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가 카논 경보다도 더 높은 9클래스에 이미 올라있다는 것을 알게 된 에드윈은 계획을 바꾸었다. 원래 그는 여마법사를 카논 경에게 1:1로 맡기고 필립을 먼저 3:1로 밀어붙여서 사로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간 자칫 잘못하면 자신들이 필립을 제압하기 전에 먼저 카논 경이 제압당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자신이 저 루시라는 여마법사를 상대하고 필립을 마리엔과 케이트에게 맡겨야 했다.

 마리엔과 케이트, 그리고 필립은 서로 전투태세로 마주보며 상대를 탐색했다. 이윽고 세 명이 각각 비슷한 실력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판단이 들자 케이트는 속으로 여유가 생겨났다. 예전의 라스알처럼 필립이 더 위의 실력이었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서로 같은 실력인데 2:1의 싸움이라면 어지간해서는 2명인 쪽이 질 확률은 거의 없는 셈이었다.

 그런 반면에 마리엔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녀는 필립의 검이 에이카라는 것을 계산에 넣고 있었다. 에이카는 계산상으로 카미라와 동급의 아티팩트이다. 그녀가 보기에 그것은 충분히 변수를 만들 수 있는 검이었다. 그녀의 머릿속은 분주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마리엔이 소극적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케이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는 마리엔이 왜 저렇게 나오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필립을 사로잡으려면 어쨌든 결국 싸워야 한다. 케이트는 마리엔을 한번 힐끗 쳐다보고는 속으로 생각했다.

 '하는 수 없지 뭐. 내가 먼저 공격해 들어가면 따라오겠지.'

 그렇게 생각한 케이트는 필립의 방어자세를 쳐다보다가 한순간에 그가 있는 쪽으로 치고들어갔다. 케이트의 이 행동을 본 마리엔은 깜짝 놀랐다.

 "앗, 케이트 언니!"

 마리엔이 보기에 이것은 큰일날 행동이었다. 둘이 같이 공격해 들어가도 100% 이긴다는 보장은 없는 판에 에이카를 지닌 상대에게 보통의 마력검으로 혼자서 치고들어가다니...게다가 그녀들은 용기사다. 물론 지상에서의 전투도 잘 해낼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전공은 와이번을 타고 하늘에서 싸우는 것이다. 그런 것도 분명 불리한 점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마리엔은 케이트의 뒤를 따랐다. 케이트 혼자 싸우게 내버려 두면 질 것이 뻔하니까.

 필립은 저들이 먼저 공격해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마나는 충분히 끌어올려 놓은 상태, 그는 케이트가 먼저 돌격해 들어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전력으로 에이카를 횡방향으로 크게 휘두르며 검강을 뿜어냈다. 그러자 강력한 검강이 에이카의 검신에서 커다란 반월형의 모양으로 뻗어나갔다. 아티팩트인 에이카의 증폭력을 받은 필립의 검강은 그 위력이 정말로 무시무시했다. 이윽고 케이트와 마리엔의 검에서도 검강이 뻗어나와 필립의 검강과 충돌했다.

 같은 검강끼리의 충돌이었지만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필립의 검강이 케이트, 마리엔의 것을 잡아먹고서 많이 약해진 상태로나마 둘을 동시에 덮쳐들어간 것이었다.

 "아니!"

 "역시..."

 같은 장면을 보았지만 케이트와 마리엔의 반응은 달랐다. 둘은 옆으로 몸을 날려 검강을 피했다. 미리 예상한 마리엔은 제법 여유있게 피했지만 케이트는 황급히 허겁지겁 몸을 날렸고, 간발의 차이로 필립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간신히 피한 케이트는 억울하다는 듯 항변했다.

 "말도 안돼. 어째서 이렇게 된 거지?"

 "언니, 태자 전하의 실력은 저희와 엇비슷하지만 무기에서 차이가 좀 많이 나잖아요. 그러니까 기교는 동급이지만 힘에 있어서는 우리보다 위인 상대라고 생각하고 싸워야 해요."

 "뭐야? 그런 거였어?"

 "언니! 조심하세요!"

