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에서 내려오자 샘은 잭을 밴으로 안내했다.

  “휘익∼.”

  잭은 밴을 보자마자 휘파람을 불었다. 샘이 가져온 밴은 결코 평범한 녀석이 아니었다.
  습격에 대비해 몸체에 장갑판이 붙어 있었다. 우리도 방탄유리일 것이다. 즉 비싼 녀석이라는 이야기다. 잭은 샘의 배후에도 상당한 규모의 기업이 뒤를 봐주고 있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즉, 이번 일은 기업 VS 기업. 그것도 결정적인 명운을 가를 뭔가를 두고 벌어지는 일이 틀림없었다. 그것이 무엇일지 잭으로서는 상상도 가지 않았다. 아무튼 대단한 뭔가일 것이다.

  기업이 하는 일들이란 빈민가의 거리를 살아가는 잭에게 있어서 천상에서 벌어지는 정체불명의 뭔가에 대한 이야기였고, 첨단 기술과 신개발품을 빼돌리던 일을 하던 잭이었지만 기업의 운명을 가를 치명적인 일에 뛰어 들어본 적은 없었다.

  1인당 백만 크레딧.
  그 말 한마디가 이번 일에 얼마나 거대한 음모가 소용돌이칠지 표현해주는 단어였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이 일에 끼어들어 있을 것이고, 암묵적인 합의하에 서로의 빈틈을 찾고 있을 것임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잭과 그 동료들은 그 빈틈을 비집고 들어가 적대 기업의 치명적인 심장을 파괴하거나, 빼돌리게 될 것이다.

  “아무래도 정말 거창한 계획이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드는군.”

  잭의 말에 샘은 웃었다. 낮지만 거칠고, 날카로우며 짐승같은 그런 미소였다.

  “오-. 그래. 정말로 그렇지. 굉장히 거창한 계획이지. 우선 차에 타는 것부터 할까.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시작할 테니.”

  밴의 문을 열고 샘은 안으로 들어가라는 손짓을 정중히 해 보였다.
  잭은 고개를 숙여 밴에 올라탔다. 내부는 화려했다. 고급스럽고 무엇보다 튼튼해 보였다. 실용성과 미관 눈가지를 모두 잡으려고 노력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샘은 잭의 뒤를 이어 밴에 올라탔다. 문이 닫히자마자 밴은 시동이 걸리더니 속도를 붙이기 시작했다.

  운전석에는 아무도 없었다. 자동으로 운전되거나 혹은 원격조종되고 있을 것이다. 특히 전자가 해킹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후자의 가능성이 아무래도 높았다.

  “인상적이지? 나도 놀랐지. 이런 건 아무래도 보기 쉽지 않으니 말이야. 하지만 기습을 대비해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지.”

  “100만 크레딧짜리 일이라는 사실이 실감이 나는 군.”

  “조만간 더 실감날 일들이 많을 거야. 아지트를 보면 더 깜짝 놀라겠지.”

  “그건 그때 가서 즐기기로 하지. 스포일러 당하면 김빠질 테니. 그럼 슬슬 의뢰에 대해서 이야기해줄까? 자네가 픽서라는 사실은 이미 알겠지만, 그 외에 내가 아는 게 아무 것도 없군.”

  “그렇군. 이야기해줄 차례지.”

  샘은 등받이에 편하니 등을 기댔다. 그리고 한쪽 다리를 들어 꼬아 앉은 후 양손을 겹쳐 무릎위에 올렸다.

  “편한 자세를 취하게. 이야기가 길어질 거니까.”

  “시작부터 상세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경우는 처음이군.”

  “계약을 했잖나. 그 계약의 강제력은 상당해. 정말로 어지간한 문제가 없는 더 이상 항구를 떠난 배에서 내릴 수 없지. 그거로군.”

  “그렇군.”

  꽤나 통렬한 비유라고 잭은 생각했다. 확실히 이제 더 이상 내릴 방도는 없다. 그런 계약인 것이다.

  “그래서 어떻지? 드래곤이라도 얽혀 있는 건가?”

  “그 선까지 가면 100만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고. 초월종을 상대로 우리같은 평범한 존재들이 어떻게 해볼 수 있을리가 없겠지. 뭐, 1/4은 맞았군. 아쉽게도 얽혀 있는 것은 구미호다. 【헤이리엔화】. 구미호 헤이리엔의 기업이지.”

