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아직 날이 어두워지지도 않았는데 모든 이들이 모였다. “확실해.” 그중 가운데에 가깝게 앉은 모습으로 말하고 있는 시히델.

 

“그 안에 있던 사령이란 것에 조종당하고 있었어. 그렇지 않고서야 늑대가 혼자 다닐 일도 드물고, 내가 본 것처럼 이상하게 덩치가 클 리도 없잖아? 그게 빠져나오자마자 바로 줄어들었다고.”

 

“그건 어떻게 했고? 어떻게든 잡을 순 있었어?”

 

마르한이 묻자 시히델이 부정했다.

 

“칼로 찔렀는데도 그 사이로 빠져나갔어. 그냥 물웅덩이에 대고 찌르는 것 같았으니까.”

 

“그래. 단순한 공격은 의미가 없지.”

 

호리에르도 동의하고는, 이 말에 모두가 그를 쳐다봤다. 시히델이 말하는 동안 무언가를 계속 생각하던 그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이곳에 모인 모두를 둘러보며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시히델은 아까부터 그의 기운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음을 느꼈다.

 

“이 말을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들은 그냥 생물이 아니야. 딱히 육체라고 할 만한 것도 정확히 있는 게 아니지. 자네도 알지, 시히델. 어떤 느낌인지. 정해진 형체도 없고, 그저 저렇게 뭉쳐서 움직이는 것뿐이네.”

 

이렇게 말을 하던 그는 잠시 멈췄다. 그리고 늙은 혼령의 기운이 좀 더 무거워졌고, 다음으로 그가 하는 말은,

 

“아마도, 우리 혼령들의 몸에 흐르는 무언가가 뭉쳐서 움직이는 것 같아. 물론 정확히 그것이란 게 아니라, 그것과 비슷한 무언가가 저렇게 모여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네. 그 외에는 내가 지금까지 알아낸 게 없어서 미안하군.”

 

“혼령들의 피… 아니, 그 일종의 기운이란 게 모여서 움직인다는 겁니까?”

 

노일이 묻자 긍정하는 “그래,” 호리에르.

 

“기운이라고 하는 게 맞겠지, 일단은. 혼령의 그것과는 다르지만 어쨌든 무언가의 기운으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야.”

 

기운? 시히델은 전부터 자신의 몸속, 그리고 몸 주위에도 그것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의도할 때 혹은 의도하지 않더라고 어떤 기분을 느끼거나 할 때에 그것이 움직였으니까. 하지만 그것과 비슷한 게 저것들의 몸체라고?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어찌 되었든 다시는 볼 일이 없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저렇게 쏟아져 나온 게 마치, 한 번 겨우 빠져나온 재앙이 다시 그녀에게 밀어닥친 것 같았다.

 

“시히델,”

 

한편 옆에서 프리아가 부르자 그녀를 바라본 시히델. “응?” 무슨 일이냐는 그녀에게 프리아는 약간 겁에 질려 안색이 좋지 않음에도, 눈은 굉장히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녀가 충분히 음식을 먹여서일까, 언제부터인가 그녀는 더이상 마르지도 않고, 제법 생기가 감돌았다.

 

“그건 그렇고 아까, 정말 신기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서로 이어진다는 거.”

 

“아,”

 

그러고 보니 저 사령들 때문에 잊고 있었던 게 이제서야 생각난 시히델. 정말, 저런 건 생전 처음 느껴보긴 했다. 사령들은 둘째치고, 도대체 그건 무엇이었을까? 살과 혼이 영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둘은 서로의 생각을 보았고, 서로의 감정을 느꼈다. 마치 단순히 옆에 있는 것을 넘어, 완전히 둘이 함께인 거라도 된 듯이.

 

“이어졌다고?”

 

어느 인간이 물었다. “네.” 웃으며 대답하고는 시히델이 전해준 그 구슬에 담긴 것을 읊어보는 그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저 이들을 우리는 계속 지켜보고, 또 지켜봤다. 하지만 관찰만으로는 방법이 없다. 그들은 언젠가 서로 충돌할 것이고, 비록 우리가 그들보다 훨씬 강하다고는 하나 단순한 통제로는 그걸 막을 수 없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의 씨앗이니까. 결국 우리는 이들을 수면 위에 띄울 방법을 찾아야 했고, 비록 중간에 사고가 있었다고는 하나 우리, 남은 이들은 결국 찾아냈다. 모든 문제의 해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으니, 살과 혼이 '영'으로 이어지는 끝에서부터 진정한 시대는 시작된다.”