 둘이 대화하던 도중에도 필립은 봐주지 않고 공격을 날렸고 그것을 본 마리엔이 케이트에게 크게 외쳤다. 이윽고 둘은 또다시 날아온 검강 덩어리를 옆으로 구르며 피했다. 그 사이 필립은 기세가 올라서 둘 모두를 범위에 넣고서 맹공을 퍼부었다. 케이트와 마리엔은 힘에서 상대가 안 되는 것을 알았으니 그저 피해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계속 같이 피해다니다가 둘의 몸 사이로 파고드는 공격이 날아오자 그녀들은 얼른 서로 몸을 반대방향으로 날렸다.

 조금 전에는 둘이 같은 방향으로 피하는 바람에 피한 후에도 둘 사이의 거리가 가까웠지만 이번에는 둘이 반대 방향으로 피한 덕에 둘 사이의 거리가 조금 벌어져 있었다. 그것을 본 마리엔의 머리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녀는 곧장 케이트에게 말했다.

 "언니, 우리 좀 떨어져요. 너무 붙어있으니까 태자전하의 검강 한 방에 우리 둘이 같이 공격을 받네요. 둘이 떨어지면 저분께서도 둘 중에 누굴 먼저 공격하기시가 껄끄러우실 거에요."

 "응, 알았어."

 마리엔의 설명을 들은 케이트는 곧장 옆으로 달려서 마리엔과의 거리를 벌렸다. 그러자 마리엔의 말대로 필립은 더 이상 과감하게 검강을 뿌리지 못했다. 그것은 둘 중의 한 명에게 검강 세례를 퍼부으면 그 사이에 자유로워진 다른 한 명이 자신을 공격해 올 경우 곤란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으음... 쟤들 둘이 뭉쳐 있을 때 좀더 밀어붙였어야 했나?'

 필립은 속으로 많이 아쉬웠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지나간 일, 이제와서 후회해 봤자 소용없었다. 그때의 일은 머릿속에서 지워버려야 했다.

 이제 상황은 역전되어 있었다. 이젠 케이트와 마리엔이 양방향에서 거리를 두고서 검강을 내뿜으며 공격을 하고, 두 개의 공격을 동시에 막을 수 없는 필립이 그 공격들을 피해다녀야 했다. 물론 그녀들로서는 아까의 필립처럼 전력을 다한 공격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런 공격을 하려면 하는 수 없이 필립에게도 조금의 시간을 줘야 하는데 그랬다가 필립이 그 사이에 두 개의 공격을 시간차로 막아버리고 역공을 가하는 날엔 그녀들 입장에서도 위험해지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공격은 이렇게 서로 간의 거리를 넓게 벌린 채 쉴새없이 약한 공격을 연속으로 날리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확실히 싸움이 지루해지긴 했지만 효과는 확실히 있었다. 수없이 많은 공격이 날아오다 보니 당연히 그 많은 공격들을 전부 다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케이트와 마리엔의 검강이 필립에게 스치기만 해도 필립의 사슬 갑옷이 구멍이 생기며 필립의 몸에 약간의 상처가 남았다.

 그렇게 필립은 조금씩 조금씩 상처가 늘어만 갔고, 그에 따라 그의 마음은 점점 급해져 갔다. 그로서도 언제까지 이렇게 수세에만 몰려 있을 수는 없는 노릇. 그에게는 결단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상대는 둘이고 자신은 하나라는 것이 그의 판단을 힘들게 만들었다.

다른 한쪽에서는 에드윈과 루시가 무지막지한 대결을 벌이는 중이었다. 한쪽은 마도 여왕 이후 유일한 9클래스의 대마법사, 다른 한쪽은 역시 마도 여왕 이후 유일한 어검의 단계에 오른 검의 고수. 그동안 마도 여왕 이외에는 누구도 밟아보지 못했던 그 두 단계에 오른 강자들 간에 역사상 최초의 대결이 펼쳐지고 있었다.

