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끝난 거예요?”

 

그녀에게 팔을 잡혀 끌려가던 프리아는 어느새 그녀옆에서 같이 뛰고 있었다.

 

“이제 정말로 다 된 거죠? 네?”

 

“그래, 다 한 거야.”

 

시히델이 대답했을 때 마침내 둘은 거대한 기둥 앞에 도착해 있었다. 언제 봐도 커다랗고, 굉장히 신기했지만 이제 더이상 위압적이거나 하지 않았다. 이미 열린 문을 어려워할 건 없으니까. “그래서,” 프리아가 기둥을 가만히 올려다보더니 그녀에게 물었다.

 

“이쪽이 문이에요?”

 

“딱히 문은 없어.”

 

시히델이 대답했다.

 

“저번에 어느 구슬에서 봤다고 했지. 모든 방향으로 문이 나 있는 건물. 그걸 생각하면 되는 거야. 어느 쪽이든 열고서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거라고.”

 

“와아,”

 

프리아가 신기해하면서 유적을 다시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이제,” 구슬에서 떠올린 중 마지막 것을 말하는 시히델.

 

“살과 혼이 영으로 이어지면 된다고 하는데, 너도 알겠지만 살은 인간을 말하고 혼은 혼령을 말하는 거야. 그렇다면 영으로 이어진다는 건 아마도…”

 

하지만 여기까지 오자 잠시 고민하게 되는 시히델. 인간과 혼령이 '영'이라는 것으로 이어진다고? 그게 무슨 뜻일지 생각하다가 무언가를 추측해보기도 전에, 프리아가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아마도,” 천천히 말했다.

 

“이 기둥을 말하는 게 아닐까요? 그리고 이어진다는 건, 으응, 그러니까,”

 

프리아는 대답 대신 그 기둥 앞으로 다가가 천천히, 손을 대 보더니 다시 고개를 갸웃, 그리고 시히델을 불렀다. 혼령이 뭔 말을 하려는 걸까 하고 다가가자 프리아는 그녀의 몸 일부를 덥석 잡았고, “아?” 인간으로 보자면 손이 있어야 할 위치쯤에 있는 그 일부를 천천히 기둥에 가져다 대는 프리아. “이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이 기둥이 영이라면, 같이 대고 있으면 되는 거예요. 시히델도 알겠지만 이 유적, 왠지 살아있잖아요? 그렇게 이 유적으로 같이 이어지는 거니까.”

 

그리고 시히델이 계속 그 기둥에 닿아 있는지 확인한 뒤, 자신도 천천히 손을 가져가는 프리아. 어느새 이 앞까지 온 모든 혼령과 인간들이 다시 지켜보는 사이, 곧 둘의 살과 혼이 기둥에 닿았다. 그것뿐이었다. 단지 가져다 댄 것뿐이었고 그렇게 혼령과 인간이 유적의 기둥으로 이어질 때, 갑자기 시히델의 정신이 마치 별빛이 꺼지는 것처럼 아득해졌다.

 

아니, 아득해진 걸까? 시히델은 분명 자신의 시야가 멀쩡함을 알았다. 그 기둥이 앞에 있었다. 옆에는 프리아가 있었고. 하지만 단지 그뿐만이 아니었다. “뭐야?” 그녀는 말을 하려고 했으나 이상하게 나오지를 않았고, 대신 그녀의 생각 속에서 [뭐야?] 한 마디가 스치며, 그것이 어디론가 날아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시, 시히델?]

 

무엇일까. 프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목소리가 맞을까? 목소리라고 하기에는 무언가… 추상적이었다. 실제 소리가 아닌 그 소리를 생각하는 듯한, 마치 구슬에 그 소리가 담겨 있고 그것을 만지며 떠오르는 듯한 그런 느낌. 지금 프리아가 말하는 게 그런 식으로 전해지고 있다고?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시히델은 기운을 뻣뻣하게 저었다. 뭐가 뭔지 모르는 사이, 프리아는 그녀에게 다시 한 번 말을 걸어왔다. 역시 목소리가 아닌 그 무언가로.

