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에서 아마 출세하는 이야기]를 완결했습니다만, 글 쓸 시간이 나오지 않네요.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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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너먼트 거리는 오래된 거리였다.
  도시의 다운타운이자 빈민가와 일반 거주구의 경계였으며 한데 섞여 있는 무법적인 정취가 느껴지는 거리.

  큰거리는 사설 경찰들이 순찰을 다니는 깔끔한 외장과 화려한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번화가지만, 골목 안쪽으로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면 부랑자와 갱들이 살고 있는 너저분한 우범지대가 되는 것이다.

  잭이 찾는 건물은 번화가와 우범지대 사이에 있는 건물이었다.
  마치 오래 전 은퇴한 여배우가 반짝이며 현역으로 돌아온 것처럼 진한 치장을 한 건물은 이 거리에서 유명하다면 유명한 건물이고, 유명하지 않다면 않은 건물이었다.

  아는 사람만이 아는 곳.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발을 붙인 곳. 번화가와 골목의 사람들이 차별 없이 어울리는 곳.

  【레드로즈】는 그런 장소였고, 잭 같은 사회의 낙오자들 역시 차별 없이 모여 한잔할 수 있는 술집이었다.

  물론 그걸 가능하게 하는 인맥과 힘이 이 술집의 주인에겐 있었다. 힘없는 평화 따윈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이 거리의 누구라도 알고 있으며, 서로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암묵적인 평화가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의 산증인이 바로 이 술집인 것이다.
  그리고 잭 같은 불법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일을 찾는 곳이 바로 이 곳이었다.

  이곳에 오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일거리가 떨어지고 난 뒤 레드로즈에 발을 붙인 적이 없었다. 그는 여전히 존중받았지만 퇴물이었고, 일없는 러너가 발붙일 수 있을 정도로 이 술집에서 빠져나가는 돈은 만만치 않다.

  잭은 시간을 확인했다. 이미 47분이 흘러가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많지 않다. 서두르고 싶지만, 잭은 꾸욱 그 감정을 눌렀다. 시간이 촉박하다고해서 휘둘리면 좋은 결과가 되는 일이 없는 법이다. 제대로 된 결과를 위해선 인내심과 자제력을 발휘해야 했다.

  “후우.”

  잭은 깊게 숨을 내쉬고 다가갔고, 조용히 문을 열었다.
  내부는 최근 개장한 것인지 크게 변해 있었다. 어둡고 퇴폐적이던 분위기가 좀 더 밝고, 온건하게 변해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변하지 않은 것은 단상 위에서 춤추고 있는 스트리퍼들이었고, 또 하나 변하지 않은 것은 모여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각계각층에서 온 사람들이었고, 자기들끼리 모여 있었으며, 다른 그룹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마치 서로를 동물원의 원숭이마냥 관찰하고 있는 자들이 없진 않지만, 기본적인 태도는 그저 무시였다.

  물론 사람들의 태도는 잭에게도 변하지 않았다. 그들은 문을 열고 들어온 잭을 무심하게 쳐다보았고 곧 고개를 돌렸다.
  러너는 이 안에서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프리랜서 해결사에 가까운 명확한 아군도 명확한 적군도 없는 존재들. 하지만 세상의 그림자 한켠에 상아가며, 도심의 뒷골목을 달리고, 사이버 스페이스의 찌꺼기들을 뒤지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런 잭 앞에 거구의 오크가 섰다,
  잭보다 훨씬 젊고 훨씬 키가 컸지만 옷차림은 훨씬 정돈되어 있었고, 태도는 정중했다.

  “오랜만입니다, 잭. 하지만 뒷문을 이용해 주시겠습니까? 마담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흠.”

  잭은 고개를 끄덕인 후 뒷문으로 돌아갔다. 뒷문을 이용하는 사람은 제법 많다. 중개인들과 의뢰인들. 그리고 러너들.

  레드로즈는 평범한 술집이 아니었고, 이곳은 러너들이 모이는 장소이며, 일을 찾는 장소이자, 은퇴한 러너들이 새 삶을 시작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냐면 레드로즈의 마담 낸시가 바로 전 러너였기 때문이다.
  은퇴한 러너인 그녀는 레드로즈를 전 주인으로부터 물려받아 그 결과가 현재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조금 놀란 것은 고작 4년 만에 이 위치까지 올라왔다는 점이다. 레드로즈는 이제 도시의 특이점이었고, 은퇴한 러너들의 보금자리인 동시에, 도시의 물밑에 존재하는 온갖 일들이 모이는 장소가 된 것이었다.

