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도둑과도 같이 다가왔다.

"딩딩딩~ 굿모닝~ 딩딩딩~ 굿모닝~ 빠빠빠빠빠 빠빠빠빠빠빠~ 굿모닝~"

성덕은 시끄럽게 울리는 휴대전화를 잡고 알람을 해제했다. 이런 건 굳이 눈을 뜰 필요도 없는 일이다. 손을 뻗어

저 괘씸한 녀석-어디에서 전화조차 오지 않는-을 쥐고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되는 일이니까. 침대 속이 너무나도

따뜻하고 평온해서 도저히 헤어날 수가 없다. '그래 조금만 더 자자. 딱 5분만.'

창 밖에서 빛이 번쩍 비쳐 들어왔다. 창문이 깨져 나가면서 뭔가 거대한 것이 아이들 장난감 찰흙처럼 뭉개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포근한 5분간의 유예는 순식간에 날아가버렸다. 지금 일상이 비일상에 짓밟혔다. 깨져나간 유리창 조각에 주의하며

성덕은 옷을 갈아입곤 TV와 라디오를 켰다. 그리고는 창가에 빼곰히 고개만 내밀어 보았다.

겨울의 아침은 늦게 시작된다. 그래서 아침 7시인 지금조차 창밖에는 어둠이 모두 걷히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어제 아침의 하늘보다도 어둡다. 고개를 추겨들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에는 거대한 왕뚜껑 같은 물건이 햇빛을

가리며 떠있었다.

"어, 어, 어.."

신음도 비명도 아닌 소리를 내뱉으면서 순간 공황에 빠져버렸다. '저건 대체 뭐지? 북한군의 신무기인가? 북한에

초과학이 존재했다는 게 농담이 아니었단 말이야?' 다음 순간 왕뚜껑의 하부에서 빛이 반짝였다. 순간 눈 앞이

새하애지는 것을 느끼며 황급히 뒤돌아섰다. 눈을 깜박여보았다. 이제 좀 괜찮아진 모양이다. 다시 뒤돌아본 창밖의

풍경은 정말 초현실작품 같았다.

저멀리 고층빌딩이 서있던 자리가 휑하다. 나름 유명한 주상복합단지가 자리잡고 있던 곳에는 콘크리트와 철골,

자동차 등을 휘저어 만들어낸듯한 큰 공이 놓여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방금 켜둔 TV와 라디오에서 잡음이 흘러

나왔다.

"지직, 지지직, 정부는, 지지지직, 이번 사태에, 직, 전국민소개, 치치직"

다음 순간 싸늘할 정도의 고요가 찾아왔다. TV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잡음마져 완전히 그쳐버렸다.

이번 사태는 도저히 무슨 일인지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지금 이곳에 주저앉아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 뿐이다.

나름 평범한 학생이던 성덕에겐 꽤나 독특한 선배가 하나 있었다. 만약 전면전이 발발한다면 그건 새벽 0400시에

일어날 거라는 이야기나 만약에 대비해서 비상대피용 가방 하나 정도는 꾸려둬야 한다는 이야기 등을 하던 선배였다.

딱히 그런 이야기에 흥미가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강요 아닌 강요에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데 크고 비싸기만 한

가방과 비상식량, 정수기, 모포 등을 사서 하나 꾸리고야 말았던 것이 떠올랐다. 아마 옷장 한 구석에 처박아둔 채로

있을 것이다.

당장 여기를 피해야 한다. 저 알 수 없는 것들이 없는 안전한 곳으로 가야만 한다. 가방을 등에 매고 집을 나서며

휴대전화로 집에 전화를 걸었다. "띠리링~ 띠리링~ 띠리링~ 고객이 지금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왕뚜껑은 시내 한가운데 상공에 떠있었다. 다행히 집은 시 외곽에 있으니 지금 살고 있던 원룸에서 거기까지 가는 길은

저 괴물체에서 멀어지는 길이기도 한 셈이다. 고요하던 겨울 아침길은 어느새 피난하는 사람들과 차량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자전거포에서 반년전 10만원을 주고 구한 철티비의 페달을 밟았다. 차량은 가지고 있지도 않고 있어봐야 이 혼잡에선

그리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걷는 것보다는 자전거를 이용하는 편이 빠르다. 어서, 어서 달아나야 했다.

집으로 가는 도중에 목격한 것들은 정말 버티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상점이 불타고, 일단의 사람들이 그 안의 물건을

들고 달아나고 있었다. 길가 한 쪽에는 전봇대에 들이박은 승용차가 한 대 놓여 있었다. 매달 들리던 서점, 어제 저녁에도

예쁜 알바와 인사를 나눴던 편의점, 이따금 돈을 모아 들리던 식당, 눈앞을 흐르는 익숙했던 풍경들을 보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 될 줄은 몰랐다.

두시간 정도가 걸려 집에 도착했다. 틈틈이 집에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여전히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두근두근'

가슴이 성덕성덕 뛰었다. 열쇠를 꺼내 자물쇠에 꽂는 손이 덜덜 떨렸다. 제대로 꽂아넣지 못하고 계속 미끄러졌다.