  “세계 8대 기업들 중 하나군. 그렇지만 왜 1/4지?”

  “【헤이리엔화】는 어디까지나 한쪽 발을 담그고 있는 수준에 불과하거든. 말하자면 신병기 사업이지. 우리는 그 샘플을 파괴하는 거고.”

  “그게 100만짜리 일인가? 그러기엔 단순한데.”

  잭은 비슷한 임무를 몇번이나 한 적이 있었다. 아니, 오히려 이런 일이 주된 일이었다. 상대 기업의 신상품을 강탈하거나, 그 정보를 훔쳐 팔거나, 파괴한다. 어떻게 보면 러너로서 가장 기본적인 일이기도 하다.

  이것에 100만 크레딧이라니. 이상한 일이었다. 역시 여기에 더 뒤가 있을 것이다. 설령 이 일로 인해 【헤이리엔화】에게 거스를 수 있더라도 말이다.

  “우리의 의뢰자는 에이드리언이라고 한다. 이번 목표인 【셉텐트리온즈】의 주임 기술자였던 남자지. 그는 어떤 병기에 대한 기술을 개발했어. 말하자면 외법이다. 일반적으로 허용되지 않아야 할 기술이지.”

  “흥미롭군. 명당 100만 크레딧이나 써서 해치워야 할 만큼 위험한 기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어지간히 대단한 것인가 보군. 확실히 그런 것이라면 처분하기는 편하겠지. 위험하고 고도의 기술일수록 한정된 곳에 꽁꽁 숨겨두기 마련이니까.”

  러너 특유의 경험이 배어있는 잭의 말엔 샘은 입꼬리를 올렸다.

  “바로 그거다. 단지 이번 일은 그 시설과 관련자 전부의 몰살이야.”

  “크게 나오는 군.”

  그야말로 드문 일이다. 의뢰인이 표적을 몰살시키는 것을 요구한 것은 잭으로서도 이번 건을 제외하면 한 건에 불과했다. 그 한 건도 빈민가의 사이비 종교에 빠져 마약절임이 된 후 제물로 사용된 자식의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경우였나.
  그 임무는 꽤 고생했던 것으로 기억했다.

  한 달에 걸쳐 면밀히 조사해 반나절 동안 교단의 건물 자체를 무너뜨렸던 것이다.
  물론 그 와중에 간부 셋의 머리는 따로 가져와야 했기 때문에 세손가락으로 뽑을 정도로 높은 난이도를 자랑하는 의뢰였다.

  성공했던 것은 반 정도 운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이상의 난이도를 가진 어마어마한 임무가 잭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보통이 아니지. 에이드리언은 【셉텐트리온즈】에서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병기를 만들어냈다. 원래라면 그렇게 가치 있는 것은 아니었지. 위력은 보장되지만, 약점 역시 강렬했기 때문에 사용할 이유가 없었던 물건이었지. 하지만 에이드리언은 새로운 방식을 개발해냈고, 비윤리적인 방식으로 이용되기에 이른 거야.”

  에이드리언.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라고 잭은 생각했다. 하지만 정확한 기억은 아니었다. 그렇게 희소한 이름도 아니고, 동명 이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이 TV에서 나온 방송을 통해 알았을 것이다.
  잭의 기억대로의 인물이라면면 의뢰자인 에이드리언은 천재 과학자이자 마법사로서 엄청난 양의 특허로 돈을 쌓은 일재였다.

  “좀 더 직설적으로 이야기해줬으면 하는데.”

  “그렇군. 최근 사이버웨어를 장착한 인간은 흔하지? 자네도 오른팔은 의수라고 알고 있군. 피부도 특수 도금했고 말이야.”

  “내 수술 이력에 대해서 잘도 조사했군. 정규 수술도 아니었는데.”

  “자네의 이력을 조사하다보니 얻은 정보지. 우리는 여러가지로 자네를 파악할 필요가 있었어. 실력은 어떤지. 현재 상황은? 경제적인 문제는 없는가?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인가? 힘들고 어려운 일이야. 면밀하게 후보를 골랐지.”

  “상당히 고생했을 것 같은데.”