 

이렇게 긴 말을 마친 그녀는 잠시 숨을 돌렸고, 프리아가 이러는 사이 혼령들과 인간들은 저마다 서로 쳐다보며 무언가를 말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그렇게 얘기하고 있었기에 그 모든 걸 듣고 느낄 수는 없었으나, 시히델은 그들이 저마다 그것의 의미를 생각하고 있음을 짐작했다. 그리고 이렇게 잡담이 끝나고서 처음 말을 꺼낸 건 마르한.

 

“살과 혼이 영으로 이어진다는 건, 아마 인간인 프리아와 혼령인 네가 이어진다는 거겠지. 그럼 영이란 건 뭐야?”

 

“저 유적이에요. 저 유적에 같이 대고 있으니까 갑자기 그, 시히델이 느껴졌어요.”

 

자신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부족한지, 잠시 입술을 깨물고 있다가 “어어,” 곧 다시 말하는 프리아였다.

 

“시히델이 생각하는 거랑, 시히델이 어떤 기분인지 저한테 전해졌어요. 제 생각이나 기분도 그렇고요. 아마 그게 이어진다는 게 아닐까 해서요. 그리고 시히델이 아까 말한 그걸 전하니까 저렇게 유적이 열린 거예요.”

 

“그렇군.”

 

호리에르가 조용히 대답했다. 그리고는 갑자기 시히델이 생각지도 못한 말을 하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영은 저 유적이 아니라, 유적에 흐르고 있는 무언가를 말하는 것이야. 아마 그게 자네 둘을 연결해준 거겠지. 다들 알고 있잖나. 저 유적이 왠지 살아있는 생물 같다고 느껴지는 거.”

 

그가 말을 끝내고서는 천천히 유적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고, 이에 시히델도 프리아도 뒤를 따랐다. 곧 유적 앞에 모두가 도착했고, 호리에르는 조용히 그 안을 살펴보았다. 사령들이 모두 빠져나가, 하지만 그것들이 남긴 흔적으로 인해 많이 더러워진 듯한 내부. 그런데 이를 자세히 보고 있자니 또 무언가가 그 안에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조심해!” 시히델이 곧바로 온몸의 기운을 세우며 물러났으나, 프리아는 경계하는 대신 그 안에 있는 걸 좀 더 자세히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저거,” 그녀가 말했다.

 

“사령이 아녜요. 좀 더 밝은데… 어어… 보라색?”

 

“응?”

 

시히델이 그 말에 유적 문 앞으로 다가갔다. “파랗잖아.” 그녀가 말했다. 작고 동그란, 사령들처럼 형체도 불분명한 게 아니라 정말 동그란 형체를 띈 무언가, 푸른 빛을 머금고 있으면서도 연한 보라색 또한 띄고 있는 무언가가 여럿, 바닥과 벽에 붙어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시히델은 그것들을 자세히 관찰했다. 그것들이 무언가를 하고 있음을 느낀 건, 저 덩어리들이 저마다 자신의 자리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그 빛이 강해졌다 연해졌다, 그렇게 꿈 속의 별빛처럼 고동치는 것을 반복하기 때문이었다.

 

“저건 또 뭐야?”

 

그것들이 무언가를 하는 중에 유적 안이 점점 깨끗해지고 있음을 안 시히델이 중얼거렸다. 이에 잠시 생각하다 대답하는 호리에르.

 

“아무래도 저게 그 '영'이라는 것 같군. 지금 유적 안을 청소하고 있는 거야.”

 

“그럼 저건 우리를 해치거나 하지 않는단 건가요?”

 

프리아의 물었으나 호리에르도 시히델도, 그리고 다른 이들도 대답하지 않자 그녀는 결국 말 대신 행동으로, 흐릿해진 기둥의 벽을 넘어 유적 안으로 들어갔다. “잠깐!” 시히델이 얼른 따라 들어갔고, 둘은 아직 더러워진 흔적이 남아 있는 바닥을 잘 피해가며, 곧 부드럽게 청소를 계속하던 한 덩어리 앞에 다다랐다. 둘이 다가오자 하던 일을 멈추고 조용히 허공에 떠오른 그것에게 프리아는 일단 허리부터 꾸벅 숙이고 보며 말했다.

