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우리는 저마다의 신을 찾는다. 은은한 홍등 아래 음탕한 매춘부의 

젖가슴에 파묻혀 신을 갈망하는가 하면, 피처럼 붉은 포도주를 입술에 적시며 

취기어린 환상 속에 신을 부르짖는다. 누런 황금으로 삶을 구린내나는 구릿빛

으로 채색해가며 노름판에서 신을 탐색해보지만 야속한 절대자는 그림자조차 

나타내질 않는다. 끝없는 갈증은 타는 목마름으로 우리를 공허의 벼랑으로 인

도하고 결국 그 벼랑의 끝에서 마침내 우리는 신을 찾아낸다. 그리고는 진창속

에 드러누운 돼지 마냥 기뻐 나뒹군다. 기뻐하라. 우리는 신을 발견했으니. 

 우리 존재 가장 깊숙한 곳, 심연중에 은밀히 숨어있는, 자신이라는, 자아라는 

신을.'  

 

                                                                                        - 쟝 아쥬흐, '이 시대'

 

 

1-2. 1

 

 남방의 황금으로 정교하게 세공된 금빛의 마스크가 홍등 아래 은밀히 빛났다. 

이 가면속 감추어진 자아는 음습하게 피어오르는 아센산 향의 혼미한 향기에 취

해, 쾌락의 내음에 달아오른 육체를 더 큰 육신의 향연 속으로 파묻어 버렸다. 그

에 질새라 붉게 염색된 제국산 원단으로 짜여진 장식들이 활활 타오르는 횃불과

맞물려 이 거대하고 퇴폐한 공간을 가득 채운 살색의 남녀들을 향해 그들의 정욕

을 부추기듯 그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땀으로 번들거리는 미끈한 나체의 몸뚱아리, 격정적인 욕망을 꺼리낌없이 표출

해내는 격렬한 움직임, 아득히 먼 곳에서 울려오는 것 같은 음란한 교성. 

 열기는 더욱 뜨거워지고 있었다. 은밀하면서도 광적인, 그렇기에 이들을 더욱 흥

분의 도가니로 빠뜨리는 음탕한 열기는 이들의 정신을 혼미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간간히 들려오던 뜨거운 숨소리는 거리낌없는 신음으로 변모되었고 절정에 이른 

살색의 육체들은 엎어지듯 그 자리에 드러누웠다.

 

 왕은 쓰러지지 않았다. 그는 실신해버린 눈앞의 여인을 뒤로한채 무언가 성에 차

지 않은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왕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가면을 벗

어던졌다. 체신 따위 아무래도 좋았다. 그는 좀더 떨어진 곳에 널부러져 있는 금발

의 여인을 발견하고선 격한 움직임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여자의 젖무덤을 난폭

히 움켜쥐더니 거칠게 범하기 시작했다. 쓰러져있던 여인은 자신을 가리던 가면이 

풀려 바닥에 흘러내리는 것도 잊은듯 공허한 시선을 허공에 매단채 쾌락에 몸을 내

맡겼다. 

 격렬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왕은 좀처럼 절정에 다다를 수가 없었다. 고가에 거래

되는 사막국 아센의 특산품인 미향 때문은 아니었다. 아니 미향은 너무 익숙한 것이

었다. 그는 이제 미향의 향에 취하지 않고는 여자의 몸을 탐닉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가 애음하는 해상국 작센의 포도주에 취해서도 아니었다. 그는 술을 들이키지 않고

서는 여자를 품을수 없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그가 이전부터 해오던 것들이었다. 

무엇 때문인가. 살구색 젖무덤이 격렬히 흔들리며 그의 동공 속 탐욕의 자아를 자극

시켰지만 그는 욕정에 그의 자아를 고정시킬 수가 없었다. 그는 이곳에 오기 전 멘지

스의 스산한 빛이 자신의 침실을 비추었을 때 받았던 한통의 서신이, 이후 그의 모든 

감각을 지배하고 있음을 문득 깨달았다. 아니, 이미 인지하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피

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 그는 군주였다. 그가 피하고 싶은 진실이란 존재하지 않아야 했다. 진실과 거

짓 그 모두가 그 앞에선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중부대륙의 저 위대한 에클레이스 제

국의 황제라 할지라도 그를 지배할수는 없었다. 그는 불쾌했다. 그는 자신의 아랫도리

에 하체를 아무렇게나 내맡긴 이 여인이 국왕의 옥새를 출납하고 관리하는 옥새상서, 

가생디 백작의 정실이라는 사실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돌연 여인의 금발을 거칠게 

움켜쥐고선 내팽개쳐 버렸다. 빌어먹을 금발 같으니.

