찾는 셈일까. 그런데 그 모노리스로 접속할 수 있어?”

  [물론 가능하지.]

  “좀 더 작은 물건이 있으면 좋겠지만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군.”

  잭의 말과 함께 래리가 모노리스에서 단자를 꺼냈다. 낸시는 그 모습을 보면서 기분 나쁘단느 듯이 말했다.

  “가끔 생각하지만 드래곤들은 이상한 것을 만든단 말이야.”

  [덕분에 이렇게 살아있을 수 있으니 감사해야지. 좋아, 접속했어. 하지만 안에 내가 들어가기에는 너무 좁군. 부탁인데. 다음에는 아예 갈아탈 수 있는 몸으로 준비해주지 않겠나?]

  “최신식 홀로컴을 준비해주지. 기회가 되면 말이야.”

  [그 약속 믿는다고, 잭.]

  “걱정 마. 난 약속은 어기지 않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면.”

  잭은 그렇게 말한 후 홀로컴을 등에 멨다.

  “래리. 마지막같은 실수는 하지 않도록 해. 섣불리 이상한 거 건들지 말라고. 알겠지? 그리고 도착하면 가장 먼저 이쪽과 핫라인을 만들고.”

  [알았어, 엄마. 그럼, 다녀올게.]

  활기차게 말하는 래리를 등에 지고 잭은 “또 오지.”하고 짧게 인사했다.

  “그래, 어서 가버려. 늦었다면 말이야. 파티에 지각하면 종종 들어가지 못하는 일이 생기지. 물론 예외적인 사람들은 제외하곤 말이야.”

  “조심해. 이 뒤에 초월자들이 있다는 말은 여기라고 해서 절대적으로 안전하지 않다는 말과 같아.”

  잭의 경고에 낸시는 살벌하게 웃었다.
  은퇴하고, 퇴폐적인 접객업에 뛰어들었어도 그녀는 여전히 러너다. 한쪽 눈을 잃지 않았다면 여전히 현역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녀라면 현역인 쪽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녀 역시 스릴을 찾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다만 잭과의 차이는 그래도 최저한의 안전라인 정도는 설득해둔다는 것 정도일까.
  하지만 도박을 한다면 그 차이는 없다고 봐도 좋았다. 필요하다면 위험해도 망설이지 않고, 그 위험으로부터 살아남았기에 그들은 지금의 명성에 올라선 것이다.

  “물론 해보라고 해. 즐겁게 기다리고 있도록 하지. 또 보자.”

  “그래.”

  레드로즈의 나온 잭은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약속해준 시간은 3시간. 지금 1시간하고 20분을 넘어가고 있었고, 남은 시간은 100분 남짓 이었다. 그때 까지 별다른 트러블이 없다면 문제 없지만 어떻게 들어갈지에 대해서 생각해둘 필요가 있었다.

  아무튼 문제 하나는 해결했다.
  컬러즈에겐 날벼락이겠지만, 이것으로 지하수로는 안전할 것이다. 잭으로서도 긴급한 순간 비밀리에 이용할 수 있는 이동수단이 사라지는 것은 원치 않는 것이다.

  “약속은 지켰다.”

  잭은 귀환을 기다리고 있던 그렉토에게 말했다.

  “증거는?”

  “곧 보게 될 테지. 나를 믿어. 블랙클로가 이미 예를 보여주지 않았던가? 컬러즈가 이제 이 곳에 손을 대는 일은 없을 거다.”

  잭이 그렇게 말하자 그렉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믿고말고. 자네는 일로 거짓말을 할 사람은 아니지. 돌아갈 길도 데려다 주지.”

  그렉토는 주변이 수근 거리는 것도 개의치 않고 그렇게 말했다.

  “자, 타라고.”

  잭은 지하 전철에 올라탔고, 전철은 곧 움직이기 시작했다. 잭은 팔짱을 끼고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다. 주변에는 그렉토와 그 부하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 무장하고 있긴 했지만 그 자체는 허술했다. 마치 높으신 분이 마실 나오는 데 따라 나온 경호원 같은 느낌이었다. 

  [어이, 잭. 도착할 곳이 어디야?]

  “내 PDA에 접속해 봐. 위치정보를 기록해뒀으니.”

  [오, 정말 아무 것도 없군. 전화번호부가 이래도 돼? 대부분은 죽음, 실종, 연락 안 됨 이라니. 흠. 그 흔한 감시 카메라도 없는 곳이군.]

  “그래서?”

  [그 근처에 있는 건물들을 접촉해보고 있는데. 이미 공격당하고 있는 건물이 있어. 간혈적이고 적극적이지는 앉지만 노련하군.]

  “지금은 어쩔 수 없어. 하지만 주의가 필요하겠군. 공격의 수준은?”

  [어디까지나 넷매트릭스 내에서의 공격이야. 그쪽으로 추적해 볼까.]

  “아니 됐어. 지금은 움직이지 않는 것이 좋겠군. 한다면 내가 같이 들어가서 하는 것으로 하지. 그걸 잘 이용하면 몰래 들어가는데 도움이 될지도 몰라.”

  [그러지.]

  잭은 눈을 감았다. 초조해할 필요는 없었다. 적어도 지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