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패러데이 상병은 그저 그런 병사 중 하나였다?"
"예.. 원래 부사관으로 지원할 생각이었다고 했는데 시험에서 떨어졌답니다. 그, 그래서 일반 병사로 입대했다고 합니다."

잭슨의 대답을 들은 올리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앞에 완전히 겁을 먹고 주눅 든 잭슨, 그는 도무지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올리비아는 알 것 같았다. 왜 패러데이 상병이 그런 행동을 했는지. 

"중사는 잘 모를 거야. 왜, 그 거대한 재앙이 닥쳤을 때도 중사는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하지 않았나. 그렇지 않나?"
"전, 전... 면목이 없습니다, 대위님."

잭슨 중사는 도저히 고개를 들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올리비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잭슨에게 다가간 다음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자네한테는 이제부터가 고비야. 그걸 극복하느냐 마느냐, 극복하지 못하면 이대로 주저앉는 거고, 극복하면 그 누구도 자넬 당해낼 수 없을 거고."
"전.. 이제 자신 없습니다."
"그럴 만도 하지.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 가서 쉬어도 돼. 내일.. 그래, 내일 오후 세 시에 다시 시작한다."

잭슨은 힘없이 발걸음을 옮기며 방을 나섰다. 올리비아 대위는 다시 의자에 앉아 잭슨의 털어놓은 증언들을 곰곰이 생각했다.

"패러데이는.. 주저앉지도, 극복하지도 못했단 말이지."


                                                                                                   ====


죽은 이들을 계속 생각한다고 그들이 되살아나진 않는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분명하다. 놈들이 넘어 오는 입구를 파괴하는 것. 이 어두컴컴하고 울퉁불퉁한 동굴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도무지 알 수가 없단 말야. 이게 말이나 돼? 아니, 하루아침에 그런 거대한 동굴이 쩍하고 입을 벌린 채 나타날 수가 있나? 이거 집단 환각 상태 아니냐?"
"우리 부모님이 그 동굴 근처 지역에 사시는데.. 어떡하지?"

영상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거나 혼란스러워하던 동료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사실 나도 그렇다. 어느 날 엄청난 지진과 함께 땅에서 솟구쳐 오른 거대한 산과 그 산을 관통한 동굴. 아니, 사실 관통한 건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끝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으니까.. 게다가 동굴만큼이나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들까지 튀어나오고.. 잘나신 우리 레버티 공화국에선 이를 국가적 재난으로 선포하고 군대를 파견하고.. 결국 나도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다. 이 동굴의 존재도 믿을 수 없지만 그 동굴 가장 깊숙한 곳까지 가야 하는 내 처지도 믿을 수가 없다. 그리고..

"캬아악!"

나는 재빨리 몸을 틀어 내 뒤로 달려들던 괴물 놈의 가슴팍에 산탄 총알을 박아 줬다. 기척은 네놈들만 느낄 줄 알았냐. 더구나 내겐 스캐너까지 있다. 

"흐으.. 흐윽... 끄르륵.."

놈은 가슴을 부여잡고 헐떡거렸다. 심장 쪽에 제대로 들어간 모양이다. 하지만 머리통을 맞고도 버티는 놈들인 만큼 놈도 쓰러지지는 않았다. 난 헐떡거리느라 벌리고 있는 놈의 입에 총구를 쑤셔 넣고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격발음과 머리 터지는 소리가 꽤나 듣기 좋다.

"...여러분, 로봇, 로봇 하니까 로봇이 뭔지 궁금하시죠? 로봇이란.."

주위에 놈들이 더 없는지 살피는데 아까 전에 들었던 그 목소리가 들린다. 광고에서나 들을 법한 하이톤의 목소리. 이상하게 거슬렸다. 하지만 애초에 길은 일직선, 소리가 나는 길을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로봇들은 특별합니다! 주인되는 자의 음성 명령을 철저하게 따릅니다! 그 어떤 명령이라도.."

아니나 다를까, 그 소리에 시작점에는 수정 구슬이 있었다. 판타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수정 구슬에서 나오는 첨단의 절정, 로봇 이야기라. 

