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해줘?”

마르한은 마치 자기가 환청을 들었다는 식으로 되물었다. 그리고는 시히델을 보면서 중얼거리듯 말하는 그.

“너가, 인간을 구해줘?”

”……”

시히델은 갑자기 찾아와서는 뜬금없이 이런 엉뚱한 소리나 내뱉는, 그리고 곧 자신의 상처를 발견하고는 “아!” 깜짝 놀란 얼굴을 한 그 인간 계집을 가만히 올려다봤다. 인간들은 대부분 검은 머리를 가졌을 텐데, 이 아이의 머리칼에는 이상하게도, 자줏빛? 아니, 자줏빛이라고 단정 짓기는 조금 그랬지만, 최소한 그와 비슷한 빛이 흑발에 드문드문 묻어 있었다. 그렇게 모든 머리카락을 작은 귀 뒤로 넘긴, 그렇게 겨드랑이 높이까지 넘어간 머리 위로는 제법 넓게 드러난 이마와 그 밑으로 맑은 초록빛, 솔잎을 연상케 하는 색을 띤 두 눈. 눈 끝이 길지 않고 둥근 느낌이라 그런지 왠지 깊고 정이 많아 보이는, 하지만 그 빛은 제법 또렷한 눈을 달고 있었다. 다만 그 눈 외에는 별 특징이 없이 작은 코와 입술, 그리고 평평한 느낌의, 매끄러워 보이진 않으나 거칠지도 않은 듯한 피부에 역시 별 특징 없이 적당한 곡선을 이룬 얼굴. 보통 여자와 비슷한, 체구가 작지만 키도 작진 않은 몸, 다만 여기 있는 인간들이 그렇듯 영양섭취–혹은 식사라고 부르기도 하던가?–를 잘 못 해서 그런지 살짝 말라 보였다.

“괜찮으세요? 정말로 저 때문에 그렇게 물려서…”

어제는 그냥 흔한 인간 하나 주워왔다고 생각해서–그게 사실이기도 하고–어떻게 생겼든 별로 신경 쓰지도 않았는데, 어찌 되었든 이렇게 보니까 어제 그 여자가 맞았다. 이제 보니 생각보다 더 젊어 보이는 듯했다. 아마 태어나서 20년에서 30년 사이 정도 되려나? 그리고 이런 그녀를 말없이 멍하니 올려다보던 시히델은, 곧 정신을 차리고 지금 이 여자가, 인간 여자가 혼령인 자신의 상처를 보며 마치 마르한처럼 당황하면서도 굉장히 미안해하는,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로 진심이 확 느껴지는 미안함을 담은 얼굴을 하자 비록 정신을 차렸음에도 뭐라고 말을 꺼내지를 못했다.

“사실이야, 시히델?”

그렇게 자리에 굳어있던 그녀는 마르한이 다시 부를 때에서야 “응?” 그를 쳐다봤다.

“너 정말로 이 애를 구해준 거야?”

“네, 그렇다고 들었어요. 그 동물한테서 절 구해 데려오셨다고.”

정말로 이 여자가 맞구나. 시히델이 그렇게 확실히 인식한 순간, 그녀는 어느새 저쪽에서 모든 혼령들이 아까부터 이쪽을 쳐다보며, 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자기들끼리 뭐라고 수군거리는 게 느껴졌다. “야!” 시히델은 다짜고짜 그쪽에 대고 버럭 성질부터 냈다.

“무슨 구경거리 났어!? 시끄럽고 그냥 하던 일이나 하–”

쉬익–

“아읏!”

자기가 지금 어떤 꼴인지를 잊고 화를 냈다가 그녀는 상처에서 기운이 한 줌 빠져나가자, 그 고통에 몸을 부르르 떨며 그 자리에 늘어졌다. “시히델!” 마르한이 얼른 상처를 감싸주었고, 이 인간 여자 또한 놀라서 눈이 동그래지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너,” 하지만 이렇게 아픈 중에서도 이 계집을 일단 여기서 몰아내야 한다는 생각에, “너,” 그녀는 끙끙거리면서도 나지막이 말했다.

“너… 오늘은 그냥 돌아가. 당장…”

“네? 그렇게 다치셨잖아요. 뭐 제가 도와드릴–”

“다친 거 보이면 돌아가라고. 어서.”

시히델은 한쪽 몸으로 휙, 저리 가라는 몸짓을 보냈다.

