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폐교 연쇄실종사건 (7)

 

 

 

일어난 준서는 다시 떨려오는 다리를 진정시키려 손으로 제 허벅지를 부여잡았다. 도망치는 구렁이를 잡아야 했다. 놀란 와중에도 그는 악마가 말해준 말을 해석할 정도의 정신은 남아있었다. 저 구렁이는 카페 주인 염소자리의 공범이 변신한 것이다. 영안과 능력이 어떤 상관이 있는 건지도 둘 모두에게 물어봐야 했고, 책임도 둘 모두에게 물어야 했다.

잡을 필요 없을걸.”

오재혁의 말을 들은체 만체 하고 준서는 계단을 달음질해 내려가며 외쳤다.

재혁씨는 그 여자 잡고 있어요! 교실에 다른 사람도 좀 보고요. 민기랑 은영씨도 부탁합니다!”

순식간에 사라진 그가 있던 자리를 빤히 보고 있던 재혁은 뒷통수를 긁적이다가 염소자리에게로 돌아섰다. 그러고보니 보조계 능력이었던 것 같던데, 자기랑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뭐 알아서 할 수 있겠지. 그의 기억대로라면 이준서라는 자가 생 초짜 퇴마사는 아니었다.

우선 저 여자부터 다시 힘을 못 쓰게 할 필요가 있었다. 이미 충분히 힘든 것 같아 보였지만. 그녀의 차림새를 살펴보던 재혁의 눈에 이상하리만치 크고 빛나는 팔찌가 들어왔다. 검붉게 말라붙은 핏자국이 있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그는 자신이 공인 퇴마사임을 밝히고 몇가지 해야 할 말을 다시 읊은 다음 손목에서 팔찌를 빼 자기 주머니에 넣었다. 팔찌를 잡는 동안, 그의 왼쪽 몸에 있던 문신에서 열감이 느껴졌다.

그런 다음 그는 민기와 은영을 깨우려 했다. 샌드맨이 일으킨 잠 답게 보통 툭 치는 것으로는 여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아서, 하는 수 없이 스마트폰으로 시끄러운 음악을 크게 틀어서 귀에 갖다대었다. 은영은 익숙하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일어난 반면, 민기는 기겁을 하며 기상해서 재혁을 당황시켰다.

 

 

담을 넘어가려던 구렁이가 다시 몸을 비틀어 운동장으로 돌아왔다. 당황한 구렁이는 쉿쉿거렸고, 그러자 곧 지독한 유황 냄새와 함께 누렇고 짙은 연기 덩어리가 주변에 끼었다. 구름 속에서 구렁이의 실루엣이 남자의 실루엣으로 변했다. 곧 누런 연기 덩어리와 냄새가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안구가 돌출된 남자만 있었다.

공인 퇴마사입니다. 악마 계약 혐의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으며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습니다.”

준서는 퇴마사의 증거물인 퇴마구-그의 천사노트를 앞세우며 그 남자에게로 걸어갔다. 남자는 사람의 모습인데도 쉬익거리더니, 정문을 향해 달음박질했다. 준서도 그 뒤를 쫒았다.

정문에는 퇴마사가 타고 온 오토바이가 있었다. 혹시라도 저 남자가 바이크를 탈 줄 아는 사람이라면? 준서의 머릿속에 퍼뜩 걱정이 스쳤다.

안구가 돌출된 남자는 정문을 넘지 못했다.

그는 무릎을 꿇고 헉헉대며 손을 바닥에 짚었다.

, 뭐야……?”

남자를 의아하게 보며 속도를 늦춘 준서가 정문 바깥을 보고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깨달았다. 아까 재혁이 바이크를 타고 주변을 빙 두른 것이다. 바이크의 두 바퀴가 작은 푸른 불꽃으로 이글거리고 있었고, 바닥에는 그 불꽃이 남긴 것이 분명한 푸른 선 같은 것이 제 빛을 깜박이고 있었다.

저게 그 바이크의 능력인가? 생긴 거랑은 다르게 방어적인 용도잖아. , 아주 큰 결계를 치는데에 유용하긴 하겠군.’