 카논 경은 전투에 끼지 않고 보조만을 하는 중이었다. 그것은 둘의 대결이 상상 외로 엄청난 까닭이었다. 어검과 9써클의 마법이 충돌할 때마다 그 주변으로 무지막지한 충격파가 퍼져 나갔고, 그것은 카논 경에게조차 상당한 영향을 끼칠 정도였다. 그런데 그 충격파가 잘못해서 저쪽에서 접전을 벌이고 있는 마리엔과 케이트에게 튀기라도 한다면? 잘못하다가는 그 둘 중에 한 명이 크게 다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반대의 경우도 가능했다. 에드윈과 루시가 집중해서 싸우고 있는 통에 저쪽에서 우연히 날아온 검강에 맞아버릴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카논 경은  약간 멀찍이 서서 따로 벌어지고 있는 이 두 개의 대결이 서로에게 영향이 안 가도록 막는 데에 온 신경을 쏟았다. 그러면서 그는 한 가지 따로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도망갈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게다. 9클래스의 대마법사여.'

 [아쿠아 스플래쉬.]

 루시가 중얼거리자 저번에 채찍을 든 여자를 상대할 때처럼 그녀의 손에서 작은 물방울이 생겨나서 앞으로 날아갔다. 에드윈은 웬 조그마한 물방울이 날아오자 어리둥절했다. 저 루시라는 여자마법사는 지금까지 7써클 이상의 마법들을 축약주문만으로 발동시켜 왔다. 그런 그녀가 한동안 공간도약으로 이리저리 도망만 다니면서 주문 한개를 한참 동안 주저리주저리 외우고 있을 때 에드윈은 그녀가 엄청난 주문을 사용하려나보다 하고 생각하고서 속으로 바짝 긴장했다. 하지만 그 긴 주문 끝에 나온 마법이 고작 저런 조그마한 물방울이라니, 그가 이상해할 만도 했다. 그 때, 어검으로 인해 자아가 실체화된 카미라로부터 위험신호가 들려왔다.

 {주인님! 위험해요!}

 {뭐라고?}

 {저거 분명히 9써클 마법 아쿠아 스플래쉬라구요!}

 {그게 뭔데 그래?}

 {그게... 으악! 설명은 나중에 할게요!}

 비명을 지른 카미라는 에드윈의 의사에 관계 없이 자신의 의지로 하늘의 속성력을 내뿜었다. 그 타이밍은 이제 막 루시가 아쿠아 스플래쉬의 압축을 풀어서 물폭탄을 터뜨리려는 찰나였다. 에드윈으로부터 임의로 마나를 왕창 끌어다가 자신이 지닌 바람의 속성력과 섞은 카미라는 그것을 이용해 바람으로 물방울을 주변에서 꽉 압박했다. 뜻밖의 저항을 받자 루시도 그 마법에 더 힘을 주어 어떻게든 물방울을 터뜨리려고 했다.

 루시와 카미라가 힘겨루기를 하는 사이, 에드윈은 카미라와의 교감을 통해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더불어 저 물방울이 어떤 것인지도.

 "...!"

 정말이지 카미라 말대로 큰일날 뻔 했다. 카미라가 자신의 힘을 끌어다가 물방울 주변의 기압을 엄청나게 높여서 물방울의 수압과 간신히 평형을 이뤘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자신은 물론이고 잘못하면 카논 경과 케이트, 마리엔까지 한꺼번에 저 물에 쓸려나갈 뻔했다. 이번에는 카미라가 필립의 아티팩트인 에이카였다면 절대 할 수 없는 방법으로 멋지게 주인을 구해낸 셈이었다.

 {고맙다. 이제 내가 알아서 할게.}

 {음... 느끼신 거군요? 알았으니까 빨랑 좀 해주세요. 제가 임의로 주인님 마나를 끌어다 쓰느라 얼마나 힘든지 아세요?}

 {하하, 알았어.}

 에드윈은 자신의 마음 속에 울려퍼지는 카미라의 쫑알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카미라를 통해 느낀 대로 똑같이 실행했다. 그 엄청난 힘을 카미라를 통해서가 아닌 자신이 직접 느끼게 되자 에드윈의 마음 속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어이쿠.}

 {거 봐요. 장난 아니죠? 그렇게 쏀 걸 어떻게 지금까지 저한테만 맡겨놓으실 수 있어요?}

 에드윈이 놀라자 카미라는 옆에서 열심히 주인의 속을 긁어 댔다. 그렇게 에드윈과 루시는 한참을 대치했다. 그렇게 시간이 점점 흐르자, 둘의 이마에도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했다. 그만큼 둘은 누가 더 위인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 사이에서도 점점 우열이 갈리기 시작했다. 필립 쪽이 아티팩트 에이카로 인해 2:1의 상황임에도 생각 외로 잘 버티고 있었다면, 이쪽은 반대로 아티팩트 카미라로 인해 루시가 점점 밀리는 추세였다. 그것을 체감한 루시는 하는 수 없이 자신이 만든 물방울을 소멸시켰다.

