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강 형사가 운전을 하는 동안 조수석에 앉아있던 진기가 뒷좌석 찬수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팔로라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팔로는 원래 불교 사학을 공부하던 학승이었어. 덩치는 산 만해도 성정이 곱고 바른 사람이었네. 오래전 불교와 우리나라 토착 신앙의 관계를 연구한다며 나를 찾아왔지. 그때만 해도 나를 거사님이라 부르며 참으로 살갑던 사람이었는데. 마계불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모든 게 뒤틀어졌어."

"마계 불이란 게 뭐길래 그렇게 찾아 헤매는 거죠?"

"공식적인 기록은 남아있는 게 없어. 구전으로 떠도는 이야기가 있네. 조선 중기쯤이라던가, 불교를 부흥하기 시키겠다고 꿈을 꾸던 만륜이란 승려가 있었다네. 당시엔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하던 시절이었으니 수긍할 법도 하지만, 이 승려가 기행을 일삼는 미치광이라는 게 문제였지. 불법으로 사람을 교화시킬 생각을 한 게 아니라 힘으로 뜻을 이루려고 했던 거네. 아무튼, 이자가 직접 중국을 거쳐 인도까지 들어가 기이한 불상을 하나 얻어 왔다고 하네."

"그게 마계불이었겠군요."

"그래. 정통 불교도 아닌 사악한 밀교 집단의 불상이라고 하는데 일설에 따르면 도력 높은 200명의 승려를 강제로 소신공양을 시켜 그 법력을 불상에 담았다고 해. 말이 소신공양이지, 주술을 걸어놓고 사찰에 불을 지른 게야. 그러니 온전한 도력이 깃든 불상이겠나? 원혼들의 마력이 내재된 불상이라고 봐야 해."

"그래서, 그 미치광이 승려는 원하는 것을 이뤘나요?"

찬수는 뚱하게 진기를 바라보았다.

"그랬다면 우리나라에 난리가 났을 거고, 역사책 어딘가에 기록이 남지 않았겠나? 당시 법력이 높으신 선승 네 분이 계셨는데 사단을 예견하고 만륜이 돌아올 석성사에 미리 진을 치고 계셨던 거지. 실제 석성사에서 마계불의 힘이 이용됐는지는 모르겠어. 어쨌거나 미치광이 만륜은 결국 선승들에게 마계불을 빼앗긴 채 쫓겨난 후 얼마 안 가 죽었다고 하네."

"그럼 그 불상은 어떻게 됐나요?"

"네 선승이 함께 열반에 드셨는데 그때 석묘를 만드시고 함께 묻힌 걸로 전해오지. 선승께서는 마계불을 포함하여 자신들의 어떤 기록도 절대 남기지 말라는 유언을 하셨다고 하네."

"왜 그랬을까요? 큰일을 하신 건데 업적을 후대에 남기고 싶지 않을셨을까··· "

강건웅 형사가 룸미러로 찬수와 시선을 맞추며 물었다.

"바로 팔로 같은 자를 경계해서겠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들은 이미 인적이 뜸한 산길에 접어들었다.

"석성사 표식이 안 보이는데요?"

"그럴 게야. 지금은 절터만 남은 곳이니, 누가 표식을 달아 두겠나. 이 길로 좀 더 올라가게. 가다가 보면 내 다시 알려줄게."

"잘 납득이 안가는 게요. 비록 구전이라고는 해도 사람들에게 알려졌다면 마계불에 호기심을 갖거나 노리던 사람이 꽤 있지 않겠어요?"
듣기만 하던 은결이 고개를 갸웃하며 찬수에게 물었다.

"물론. 내가 그곳의 위치를 기억하는 것도 거기에서 일이 생겨 몇 번 다녀온 적이 있기 때문이지."

"어르신이요?"

"수년 전에 마계불을 찾아 나선 괴짜들 사이에 귀신을 봤네, 어쩌네 소동이 몇 번 있었어. 헌데 이상한 게 내가 한달음에 도착한 석성사에서는 마계불을 의심할 사악한 기운은 전혀 느끼지 못했거든."

"마계불과 애덤스 신부님의 은십자가가 무슨 관련이 있나요? 아까 무슨 방패와 검 이야길 하셨는데."

