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끝내자 방 안이 조용해졌다. 아무도 저들끼리 수군거리거나 하지 않았고, 생각에 잠기는 것 같지도 않았다. 이는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였고, 다만 지금까지 말한 이 청년을 바라보기만 하는 도중, 마침내 켈샤가 입을 열었다.

 

“누군가가 사령들을 통솔하고 있다는 건가?”

 

“그렇게밖엔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이진이 대답했다. 세느도 그의 말에 놀란 모양인지, 긴장을 풀어주던 그녀의 기운도 어느새 뚝 끊어졌으나 이젠 없어도 괜찮았다. 한번 말하기 시작하니 그동안의 긴장과 불안이 싹 사라졌다고 해야 할까. 물론 얘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하는 시선이 올 수도 있음을 그는 알고 있었지만, 어쨌든 입을 연 이상 끝까지 말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시선은 지금 전혀 오고 있지 않았다. 그저 모두가 이진을 뚫어지게 쳐다볼 뿐이지.

 

“사령들이, 그것도 인간계로 넘어와서도 그렇게… 이성적으로 움직였다는 건 정말 그렇다고밖에 달리 설명할 수가 없으니까요. 더군다나 다른 사람에게, 그러니까 인간계의 사람들에게 빙의하고서도 무언가 계획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습니다.”

 

“평소의 그 날뛰던 모습은 없어졌다 이거지.”

 

페르가 약간 미심쩍은 듯이 얘기했으나, 그녀 또한 이진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한 시선을 던지지는 않았다. 한편 이렇게 모두가 조용해진 중에, 갑자기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기운이 흘러나와 몇 마디 말과 함께 방을 감싸는 모습에, 이진은 화들짝 놀라며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사령들은 참 귀찮은 짐승들이지.”

 

집회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말을 꺼내며, 동시에 모습을 숨기던 기운을 모두 풀고 자신을 드러낸 지화일. 그는 이진을 보고 있지 않았고, 아니, 그 누구도 쳐다보고 있지 않았다. 마치 저 바닥 혹은 천장 아니면 어디든 그저 먼 곳만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으로, 마치 낙엽처럼 부서져 가루가 되어 흩뿌려지는 듯한 기운에 말을 담아 보내는 그였다.

 

“그러니 짐승들을 조련하는 이가 있다면 아주 심각하게 귀찮아질 게 아닌가? 켈샤, 뭐 생각나는 거 없나?”

 

“흠,”

 

켈샤는 조용했고, 다른 혼령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무도 모른다는 말을 하지 않는데? 이진은 비록 여기 다른 이들에 비해서는 많이 어렸으나, 그들이 아까부터 이진을 의심하는 태도는커녕, 오히려 그의 말에 제각기 반응하는 모습을 보며 무언가 있음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부탁드립니다.” 그가 어디서 나온 용기인지 자신도 모르게 한 발짝 나서며 말했다.

 

“벌써 제 동생이 당할 뻔했어요. 조금이라도 이해해주신다면, 어떻게 저런 일이 생길 수 있는지 아는 걸 말씀해주세요.”

 

“으음,”

 

켈샤는 이진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누가 보기에도 그 얼굴에 거짓은 없었고, 때문에 그뿐만 아니라 다른 혼령들도 저 청년의 얼굴을 한참이나 뚫어지게 보면서, 그가 자신들을 몇 번 둘러볼 동안 계속 조용히 있다가, 잠시 뒤 마침내 서로에게 무언가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자네들,” 결국 말을 꺼낸 건 간트. 그는 다소 가라앉은 기운과 함께 얘기를 건넸다.

 

“참 좋은 젊은이를 데려왔군그래. 하긴, 어차피 자네들도 우리에게 숨기고 있던 걸 이제 말해줬으니 서로 같은 입장이려나.”