  뒷문으로 들어간 잭은 정문과는 다른 호화로운 정경에 눈쌀을 찌푸렸다.
  하류 인생을 46년이나 살아온 잭에게 있어 이런 모습은 어색할 따름이었다. 특히 목재로 만든 가구라던가, 장식물들은 그야말로 호화 그 자체였다.

  대단절 이후 목재라는 것은 극히 희소한 자원이 되어 버렸고, 협정에 의해 보호받고 있는 상태였다. 공기청거기의 도움을 받지 못하거나 마법에 의해 보호받을 수 없는 상태의 지상에서 산소호흡기를 입에서 땔 수 있는 시대가 온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때문에 목재로 만든 가구와 설비란 부를 긁어모으고 또 긁어모아야 가능한 것이고, 이 레드로즈에 목재로 만든 홀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엄청난 부가 레드로즈에 모여들었다는 이야기와 같았다.

  잭은 불편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문과는 달리 VIP의 부호들은 이 더럽고 늙은 오크의 등장을 불쾌하게 바라보았다. 물론 개중에는 잭의 얼굴을 알아보며 신기한 것을 보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잭은 신경쓰지 않았다.

  만나야 할 사람은 한 명이었다.
  레드로즈의 마담이자 주인인 낸시 말이다.
  잭은 곧 그녀를 찾아냈다. 그녀는 2층에서 잭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잭이 자신을 발견하자 요염하게 미소지은 후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오른쪽 얼굴을 가린 암회색 머리카락을 길게 기르고, 가슴이 깊이 파인 벨벳 드레스를 입은 이 여성 엘프는 한 때 이 주변을 주름잡는 유능한 해커이자 사이커였고, 지금은 레드로즈의 마담이자 도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여성이었다.

  낸시는 차분히 내려와 사뿐히 잭에게로 달려왔다. 그리고 잭의 양팔을 잡으며 반갑게 소리쳤다.

  “잭! 정말 오랜만이잖아. 어째서 오지 않은 거야.”

  “주머니가 허전했거든.”

  “뭐야. 돈이 필요하면 나에게 오면 되잖아. 너도 슬슬 은퇴하는 것이 좋지 않아? 보통 오크는 나이가 40쯤 되면 그 쪽 일은 그만둔다고. 여기라면 언제든지 일을 줄 수 있어. 전설적인 러너가 일한다고 한다면 가게의 명성도 한층 오르겠지.”

  “그건 예전의 일이야. 지금은 지나간 퇴물이지.”

  잭은 가볍게 그 제안을 끊었다.
  여전히 잭을 존중해주는 사람이 있었지만, 지금의 자신은 그저 퇴물일 뿐인 것이다. 의뢰도 없고, 사람도 없다. 그리고 다른 길로도 나아가지 못하고 여태까지 해왔던, 가장 잘 하는 일에만 남아있는 그런 종류의 사람 말이다.

  “그럼 장소를 옮길까. 기다리고 있었어. 컬러즈와 일이 있었다고 하더니, 뭔가 위험한 냄새가 나는 거야. 그리고 네가 샘과 함께 있는 것을 본 사람들이 있었지.”

  잭은 낸시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를 따라갔다.
  잭은 그런 자신을 질투어린 눈으로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며 쓴 웃음을 지었다. 레드로즈를 지배하는 외눈의 여신은 숭배의 대상이었으며, 이 거리의 지배자였다.

  은퇴한 그녀와 자신의 입장 차이가 그저 우스운 것이다.
  한쪽 눈을 잃은 후 새로운 자리를 찾아낸 그녀는 한 때 전설의 한축을 담당했던 사람다운 위치에 올랐지만, 그 자리에서 멈추지 않고 달린 자신은 그저 퇴물이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물론.
  그녀가 굉장히 운이 좋은 편이라고 말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은퇴 후 마약 중독이나 강도같은 시시한 일로 죽는 친구들이 더러 있었으니 말이다.