  처음부터 후보다 정해져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 테니, 후보를 좁히기 위해 상당한 비용을 들여 조사했을 것이다. 잭 자신에게는 그저 100만 크레딧 짜리 일일 뿐이지만, 실제로 보면 그보다 몇 십 배는 되는 돈이 투입되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 결과 최적의 후보를 찾아낸 것이지만. 그럼 이야기를 이어갈까. 우리의 의뢰주인 에이드리언은 끔찍한 기술을 만들어내고 말았지. 생물의 사지가 결손되면 마법적인 능력에 공백이 생기는 것은 알고 있겠지?”

  “알고 있지만…….”

  마법이란 각성자들만이 자연적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생물이라면 누구나 다룰 수 있는 힘이었다. 단지 마력을 다루기 위한 능력은 생물이 가진 정수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며, 신체의 결손은 이 정수의 유실을 발생시켜, 마법적인 능력을 감퇴시키게 되는 것이다.

  이 마법적인 감퇴는 생물이 다룰 수 있는 마법의 총량을 감소시키는 일이 되기 때문에 주문의 위력이나 다룰 수 있는 역량 자체는 약해지지 않지만, 보유할 수 있는 마법의 수를 감소시키고, 소실된 마법력을 회복시키는 힘을 약화시키게 되어 결과적으로 마법사로서의 약체화를 불러오도록 되어 있었다.

  때문에 마법사들은 신체가 결손 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인공물을 최대한 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만약 한다고해도 넷매트릭스를 즐길 수 있도록 데이터잭을 심는 정도다.
  어떤 의미에서 이들 마법사들은 현대 사회와 가장 반대쪽 극단의 길을 달리고 있다고 봐도 좋았다.

  넷매트릭스의 대두와 함께 가상현실을 제 2의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도 모자라 주력으로 삼는 이들이 나타나고 있는 실정에 여전히 자연체를 유지한다는 것은 분명이 시대를 거스르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튼 신체 결손에 의한 정수의 손실과 마법적 능력의 감퇴는 러너에게 있어 상식과도 같은 일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정작 잭으로서는 그것이 이번 일과 무슨 관계가 있는 지 전혀 추측할 수 없었다.

  “신체의 모든 부위를 기계로 교체하는 것으로 육체의 정수를 한 없이 0으로 하는 것이 가능하지. 이 경우가 되면 사람은 사실상 죽은 꼴이니 다름없게 돼. 뇌마저 기계로 대체 해버리면 그것은 과연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지.”

  “그걸 어떻게 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개발했나? 모든 정수가 유실되고도 자아를 유지할 수 있다면 그건 확실히 대단한 기술이긴 하지만 100만 크레딧 짜리 일이라고 생각되진 않는데.”

  생물이란, 자신의 진짜 육체를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 존재하지 않는 사지의 감각을 느끼며, 그리워한다. 생 몸이 아니게 된다면 남아있는 생체 부품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부작용을 최대한 줄여주는 신상품이 바이오웨어라고 불리는 의체상품이었다. 가능한 유기체에 가깝게 만들어진 물품으로, 신경접속을 통해 사람의 사지처럼 다룰 수 있으며, 일부는 정수의 결손마저 보충하는 것이 가능했다.

  물론 완전한 생체 부품만은 못하지만, 사이버웨어처럼 일반적인 신체기관을 상회라는 능력을 발휘하거나 특수한 기능을 붙이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에 나름 수요와 인기가 있었다.
  바이오웨어로 신체의 장기를 보호하는 식으로 암살로부터 몸을 지키거나, 강력한 완력을 부과해 호신용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사이버웨어와 달리 본래 사지와 비슷해 외견적으로도 부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 중요했다.
  샘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반대네. 그 상태에서 정수를 마이너스로 돌입시키는 기술을 개발했네. 소체의 자아를 남김없이 파괴하고 네거티브 존을 만들어내는 것이지.”

  “허.”

  잭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흘렸다.
  확실히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마법에 정통하진 않은 잭이지만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러너로서 듣고 배워온 지식들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잭은 살아오면서 그런 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가능하네. 단지 조건이 필요하지만. 확실한 것은 전신의 거의 대부분을 사이버웨어로 대체해야 한다는 거야. 정수를 네거티브존으로 밀어 넣기 위해서는 신체의 결손을 무기물로 매워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듯 하더군. 아무튼 원리에 대해서는 나도 자세히는 모르네. 확실한 것은 이 기술이 꺼림칙한 것이라는 거지.”

