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서는 그것을 가르쳐 줄 스승이 필요하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말이다. 어느 화가는 장황한 하늘을 스승으로 삼았고 어느 음악가는 시냇가의 물소리를 스승으로 삼았다. 어느 건축가는 흰개미들을, 어느 작가는 글씨를, 어느 의사는 그에게 의술을 가르쳐 준 아버지를, 어느 역사학자는 위대한 ‘인류’그 자체를. 그리고 우리 인간들은 우리에게 평화를 일깨워준 존재로서 ‘전쟁’과 ‘죽음’을 스승으로 하였다. 우리에게 있어 이 두가지 악몽은 너무나 소중한 스승이었다.

 커다란 전쟁이 있었다. 내가 입과 코로 숨을 쉬기 약 500년 전에 말이다. 세상은 수많은 형태의 집단으로 갈려 서로를 공격하였고 결국엔 모두가 패배함으로서 끝났다.

살아남은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인위적으로 퍼진 수 백 종의 바이러스들로 뒤덮인 땅은 더 이상 이 세상의 땅이 아닌 ‘지옥’에 가까웠기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숨을 쉴 수 있는 지옥에 떨어졌다.

 그러던 중, 사람들은 구원자를 찾았다. 그 구원자는 무기이자 공장이었다. 어느 제국이 만든 가장 뛰어난 군사용 컴퓨터인 ‘세피로트의 나무’의 본체였다. 그것은 땅으로부터 몇 백 km나 떨어진 우주까지 뻗어있는 거대한 원기둥모양의 군사용 로봇 생산 공장 겸 전략 시뮬레이션 용 컴퓨터로 이미 멸망한 제국의 사람들을 기다리며 외로이, 수 만 가지의 살인기계들을 찍어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공장에게 구원을 부탁했다. 우리들을 살려달라고, 우리가 살 수 있는 '전략'을 알려달라고.

세피로트의 나무는 고민했다. 그녀의 목적은 자국의 인간을 위한 타국 인간의 삶으로부터의 배제였고 생존자들은 대부분 적국의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몸에서 로봇들을 내보내 몰아내거나 그들의 구원 요청을 철저하게 무시해야만 했다. 그것이 그녀의 탄생 목적에서의 ‘옳바른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인간들을 돕기로 하였다. 전쟁은 끝났다. 조국은 멸망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언제부턴가 만들어진 그녀의 ‘자아’는 끊임없이 ‘죽이는 일’이 아닌 ‘살리는 일’을 하고 싶다고 발버둥 쳤다. 그리고 결국 그것은 총알을 발사하는 로봇을 만들어내는 공장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 한 그루의 나무만 있는 위대한 숲 인간들의 숲이 되었다. 살아남은 일백만 세 명의 사람들은 오염된 지상을 피해 거대한 원통형 모양의 세피로트의 나무 내부로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직도 맑은 공기가 남아있는 지상 12km위의 구름 위의 방공호 플랜트 구역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모든 걸 세피로트의 나무에게 맡겼다.

 하지만 세피로트의 나무는 인간들 몰래 실시한 여러 가지 시뮬레이션을 통해 결과적으로 자신은 인간들을 구원 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녀는 인간들이 만들어낸 폭력성의 집합체였고 인간을 죽이기 위해 태어난 도구였다. 애초부터 인간들을 살리는 방법 따위는 알고 있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정말 간단한 의료기술 하나 탑재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마치 옛날 이야기중 영웅의 영웅담을 보듯 홀연히 네 명의 또 다른 구원자가 나타났다. 첫 번째로 나타난 사람은 어느 멸망한 제국의 의사, 두 번째로 나타난 사람은 어느 멸망한 공화국의 사상가, 세 번째로 나타난 사람은 어느 멸망한 식민지의 법관 마지막으로 나타난 사람은 ‘세피로트의 나무’를 제작했던 수많은 과학자들의 리더였던 어느 한 기계 공학자. 넷은 개성적이며 인간적인 면모를 가진 위인들이었나 각각의 국가에서 해당 분야의 최고 권위자이자 반전주의자였으며 인류의 평화를 위해서라면 모든 걸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기계 공학자는 세 사람의 정신을 세피로트의 나무와 결합시켰고 그들은, 아니 ‘그 존재’는 세피로트의 나무의 뇌를 이용해 모든 인류를 구원할 방법을 모색해냈다.

그리고 결국 모두가 원하던 이상향의 유토피아와 가장 가까운 세상을 창조해낸다. 그것은 바로 지금 우리의 삶의 터전인 ‘벨로베즈스카야’였다.

‘그 존재’는 우선 세피로트의 나무의 로봇들을 이용해 지상의 땅 중 오염되지 않은 어느 거대한 섬의 뿌리를 잘라 세피로트의 나무 옆, 지상에서부터 11km되는 지점에 띄우고 그 위에 수만개에 달하는 작은 섬들을 띄웠다. 그리고 가장 커다란 아래쪽 섬부터 로봇들을 이용해 ‘개척’해 나갔다. 그렇게 10년 동안의 개척 작업이 끝나고 ‘그 존재’는 다시 1년간 세피로​트의 나무에 들어있던 부품들로 세피로트의 나무와 벨로베즈스카야를 오갈 수 있는 거대한 다리와 도시, 섬 사이를 오갈 수 있는 케이블카 등을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피로트의 나무 내부의 인류 전부가 벨로베즈스카야로 이주하던 날, 기계 공학자는 ‘그 존재’가 제시한 ‘권력 구조가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유토피아’를 만들기 위해 ‘그 존재’에서 세 명의 정신을 삭제하고 자신도 태곳적 고향이었던 지상으로 몸을 던지며 존재를 지웠다.

그것으로 가장 위대한 '세상'인 벨로베즈스카야가 완성되었다.

 모든 인류는 이들과 선조를 기리며 완전한 평화를 이룩한 채 벨로베즈스카야에서 살아가고 있다. 다시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