 

[시히델, 제 말 들려요? 아니, 들리는 게 아니라, 이건, 에에, 그러니까 이게,]

 

[마치 그 구슬 같지. 그래.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앞은 보이는데 말은 나오지 않고, 단지 이렇게 생각으로만 둘이서 말을 주고받는다니. 시히델은 왠지 으스스해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아?] 프리아가 살짝 놀라는 게 느껴졌다.

 

[시히델, 지금 무섭다고 느꼈어요? …아니, 제가 어떻게 그걸 알 수 있는 거예요?]

 

[모르겠어…]

 

지금 시히델 또한 프리아가 놀라고 당황했음을 알 수 있었다. 아니, 그것이 느껴졌다. 마치, 그러니까 마치,

 

[마치, 지금 네가 느끼고 생각하는 걸 알 수 있는 것처럼 말야. 마치 그게 내 것이라도 되는… 어떻게 이런 게 되는 거야?]

 

영문을 모르고 있다가 시히델은 한 번 그 구슬에서 떠오른 걸 생각해 봤다.

 

[살과 혼이 영으로 이어지는 끝에서부터 진정한 시대는 시작된다.]

 

그렇다면 혹시, 이어진다는 게 지금 이런 걸 말하는 걸까? 서로 느낌과 생각을 안다는 것을 말하는 거였어? [네.] 그리고 프리아가 그녀의 생각에 대답했다.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이렇게 이어졌다고 하면 이제 뭘 해야 하는 거예요?]

 

[나도 잘… 아!]

 

해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으니, 남은 건 뻔했다. 시히델은 다시 한 번, 그 마지막 조각들에 담겨 있던 것을 이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떠올려 보았다. 그것을 혼자 생각하는 게 아니라 프리아에게 직접 전해주는 느낌과 함께. [그랬네요.] 프리아가 그걸 모두 전해받고 대답했다.

 

[그게 담겨 있었던 거네요. 그럼 이제 이걸–]

 

그녀가 말하던 게 갑자기 끊기고, 시히델은 갑자기 기둥에 닿은 자신의 몸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응?”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문 앞에 멀쩡히 서 있는 그녀. 프리아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서로를 쳐다봤고, 그렇게 무언가 일이 벌어진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

 

후우우우–

 

“에?”

 

프리아가 놀라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돌리자 시히델도 다시 앞을 보았고, 정말로 무슨 일인가가 벌어졌음을 곧바로 확신했다.

 

문이 열리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기둥이었던 그것이 문으로 바뀌고 있었다. 하지만 흔히 아는 것처럼 열린다고 할만한 느낌이 아닌, 마치 그것이 스스로 길을 내주는 듯, 천천히 사라지고 있었다. 혼령이나 사람 여럿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커다란 틈을, 그 문이 스스로 사라지면서 내어주고 있었다. 그렇게 계속 사라져 가던 문은 그 형체가 어렴풋이 남은 정도에서 멈췄고, 시히델은 마침내 그 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를 볼 수 있었다. 안에 빛이 없어서 그런지 어둡고, 아주 어두운 내부… 가 아닌데?

 

시히델은 잠시 기운을 살랑이며 젓고는 그 문 너머를 다시 보았다. 안에 빛은 있었다. 저 위에서 유적에 비치는 빛이 그대로 내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바닥까지 닿지 않는다는 건 저 안이 어둡다는 게 아니라, 문 너머에 아주 새까만 무언가가, 저 아래에서부터 어느 정도 위까지 채울 만큼 아주 많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저 까맣고, 왠지 모르게 덩어리져서 물컹거리고 꿈틀거리는 것들을 보는 순간, “앗!” 시히델이 순간 기겁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다들 엎드려– 아니, 피해! 당장!!”