 이것을 그대로 흩어 버렸다간 대참사가 나기 마련이다. 이 작은 물방울 안에는 거의 강 하나와 맞먹는 양의 물이 압축되어 있었다. 그 많은 양의 물이 지금 여기서 아무렇게나 흘러 버린다면? 분명 이 산 아래의 평야 지대에서는 대홍수가 나게 된다. 만약 그런 것을 도외시하고 물을 그냥 아무렇게나 흘려버렸다면 루시는 재빨리 다른 마법을 사용해서 기습의 효과를 볼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게에 그녀는 마법의 진행과정을 역으로 해서 자신이 쓴 마법을 캔슬하느라 상대를 공격할 수가 없었다.

 루시가 그렇게 하는 동안 에드윈은 그 시간을 노려서 날카롭게 루시에게 파고들었다. 대응할 시간이 부족했던 루시는 볼 것도 없이 곧장 공간도약을 사용했다. 루시가 사라진 그 자리에 간발의 차이로 에드윈의 검이 쇄도해 들어와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에드윈의 뒤쪽에서 루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매직 애로우.]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수백 발의 빛의 화살이 에드윈을 향해 쏟아져 나왔다. 에드윈은 그것을 보고서 재빨리 몸을 옆으로 돌리고서 강한 바람을 일으켰다, 그러자 그 반발력으로 에드윈의 몸은 뒤로 튕겨져 나가듯이 밀려났고, 그 사이에 그 많은 빛의 화살들은 원래 에드윈이 있던 자리를 덮쳤다. 에드윈이 피하자 루시는 다시 한 번 중얼거렸다.

 [가이드 애로우.]

 이번에도 역시 아까처럼 빛의 화살들이 뿜어져 나갔다. 하ㅣ만 이번엔 아까 전과는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이번 화살들에는 유도 능력이 있다는 점이었다. 자신이 피하는 경로를 따라 계속 빛의 화살이 쫒아오자 에드윈은 피하는 것을 포기했다. 빛의 화살들은 곧장 멈춰선 에드윈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에드윈은 그 화살들을 응시하고는 카미라를 쥔 채로 중얼거렸다.

 [히트 윈드.]

 에드윈이 중얼거리자 그의 앞에서 뜨거운 회오리가 일어났다. 전에 유나가 보여준 것보다는 한참 작았지만 그래도 제법 커다란 크기의 회오리에 날아오던 빛의 화살이며 주변에 있던 나무들이며 할 것 없이 주위에 존재하는 것들은 전부 다 그 바람에 휘말렸다. 그것은 분명 마법이었다. 기사인 에드윈이 어떻게 마법을 쓸 수 있는 것일까? 그것도 보통 마법이 아닌 저렇게 엄청난 마법을... 그것은 바로 카미라 덕분이었다. 그 증거로 카미라의 검신에서는 마법진 하나가 빛을 내뿜고 있었다. 이윽고 그 거대한 바람은 루시에게로 접근해 가기 시작했다.

 에드윈이 일으킨 뜨거운 바람이 자신에게로 다가오자 루시는 순간적으로 고민했다. 맞불을 놓을 것인가, 아니면 방어마법으로 막을 것인가. 하지만 그 고민은 오래가지 못했다. 회오리는 점점 그녀 쪽으로 덮쳐오고 있었고, 이대로라면 맞불을 놓는다고 한들 그녀와 가까운 곳에서 부딪치게 된다. 그렇다면 그 충돌에 의한 피해를 그녀가 훨씬 더 크게 입게 된다. 역시 이럴 경우에는 정석대로 방어하는 편이 나았다.

 [아크 필드.]