  낸시는 자신의 사무실로 잭을 들인 후 와인색 벨벳으로 마감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잭은 그 모습을 보며 이 방 역시 마지막으로 봤을 때에 비해 많이 호화로워졌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잭이 기억하는 현역 시절의 낸시는 이런 호화로운 생활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시간이 흐른 것인가.’

  낸시도 변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잭은 낸시의 맞은편에 섰다. 낸시는 그 모습을 보면서 어이가 없는 듯이 잭을 보더니 짧막하게 말했다.

  “앉아.”

  “거절하지. 내가 엉덩이가 더럽히기에는 너무 비싼 물건들인 것 같거든.”

  “세탁하면 되니까 앉아. 아직도 고급 가구에 대한 불편증을 못 버린 거야? 기업 출신이라면서 왜 그러는지 모르겠네.”

  낸시는 담뱃대에 불을 붙였다. 잭은 여전히 소파에 앉지 앉고 말을 이었다.

  “도와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

  “그렇겠지. 그러지 않았으면 아마 주머니에 돈이 생기기 전까지 절대 오지 않았을 테니까.”

  반가워하던 표정은 어디가고 낸시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도저히 방법이 없기 때문에 찾아온 거겠지.”

  잭은 그녀가 모든 문제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자신을 뒷문으로 들어오게 한 것이 어째서 일까?

  어쩌면 그저 잭이 방문했을 때, 낸시는 자신이 일하고 있는 곳으로 잭을 오게 하려고 조치해뒀던 것 뿐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성격상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샘과 접촉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을 보면 잭이 곤란한 일로 자신을 찾아올 것을 미리 예측했던 것일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면 누군가가 낸시에게 그 사실을 알려줬거나.
  어느 쪽이건 그녀가 뭔가를 알고 있을 가능성은 높았다.

  “2가지야. 이런 부탁하긴 어렵지만…….”

  “편리하게 이용하고 싶은 거라면 사양이야. 더 이상 우리는 동료이던 시절도 아니고. 어려운 일을 쉽게 이야기하기엔 너무 거리가 있지 않아?”

  “그렇지.”

  잭은 수긍했다. 확실히 이제 전과 다른 것이다.
  시간은 너무 흘렀고, 잭은 너무 오랫동안 낸시와 만나지 않았다. 한 때 두 사람은 한 팀이었다. 동료가 둘이 더 있었지만 낸시가 오른쪽 눈을 잃은 마지막 미션에서 남은 동료 둘이 죽고 팀이 해체된 것이다.

  그 이후 낸시는  이 일을 시작했고, 잭은 다시 런을 하기 시작했다.
  길을 갈라선지 4년. 낸시와 잭은 이제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고 봐도 좋았다.

  “이 빚에 대해선 반드시 갚지. 나는 거짓말은 하지 않아.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지.”

  “알아. 누구에게 설명하는 거야.”

  낸시는 거칠게 담뱃재를 재털이에 털었다.
  그녀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듯이 입을 앙다물었고 거칠게 연기를 내뿜었다.

  “방금 전에 스스로 퇴물이라고 말한 녀석이 무슨 일을 한다는 거야.”

  “이번 일에 100만 크레딧을 받기로 했지. 충분히 갚을 수 있어.”

  “100만?”

  낸시가 담뱃대를 부러뜨렸다.

  “100만? 미친 거야? 그런 일을 받았다고? 뒤통수에 총 맞을 걸.”

  “강력한 서약을 했지. 서로 계약을 이행하겠다고 말이야.”

  “그런 건 사기의 기본 수법이잖아. 정말 넌 단순해서!”

  담뱃대로 탁자를 탕탕 두드리며 낸시는 성질이 뻗치는지 주먹을 불끈 쥐었고, 잭은 당황해서 낸시를 진정시키려고 했다. 낸시가 화가 나서 좋은 꼴을 보지 못한 것도 있지만, 그녀는 사이커이다. 염동력이 감정의 고조에 따라 방출되는 것만으로 이 방의 값비싼 가구들이 박살날 수 있는 것이다.

  “진정해. 아무튼 내용은 나쁘지 않았어. 계약서도 면밀히 살폈고.”

  “그렇지만 문제가 생겼겠지.”

  낸시의 지적에 잭은 할 말이 없었다. 실제로 문제가 생긴 것은 사실인 것이다. 그것도 제법 치명적인 문제로, 자칫 모르고 지나갔다면 모든 것이 허무하게 끝났을지도 모를 정도로 심각한 문제였다.

