놈들이 대기하고 있는 장소 바로 앞에 있는 거대한 문, 이 문을 열고 계속 공격을 할 것이다. 다른 병력이 이놈들을 잘 막을 수 있을까. 미지수이다.

"포로들이 왜 아직도 여기서 어기적대고 있나! 얼른 아래로 끌고 가란 말야!"

저 덩치 큰 놈 중에서도 특출나게 커 보이는 놈이 으르렁댔다. 그러고 보니 '관리조'라는 놈들에게 누군가를 끌고 아래로 가라고 했었지. 확실히 거대한 문에서 약 15미터 떨어진 바닥에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나 있다. 여기보다 더 밑바닥이 있다니.. 아니 그보다, 언제 포로까지 잡았지? 닥치는 대로 죽이는 줄 알았는데.

"나도 공격조로 들어가면 안 되나? 온몸이 근질근질한데."
"헛소리 말고 시키는 일이나 해라!"
"알았다.. 거기! 얼른 끌고 와!"

내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벽 쪽에서 또 다른 괴물들이 '포로'들을 끌고 왔다. 그중 한 놈이 통나무 같은 팔뚝을 휘둘러 가차 없이 '포로'를 후려갈겼다.  

"다리가 짧아서 그런가. 뭐 이리 느려터졌어?"

'포로'는 힘없이 나가떨어져 땅바닥을 굴렀다. '포로'의 어깨는 놈들보다 작았다. 머리도, 키도, 모두 다 작았다. '포로'는 인간이었다. 왜 포로가 나와 같은 인간인지는 모르겠다.

"엄살떨지 말고 일어나라! 음? 뭐야? 뒈졌나?"
"하여간 약해 빠져서들.."

..산탄총을 거두어 등 뒤에 맸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히 정했다. 놈들이 주고받은 말대로 라면, 아직 6분 정도 시간이 남아 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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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해?"

점심을 마치고 잠깐 남는 시간. 사무실에서 책을 읽는 올리비아 대위에게 스턱만 대위가 와서 물었다. 올리비아는 책갈피를 읽던 페이지에 꽂은 뒤 책을 덮었다. 

"일하는 중이야."
"웃기셔.. 요즘은 그냥 책 읽는 것도 일이라고 하냐?"
"그건 내가 조사하고 있는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다르지."

스턱만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가 읽던 책을 살폈다.

"패러데이 건과 관련된 건가?"
"아주 긴밀하게."

올리비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슬슬 잭슨 중사와 면담할 준비를 했다. 물론 아직도 두 시간 정도는 더 남아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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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손목형 레이저 총을 겨누었다. 거대한 몸뚱어리, 지시하듯이 손가락질하고 고래고래 소리 질러 대는 놈. 저놈이 대장이다. 이제 곧 공격을 시작할 테니 앞장서든, 뒤에서 지시하든 저 무리와 약간 간격을 두겠지. 만약 높은 단상 같은 곳에 올라가 준다면 더욱 고맙고.

"자, 때가 됐다! 모두 문 앞에 모여라!"

문은 힘으로 여는 게 아니었다. 대장으로 보이는 놈이 거대한 문 옆에 달린 레버를 당기기 위해 무리에서 약간 떨어졌다. 오케이!

"가라! 닥치는 대로 죽여라! 짓밟아..."

레이저 총에서 한줄기 섬광이 뻗어 나가 놈의 오른쪽 눈알을 지져버렸다. 이 정도면 놈의 뇌까지 뚫고 들어가 잘 태웠을 것이다. 뇌라는 게 있다면. 놈이 그대로 쓰러진다.

"누구냐!"
"저 위에서 빛줄기가 날아왔다!"
"저쪽 통로에서 적이 쳐들어왔다!"

잘 보았다. 일부러 내가 있는 위치를 알게 하려고 레이저 총을 사용한 거다. 멍청한 놈들이 그냥 총알을 날리면 내가 어디 있는지 가늠조차 못 할까 봐. 놈들 중 일부가 쿵쿵거리며 내가 있는 쪽을 향해 올라온다. 올라오는 길은 약간 돌아서 와야 하는데, 몇몇 놈들은 아예 절벽을 타고 올라온다. 여기로 밀고 들어오는 놈은 대충 스무 마리 정도. 난 일부러 몸을 일으켜 다시 한번 놈들에게 확실하게 모습을 보인 뒤 재빨리 통로로 돌아가는 시늉을 하였다.

"통로로 들어간다!"
"따라 들어가서 잡아라!"