 루시가 방어마법을 시전하자 투명한 막이 그녀를 감쌌고, 그 앞으로 거대한 회오리가 그녀를 삼킬 듯이 그녀를 덮쳐왔다. 두 개의 마법이 만나자 엄청난 풍압이 방어막을 통해 루시에게 느껴졌다. 바람은 루시의 방어마법에 막혀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지만 루시 역시 그것을 막느라 진땀을 흘렸다. 게다가 바람에 포함된 그 열기는 안그래도 땀이 날 정도로 더운 루시의 집중력을 더욱 흐뜨러뜨렸다. 워낙에 큰 마법이었기 때문에 그 뜨거운 바람은 한참 동안이나 루시의 보호막을 압박했다.

 그렇게 루시가 바람을 막고 있을 때, 그녀는 갑작스레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갑자기 지금의 상황에 대해 소스라칠 정도의 위화감이 엄습해 온 것이었다. 저 마법이 시전된 지는 꽤나 지났는데 에드윈 같은 검의 고수가 그동안 가만히 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 루시는 황급히 방어마법을 한겹 더 중첩시켰다. 그 마법이 완성되기가 무섭게 거대한 회오리의 가장자리에서 바람이 일으킨 자욱한 먼지를 뚫고 쇄도해 들어오는 에드윈의 모습이 보였다. 에드윈이 휘두른 검은 타이밍 좋게 완성된 방어마법에 막혔고, 에드윈이 한번 더 검을 휘두르자 루시는 재빨리 공간도약으로 거리를 벌렸다.

 공간도약으로 제법 거리를 벌린 루시는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왔다. 이번에도 역시 짧은 시간 동안 큰 마법을 연속적으로 사용한 데 따른 부작용이었다. 그러면서도 루시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회오리바람이 일으킨 자욱한 먼지 때문에 시각이 차단당하자 루시는 전적으로 기감에만 의존해서 상대의 움직임을 파악했다. 에드윈은 그것을 멋지게 이용했고, 기척을 감추고서 지척까지 접근해왔던 것이다. 루시의 눈치가 조금만 느렸더라면 그녀는 지금쯤 포로신세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루시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두통을 참고서 고개를 들었다. 이제 그 거대한 회오리바람은 사라져 있었고, 에드윈은 또다시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일반적인 기사라면 그냥 공중으로 떠올라 버리면 되었지만 하필 에드윈의 무기가 하늘의 아티팩트인 카미라라는 게 문제였다. 하늘로 떠오르는 순간 그것은 스스로 상대의 홈그라운드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는 수 없이 루시는 다시 공격마법을 준비했다. 이렇게 된 이상 그녀에게는 에드윈이 다가오는 동안 열심히 공격마법을 퍼붓고 접근해 오면 공간도약으로 도망치기를 반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에드윈은 조금 전의 찬스를 놓친 게 너무나도 아까웠다. 에드윈이라고 루시가 취할 행동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분명 루시는 치고 빠지기를 반복할 것이고 그렇게 하면 에드윈이 그녀를 잡기가 골치아파질텐데... 그래서 그는 찬스가 왔을 때 그녀를 사로잡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지나간 일. 후회해 봤자 소용없었다. 여전히 힘의 우위는 아티팩트를 지닌 에드윈에게 있었다. 루시도 대마법사인 만큼 자신의 마법봉에 소형으로나마 워프엔진을 장착시켜서 증폭 효과를 보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카미라는 그런 것과는 격이 달랐다. 그것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10클래스의 아크메이지라고 알려져 있는 마도 여왕이 직접 만든 것이었으니까. 에드윈은 아직도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는 자신이 질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고 그것은 객관적으로도 맞는 생각이었다.

 한참 동안 공방전을 벌인 후, 루시는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다부진 루시가 이정도나마 내색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힘에 부치다는 증거였다. 제법 긴 시간동안 수많은 공격마법들을 쏟아부었지만 상대는 겉으로 보기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듯싶었다. 물론 실제로는 여기저기 타박상을 입기야 했겠지만 그것은 루시가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사항이었고, 또한 고작 그 정도로 뭔가 이 전투에 영향이 가지는 않는다.

 바로 그 점이 루시를 더욱 지치게 하는 점이었다. 루시는 불과 몇칠 전까지 계속해서 큰 전투를 벌여 왔고, 아무래도 그녀의 몸 상태는 처음부터 100%가 아니었다. 그런 마당에 자신과 대등한, 카미라의 힘까지 합치면 조금 더 강한 상대와 사투를 벌였으니 이제 슬슬 한계가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 반해 상대는 역시 상태가 엉망이긴 해도 여전히 무리 없이 전투를 진행할 수 있다. 루시는 초조했다. 그녀는 지금 남은 힘으로 에드윈을 공격하면 제대로 타격을 줄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었다.