 

이어서 그가 켈샤를 쳐다보자, 모든 독립 혼령들의 지도자는 잠시 말없이 모두를 둘러보더니, 곧 조용히 긍정의 의사를 내밀었다. “알았어.” 그가 대답했고, 곧 이진을 포함한 공존측의 사람들과 그들과 함께하는 혼령들을 보면서 얘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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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무언가 변하는 것 같다고 느끼긴 했다. 하지만 하루하루 무언가 눈에 띄거나 신경쓰일때마다 그게 굉장히 사소해 보였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 사소한 것들이 뭉쳐서 하나의 큰 변화가 되었음을 결국 그녀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 가져왔어요?”

 

“응. 이거밖에 구하지 못해서… 죄송하게 됐네요.”

 

“괜찮아요. 헤헤.”

 

몇 주 전 시히델이 이 프리아라는 계집에게 그랬던 것처럼, 혼령들이 자신의 인간 '친구'에게 먹을 걸 가져다주는 게 하나의 일상이 될 거라고는… 그녀뿐만 아니라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체 언제 시작된 걸까?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며, 어느새 이 구덩이의 가장자리가 아닌, 가운데의 유적을 두고 '함께' 빙 둘러앉은 혼령과 인간들을 보았다. 프리아가 존칭 따위 생략하고 시히델을 (비록 존댓말은 유지하면서도) 편하게 부르기 시작한 뒤로, 그렇게 함께 좀 더 열심히 조각을 해석하는 일에 집중했을 때부터, 몇몇 다른 혼령과 인간들이 이 유적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게 그 시초였을 것이다.

그래. 유적을 가운데 두고 빙 둘러앉은 이들은 시히델과 프리아에게 구슬에 대해 물어봤고, 대답을 들은 이들이 저마다 짝이 될 인간을 찾아서 같이 활동을 시작했다. 비록 처음에는 잘 맞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유적에 관한 것 외에 자연스런 대화도 하기 시작했겠지. 그리고 이에 영향을 받았는지 굳이 유적에 깊은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이들이라도 여기 오게 된 것이다. 그렇게 모두가 왔다. 모두가 와서 함께 지냈다. 서로 얘기하고, 웃으면서. 작은 다툼은 이따금씩 있는 것 같았지만, 이제 서로 폭력을 쓴다든가 하는 일은 완전히 없어졌다.

 

“신기하지 않아요?”

 

어느 날에는 프리아가 이런 광경을 보면서 말했었다.

 

“처음에 우리 둘이 이렇게 모여서 시작한 게, 어느새 여기 모든 사람들이랑 혼령들이 모이는 게 됐잖아요.”

 

“그게 뭐가 신기해?”

 

시히델은 모이면 모이는 거지 뭐 별거 있냐는 식으로 물었으나 활짝 웃으며 대답한 프리아.

 

“우리가 한 가지 해냈다는 뜻이니까요. 이렇게 더이상 싸우지 않고 함께 있도록 하는 거요.”

 

물론 그건 사실이었으나 그게 딱히 중요하다고 여기진 않은 그녀였는데, 지금 돌아보면 정말 이렇게 될 거라고는, 그리고 이 모든 게 정말로 단 두 명으로 인해서 시작된 일이라는 게 정말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래, 정말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흐아암,”

 

역시 인간은 육체적인 한계가 분명했기에, 그동안 피로가 많이 쌓인 프리아는 요즘 밤이 될 때마다 늘어지게 하품을 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시히델은 이제 그만 쉬자고 하는 식으로, 그렇게 하루 일과를 끝내는 거였다. 그러고 보니 이것도, 예전에는 겨우 그거밖에 못 하냐고 핀잔을 줬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녀가 먼저 오늘은 쉬자고 말한다니. 마치 이러면 내가 인간의 입장을 이해하게 된 것 같잖아. 그녀는 이렇게 생각할 때마다 조금 기분이 나빠서 기운이 구부러졌지만, 그래도 이 계집이

 

“네에. 오늘도 수고했어요!”

 

하면서 저렇게 활짝 핀 꽃처럼 웃는 모습을 보자니, 이젠 도저히 그 얼굴 앞에서 화를 내거나 할 낼 수가 없었다. 피곤해지니까. 그래. 괜히 피곤해지기 싫어서였다.