그래, 어서 들어가라. 곧바로 은폐장을 가동했다. 다행히 통신용 기기 외에는 은폐 장치도 잘 작동하고 있다. 에너지 소비가 크지만,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재빨리 장갑과 전투화에 나노 기능을 켠 다음 절벽에 점착시켜 마치 미끄러지듯 절벽을 타고 내려왔다. 이놈들은 내가 바로 옆으로 내려가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절벽을 타고 올라간다. 그리고 우르르 비좁은 통로로 밀고 들어간다.

"다 쫓아가야 하나?"
"어떻게 하지?"
"아냐, 우리는 계획대로 놈들을 공격한다!"
"하지만 뒤에서 기습당하면!"

우왕좌왕하고 있다. 저 커다란 놈들이 혼비백산하며 발만 구르는 것만으로도 바닥이 울릴 지경이다. 뭐, 바라지도 않던 행운이다. 워낙 무식한 놈들이라 기습을 당했건 말건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놈들도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정말 고맙게도 이놈들은 적당히 멍청하고 적당히 똑똑하다. 그렇다면 그 똑똑함 충분히 이용해 주마. 절벽을 타고 내려오면서 그 중간에 점착형 폭탄을 붙이고, 맞은편 거대한 조각상에 하나에 쏴서 붙였다. 

"음?"
"방금 뭔가가 조각상으로 날아들었다!"

이런 이런, 이 와중에 또 폭탄 날아가는 건 알아챘나. 행운이 자주 따라 주지는 않는 것 같다. 좀 위험하겠지만 시간이 없다. 놈들이 폭탄의 존재를 눈치채는 것도 시간문제다. 난 죽어라 지하로 향하는 계단으로 뛰면서 폭발 버튼을 눌렀다. 원래 지하 계단으로 완전히 진입한 다음 누르려고 했는데.

"우와악! 뭐야!"
"뭔가 터졌어!"

뛰다가 잠깐 뒤돌아 확인을 했다. 폭발음과 함께 거대한 조각상이 무너져 내려 놈들을 덮치고, 절벽 중간 부분에 폭발이 일어나 절벽을 타고 있던 놈들이 충격으로 떨어진다. 거기에 절벽 일부가 무너져 그 아래 있던 놈들까지 덮쳤다. 위쪽 통로 안에 미리 설치해 둔 폭탄도 같이 터져서 이미 들어간 놈들을 매몰시키는 데도 성공했다. 다시 뛰었다. 피가 튀고 뼈가 으스러지는 광경이 내 뒤에서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나도 부리나케 뛰느라 그걸 보지 못하는 게 아쉽다. 뛰는 도중에 터뜨린 것이라 내 몸도 약간 흔들렸지만 넘어지지 않고 잘 버텼다. 그리고 곧바로 지하실로 내려갔다.

"다리가 깔렸어! 완전히 뭉개졌다고!"
"위쪽 통로로 들어간 놈들은 어떻게 된 거야!"
"죽거나 다친 놈들은 무시해라! 멀쩡한 놈들은 더 무너지기 전에 문을 통과해 예정대로 공격한다!"
"말도 안 돼! 적어도 서른 명이나 죽거나 다쳤단 말이다! 대장까지 죽었어!"
"닥쳐!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일단 나가야 한다!"

놈들은 잠시 우물쭈물하다가 정말로 다치거나 죽은 동료들은 뒤로하고 레버를 당겨 거대한 문을 연 뒤 통과해버렸다.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이 죽였다. 이제 저 나머지 놈들은 바깥 병력이 잘 막아 주길 바랄 뿐이다. 그래도 대장이 없으니 훨씬 수월하겠지.​

"후우.."

은폐장을 풀었다. 에너지가 간당간당하다.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에너지가 벌써.. 배낭에 보조 배터리를 잔뜩 담아 왔으니 망정이지. 아무튼, 사령부가 중간 경로를 파악해야 하니 소형 신호기를 부착해야겠는데.. 통신 기기가 거의 먹히지 않는 이곳에서 신호기가 제대로 작동을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설치 안 하는 것보단 낫겠지. 이제 이 지하로 향하면서 '입구'를 계속 찾아야 한다. 지하로 향하는 계단은 꽤 긴 것 같다. 후.. 다시 산탄총을 꺼냈다. 준비해야겠지.
 
"위쪽이 엄청 시끄러운데?"
"무슨 일이 벌어진 것 같다!"

폭발 소리를 듣고 먼저 포로를 끌고 내려갔던 놈들이 되돌아올 테니까.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