 

“어, 그, 안녕하세요. 프리아라고 해요. 저희, 어어, 저랑 여기 시히델이 아까 여길 열고 들어왔거든요. 그러니까, 음,”

 

“이 건물을 신령님들께서 만든 게 맞지, 안 그래?”

 

자신의 머리 높이에 둥둥 떠 있는 그것을 보며 뭐라고 말을 못하는 프리아 대신, 시히델이 직접 물어보았다.

 

“이게 왜 만들어졌는지, 여기에 뭐가 있는지 알고 싶어.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줘.”

 

그리고 시히델은 왠지 그 덩어리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얼굴도 무엇도 없이 그저 덩어리진 빛인데, 어떻게 그런 걸 느낄 수 있을까? 시히델은 이 덩어리가 혼령들과 비슷한 어떤 것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덩어리는 이번엔 프리아를 쳐다보더니, 곧 공중에 뜬 채로 둘의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이를 본 것인지 다른 빛 덩어리들도 둘의 주위로 모여들었고, 각자 시히델과 프리아를 쳐다보면서 빛이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하기를 반복했다. 자기들끼리의 의사소통일까?

 

“저, 조심해요! 그게 대체 뭐일지 아직 모르–”

 

문 너머에서 뭐라고 경고한 순간, 그것들 중 하나가 프리아의 손 쪽으로 가더니 갑자기 그녀와 함께 떠오르기 시작했다. “으와!?” 프리아가 깜짝 놀라서 발을 버둥거렸으나 그 덩어리는 프리아를 계속 저 위로 데리고 갔다. “프리아!” 시히델이 놀라서 외치는 사이 다른 덩어리 하나가 역시 그녀를 잡고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해, 그녀도 공중에 매달리는 꼴이 되어 놀란 모습으로 그 덩어리를 노려보았다.

 

“뭐 하는 거야!”

 

버럭 화를 내는 그녀와는 반대로 그녀를 끌어당기는 빛 덩어리는 아주 차분해 보였고, 그녀는 이런 태도의 그것을 바라보고 있다가 곧 자신이 단순히 끌려가고 있는 게 아님을 알았다. 끌려가고 있다기 보단, 같이 떠오르는 느낌이라고 할까? 마치 여기 선 채 그대로 들 어올려지는 것 같았다.

 

“시히델, 이분들 저희를 어디로 데려가는 거예요?”

 

어느새 프리아와 비슷한 높이에서 같이 올라가는 신세가 되자 그녀가 물었고, 시히델은 조용히 부정만 했다. 그리고 이 둘을 위로 끌어올리던–프리아는 이러다 자신을 떨어뜨릴 것 같다며 무서워했다–그것은 곧 유적 내부의 가장 높은 곳까지 둘을 데려갔고, 그 높이에 딱 있는 난간 위까지 가더니 곧 둘을 놓아주었다. “앗,” 갑작스럽게 착지한 탓에 둘은 그대로 중심을 잃고 주저앉았다.

 

“우, 우와아,”

 

프리아는 아래를 내려다보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시히델도 마찬가지였다. 밖에서 볼 때는 몰랐는데, 아니, 어째서인지 바깥에서 본 것보다 안이 훨씬 더 높았다. 신령님들이 이 건물에 무언가를 한 걸까? 아마도 그러겠거니 하고 주위를 둘러보는 그녀. 난간은 원형으로 빙 둘러져 있었고, 그 중 한 쪽에 위로 통하는 듯한 계단이 있었다. 시히델이 그쪽을 가리키자 프리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 위를 보려는 듯 고개를 기울였고, 시히델도 일어나 그쪽으로 움직이자 그녀를 따라왔다.

 

계단을 올라가자 나온 건 아주 어두운 방. 처음에는 여기도 사령이 있나 해서 당장 나오려고 했으나, 그게 아니라 정말 빛이 들어오지 않아 어두운 거였다. 그리고 이를 나중에서야 생각한 듯 아까의 빛 덩어리 중 하나가 둘을 따라와서는 앞을 밝혀 주었고, 시히델은 그게 무엇을 의도하는지도 모른 채 천천히 그것이 가는 대로 따라갔다. “조심해.” 뭐가 있을지 모르니 일단 말하는 시히델에게, 프리아는 거의 매달리다시피 하며 바짝 붙어 따라왔다. 그리고 곧 계단이 또 나와 둘은 그것을 밟고 올라갔고, 곧 위의 천장 앞에서 멈췄다.