 

어찌 되었든, 이제 거의 다 작업한 것 같았다. 유적 기둥에 박힌 구슬은 진작에 다 빼낸 지 오래고, 그것들을 모아서 짝을 맞추는 것도 제법 많이 해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이 덕분에 제법 여유가 생긴 요즘은, 밤에 모든 인간과 혼령이 모여서 구슬 몇 개를 가운데에 놓고 달빛을 받아 빛나게 하며–다른 혼령과 인간들이 발견한 구슬의 또 다른 용도였다–그 주위에 둘러앉아 여러 얘기를 하곤 했다.

 

“그래서 결국 뛰쳐나가다시피 하면서 떠났지.”

 

시작은 항상 호리에르의 이야기였다. 여기 모인 이들 중 가장 나이도, 경험도 많은 그의 이야기를 이젠 혼령뿐만 아니라 인간들도 듣고 있었다. 물론 그들의 지도자인 노일을 포함해서. 아니, 이제 보니 둘은 사실 시히델과 프리아가 이 일에 열중하기 시작하기 전부터, 조금씩 대화를 나누며 친해졌음을 최근에 알았다. 워낙에 아량이 넓은 분이고 싸움에 지치기까지 하다 보니 그럴 수 있던 걸까. 아니면 처음부터 인간들이 이 유적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임을 알았을까? 어쨌든 이곳을 처음 발견한 건 그였으니까.

 

“다시 돌아왔을 땐 새로운 가족들이 많이 생겨났고, 또 옛 가족들이 많이도 죽어 있었어. 내가 정말 그들 앞에서 작아지는 기분이었지. 하지만 할 일은 해야만 했네. 이곳에 열쇠가 있다는 건 확실했으니까.”

 

“지금 와서 그 일로 너무 죄책감에 빠지면 안 되죠.”

 

노일이 말해주자 호리에르가 미소지으며 긍정했다. “실수는,” 노일이 덧붙였다.

 

“그걸 교훈삼아서 발전하라는 의미지, 평생 후회하면서 무너지라는 게 아닙니다.”

 

“물론 그렇지.”

 

“네, 맞아요! 그래야죠.”

 

프리아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옆에 앉은 시히델을 바라보며 묻는 그녀.

 

“안 그래요, 시히델? 언제까지 옛날 일로 그렇게 기분 상하면 안 되는 거예요.”

 

“내가 뭘?”

 

시히델이 아무 생각 없이 웅얼거렸다가 순간, 얘가 지금 여기서 그런 얘기를 하나 싶어 당황과 화가 뒤섞인 시선을 그녀에게 내던졌다. “앗,” 프리아도 간만에 그녀가 이런 태도로 자신을 노려보자 실수했음을 알고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뭐 어쩌겠는가. 이런다고 이미 일어났던 일이 취소되는 것도 아닌데. 지금 이 계집이 이렇게 사과해서 그렇다기보단, 왠지 지금의 그녀는 그때의 일도

 

“하긴, 이제 와서 숨길 것도 없지.”

 

하고 낮은 기운과 함께, 하지만 이곳에 있는 모두가 들리도록 말할 수 있었다. 다른 이들이 그녀를 욕하더라도, 그녀 스스로 얘기하면서 기분이 이상해지더라도.

 

“지금도 가끔 생각하긴 해. 내가 아니었으면 그 혼령들은 죽지 않았을 거라고. 다 내가 시작한 일이니까.”

 

“응?”

 

몇몇 인간들이 놀라서 수군거렸다.

 

“당신이 시작한 일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 때문에 시작되었단 거지. 그렇게 다들 싸우고, 죽고 한 거 말야. 내가 처음으로 인간을 죽여봤고, 그 이후에도 계속 그랬어. 여기 오게 되기 전까지 계속.”

 

짧으면서도 모든 게 담긴 그녀의 말에 혼령들은 조용해졌고, 인간들은 자기들끼리 뭐라고 떠들어댔다. 하지만 혼령들이 계속 조용한 걸로 봐서는, 그녀를 향한 욕이라든가 하는 게 오가진 않았다는 걸까? 그리고 이를 그녀에게 확인시키듯, 옆에 있던 마르한이 말을 꺼냈다.