“내일 와. 내일. 오늘은, 내가 지금 누구랑 얘기도 못 하는 꼴인 거, 보이지? 돌아가. 돌아가.”

최대한 침착하게, 모든 이성으로 고통과 짜증을 억누르며, 하지만 그 태도만은 엄하게 말하자, 인간 계집은 이런 그녀를 계속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려보다가–시히델은 그 시선에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하던 참이었다–결국 허리를 한 번 더 숙이고는 인간들이 있는 쪽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돌아가는 그녀를 중간에 호리에르가 멈춰 세우고는 뭐라고 말을 걸자 고개를 끄덕이는 걸 그녀는 봤다. 아무래도 정말 저 혼령이 구해준 게 맞냐고 물어본 거겠지. “하,” 시히델은 뒤의 바위에 기대고 늘어졌다. 이런 그녀를 마르한이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시히델,” 곧 말을 꺼내는 마르한.

“정말이야? 너가 정말로 저 인간을 구해줬어?”

그는 지금도 자기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하는 모습이었다. 하긴 누구라도 그럴 게 분명했다. 그 시히델이 인간을 구해준다니. 저기 호리에르도 대놓고 놀라지 않았던가. 하지만, 아아, 정말! 시히델은 상처를 넘어 굉장히 불편해졌다. 그게 어딜 봐서 구해준 거란 말야? 애초에 그녀가 그 늑대에게 먼저 싸움을 건 것도 아니고. 어쩌다가 보니 그렇게 된 거잖아. 어쩌다가 보니까. 그렇게 속으로 되뇌는 그녀였으나 곧, 그렇게 혼자 뭐라고 해봤자 전혀 도움되는 게 없음을 알았다.

“지금 얘기해 줄 테니까 잘 들어.”

“어? 으, 응.”

그녀는 상처가 굉장히 아리는 느낌에 조용히 시야를 닫았다. 그러자 어제 봤던 그 늑대가 다시 그녀의 앞에 스쳤다.

“두 번은 얘기 안 하니까 그렇게 알아. 이런 얘기 또 하기도 싫으니까.”

“응, 알았어.”

직접 보지 않고도 그녀는 마르한이 모처럼 호기심에 빛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사실 한 번 말하기 시작하니까 그다음부터는 술술 이야기를 털어놓은 그녀였다. 정확히는 이야기를 한다기보단 불평을 늘어놓는 식으로 했기에 그게 가능했지만. 어쨌든 모든 이야기를 들은 마르한은 어쨌든 네 덕분에 그 애가 산 게 맞지 않냐고 말했다가, 그 자리에서 그녀에게 한 대 맞고 조용해졌다. 그 뒤로 더이상 둘은 그 일에 대해 얘기를 나누지 않았고, 정말 다행히도 호리에르는 (마르한이 맞는 모습을 봤는지) 오늘 그녀에게 무언가를 물어보진 않았다. 그저 어쩌다가 난 상처냐고 물어봤을 뿐. 시히델은 그래도 호리에르이기에, 그리고 나중에 그 검은 생물에 대해서도 물어봐야 하기에 일단 늑대에 대한 얘기까지는 해줬다.

그리고 다음 날, 그녀의 상처는 생각보다 훨씬 심하게 파였기에 아직 아물기엔 시간이 더 필요했으나, 그래도 단순히 움직이고 말하는 것만으로 기운이 더 새어나온다든가 하진 않았다. 이를 확인한 시히델은 아침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쯤,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많이 나아졌어?”

마르한이 물어보자 솔직하게 살짝 부정하는 그녀였으나, 일단 시험 삼아 조금 자리에서 왔다갔다 해봤음에도 별 이상이 없자 곧 그쪽 몸을 슬슬 움직여보는 그녀. “읏,” 아직 그러기엔 너무 이른 듯싶었다.

“그래도 나중에는 낫긴 하겠네. 어쨌든 다시는 혼자 밖에 나가거나 그러지 마.”

친구가 진심으로 해주는 말엔 그녀도 동의했고, 이어서 상처를 조금 더 확인해본 뒤 이쯤이면 됐다 싶어 시선을 돌리며 호리에르를 찾기 시작했다. 오늘은 유적엔 그가 없었고, 그렇다고 혼령들이 있는 쪽을 돌아다니며–혼령들은 그녀가 지나갈 때마다 빤히 쳐다봤지만 최대한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둘러봤으나 역시 없었다. 어디로 간 걸까? 잘 못봤나 싶어 다시 한 번 혼령들 사이를 지나다니던 도중, “어?” 갑자기 마르한이 그녀를 툭 건드리더니, 저쪽 어딘가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거, 그 지도자라는 인간 아냐?”