  외부로부터 영향이 생겨난 것이다. 그것도 작은 것이 아니다. 굉장히 크고 강력한 집단으로 보이는 자들의 대변인이 나타났으니 그야말로 마른 하늘의 날벼락 같은 사태였다.

  “뭐, 좋아. 너에겐 빚이 많으니까. 몇가지는 도와주지. 애초에. 왜 네가 부탁하는 거야? 잊은 건 아니겠지? 이 레드로즈를 만드는 데 네가 없었으면 안 되었던 거.”

  “나는 자금을 보탠 것뿐인데,”

  “그래, 총 자금의 1/3이었지. 남은 2/3은 덴과 래리의 유품으로 마련했고 말이야.”

  “은퇴 선물이었고, 내겐 필요없는 것들이었던 것뿐이야.”

  “그리고 내겐 필요했던 것이고 말이야. 솔직히 말할게. 나는 정말 너에게 실망했어. 거기선 좀 더 이렇게 주장해도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이걸 내가 해줬잖아! 라고 말이야. 그런데 거기서 고개나 끄덕이는 것이 어딨어? 설마 나나 덴이나 래리를 하찮게 생각한 것은 아니겠지?”

  “그런 아니라고 말해두지.”

  “그러면 돈 없다고 안 오는 건 대체 뭐야. 내가 듣고 어이가 없더라.”

  “여긴 너의 성이지. 내 성은 아니야. 나는 러너지. 그리고 나와 가까워서 별로 좋은 일도 없고. 잊지 않았겠지? 내겐 적이 아주 많다는 거. 지금은 퇴물이라고 내버려두고 있지만. 문득 기분이 나빠져서 내 목을 자르는 스위치를 누르고 싶어질지 모를 일이다만.”

  “그래, 그 적들 중에는 드래곤도 있었지. 지금은 퇴물이라는 녀석을 적으로 볼지는 모르겠지만.”

  “적으로 보지 않는다면 다행이로군. 그 편이 일하기 쉽거든.”

  “아무튼…….”

  낸시는 팔짱을 꼈다.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 정도는 낸시 역시 알 수 있었다. 적어도 잭은 대체로 일을 자신의 범위 내에서 처리하는 것이다. 팀이 있다면 팀과 협력하여 어떻게든 일을 처리한다. 어렵다면 자신이 무리해서라도 해낸다.

  프로 의식이라던가, 자존심이 강해서라기보다는 그저 남에게 도움을 청하는 법을 모르는 것 같은 사람인 것이라는 사실을 낸시는 알고 있었다.

  이유라면 그 뛰어난 능력으로 대부분의 일을 해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낸시가 아는 잭의 경력대로라면 그가 기업에서 낙오된 것은 그 자신의 실수는 아니었다. 책임질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인 것이다.

  아무튼 그는 경비 대장이었고.
  기업에는 언제나 책임을 질 누군가를 필요로하기 마련인 것이다. 단지 잭은 우직한 성격 탓에 다른 누군가에게 책임을 지우기보다는 자신이 뒤집어쓰기로 한 것뿐이었다.

  그런 잭이기에 이렇게 도움을 청하러 온다는 것은 잭의 능력으로서는 혹은 잭과 그 동료들의 능력으로는 해결불가능한 일에 봉착했다는 이야기였다. 다르게 말하자면 뭔지 알 수 없지만 굉장히 골치 아픈 일을 당했다는 이야기다.

  “러너로서 혼자 일하는 만큼 이득인 경우는 없으니까. 오크가 사교성이 나쁜 경우는 드물지도 않고 말이야. 그래서 무슨 부탁을 하고 싶은 거야. 샘은 그렇게 평판이 나쁜 중개인은 아니지만, 뒤에 대기업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제법 알려져 있나보군.”

  “그래, 제법 알려져 있지. 이 근처에서 빠르게 세력을 키웠으니까. 경계하는 녀석들도 많고 싫어하는 녀석들도 많지. 수완이 좋은 것도 있지만 너도 알다시피 수단이 좋은 것만으로는 안 되지.”