 

“신령님들께서 갑자기 사라진 날이었지.”

 

그는 말하면서 자신의 기억을 더듬는 것 같았다.

 

“모두 당황했어. 너무 놀라서 뭘 해야 할지도 몰랐고, 그저 막막하기만 하고 다들 제정신이 아니었지. 그리고 넌 그전부터 신령님들을 누구보다 존경했고, 누구보다 더 수업에 집중했어. 한 가지라도 더 배우려고, 한 번이라도 더 칭찬을 들으려고 말야. 그러고 보니 넌 신령님들이 우리 혼령을 만드신 분들이라 믿는 혼령 중 하나였어, 안 그래?”

 

“그랬지.”

 

물론 신령님들이 사라진 뒤에도 혼령은 어디선가 계속 생겨났기에, 그 믿음도 얼마 못 가서 깨졌지만. 그리고 마르한은 그녀의 긍정을 받고 이어서 말했다.

 

“나도 그때 있었어. 사실 내가 처음으로 인간에게 공격당한 혼령이야. 화살에 맞았지. 하지만 단 한 번도 인간을 원망하진 않았어. 다들 놀란 거였잖아? 다들 무서웠고, 다들 슬펐어. 그 상황에서 뭘 할 수 있었을까? 그 자리에서 냉정한 태도로, 신령님들이 사라졌으니 이제 우리 스스로 살아갈 방법을 찾자고 할 혼령이나 인간이 과연 있을지 말야.”

 

그의 말에 인간들 또한 조용해졌다. 이를 확인하고 계속하는 마르한.

 

“누가 누구를 죽이기 시작했느냐, 얼마나 많이 죽였느냐는… 물론 중요해. 결국 자기가 죽인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의 동족이니까. 하지만 만일 지금도 그 싸우는 태도를 버리지 못했다면 또 몰라도, 이미 그걸 버리고 다른 쪽으로 무언가를 이뤄냈다면 비록 모두에게는 아닐지라도 많은 이들이 널 용서할 수 있어, 시히델.”

 

시히델이 그를 쳐다봤다. 미소짓고 있는 마르한. 생각해 보니 그는 처음 유적 근처에 온 이후부터, 며칠 동안 계속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러면서 저런 생각을 했던 걸까. 시히델은 시선을 돌렸다. “됐어.” 그녀가 말했다.

 

“누가 용서하고 그런 게 나한테 중요한 게 아냐.”

 

그리고 유적을 쳐다보는 그녀. “지금은,” 밤중에서도 묘하게 빛나는 그것을 보며 조용히 말하는 시히델이었다.

 

“저게 대체 뭔지를 알고 싶어. 도대체 뭐길래 나를, 그리고 여기 있는 모두를 이렇게 모이게 했는지. 왠지 난 그렇게 느꼈어.”

 

“거의 다 했지?”

 

“응.”

 

시히델이 끄덕이자 환하게 웃는 호리에르. 다른 혼령들도, 그리고 인간들도 그랬다.

 

“그러면 곧 답이 나오겠군. 이제 그 끝에 온 거야.”

 

늙은 혼령의 말에 시히델도 긍정하며, 자신도 모르게 기운이 서서히 떠오르는 것 같았다. “앗,” 프리아의 눈이 동그래졌다.

 

“시히델, 지금 웃었어요?”

 

“응?”

 

놀라서 시선을 홱 돌리는 시히델. 얼떨떨한 그녀를 보며 프리아는 굉장히 신기하면서도 기쁜 듯, 눈을 별처럼 빛내고 있었다.

 

“시히델이 웃는 거 처음 봐요. 웃은 거 맞죠?”

 

“아, 그,”

 

시히델은 말을 더듬다가 그대로 누워 버렸다. “잘 거야.” 한 마디에 프리아도 잘 자라는 말과 함께 그녀의 기운에 머리를 눕히고, 눈을 감으며 숨을 크게 들이마쉬고는 곧 흘려보냈다.