푸른 선의 곡률을 봐서는 이 작은 폐교 하나만 감는 폐곡선을 그리는 게 아닌 모양이었다. 왜 이렇게까지 큰 폐곡선을 그렸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가지 못하는 결계를 쳤다고 해도, 이러면 수색할 때 곤란했을 수도 있는데. , 지금은 아니니. 준서는 주머니에서 펜을 꺼내 노트의 네 장에 빠르게 써갈겼다. <에제키엘 37:7-8, 대가는 지불하겠음.> 노트가 이전에 그에게 알려준 자신의 숨은 기능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순식간에 글씨들이 네 장 모두에서 사라졌으나, 응답은 없었다. 준서는 이것이 승낙임을 알고 있었다. 네 장을 찢어 오른손에 쥐었다.

당신은 나갈 수 없습니다. 계약자, 항복하세요.”

으아아악!”

남자는 괴성을 질르며 제 반쯤 벗겨진 머리를 쥐어뜯었다. 머리카락을 제물삼아 다시 변신할 속셈이었다. 그러나 미리 준비를 해둔 준서가 한 발 빨랐다.

나는 분부하신 대로 말씀을 전하였다. 내가 말씀을 전하는 동안 뼈들이 움직이며 서로 붙는 소리가 났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뼈들에게 힘줄이 이어졌고 살이 붙었으며 가죽이 씌워졌다. 그러나 아직 숨쉬는 기척은 없었다.”

 

준서가 손에 쥐고 있던 노트의 낱장들이 공중으로 떠올라 남자를 감싸고 빙빙 돌았다. 때맞추어 안구가 돌출된 남자가 뽑은 머리카락들도 공중에서 스스로 연소되기 시작하였다. 남자의 몸이 아름다운 비늘로 덮여갔다.

당신 자신의 모습을 직접 보시길 바랍니다. 에제키엘의 거울.

시동어와 함께 네 개의 노트 낱장들이 회전운동을 멈추고 남자의 바로 앞으로 움직였다. 이미 반은 빛나는 비늘의 구렁이로 다시 되돌아간 남자의 전면에서, 낱장들은 제 앞에 잉크를 울컥울컥 쏟아내기 시작했다.

잉크는 저들끼리 엉기고 모이더니 거무튀튀한 색을 버리고 부분마다 다른 색을 취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작은 잉크방울들이 분리되어 구렁이에게 들러붙었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방전이 되는 소리, 번갯불이 나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구렁이의 키익거리는 비명소리가 울렸다.

곧 그 형체는 구렁이가 인간일 때의 모습을 띄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마치 샌드맨처럼 모든 이빨이 썩어 문드러진 채였다는 것, 그리고 눈썹 바로 위의 이마에 네 개의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는 것. 비명을 질러대던 뱀이 그 구멍에 시선을 고정했다.

구멍은 점점 커지더니 남자의 얼굴의 형체를 뭉갰고, 곧 네 개의 손이 튀어나와 뱀의 머리를 쥐었다.

키익, 키익……!”

 

* * *

 

자신이 폐교 연쇄살종사건 의뢰 내용을 처음 들었던 카페였다. 일부러 다시 오려고 한 건 아니었다. 은영과 상의해서 장소와 시간을 맞추다보니 이 곳이 약속장소로 적격이었기에 우연히오게 된 것뿐.

시작도 여기고, 끝도 여기네. 준서는 묘한 감정을 느끼며, 자신 앞에 놓인 사각형의 트레이와 둥그런 도넛 그리고 원뿔대 모양의 종이컵을 바라보았다.

준서 씨!”

은영이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와 살갑게 인사했다. 준서도 반갑게 맞이했다.

은영 씨! 일주일만에 다시 보네요. , 머리 탈색 하셨네요?”

은영은 자리에 앉지 않고 가방만 자리에 올리며 대답했다.

물론이죠. 이보다 잘 지낼 수가 없어요. 그놈의 수녀원, 진작 나올 걸 그랬나봐요. 머리 예쁘죠!”