"무결의 방패와 충천의 검을 지닌 자만이 열 수 있다. 이 문장은 석성사에 관한 일본의 어느 고문서에 남아 있던 문구야. 왜란 후에 마계불에 대한 소문이 왜에게도 전해졌고, 그걸 얻으려고 몇 차례 시도했었던 무리가 어떤 단서를 남긴 모양이야.
종적을 감췄던 팔로 놈이 어느 날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나를 찾아왔지. 무슨 일을 당했는지 꼴이 말도 아니었어. 놈은 대뜸 이 문장이 적힌 고문서 사본을 내게 들이밀며 마계불을 얻을 방도를 알았다고 자신을 도와 달라더군. 그때 내가 크게 꾸짖어 내치고 더는 그놈을 보지 못했지. 그런데 불쑥 이렇게 다시 나타나 소동을 벌이고 다니는 걸 보면··· 자네 스승의 그 십자가 말이네. 왠지 무결의 방패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

"그렇다면 그 땡중이 마계불을 얻기 위해 애덤스 신부님의 십자가를 노렸다는 말인가요. 그럼 충천의 검은?"

은결이 물었다.
명기가 움찔 놀랐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고 차창 밖으로 얼굴을 돌렸다.

"글쎄, 생각해보면 이 학생 친구를 납치한 이유가 그것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네만··· 모르지."

룸미러로 진기와 명기의 눈이 또 마주쳤다. 명기는 확신했다. 팔로가 노리는 창천의 검. 그것은 틀림없는 위태천의 힘일 것이다.

일행이 차를 멈춘 곳에는 이미 택시가 주차되어 있었다. 수풀과 넝쿨이 뒤덮인, 농가조차 찾아보기 힘든 곳에 택시라니. 팔로가 이곳에 있는 게 틀림없다. 운전석에서 재빨리 내린 강 형사가 창을 통해 택시의 실내를 들여다보았다.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담 이미 올라간 모양이네. 우리도 서둘러야겠어."

우거진 수풀 사이로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 또렷했다. 성긴 잡초를 헤치며 완만한 언덕을 오르자 상부는 온데간데없고 기둥만 덜렁 남겨진 일주문이 나타났다. 멀지 않은 곳에서 실랑이하는 소리가 듬성하게 자란 나무들 저편에서 흘러나왔다.

"왜들 이러세요. 전 정말 명기가 아니란 말이에요!"

"어떻게 된 거야? 중만이. 얘가 정말 그 애가 맞아?"

"그럴 리가 없는데요. 확실히 705호에서 나오는 걸 보지 않았습니까?"

"어이. 당신들 거기서 애 데리고 뭐 하는 거야?"

강 형사의 굵직한 목소리가 황량한 절터를 흔들자 팔로 일행이 놀라 고개를 돌렸다.

"사람 살려요! 여기!  읍!"

팔로가 우악스러운 손으로 주빈의 입을 틀어막았다.

"이보게 팔로. 자넨가?."

찬수가 강형사의 앞으로 걸어 나오자 그를 알아본 팔로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구찬수? 거사님이 여긴 어쩐 일이우."

"긴가민가했는데 자네 진짜 일을 벌일 생각이었나. 그렇게 당하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건가!"

"흐흐흐 이번엔 진짜요. 거사님 다치기 싫으면 사람들 거둬서 얼른 내려가요. 내 옛정을 생각해 못 본 척 해 드릴게."

"땡중. 그 십자가 목걸이 어디서 난 거야? 애덤스 신부님을 쓰러뜨린 게 너지?"

이글거리는 눈으로 단숨에 뛰어나가려는 은결의 팔을 진기가 잡았다.

"어떻게들 알고 이렇게 단체로 몰려오셨나? 가까이 오지 마. 조금이라도 서툰 짓 하면 이 여자애가 위험할 거요."

"주빈아!"

"앗. 명기야!"

주빈이 팔로의 억센 손을 걷어내며 소리쳤다. 팔로와 중만이 어리둥절하게 둘을 번갈아 보았다.

'하늘이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는구나.'

진짜의 등장에 팔로의 입으로 야만스러운 미소가 어렸다.

"얘가 아니라 네가 명기로구나."