 

“막혔잖아.”

 

시히델이 말하자 빛 덩어리는 잠시 가만히 있다가 그 천장에 대고 웅웅거리면서 움직였다. 원을 그리고, 선을 그리는 등 이리저리 움직여 보이자 갑자기 그 천장은 유적의 문이 그랬던 것처럼 천천히 흐릿해지더니 곧 위의 햇빛을 그대로 쏟아냈고, 그러자 어두웠던 방도 한순간에 밝아졌다. “와앗,” 프리아가 눈을 가렸고, 시히델도 한 계단 물러났다가 뒤를 돌아봤다. 이제 보니 꽤 큰 방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것들이 많은… 하지만 그 덩어리가 열린 천장으로 나가자 그녀는 방을 구경하는 걸 멈추고 자신도 천장을 넘어 밖으로 나갔고, 프리아 또한 그랬다.

 

천장 밖으로 나온 둘은 별로 넓진 않은 발판 위에 서 있었다. “여긴,” 시히델은 이곳이 유적의 꼭대기임을 알고 밑을 내려다봤다. 역시, 유적의 안은 밖에서 본 것보다 훨씬 더 높고 넓었다. 프리아는 꼭대기에서 보이는 경치를 감상하는 것 같았고, 곧 시히델도 시선을 돌리며 여러 산과 바다, 숲 등이 시야에 보이는 것에 왠지 모르게 시원해진 도중, 갑자기 그 덩어리가 그녀를 툭 건드렸다. “뭐야?” 그녀가 돌아보자 공중에서 밝아졌다 연해졌다 하는 그것. 그리고 뭔가 하고 그것을 가만히 쳐다보는데,

 

“잠깐… 저거… 오, 세상에…”

 

시히델은 보았다. 엄청나게 새까만 것들, 유적에서 빠져나올 때는 성난 파도처럼 밀려나왔다가 저렇게 구덩이를 벗어나 가는 건 마치, 마치 개미떼가 질주하는 것처럼 보이는 저것들. 지금 위에서 저렇게 봐도 셀 수조차 없이 많은 사령들이 세상 곳곳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시히델은 자신도 모르게 기운을 부르르 떨었다. 저것들이 저렇게 곳곳으로 향하는 걸 보고 있자니 할 말을 잃고 만 그녀. 한편 프리아도 이를 봤는지 숨이 막히는 소리와 함께 멍하니 그쪽을 바라보았다.

 

“저거,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요.”

 

“어디로 가는 게 아냐.”

 

시히델이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세상 곳곳으로 퍼지고 있는 거야. 정말 여러 곳으로, 그러다 다른 생물을 조종하기도 하면서 말야.”

 

“네!?”

 

프리아가 갑자기 놀라서 시히델을 쳐다봤다. “그, 그럼,” 그녀가 말했다.

 

“아직 저기 남은 사람들도 있는데…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아!”

 

그리고 이 말에 시히델도 멍해졌던 정신이 깨며, 마치 얼음이 깨지는 듯한 충격과 함께 온몸의 기운이 굳어 버리고 말았다. 정말로, 아직 저곳엔 남아있는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프리아의 말을 들은 빛 덩어리는 한쪽으로 둥둥 떠 가더니, 그쪽으로 보이는 숲을 천천히 확대해주었다. 아니, 저게 가능한가? 그냥 시야에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을 어떻게…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시히델은 하필 사령들이 퍼지고 있는 방향으로 조금 먼 곳에 인간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보았다. “혼령들은?” 그녀가 묻자 빛 덩어리는 역시 다른 쪽으로 가서 그곳의 호수 근처를 크게 보여 주었고, 보아하니 역시 그들 또한 언젠가는 사령들을 맞닥뜨릴 상황이었다.

 

“어떡하죠, 시히델? 저러다간 사령들이, 저 괴물들이,”

 

프리아가 안절부절못하며 그녀에게 매달리는 사이 시히델은 잠시 고민하다가 곧, 지금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을 말했다.

 

“지금 당장 데려와야 해. 저들 다. 최대한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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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분류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영자님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