아주 잘 어울려요. 하하.”

가방에서 지갑을 꺼낸 은영은 도넛은 따로 사지 않고, 자신 몫의 커피만 큰 사이즈로 구입해 자리로 돌아왔다.

소식 들으셨겠지만, 수녀원 나오고 KBIP 들어갔거든요.”

그렇군요.”

준서에게서는 적성에 더 잘 맞는 일 찾으신 것 같아요, 라는 말이 나올 뻔했다. 은영은 언외언을 읽고 속으로 웃었다.

정확히 무슨 일 하시는 거예요?”

검거반이죠.”

그녀가 시킨 것은 아이스커피였다. 얼음이 부딪치는 소리를 손에 든 컵에서 내며 은영이 자리에 턱 앉았다.

, 시원해. 아무튼, 검거반에 낙하산으로 들어갔죠. 베드로 신부님 덕에 특채되었다고 할까요? KBIP에서는 퇴마행의 의무를 받은 사람들을 언제나 환영하니까요.”

으음. 그런 말은 들었습니다. 실제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모양이지만.”

멋이 없어서.”

준서와 은영은 빙그레 웃었다. 퇴마사들만큼 에 죽고 멋에 사는 사람들은 없다는 걸 둘은 알고 있었다. 퇴마사들과 어울려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알리라.

그래도 저는 좋네요. 일단 수도생활과 상관없다는 것만으로도. 직장이 서울에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들고요. 숙소도 제공해준답니다.”

정말 좋네요. 저도 들어갈까? 은영 씨 얼굴 활짝 핀 거 보니까 그 직장 무지 탐나요.”

낙하산도 정도껏이어야 하니까, 다음 채용 시기를 노려보세요. 준서 씨 정도면 무리 없이 들어가겠죠. 경험 많은 퇴마사니까.”

쪼옥. 은영이 아이스커피를 빨대로 마시는 소리였다. 준서는 와작와작 도넛을 씹어먹었다. 좋아하는 초코 코팅 폰데링 도넛이었다. 달콤한 맛을 음미하면서 준서는 은영을 바라보았다. 수녀복 차림이 아닌 은영은 멋졌다. 잘 다림질되어 새 옷처럼 보이는, 면 소재임이 분명한 베이지 색 블라우스에는 올리브 색의 가디건을 걸쳤다. 귀에는 동그란 금색의 귀고리를 했다. 전체적인 색감이, 탈색을 한 번 하고 노란 염색약을 썼는지 금빛을 띠는 적갈색 머리와 잘 어울렸다. 그녀가 말을 계속했다.

자리도 안정적일거고, 봉급도 괜찮고. , 일의 특성상 예정에 없던 근무나 야근을 해야하는 경우가 많다고는 하더라고요. 그래도 이만한 직장은 없죠. 퇴마사들은 들어오기도 쉬우니 준서 씨가 원하면 내년 채용 시즌에 지원해보세요. 2월 즈음에 저한테 연락하시면 되니까.”

좋게 들리네요.”

준서가 눈을 내리깔며 대답했다. 눈을 조금 치켜뜨고 그의 표정을 관찰하던 은영은 곧 눈가에 준 힘을 풀며 말을 이었다.

……뭐 준서 씨가 원하는 일이 퇴마사면 계속 하시면 되고요. 스물다섯에 하기엔 많이 늦은 고민이지만.”

그 말에 준서는 반항적인 표정으로 은영에게 시선을 맞추었다. 그 모습을 보던 은영은, 스물다섯이라지만 아직도 너무 정신연령이 어리구나, 하며 속으로 혀를 찼다. 그녀가 보기에 준서는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이 대체 뭔지에 대해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도, 같이 있고 싶은 사람에 대해서도. 성년이 되기 직전에 부모님을 잃고 한동안 방황했다는 말은 들었는데, 보통 방황하는 사람은 평범한 사람보다 더 빨리 자라지 않나? 은영은 이전에 접했던 사례들과는 다른 준서의 케이스를 가벼운 기억에서 좀 재미있는 기억창고로 옮겼다.