  잭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이 도시의 주민들은 그를 이미 주목하고 있었던 듯했다. 그리고 그의 급격한 성장을 의심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할 시간이 없었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고, 잭은 서둘러야 했다.
  “그런가. 내가 너무 물렀군. 어쨌든 부탁이 있는데.”

  “좋아, 말해 봐.”

  낸시의 허락이 떨어지자 잭은 우선 작은 것부터 이야기하기로 했다.

  “지하수로의 전사단이 최근에 컬러즈와 문제를 일으키는 모양이더군. 컬러즈 놈들을 치워줄 수 있을까?”

  “그거 네 일과는 상관없지?”

  낸시는 바로 눈치챘고, 잭은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

  “여기 올 때 지하 철도를 이용했지. 그 대가다.”

  “아아, 과연. 블랙클로의 후임이라는 남자인가. 좋아. 그 정도는 해줄게. 공짜로 말이야.”

  낸시에게 어려운 일은 아닐거라고 잭은 생각했다. 이 술집에 들어오는 사람들 중에 낸시에게 빚을 진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러너로서 싸웠던 명성은 전설적인 수준이었고, 그녀 자신도 최고의 해커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이 곳에 모이는 정보들의 양을 생각하면 그녀는 정보업을 해도 전혀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정보업이 아니더라도 어딘가에 사용하고 있겠지. 지금처럼.’

  잭은 낸시를 마주봤다. 한 때 집에서 가출해 러너가 되었던 철없는 아가씨의 모습은 이제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이제 자신보다 더 노련할지도 모른다. 잭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면 두 번째는 뭐야? 뒤에 나온 것을 보니 이게 더 큰 문제인 모양인데.”

  “래리를 빌려가고 싶어.”

  “래리를 말이지. 음, 그게 이번 일과 관련있어?”

  “있어. 시간이 없어서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목숨과 관련된 일이야?”

  조급해하는 잭을 향해 낸시는 그렇게 물었고, 잭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마 들킨다고 해도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다. 서약을 한 이상 지금 행동이 위약이라면 대가를 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에게도 아직 손발을 끊을 시기가 아니다. 통제는 강해지겠지만, 목이 잘려나갈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 잭의 생각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당장은…….

  “그럼 조금 더 기다릴 수 있겠네. 우선 내 예기를 들어 보겠어? 래리를 데려가려는 것은 상관없고, 래리도 다시 일하게 되는 것은 기뻐하겠지만 말이야. 100만 크레딧이 보수인 일에 샘이 끼어든 상황이라면 뒤에 큰 녀석들이 움직이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

  이미 그 증거가 나타난 상황이었기에 잭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표정을 보니 이미 뭔가 나온 상태인 모양인데. 하긴 그게 아니었다면 나에게 오지 않았겠지. 그래서 말이야? 여기서 손을 때는 것은 어때? 서약이라면 내가 어떻게든 해줄 수 있어.”

  말하자면 그것은 너를 구해주겠다는 제안이나 마찬가지였다.
  잭은 낸시의 영향력에 대해서 자신이 과소평가했다고 생각했다. 잭이 상상해낸 것을 낸시가 모를 가능성은 낮다. 일을 찾고 협상하던 일을 하던 사람은 덴이었지만, 낸시는 제법 덴의 보조를 했었다. 모르는 것이 이상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잭이 자신의 선택을 물릴 이유는 없었다.
  이런 위기야말로 그가 바라던 것이었다.
  이런 거대한 일. 만약 죽는 다면 그것은 명예로운 죽음이고, 성공한다면 위업의 달성이자 오크로서 바라는 투쟁의 실현이었다.

  더욱 큰 전쟁. 더욱 큰 싸움. 더욱 큰 소동.
  태어났을 때부터 싸우는 법을 배우고, 이기기 위한 삶을 살아왔다.

  딱히 야망 넘치는 삶을 살지는 않았지만, 외적으로부터 기업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했던 원급노예시절도, 기업을 공격하기 위한 싸움을 했던 러너시절도 결국 이기지 않으면 안 되는 삶이었고, 그것에서부터 잭은 삶의 보람을 찾았던 것이다.

  실패하면 죽거나 낙오되는 인생.
  잭에게 있어 변한 것은 어느 것도 없었고, 지금의 상황조차 그저 스케일이 커진 것에 불과했다. 그저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할 뿐.
  물러날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배려는 고맙지만 거절하지.”

  잭은 딱 잘라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