"주빈이를 보내줘요. 그 애는 아무 상관이 없는 애예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넌 뭔가를 알고 있는 눈치인데··· 그렇다면 네가 이쪽으로 오너라."

명기가 망설이는 사이, 강 형사가 다부진 어깨를 흔들며 앞으로 나아갔다. 팔로 옆의 중만이 잘 벼린 칼을 빼 들고 강 형사에게 보란 듯 흔들었다.

"그 계집애를 보내지 않으면 이 아이가 다친다."

"갈게요! 갈 테니까 주빈이를 이쪽으로 보내요."

말릴 틈도 없이 명기가 일행을 헤치고 팔로를 향해 타박타박 걸어 나왔다. 겁이 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위태천이 자신을 지킬 것이라는 묘한 안도감이 주빈을 대신해 인질이 될 용기를 끌어냈다. 그토록 떨쳐내고 싶던 신에게 자신을 맡기게 될 줄이야.
명기가 주빈이 서로의 손을 잡자, 팔로는 재빨리 주빈을 밀어 떨쳐내고 다가온 명기의 덜미를 움켜쥐었다. 중만은 칼을 명기의 목에 겨누어 다가오던 진기 일행의 동작을 묶었다. 주빈은 잔뜩 겁에 질린 눈으로 명기를 돌아보며 진기 일행에 합류했다.

"이제 뭘 어쩌겠다는 거지?"

찬수는 준엄한 얼굴로 팔로를 꾸짖듯 물었다.

"거사님은 아시지 않습니까. 이 팔로가 지난 십수 년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를. 오늘에서야 비로소 내 숙원이 이루어질 겁니다."

"이놈아. 네가 하려는 짓거리를 보고도 내가 순순히 물러갈 듯싶더냐?"

"방해를 하시겠다··· 이 팔로에게 제대로 한 번 당해 보시겠소? 지금의 나는 당신이 알던 그 팔로가 아니란 말이오."

"그간 뭘 하고 돌아다녔는지 몰라도 네놈이 나를?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 말아라."

"흐흐흐 두고 보면 알겠지요. 그간 내가 뭘 하고 다녔는지를."

팔로는 목에 걸고 있던 굵직한 염주 알 세 개를 차례로 짓눌러 깨뜨렸다. 사기구슬 염주알이 파삭 깨지며 잿빛 연기가 피어올랐다. 연기는 분말처럼 흙바닥으로 천천히 가라앉더니, 곧 지면으로부터 몽글몽글 뭉쳐 오르며 사람의 형상을 빚었다.

'환마술! 이놈이 송장까지 끌어모았구나.'

잿빛의 연기와 버무려진 흙은 곧 살이 썩어 문드러진 오래된 세 구의 송장이 되어 일어섰다. 팔로가 수인을 맺고 주문을 외자, 텅 빈 안공으로 퍼런 불이 일었다. 환마술을 다룰 정도면 술법이 상당한 수준에 오른 게 틀림없다.

'그놈. 허풍만은 아니었구먼.'

찬수의 표정에 긴장이 서렸다. 그는 선 자리에서 오른발을 뻗어 바닥에 문장을 그리더니 허리춤에 두르고 있던 색실을 풀러 일행의 바깥쪽으로 커다란 테를 둘렀다.

"다들 그 안에서 꼼짝하지 말어."

찬수와 진기만 성큼 발을 떼어 원 밖으로 나온 뒤 각자의 품에서 방울검과 금강저를 꺼내 들었다. 겁에 질려 눈을 똥그랗게 뜬 주빈이 은결의 팔에 얼굴을 묻었다. 은결이 그녀를 떼어내고 진기를 따라 나서려고 하자 강 형사가 고개를 흔들었다.

"우리는 방해만 돼. 두 사람에게 맡겨."

그들이 송장과 대치하는 사이, 팔로가 명기의 목덜미에 짧은 침을 찔러 넣었다. 명기도 주빈과 마찬가지로 눈이 돌아가며 감전된 사람처럼 몸을 움찔거렸다. 그녀는 곧 팔로와 중만이 이끄는 대로 좀비처럼 걸었다. 그들은 백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던 석묘 자리로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이미 땅을 파헤쳐 놓았는지, 흙 속에 있어야 할 석묘의 입구가 달빛에 훤하게 드러났다.