  “확실히 꺼림칙하긴 하군. 뭔가 위험한 거라도 불러올 수 있는 건가? 차원문을 연다던가.”

  “거기까지는 아니야.”

  샘은 부정했다. 하지만 여전히 표정은 심각했고, 잭은 그 뒤에 얽힌 두려움을 볼 수 있었다.

  “완전 조작이 가능한 사이보그 타입 전투병기가 탄생하는 거지. 네거티브 존 덕에 마법에 강력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으며, 신체 대부분의 사이버 웨어로 교체해 초인적인 내구력과 전투기능을 가진 불사신의 병사가 태어나는 군. 이론상으로는.”

  “이론상? 그건 아직 그 병사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이야기인가?”

  “에이드리언이 그렇게 예측하고 있는 것일 뿐이네. 실제로 【셉텐트리온즈】에서는 그런 시도를 하고 있지. 어째서 【헤이리엔화】같은 기업이 발을 들이고 있는지 알겠지? 완성된다면 최고의 병기가 태어나네. 약간 비싼 것만 제외하면 말이야.”

  “일반적으로 정수가 부족해지면 마법 공격에도 취약해지지만 그런 약점도 없어진다는 건가. 그러면 해킹에 취약할 가능성은? 의체를 해킹해서 못 쓰게 만드는 것은 해커들의 특기지만.”
  “그쪽도 문제없네. 약점이 없는 무적의 병기의 탄생이지.”

  “그럼 그 위험한 괴물이 만들어지기 전에 막는 것이 내 일인 것이군.”

  확실히 이 정도면 100만 크레딧 짜리 일이다. 잭은 그렇게 생각했다. 확실하진 않지만 저런 대단한 괴물을 제조하는 장소라면 최첨단 방어시설이 설치되어 있을 것이며, 서버 역시 최상급 아이스[ICE:Intrusion Countermeasure Electronics]로 방어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당연히 동원되는 화력 역시 평범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연구시설 자체를 날려버릴 필요가 있다면 그야 100만 크레딧 정도가 아니면 절대 뛰어들지 않을 일이었다.

  “우리 의뢰인께선 이 악몽과 같은 기술이 완성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네. 아직 개발 중인 지금 없애 버려야 한다는 것이지. 아무튼 완성되는 즉시 군사 밸런스에 영향을 미칠 것은 확실하네. 드래곤 같은 초월종을 상대로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 외의 기업들에게는 치명적인 암살자가 파견될 테지.”

  “그리고 우리는 실업자가 되겠군.”

  잭은 팔짱을 끼면서 그렇게 말했다.
  전신이 사이보그화된 암살자. 그것도 사용자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며, 사이보그의 일반적인 약점인 마법이나 해킹도 먹히지 않는 극한의 방어력을 가진 살인머신이 존재한다면 세상의 모든 러너들이 실업자가 될 것이다.

  물론 이 무지막지한 녀석을 만들기 위해서 그 성능 못지않은 어마어마한 돈이 든다는 문제가 있지만, 최상급 기업 쯤 되면 그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저 살인병기들을 이용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더 큰 것이다.

  강탈, 파괴, 납치, 암살.
  기업 전쟁에서 흔히 사용되는 상투적인 수단을 훨씬 효율적으로 강력하게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손해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이득이다.
  게다가.

  “아니, 어쩌면 드래곤에게도 통할지도 모르지.”

  잭은 자신의 추측을 냈다.

  “드래곤의 가장 뛰어난 강점은 그 마법 능력에 있지. 물론 신체능력도 어마어마하지만, 마법능력에 비하면 부족하다고 할 정도야. 그런데 마법이 통하지 않는 사이보그 암살자가 찾아온다고 생각해 보자고. 어쩌면 드래곤을 거꾸러뜨릴 수 있을지도 모르지.”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위대한 다섯 드래곤들.
  그리고 이 위대한 드래곤들만큼은 되지 않지만 세상에 퍼져 있는 수천 마리의 드래곤 종족들. 이들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은 그 빼어난 지성과 육체적 능력도 있지만 마력을 진관적으로 다룰 수 있는 강력한 마법 재능으로부터 기인하고 있었다.

  그런 드래곤들을 상대로 마법이 통하지 않는 사이보그 암살자를 보낼 수 있다면 수에 따라 정말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인 것이다. 【용살해】라는 위업을.