 

안에 있던 그것들이 갑자기 오랫동안 막혀 있던 물이 터져 나오듯, 누가 봐도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성난 파도를 일으키며 밀려오자 시히델은 프리아를 붙잡고 있는 힘껏 몸을 날렸다. 그렇게 스스로 나가떨어지면서 그녀는 다행히 다른 혼령과 인간들도 저마다 몸을 피하는 게 보였으나, 다음 순간 그 새까만 것들이 무더기로, 그냥 무더기도 아니고 정말 산더미처럼 있는 게 한 번에 저런 속도로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자, 정말 못 볼 것을 본 듯 자기도 모르게 섬뜩해졌다. 틀림없었다. 겉보기엔 거대하고 까만, 한 마리의 미친 짐승으로 보이지만 잘 보면… 시히델은 갑작스런 충격에 멍해져서, 어느새 프리아가 자신의 밑에 깔려서 숨막히다고 끙끙거리고 있다는 사실도 잊고 있었다. “아!” 그녀는 얼른 일어나서는 프리아도 일으켜 세워주었다.

 

“미안. 너 괜찮아?”

 

“네에…”

 

프리아는 옷을 툭툭 털었다. 그리고 곧바로 저 검은 덩어리들이 구덩이를 빠르게 기어올라, 저 밖으로 사라진 쪽을 바라보는 그녀.

 

“저, 저거, 대체 뭐였어요? 시히델도 봤어요, 저거?”

 

“그래, 나도 봤어. 또다시…”

 

다시는 보기 싫어서 스스로 잊다시피 했는데, 결국 오늘 그것도 저렇게 떼거리로 있는 걸 보게 될 줄이야. 시히델도 전혀 진정이 되지 않아 그저 기운만 휘휘 젓고 있을 때, 어느샌가 다른 혼령들 그리고 인간들이 일어나면서 그 중 호리에르가 중얼거리는 말이 전해졌다.

 

“저건… 사령들인가?”

 

“네?”

 

시히델이 그를 쳐다보았다. 늙은 혼령 또한 굉장히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지만, 그는 다른 이들처럼 겁에 질려있기보다는 마치 거대한 위협 속에서 일어선 존재 같았다. “어떻게,” 그가 다시 한 번 중얼거렸다.

 

“어떻게 사령들이 저 안에 있는 거지? 도대체 왜…”

 

“호리에르,”

 

그러고 보니 묻는 걸 잊고 있었구나. 시히델은 그에게 다가갔다.

 

“방금 사령이라고 하셨나요?”

 

“그래. 일단 그렇게 부르고 있지.”

 

호리에르가 대답하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크게 다친 이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사실이 호리에르의 기분을 좋게 할 리가 없는지, 그는 모두에게 전해질만큼 큰 기운을 퍼뜨리며 말했다.

 

“어서 다들 모이게! 유적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할 말이 있어… 하, 저걸 열지 말았어야 했나…”

 

그렇게 마지막 중얼거림을 덧붙이는 그를 시히델은 가만히 바라보다가, 곧 다른 혼령들과 인간들이 있는 자리에 함께 모였다.

 

 

==

 

 

사령.

 

이진은 먼 옛날 호리에르가 처음 불렀다는 그 명칭을 생각해 보았다.

 

혼령도, 신령도 아닌 또 다른 영적 생물. 하지만 그것은 이 세계에 흐르는, 그리고 혼령의 몸속에 흐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색을 띤 영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신령의 몸을 이룬 영 또한 보통의 그것과는 다르지만, 사령의 경우에는 거의 정반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 몸이 내는 기운부터가 일반적인 영과는 굉장히 어긋났다. 때문에 주위에 사령이 있으면, 설령 영을 쓸 수 없는 이들이라도 곧바로 그게 있다는 걸 느낄 수 있고, 또한 그것들을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제거할 수 없다. 오직 영을 담은 공격만이 그것들을 완전히 죽일 수 있었고, 반대로 그것들이 공격해오는 걸 맞는다면 단순히 피해를 입는 게 아니라, 그 주위 혹은 내부의 영에까지 그게 전해진다. 예를 들면 동반자 안의 혼령까지 다치는 그런 거.