 평소와 같지 않은 왕의 이질적인 폭력에 당황한 여인은 두려운 눈길로 왕을 올려다보

았다. 이어 왕의 낯빛이 변한 것을 알아챈 몇몇이 좌우를 살피며 재빨리 팔을 크게 휘

둘렀고 그에 뒤질새라 나체의 몸뚱아리들이 이곳, 살색의 향연장, 르 포르아노를 급히 

벗어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였다. 왕이 원치 않는 이상 더 이상의 향연은 가질 수 없었

다. 왕이 싸지르는 인분을 받아먹는 그들로써는 왕의 심기를 거스를 수 없었다. 귀족원

의  대귀족들을 상대로 왕국 내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그들로서는 왕에게 빌붙는 수밖

에 다른 대안은 없는 것이었다.

 "입궁하겠다."

 왕의 짤막한, 하지만 군주로서의 위엄이 서려있는 한마디에 금빛 마스크를 뒤집어쓴채 

남아있던 몇몇 무리들이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이어 백색의 가운을 국왕의 몸에 

두르는가 싶더니 왕국을 상징하는 금은사 직물로 수놓인 검붉은 고짓을 왕의 어깨에 

걸치고서는 머리를 조아렸다.

 왕은 움직였다. 왕실의 권위를 나타내는 팔두마차가 바깥에 대기하고 있을터였다. 그는 

어서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이곳은 더이상 그를 채워줄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더

구나 오늘, 그는 채움이 아닌 비움을 선사해줄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다. 그의 침소가 그

런 곳이었다. 왕국내 가장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는 그곳에서 그는 그가 배설물로 여기는 

온갖 것들을 비워버릴 것이었다. 그리고 그 침실에 그의 처첩들, 왕비와 후궁들이 있었다. 

그는 그녀들에게 그의 못다한 정욕을 비워버릴 생각이었다.

 

1-2. 2

 

 이런. 실패했군. 얼핏 이백걸음까지 헤아린건 기억이 나는데 말이야. 

 남자는 빠른 걸음걸이의 박자에 보조를 맞춰 리듬감있게 펄럭이는, 벨벳으로 검게 수놓인 

자신의 쉬르코 끝자락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근래 ‘그림자들’로부터 전해지는 은

밀한 서신들은 멘지스가 중천에 떠있는 이 시각까지도 그로 하여금 잠을 이룰 수 없게 만들

었다. 

 그는 내면 깊숙한 곳에서 불쑥 솟아오르는 혼란을 어서 잠재우고 싶었다. 그리고는 원래의 

정돈된 상태-그 자신에게 안식을 가져다주는-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밤 그를 방문

한, 여느 때보다도 훨씬 늦은 시각에 도달한, 전혀 반갑지 않은 서신은 그를 더욱 깊은 혼돈

의 골짜기로 내몰았다.

 남자는 걸음을 더욱 빨리 움직였다. 그는 자신을 건져 구원해줄 그 무엇인가를 간절히 갈망

했다. 그는 스테인드 글라스를 관통하여 시커먼 회랑속을 비춰주는 멘지스의 음산한 옷자락

이, 복잡한 심경을 돌려놓기 위한 방편으로 걸음을 세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어지럽혀

져버린 자신의 내면을, 그리고 원인 모를 두려움을 차갑게 식혀주기를 바랬다. 그의 빠른 걸음

이 데려다줄 어둠 저 너머에, 이 기나긴 회랑의 끝 저편에, 그에게 안식을 가져다줄 멘지스의 

위로가 있을 것이었다.

 언제까지고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멘지스의 서늘한 빛이 서린 마지막 스테인드 글라스를 

지나자 끝이 없을 것만 같던 긴 회랑이 끝나고 갑작스런 칠흑의 어둠이 그를 에워쌌다. 그리

고 그 어둠 사이로 거대한 문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국산 백향목으로 잘 몰딩된, 유서 

깊은 이 고성의 흔적을 담아내는 고풍스러운, 문이라고 하기엔 육중한, 게이트라고 불리는 

것이 더 적당해 보이는 목재문이었다. 

 남자는 잠시 숨을 골랐다. 멘지스의 빛조차 스며들지 않는, 검음만이 가득한 이곳에서 그는 

묘한 안도감을 느낌과 동시에 긴장감을 느꼈다. 

 약간의 정적이 흐른 후, 남자의 동공에 작은 불꽃이 일렁였다. 이어 건너편에서 작은 횃불이 

피어올랐고 어둠 가운데 횃불을 쥐고 있는 창백한 흰 손이 남자에게 손짓했다. 남자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게이트의 저편, 어지럽혀진 그의 서랍장을 가지런히 닫아줄 것이라 그가 기대하

는 존재들을 향해 마지막 걸음을 내딛었다. 

 게이트가 닫히는 둔중한 음이 공간을 때림과 동시에 미약하게 불타고 있던 작은 불꽃도 어둠 

저편에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회랑은 이내 다시 정적 속에 잠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