"여러분도, 그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구슬은 두 번이나 나왔다. 이런 수상한 물건이 두 번이나 나왔다. 그것도 내가 가는 길목에서. 더 이상 우연이 아니다. 누군가 이 수정 구슬을 통해 모종의 정보를 보내고 있다. 무엇보다 그 중대 병력을 전멸 시킨 곳에서도 이 구슬이 있었고, 한동안 뜸하다가 놈들과 몇 번 마주친 곳에 이 구슬이 또 있다. 구슬과 괴물들 사이에 뭔가 관계가 있을 수도 있다. 그래, 어쩌면.. 한두 놈 정도가 아니라 꽤 많은 괴물이 이 근처에 있을 수도 있다. 생체 스캐너는 침묵을 유지하고 있지만 기계를 마냥 믿을 순 없다. 다른 기기들은 먹통인데 생체 스캐너만 멀쩡한 게 오히려 더 이상하다. 이 동굴 자체가 기기에 악영향을 끼치는데 생체 스캐너만 지금껏 겨우 버티고 있던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생체 스캐너도 결국 먹통이 된 걸지도.. 그래, 기계에 너무 의존하면 안 된다. 지금부터 더욱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한다.

"생명 반응 감지."

음? 다행스럽게도 생체 스캐너가 아직 작동한다. 야간투시경과도 연결된 증강현실 장치로 스캐너가 보내고 있는 영상을 보았다. 대체 왜 어떤 기기는 작동하고 어떤 기기는 작동하지 않을까.. 궁금하긴 하지만 지금 당장 중요한 건 생명 반응이다. 점으로 표시된 생명 반응이 아주 바글바글하다. 스캐너는 최소 100명 이상의 생명 반응이 감지되었다는 정보를 보내고 있다. 위치는 내가 딛고 있는 지면보다 더 아래에 있다. 이 동굴, 지하로 이어지고 있다. 귀환하는 길이 쉽지 않겠군.

"자, 빨리빨리 움직여 이 굼벵이들아!"

괴물 특유의 굵고 거친 소리가 들린다. 저런 괴물들이 100마리 이상이라면.. 피해 가야 한다. 잠깐, 괴물이 아니더라도 이 좁디좁은 통로에 어떻게 100 이상의 생명체가 한 자리에 저렇게 운집할 수 있는 걸까. 이 경우엔 통로가 갑자기 넓어진다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인원이 부족한데? 두어 놈 안 보이잖아?"
"신경 쓰지 말고 이놈들이나 통솔해라!"

놈들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그런데 목소리가 가까워질수록 통로 끝부분에서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다. 야간투시경 모드를 껐다. 아무래도 놈들이 횃불이라도 켠 모양이다.

"공격조는 저 문 앞으로 모이고, 관리조는 놈들을 끌고 더 아래로 이동하라!"  

들어보니 무작정 달려드는 무식한 놈들이 아니라 꽤나 체계가 잡혀 있는 무리 같다. 단순한 괴물이 아니다. 이러면 더 곤란한데.. 빛이 점점 가까워진다. 이 비좁은 통로 끝에 더 넓고 밝은 공간이 있을 것이다. 난 드디어 통로 끝을 통과했다. 통과하자마자 일단 바짝 엎드렸다. 놈들보다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서 있으면 들키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내 기척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하긴, 지들끼리 저렇게 분주히 움직이는데 내 기척을 느끼긴 힘들겠지. 그렇게 포복한 채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그런데,

"이런.."

보고도 믿기 힘든 광경을 목도하게 되었다. 일단 횃불이 환하게 타오르고 있는 것, 지금 나온 통로 아래에 넓은 공간이 있는 것까지는 맞았지만 나머지는 전부 틀렸다. 아니 틀렸다기보다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겠지.

"이제 10분 후에 이 문을 열고 놈들을 친다! 알겠나!"

소름이 끼치는 광경이었다. 참혹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서도 아니고, 무서운 일이 벌어져서도 아니었다. 이 공간 자체가 섬뜩함을 유발했다. 너무 야만스러워서? 아니었다. 너무나.. 잘 가꾸어진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쪽으로 쳐들어올진 생각도 못 했겠지!"

벽돌이 정교하게 박힌 벽, 고풍스러운 멋을 내는 조각들, 잘 포장된 바닥 위로 각이 잡힌 채 깔린 붉은 카펫, 카펫 주위로 솟아오른 횃불대들.. 동굴이 아니다. 어디에 내놓아도 꿀리지 않을 문명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넓게 펼쳐져 있었다.

"아직 1분밖에 안 지났나? 지루해서 참을 수가 없군!"
"지금이라도 나가서 죄다 박살 내고 싶은데!"

더 믿을 수 없는 건, 그 발전된 문명과 너무나도 이질적인, 짐승같이 생긴 괴물들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