 

다만 평소에 보던 사령들은 그저 줄에서 막 풀려난 짐승처럼 날뛰는 놈들이었다. 혹은 거의 움직이지도 않고 조용한 달팽이 같거나. 어찌 되었든 절대로, 절대로 이진이 인간계에서 본 것처럼 다소 '체계적으로' 움직일 만한 생물이 아니었다. 그리고 사령들이 그럴 리 없다는 건 여기 있는 모두가 알고 있기에, 그래서 아무도 이진의 의심에 대해 뭐라 하지 않은 거겠지. 물론 무언가가 그놈들을 통제하고 있다는 건 그의 추측일 뿐이었지만, 이를 찌른 것이 독립 혼령들에게 먹혀든 모양이었다.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얘기는 여기까지다.”

 

그리고 이진은 아주 긴 이야기가 마침내 끝나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다른 이들도 각자 알아들었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그런 일이 있었군.”

 

민은 제법 심각한 얼굴이었다. 하긴 들은 얘기가 심각한 거니까 당연하겠지만.

 

“어쨌든 지금이라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돌아가는 즉시 신령님께 말씀드리지요.”

 

“아니,”

 

켈샤가 기운을 저었다.

 

“신령님께서는 이미 알고 계실 거다. 새벽의 영 쪽에서 이미 그분에게 말했겠지.”

 

“그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약간 날카로운 눈을 하고서 끼어들어 묻는 사미.

 

“이번 일이 그들과 연관이 되어 있을 거란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새벽의 영은 의심할 만한 이들이 아녜요.”

 

곧바로 대답한 이진. 이에 사미가 놀라서 그를 쳐다보자 이진은 입술을 깨물었다가 곧바로 덧붙였다.

 

“물론 믿을 만하지도 않지만. 어쨌든 그게 문제가 아니라, 그러면 사령들이 다시 저렇게 움직인다는 건, 그런 의미로 생각해도 되는 건가요?”

 

“아마도. 일단 우리 쪽에서도 개별적으로 알아볼 것이니 너무 걱정은 하지 마라.”

 

이 말에 인간 측에서는 모두 고개를 끄덕였고, 다만 민의 근심 섞인 얼굴과 사미의 약간 아니꼽다는 표정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유랑은 표정 대신 조용히 울려 퍼지는 한마디로 사령에 대한 이야기를 끝냈다.

 

“어쨌든 제대로 된 골칫거리가 둘씩이나 있다는 거군. 이번 집회의 결론은 아무래도 이거인 것 같아.”

 

“하하, 그런가.”

 

간트가 웃으면서 대답했다가 곧 짧은 한탄을 흘려보냈다.

 

“하긴 그 말이 맞군. 그러면 이제 모두 각자 할 말은 끝낸 건가?”

 

“네.”

 

“그런 것 같네요.”

 

“아마도.”

 

각자 동의를 한 끝에, 곧 켈샤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자신도 긍정하는 뜻을 보였다.

 

“그럼 이번 집회는 여기까지군. 다들 수고했다. 이만 오늘은 조금 늦었으니 쉬고, 내일 아침에 돌아가는 게 어떤가 싶은데.”

 

“아뇨,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민이 말하고는 셋을 둘러보았다. “괜찮지?” 사미는 고개를 끄덕였고, 이진도 마찬가지였다. 유랑은 별 말 없이 조용했으나 이건 십중팔구 동의한다는 것이었기에 민은 곧 돌아서서, 천천히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렇게 나머지도 각자의 방식, 처음에 했던 그것과 거의 똑같이 인사하고는 유랑이 앞장서서 방을 나가고, 사미가 그 뒤를 따랐다. 민은 여섯 명의 영령들에게 한 번 웃어 보이고는 방을 천천히 나갔고, 이진이 그 뒤를 곧바로 따르려다 누군가가 어깨에 손을 얹자 뒤를 돌아보았다. “잘 가요.” 세느가 그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수고했어요, 젊은 이진.”

 

“잘 가게.”

 

간트도 자신보다 한참 어린 그에게 몸을 살짝 숙여 인사했고, 다만 페르와 랭, 지화일은 조용히 그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리고 켈샤 역시 그를 쳐다보다가 꺼내는 한마디.

 

“그럼 너는 새벽의 영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다는 거군. 어쩐지 조금 다른 게 느껴지더니… 수고했다. 잘 가라.”

 

“감사합니다.”

 

이진은 웃으며 다시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는 마침내 방을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