  【대단절】 이후 드래곤들이 동급의 존재들 외에 다른 종들에게 살해당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 첫 위업이 바로 이 사이보그 괴물들에 의해 달성될지도 몰랐다.
  샘 역시 침을 꿀꺽 삼키며 진지하게 잭의 발언을 곱씹는 듯 보였다. 반대로 잭은 뱃속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번 일이야말로 그의 마지막을 장식할 일일지도 몰랐다.
  100만 크레딧의 보수와 세상에 어떤 방향으로든 큰 영향을 끼칠지 모르는 기술을 파괴하는 임무. 확실히 잘 어울리는 금액과 내용이었고, 그 위험도는 금액과 내용의 터무니없음에 비례할 것이다.

  “그건 나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정말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무섭군. 결과로 위대한 드래곤들의 역린만을 건드릴 것 같지만.”

  “동의하네.”

  잭은 고갤르 끄덕였다. 확실히 아무리 뛰어나고 강력한 암살자라고 해도 그 거대한 다섯 위대한 드래곤들의 적이 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것들은 정마로 사람의 인지를 초월한 무언가였고 신이라고 불러도 위화감이 없는 존재들이었다.

  본래 이 세상에 널리 퍼져 있던 신앙이 사리지고, 그 대신 드래곤 신앙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도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드래곤의 초월적인 능력이 그야말로 신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신앙 자체를 잃었다기 보다는 신앙의 주체를 다른 존재로 변경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즉 새로운 신앙의 대상으로 드래곤을 삼은 것이다.

  “내가 터무니없는 일에 뛰어들었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던 것 같군. 하지만 계약이 없더라도 받아들였을지도 모르겠군. 이번 임무 틀림없이 즐거울 것 같아.”

  잭은 히죽 웃었고, 샘은 그런 잭을 터무니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곧 샘은 자신의 표정을 수습하고 입가에 미소를 띠워 보였다. 관자노리를 타고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지만 샘은 개의치 않았다.

  “그렇지만도 않다고 장담해주지.” 

  대신 샘은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네, 우주 좋아하나?”

  그 말을 하는 샘의 입가에는 그가 지을 수 있는 최고의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 설마야. 이 빌어먹을 사이보그 괴물을 제작하는 장소는 바로 우주에 있네. 【셉텐트리온즈】의 월면 기지에.”

  “제길. 상상 이상으로 터무니 없는 일에 끼어 들게 되었군.”

  잭은 무릎을 탁 치며 이를 악 물었다. 12년 간 경력을 쌓은 잭이지만 설마 지구 밖으로 *런*을 하러 가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정말 하나부터 10까지 예상 밖의 일로 가득 차 있었다.

  “이거 정말 상상을 뛰어넘는 군. 설마 우린 진짜로 우주선을 타고 달로 가기라도 하는 건가? 당연히 그를 위한 계획은 있겠지?”
  “그렇게 될 거라고 미리 예기해둬야겠군. 당연하지만 우주에서 활동할 때를 대비한 훈련을 할 시간은 없어. 시간은 촉박하고, 훈련을 위한 최고의 코치를 영입할 시간도 없으며, 어설프게 할 바에 그냥 하지 않는 편이 낫지.”

  “끝내주는데.”

  “문제는 탈출이지. 자력으로 지상으로 내려오지 않으면 안 되거든. 그를 위한 우주선은 준비해뒀지. 하지만 운전사가 없어.”

  “점점 구멍투성이가 되고 있는 것 같은데? 지나치게 엉성한 탈출 계획이잖아.”

  “더 좋은 방법을 자네가 내준다면 생각해보지.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 계획에 참가하는 사람은 적을수록 좋아.”

  “빌어먹을. 없어. 계속해.”

  “침입은 단순한 방법으로 이뤄질 거야. 숨어들어갈 방법 따윈 없으니까. 우리는 실험체로군. 가장 먼저 탈출 미션을 수행하지 않으면 안 돼. 실패하면? 자네가 인류 최초의 사이보그 좀비가 될 수 있겠지.”

  “내부 지도는 당연히 없겠군. 닥치는 대로 부숴야 하나?”

  “아니, 그건 있어. 왜, 후회되나?”

  “내 생각을 말하기 전에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서 먼저 묻고 싶은데.”

  “당연히 모두 후회했지.”

  “그럼 내 대답도 알겠군.”

  잭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