철컥, 문이 열렸다. 집안은 꽤나 혼잡스러웠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냉장고 문에는 커다란 종이가 붙어 있었다.

"사랑하는 아들, 연락이 되지 않아 걱정이구나. 우리는 외숙모댁으로 향할 생각이다. 이 글을 보는 즉시 너도 거기로

오도록 해라."

다행히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순간 맥이 풀렸다. 외숙모댁은 꽤나 구석진 시골이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사람들이 북적이는 대도시보다는 그런 한적한 시골이 피난하기엔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깨어나서 물 한방울 입에 대지 못하고 황급히 움직였다. 딱히 배가 고픈 것 같지는 않지만 우선 뭐라도 먹어둬야겠다.

움직이려면 배가 든든해야만 한다. 그리 당기지 않는 음식을 억지로 넘기고 물 한컵을 들이켰다. 자, 이제 다시 움직여야

할 시간이다.

시에서 빠져나가는 주요도로는 차량들의 행렬이 그치지 않고 이어졌다. 어차피 샛길로 갈 생각이니 성덕에겐 별 상관없는

일이다. 비상시에 타인을 걱정한다는 건 여유가 있는 자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그런 여유는 없었다.

어느새 12시가 되었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알람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잠시 멈춰서 알람을 껐다. 하지만 어디선가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도로 저멀리에서 갑자기 클랙션음이 미칠듯이 울리기 시작했다.

"빵, 빵, 빠~~~~~~~~~~~~~~~~~~~~~~~~~~~~~~~~~~~~~~~~~~~~~~~~~~~~~~~~~~~~~~~~~~~~~~~~~~~~~~~~~~~~~앙"

클랜션음은 파도를 타듯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페달을 밟는 발이 헛돌았다. 왕뚜껑 말고 다른 뭔가가 있었던건가

알 수 없다. 피하자 이곳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된다.

주요도로 옆에 난 샛길을 달리다 아예 비포장도로로 빠져버렸다. 지금보다 달리긴 어렵겠지만 이 길에는 사람들이 더

없을 것이다. 빠져나가는 등 뒤로 비명소리 같은 걸 들었던 것 같다.

잘 모르는 길을 미친 듯이 달리던 성덕은 그 자리에 멈춰섰다. 대강의 방향은 맞겠지만 이 길은 초행이다. 사고나서

크게 후회했던 갤럭시S를 꺼내들었다. 현재 위치를 확인해보고 길을 찾으려는 것이다. 제대로 지도와 현재위치가 떴다.

'이 난리중에 GPS가 이상 없이 작동하다니' 어이없는 실소가 나왔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평상시 운동을 꾸준히 하지 않은 덕에 몸이 삐걱거렸다. 20대 청년의 몸이 이 정도 운동에 삐걱거리다니, 어째 스스로

생각해도 좀 문제가 있다 싶다. 외숙모댁은 남동쪽이다. 이 길을 따라 죽 내려가다 세번째로 만나는 삼거리에서 좌회전

하면 될 것이다.

한시간 동안 달리고 10분간 쉬기를 반복했다. 이 몹쓸 몸으로 무리를 하면 안된다. 이번 사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지금 최대한 몸을 소중히 아껴야 했다. 오후 세시경,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공포에서 벗어난

몸은 부끄러울 정도로 음식을 갈구하고 있었다.

길 한편에 보이는 공터에 자전거를 세우고 가방에서 비상식량을 꺼냈다. 먹고 잠시 쉬다 다시 외숙모댁으로 향하자.

"퍽"

나무에 기대어 쉬고 있던 성덕은 머리에 가해진 타격에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머리 한쪽에서 얼굴을 따라 뭔가 흐르는

느낌이 든다.

"아오, 비리비리해 보이는 저거 하나 한방에 못보다니 내가 요새 너무 쉬었나."

"이거봐, 이 녀석 준비성 하나는 철저한데? 안에 별게 다 들어 있어. 이거 잘 되었는걸."

아직 반나절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런 것들이 날뛰고 있었다. 야비해 보이는 얼굴의 두 청년이 눈 앞에 들어왔다.

'아, 인적이 드물다고 너무 방심하고 있었어.'

몸 여기저기에 힘을 줘 보았다. 양다리는 자전거를 탄 덕분에 좀 뻐근하지만 괜찮다. 양손 역시 멀쩡하다. 두눈 역시

문제없다. 다행히 출혈은 그리 크지 않았고, 다만 문제는 눈 앞에 야구방망이를 들고 서있는 녀석과 그 뒤의 녀석을

어떻게든 처리하는 것 뿐이다.

왼편 허리춤에 손을 살며시 가져다 대었다. 쓸데없이 무거워서 귀찮다며 선배가 불하해준 GAS 25" X-9 삼단봉의

손잡이를 조용히 하지만 힘을 주어 꽉 쥐었다. 일상에서는 해선 안될 일이다. 도망쳐서 경찰에게 신고를 하는 게

가장 올바른 처신인 것이다. 하지만 짐을 두고 도망칠 수도 없고, 신고를 받을 경찰도 없었다.