안정적이지 않은 일이니까, 고민하고 있긴 해요. 대학도 중퇴했고…… KBIP을 오래전부터 생각하긴 했네요.”

은영이 보기에 준서는 생각이 많은 타입이었다. 머릿속에 여러 생각들이 둥둥 떠다녀서, 뭔가에 집중하지도 못하는 종류의 사람. 이런 사람들에게는 외부에서 가해지는 충격이 필요했다. 그 세계를 감싸고 있는 호두껍질을 깨버릴 망치가. 하지만 그런 망치는 보통 단단한 것이 아니어야 했다. 은영의 말로는 준서의 세계를 헤집어놓을 수 없으리라. 그러나 충고는 해야 했다. 어쨌든 자신은 그의 인생 선배였으니까.

답답함과 연민, 자비심과 동료에의 호의가 뒤섞인 감정을 누르며 은영이 차분하게 말했다.

어서 생각하는 게 좋을 거에요. 저처럼 늦장 부려봤자 아까운 시간만 갑니다. 그건 그렇고, 준서 씨. 민기 씨는요?”

아르바이트 중이에요.”

그렇구나……. 두 분은 같이 사는 건 아니죠?”

아니에요. 걔는 집이 워낙 좋아서, 제가 사는 곳에서 부대끼면서 같이 살기를 원하지도 않고요.”

흐음. 그러고보면 민기 씨랑 준서 씨, 아니 민기 씨가 뭐야. 민기 군이라고 하고 싶네. 민기 군이랑 준서 씨는 어떻게 같이 일하게 된 거에요? 자세한 얘기는 못 들었거든요. 재밌는 사연이 있을 것 같은데 궁금해요. , 설마 가슴 아픈 얘기라면 말 안해주셔도 돼요.”

준서는 손사래를 했다.

가슴 아프긴요. 그런 건 없어요. 웃기고 재미있는 구석도 별로 없는 얘기지만요. 그러니까 일 년 정도 전 얘기인데…… 시간 많으세요? 좀 길어질 수도 있네요.”

은영은 스마트폰을 들어 화면을 키고 손으로 톡톡 쳤다. 오후 여섯 시를 가리키는 디지털 시계였다. 장난기어린 표정을 한 그녀가 소악마처럼 씨익 웃었다.

저는 시간이 많고, 준서 씨도 지금은 시간이 많겠죠? 한번 들려주세요.”

준서도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신이 났다. 긴 이야기를 하기 전에 그는 목을 쓰다듬는 습관이 있었다. 그 버릇대로 오른손으로 목덜미를 만지작거리며 준서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1, 폐교 연쇄살인사건 끝.

 

 

 

(*) 안녕하세요, 글쓴이입니다. 오랜만에 이어서 써서 올리게 되었네요. 나름의 변명(?)을 하고자 이렇게 저자가 직접 글 말미에 주저리주저리 쓰네요.ㅋㅋ

사실 저는 이 뒤의 #2장 내용이랑, 몇몇 다른 에피소드 내용들도 구상을 해두었어요. 그래서 중간에 끊는 일 없이 오랜 연재를 해서 완결까지 쓸 것 같다고 생각했죠. 소재도 제가 줄곧 써먹고 싶었던 퇴마고, 인물들도 재미있게 잘 뽑았다고 나름 생각했으니.

근데 쓰다 보니까 계속 마음에 안 들더라고요. 일단 동양 종교와 서양 종교를 한 세계관 안에서 말이 되게 양립시키는 일이 어려웠습니다. 설정을 글에 줄줄 쓰고 싶지는 않지만, 최소한 아다리가 맞는 설정을 글 내에서 드러내고 싶은 게 설정덕후들의 마음 아닙니까. 근데 잘 안 되더라고요.

게다가 인물들의 나이도 마음에 걸렸습니다. 저는 언제나 성장! 동료! 모험! 우정!이 있는 이야기를 좋아했어요. 특히 능력의 성장과 정신의 성장이 함께 있는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