 루시는 곁눈질로 필립이 있는 쪽을 슬쩍 바라보았다. 필립 역시 두 명을 상대하다 보니 제법 많이 지쳐있는 모습이었다. 둘 중에 어느 쪽도 이기기가 쉽지 않았다. 그 순간 루시의 머릿속에는 차라리 도망치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금까지 그녀가 도망치지 않고 있던 것은 카논 경을 의식해서였다.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카논 경이 자신이 워프를 사용할 때 방해하기라도 한다면 큰일이 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이쯤 되고 보니 그녀가 생각하기에 차라리 도망치는 편이 가능성이 더 높아 보였다.

 루시는 조금 전에 자신이 필립 쪽을 바라봤다는 것을 의식하고서 조금 더 시간을 끌었다. 곧바로 수작을 부렸다간 상대 쪽에서 눈치를 챌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얼마간 시간을 번 후, 루시는 공간도약을 사용하여 순식간에 필립의 옆으로 이동해 갔다. 루시의 갑작스런 행동에 카논 경을 제외한 모두는 깜짝 놀랐다. 특히나 순간적으로나마 미스매치가 나오자 당사자인 마리엔과 케이트는 바싹 긴장했다. 루시가 9써클의 공격마법을 사용하면 막을 대책이 없기 때문에 재빨리 몸을 날릴 준비를 하면서... 에드윈은 황급히 그들이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단 한명, 카논 경만은 루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후후후, 도망갈 생각만은 안 하는 게 좋았을 텐데.'

 루시는 필립의 손을 붙잡고서 카논 경의 예상대로 순식간에 워프 마법을 완성했다. 평소 같았으면 그 속도가 너무 빨라서 방해에 실패할 가능성도 있었지만 완벽하게 기다리고 있던 지금은 달랐다. 루시의 마법이 완성되자 카논 경은 타이밍을 기다렸다. 이윽고 루시가 시동어를 외쳤다.

 "워프...윽!"

 절묘한 타이밍에 카논 경이 이질적인 마나를 끼워넣자 루시의 워프 마법은 헝클어져 버렸다. 그리고서 법칙에 따라 워프 마법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필립과 루시의 주변에서 검은 색의 원반이 나타나더니 그 원반은 둘의 몸을 삼키고서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아아, 이런... 하필이면..."

 카논 경은 이마를 탁 짚었다. 갑자기 일어난 현상에 모두는 아무 것도 모르고서 카논 경을 쳐다보았다. 설명을 요구하는 그들의 눈초리에 카논 경은 차분히 말했다.

 "음, 한 마디로 워프 마법이 오류가 난 것입니다. 제가 중간에 방해를 한 것이지요. 그런데 방금 전의 모습을 보아하니 아마도 저들은 공간의 틈새로 빨려들어간 것 같습니다."

 "음..."

 "저... 카논 경... 그럼 저 분들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에드윈은 그저 묵묵히 신음 소리를 냈지만 마리엔은 애가 탔다. 그녀는 어떻게든 그들을 생포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들이 죽을까 봐서 그녀는 애원하듯 카논 경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카논 경의 대답은 냉정했다.

 "아마도... 살아 있기 힘들 것일세..."

 "그런...!"

 마리엔의 안색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런 그녀를 케이트가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마리엔..."

 "...하는 수 없죠."

 마리엔은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녀의 안색은 매우 어두워 보였다. 바로 그 때, 그녀의 상념을 깨는 카논 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음, 제도에서 연락이 왔구만."

 카논 경은 그렇게 말하며 수정 구슬을 꺼냈다. 그가 중얼중얼 마법을 시전하자 구슬에 제도에 있는 카스트로 경의 얼굴이 나타났다.

 "자네, 웬일인가?"

 "아, 선배님. 알려드릴 일이 있습니다. 지금 전력을 보존해놓았던 리아드의 잔당들이 지상군들과 합세하여 제도를 향해 진격해 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