지금 이 곳에는 자신과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두명만이 있을 뿐이다. 해치우지 않으면 내가 당한다.

눈앞의 녀석이 다시 한번 풀스윙으로 머리를 노려오는 순간 몸을 굴려 옆으로 피했다. 발을 굴러 일어서면서 팔을

휘둘려 삼단봉을 펼쳤다. 머리에는 머리다. 가차없이 체중까지 실어가며 삼단봉을 휘둘렀다. 녀석은 너무나 방심하고

있었다. 하긴 널부러져 있던 걸 머리에 한방까지 먹인 이후이니 손쉬워 보였겠지.

방망이를 던지고 머리를 감싸고 괴로워하는 녀석의 명치를 찔렀다.

"이 새끼 너 뭐야!" 뒤에 있던 놈이 뒤늦게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채고는 달려들었다. 피하고 한방 먹이려는 데 순간

머리가 띵-하며 눈앞이 흔들렸다. '출혈이 크진 않았는데 약한 뇌진탕인가?' 다음 순간 배에 크게 한방 먹었다.

놈은 떨어진 야구방망이를 주워들었다. '이거 영 좋지 않다.' 휘둘러오는 방망이를 삼단봉 양끝을 손에 쥐고 막았다.

손끝이 저려온다. 다시 한번! 다시 한번! 타격을 막는 손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마침내 손에서 삼단봉이

떨어졌다.

'여기까지인가, 아침부터 별 고생을 다한 끝에 마주한 결과가 고작 이런 거란 말인가.' 방망이를 치켜든 놈의 얼굴이

갑자기 새하얗게 질렸다. '대체 무슨 일이지?' 놈의 시선을 쫒아 눈을 돌렸다. 그 끝에 그것이 있었다. '암흑' 단지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것. 어두운 덩어리가 아까 쓰러트린 녀석의 몸 위에 있었다. 쓰러진 녀석의 손 끝이

꿈틀거리더니 움직임을 멈췄다.

"이건 또 뭐하는 괴물 새끼야! 내 친구한테서 떨어져 이 빌어먹을 괴물아!"

놈이 나를 내버려두고 괴물에게 달려갔다. 피하자!피하자!달아나야해! 오늘 느꼈던 중에 가장 큰 공포가 덥쳐왔다.

풀어헤쳐진 가방을 한 손에 쥐고 비틀거리면서 공터를 벗어났다. 흘러내리는 피가 어느새 멎었다. 가자! 움직여!

움직이라고 내 다리야!

"끄아아아아아아악!"

자전거를 잃었다. 삼단봉도 잃었다. 녀석들이 마음대로 헤집어서 가방 속의 물건도 몇개는 사라지고 없는 모양이다.

배도 아프고 머리도 띵하다. 하지만, 하지만 일어서서 계속 가야만 한다. 그것에게서 멀어져야만 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마냥 걸었다. 미친듯이 걷기만 했다. 어느새 사위가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겨울밤은

이르게 시작되어 길게 지속된다. 랜턴을 챙겨두었는데 아까 사라진 모양이다. 라이트 스틱 몇개만으로 이 밤에

움직이는 건 무리다. 어서 밤을 지샐 곳을 찾아야 한다.

다행히 달은 밝기만 했다. 왕뚜껑이 등장한 세상에서도 달은 만유를 비춰주었다. 산길을 헤매다 순간 구덩이에 발이 빠져

데굴데굴 굴렀다. 아욱, 고통에 몸을 비틀며 라이트스틱을 꺽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쪽 수풀 뒤에 어두컴컴한 공간이

보였다. 확인해보니 작은 동굴이다. 얼마 전까지 안에서 동물이 살기라도 했는지 냄새는 영 좋지 않지만 수풀이 입구를

가려줄테니 안전할 것이다. 넘어지지 않았다면 찾지 못했을 테니까.

 

이제 살았다! 피곤에 지친 몸을 누이며 성덕은 안도감에 빠져들었다. 여기에까지 그것의 손이 닿지는 않을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지내야 할 지가 걱정이지만 떠나온 그곳보다는 나을 것이다. 안도와 미래에 대한 약간의 불안감을

안고 죽음과도 같은 잠에 빠져들었다.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외숙모댁으로 가야만 했다.

"딩딩딩~ 굿모닝~ 딩딩딩~ 굿모닝~ 빠빠빠빠빠 빠빠빠빠빠빠~ 굿모닝~"

시끄럽게 울리는 휴대전화를 잡고 알람을 해제했다. 으음, 침대 속이 너무나도 따뜻하고 평온해서 도저히 헤어날

수가 없었다. '그래 조금만 더 자자. 딱 5분만.' '잠깐? 침대라고?' 휴대전화를 쥔 손을 눈앞에 가져왔다.

'2012년 12월 8일 오전 7시'라는 시간이 시야에 들어왔다.

"내가 겪은 그 모든 일이 꿈이었던건가? 거참 악몽 한번 끔찍하게 꿨네. 제길."

그 순간 창 밖에서 빛이 번쩍 비쳐 들어왔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