그 말에 시히델뿐만 아니라 주위의 혼령들, 그리고 분위기의 전환을 느낀 나머지까지 모두 그가 가리키는 쪽을 쳐다봤다. 과연, 구덩이의 한쪽 끝에서 그 노일이라는 인간과 호리에르가 무언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뭐야?” 한 혼령이 중얼거렸다.

“싸우는 것 같진 않은데. 어제 호리에르가 인간에 대해 뭐라고 말했어?”

“아니, 별말 안 했는데…”

“아!”

한편 이렇게 멍하니 있는 혼령들 옆으로 웬 맑은 소리가 들려왔다. “찾았다!” 기운이 담기지 않은, 단순히 음성뿐인 그 소리에 모두들 시선을 돌렸다가 기운이 쭈뼛 서면서 저마다 뒤로 물러났고, 그 중 시히델과 마르한, 이 둘만 그 자리에 조용히 서 있었다.

“여기 계셨네요. 상처는 조금 나아지셨어요?”

역시나, 어제의 그 인간이었다. 내일 오랬다고 정말로 다음날 오다니. 시히델은 완전히 멍해진 태도로 그 계집을 바라봤고, 마르한은 둘 사이에서 시선이 오가며, 과연 이 둘이 무슨 얘기를 할까 굉장히 흥미로워하는 게 대놓고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분명 뒤로 내뺀 모든 혼령들이 이젠 호리에르보다는 그녀를 쳐다보고 있겠지. 굳이 뒤돌아보지 않아도 뻔했다. “하,” 시히델은 조용히 한탄을 퍼뜨리고는, 그렇게 조용히 기운을 숙이고 있다가 다음 순간, 저 하늘 끝까지 뻗친 분노와 함께 모두가 보라는 듯 폭발적으로 윽박질렀다.

“이 무식한 인간 계집년아!!”

바스락, 바스락,

아린은 최대한 나뭇잎을 피해 발을 디뎠으나, 그래도 사방에 깔린 게 나뭇잎이라 작은 소리 정도은 감당해야 했다. 그래도 재빨리 뛰어가서 저 둘을 발견한 게 다행이긴 했다. [하여간,] 진작에 그녀를 말리는 걸 포기했긴 하지만, 리니아는 이런 아린을 보며 계속해서 한숨을 쉬었다.

[너는 정말 어떤 말을 해도 소용이 없는 것 같아. 애초에 멀쩡한 독까지 깨부술 정도로 저 애가 그렇게 중요해?]

[내가 구해준 야. 내가 돌봐주는 게 당연야.]

아린의 이유는 간단하고도 뚜렷했다. 리니아는 다시 한숨을 푹 내쉬었고, 이런 그녀를 두고 아린은 천천히 몇 발짝을 더 디뎠다. 한편 리니아는 조용히 그녀가 지나온 길을 생각하며, 지금까지 그녀와 저 앞의 셋, 신관과 그 혼령 그리고 소년이 이 산을 제법 많이 올라왔음을 확인했다. 적어도 신령이 거주하는 그곳보다는 훨씬 더 높은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조금 쌀쌀해진 느낌도 없지 않았고, 리니아는 아린에게 여기서 오래 있으면 추워질 거라 경고했다.

[괜찮얘. 영으로 따듯하게 덮으면 되이.]

[아니,]

리니아가 고개를 저었다.

[어어, 그게, 아까부터 느꼈지만 너 말리느라 말을 못했는데, 여기는 왠지 다른 곳보다 영이 적게 느껴지는 것 같아.]

“야?”

아린은 놀라서 무심코 목소리를 냈다가 얼른 입을 다물었다. 다행히 란, 마르한도 솔도 듣지 못한 것 같았기에 움츠렸던 몸을 다시 일으키는 그녀였으나, 혹시 몰라서 좀 더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리고 잠시 뒤, 그녀가 보는 앞에서 둘은 나무들이 끝나는 지점, 밤의 기운이 환하게 내리쬐는 곳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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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50편. 계속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