 

그리고 며칠 뒤,

 

“정말,”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시히델은 마지막 구슬들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끝났구나, 이제.”

 

이런 그녀와 옆에서 신기해하는 프리아의 주위에는 역시 모든 혼령과 인간이 모여 있었다. “끝났어.” 다시 중얼거리는 시히델.

 

“이제 끝난 거야. 확인해 보는 것만 남았어.”

 

짝을 맞춰가며, 더이상 짝을 맞출 수 없는 것들은 걸러냈다가 다시 짝을 맞춰보기를 반복하면서, 그렇게 몇 달은 지났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의 끝에 남은 건 열두 개의 구슬. 생각보다 적은 숫자였다. 하지만 틀림없었다. 이게 그 모든 분류의 마지막이다. 그녀는 시선을 돌려 프리아를 보았고, 그녀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자신도 묵묵히 긍정한 뒤 천천히, 기운을 뻗어 마지막 조각들을 품었다.

 

“으읏,”

 

지금까지항상 그랬던 것처럼 그녀에게 무언가를 연상시키는 구슬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저 이들을 우리는 계속 지켜보고, 또 지켜봤다. 하지만 관찰만으로는 방법이 없다. 그들은 언젠가 서로 충돌할 것이고, 비록 우리가 그들보다 훨씬 강하다고는 하나 단순한 통제로는 그걸 막을 수 없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의 씨앗이니까. 결국 우리는 이들을 수면 위에 띄울 방법을 찾아야 했고, 비록 중간에 사고가 있었다고는 하나 우리, 남은 이들은 결국 찾아냈다. 모든 문제의 해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으니, 살과 혼이 '영'으로 이어지는 끝에서부터 진정한 시대는 시작된다.]

 

곧 모든 것을 전달했는지 그 구슬들은 이 연상을 처음부터 반복하기 시작했고, 시히델은 곧바로 기운을 거두지 않고 몇 번 더 확인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봤어요?” 프리아가 그녀를 쳐다보면서 묻자 긍정하는 그녀. “신령님.” 이것이 그녀가 처음 꺼내는 말이었다.

 

“신령님들은 우리가, 혼령과 인간이 언젠가는 부딪힐 걸 알고 계셨어. 그걸 끝내기 위해 이 유적을 만들었고. 응, 호리에르 말이 맞아.”

 

“정말인가?”

 

호리에르 자신도 놀라워하며 물었고, 시히델이 긍정하자 그가 잠시 멍하니 있더니 곧 호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이에 다른 혼령들의 기운도 밝게 빛났고, 인간들 또한 제각기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역시!” 늙은 혼령이 시원하게 말했다.

 

“이 유적을 만드신 목적은 그거였어! 아아, 내 믿음이 틀리지 않아서 다행이군!”

 

“결국 여기까지 왔군요.”

 

노일도 환한 목소리를 내며 말하고는 시히델에게 물었다. “그래서,” 무엇을 물을지는 뻔했지만.

 

“뭘 어떻게 하라고 하던가? 그것도 이 안에 담겨있었나?”

 

그의 말에 시히델은 긍정했다. 그리고 이 넓은 구덩이를 한 번 빙 둘러보고는, 곧 유적에 그 시선을 꽂는 그녀.

 

“모든 문제의 해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으니,”

 

마지막 구슬들이 떠올려준 것들 중 마지막을 스스로 말해보는 그녀. 이어서 스스로에게 긍정하며 프리아의 팔을 잡고 천천히 움직이는 그녀였다.

 

“저 유적이야. 저 유적 자체가 스스로를 여는 열쇠였던 거야.”

 

그러면서 조금씩 빨라지는 그녀의 기운은 정말 오랜만에, 너무나 오랜만에 밝아졌다. 먼 옛날 생전 처음으로 질문을 해본 그 순간처럼. “가자.” 그녀가 말했다.

 

“이제 끝났어. 유적을 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