한쪽이 허물어진 통로를 지나자 둥글게 돔을 이룬 석실이 나타났다. 컴컴한 석실의 내부는 무덤 속이라는 사실을 환기하듯 음습하고 적요했다. 중만이 어둠 속에서 가방을 더듬어 초에 불을 붙였다. 벽으로 치렁치렁 내려앉은 거미줄에 매달렸던 수백 마리 거미들이 숨을 곳을 찾아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촛불에 실내는 흑백사진처럼 음영이 뚜렷했다. 석실 가운데에는 장방형의 석관이 놓여 있었는데, 두께가 10센티가량 되는 석판이 테이블의 상판처럼 견고하게 석관을 덮고 있었다. 중만이 메고 온 가방에서 커다란 쇠망치를 꺼냈다. 팔로는 염주와 함께 목에 걸린 묵직한 은십자가를 오른손으로 단단히 그러쥐고 중만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중만은 긴장으로 축축해진 손을 번갈아 바지에 닦으며 망치질을 주저했다.

"그런데, 위태천은 어떻게 소환하죠?"

"본인이 제일 잘 알겠지."

팔로가 목에서 침을 뽑자 지독한 가위에서 풀려난 듯 명기는 거친 숨을 토해냈다. 의식을 되찾은 그녀는 낯선 환경에 어리둥절하다가 곧 상황을 깨달았다.

"니가 그 유명한 명화주의 손녀로구나."

명기는 대답하지 않고 팔로를 노려보았다.

"너를 왜 데리고 왔는지 네가 더 잘 알겠지? 우리에겐 창천의 검, 위태천이 필요해."

"무슨 말씀 하시는 거예요?"

명기는 짐짓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팔로의 눈은 확신으로 가득 차 어쭙잖게 그를 속이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무슨 말인지는 네가 더 잘 알 텐데? 필요할 때 위태천을 소환해 준다면 무사히 보내주겠다."

"저는 위태천을 어떻게 부르는지 몰라요. 제 의지와 상관없이 멋대로 내려온단 말이에요."

"거짓말은 아닐 겁니다. 아직 신내림을 받은 게 아니니."

중만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거들었다.

"그럼 어떨 때, 위태천이 내려오든?"

"··· 모 몰라요. 정말이에요."

중만의 얼굴에 낭패감이 어렸다. 그러나 팔로의 표정에 동요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젠 어쩌죠? 당장 위태천의 힘이 없으면 우리도···"

"저 애가 정말 위태천에게 선택된 아이라면 반드시 오게 되어있다. 보자고. 이제 아우님은 뒤로 물러서시게."

팔로는 중만이 들고 있던 쇠망치를 빼앗아 석판을 힘껏 내리찍었다. '쩍' 소리와 함께 석관을 덮고 있던 석판이 네 갈래로 쪼개졌다. 팔로는 괴력으로 무거운 석판 조각을 사방으로 밀어냈다. 석관의 한 가운데 봉인부가 붙은 참나무 궤가 있었다. 어떻게 기어들어 갔는지, 손가락 마디만 한 거미 수백 마리가 석관 밖으로 줄행랑을 쳤다. 석관의 네 귀퉁이 겹겹이 거미줄로 뒤덮인 항아리들을 바라보는 팔로의 얼굴에 결기가 서렸다.

팔로는 궤에 붙은 부적을 거칠게 뜯어냈다. 순간 석관의 네 귀퉁이에 놓인 항아리에서 선승의 희뿌연 유혼이 불쑥 솟아올랐다. 항아리는 선승의 사리를 모신 사리함이었다. 명치께까지 늘어뜨린 수염이 성성한 네 명의 선승은 참으로 인자하고 안온한 모습이었지만, 그들이 눈을 치켜뜨는 순간, 사찰을 수호는 사천왕 같은 우락부락하고 살벌한 모습으로 변했다. 마계불을 탐하는 자에게 일말의 자비심조차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어지간한 일로 놀라지 않던 중만도 노기 어린 선승의 모습에 뒷걸음치려다가 다리가 접혀 주저앉았다.

"부정한 마음으로 세상을 어지럽히려는 자 반드시 멸하리라."

'어디 당신들 마음대로 되는지 두고 보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