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렇게 냉랭하던 모녀 관계가 완전한 파국을 맞은 건 이듬해 가을이었다. 천신대 내부에 마련된 강당에서 칼춤을 배우던 오선이 화주가 보는 앞에서 들고 있던 칼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춤을 지켜보던 한귀례와 조명신이 놀라 펄쩍 뛰었다. 화주는 차갑게 얼어붙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무슨 짓이냐."

"내가 왜 무당이 돼야 해? 난 싫어. 이런 거 정말 지긋지긋해!"

"칼을 집어라."

"싫어."

"집어."

"싫어. 왜? 말 안 들으면 나도 할머니처럼 저렇게 만들 거야?"
오선은 울먹이며 앉아 벌벌 떨고 있던 귀례를 가르쳤다.

"아가…무슨 말을."

"할머니도 바보 같애. 그렇게 당하면서 뭣 하러 여기 있어?"

화주는 오선의 뺨을 후려쳤다. 태어나 처음 손찌검을 받은 오선은 넋 나간 사람처럼 화주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화주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다시 명령했다.

"칼을 집어."

귀례는 더 있을 수 없어 명신의 부축을 받으며 조용히 강당을 빠져나갔다.

그날 새벽 오선은 등 뒤로 칼을 감추고 조용히 화주의 방문을 열었다. 퍼렇게 멍든 뺨 언저리가 아직도 얼얼한 듯 오선은 한 손으로 볼을 문질렀다. 어머니는 절대로 변하지 않을 사람이다. 어머니가 없어지지 않는 한, 그녀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런 삶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힌다. 
오선은 까치발을 들고 잠든 화주 곁으로 다가갔다. 칼을 든 손이 사정없이 떨렸다. 하마터면 떨어뜨릴 뻔 칼을 두 손으로 고쳐잡고 그녀는 굵은 침을 삼켰다.
그때였다. 자는 줄 알았던 화주가 눈을 감은 채 나직이 말했다.

"나를 죽이면 편해지겠냐? 어리석은 생각하지 마라. 너는 신을 위해 태어난 몸. 네 뜻대로 되는 게 아니란다."

화주가 눈을 부릅떴다. 
순간 오선의 눈이 뒤집어지며 돌처럼 뻣뻣하게 굳었다. 털끝만큼도 움직일 수 없었다. 머릿속은 백지처럼 하얗게 지워졌다. 몸이 불에 달군 듯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순간,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쏟아져 가슴을 다 헐어버리더니 곧바로 표현하기 불가능한 쾌락과 기쁨이 솟구쳤다. 환희는 곧 곤죽처럼 변해 뼈마디와 살점에 달라붙어 온몸을 잡아 뜯는 고통으로 변했다가 천천히 사라졌다. 
순식간에 몇천 년의 삶을 지낸 것처럼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인간임이 한없이 초라하고 수치스러워 견딜 수 없는 기이한 슬픔이 차고 넘쳐흘렀다.

"느껴지느냐? 지엄하신 위태천님이"
먼 산에서 울리는 메아리처럼 화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사람의 것 같지 않았다. 소리의 결 하나하나가 살을 저며낸다.
오선은 저릿한 공포와 함께 의식을 되찾았다. 그녀는 두려움에 몸서리를 치며 화주의 방을 빠져나왔다. 

그 일 이후, 화주는 중대 결심을 했다. 천신대에서 뱃길로 한 시간 떨어진 무인도에 거처를 마련한 후, 오선과 귀례를 무인도로 보내버린 것이다.
오선은 화주의 독단적 결정에 거칠게 반항했지만, 생각을 바꿨는지 떠나는 배에 순순히 몸을 실었다. 일단 명화주의 시야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였다. 친할머니 같은 귀례가 함께 가고, 명신도 일주일에 한 번씩 식량과 생필품을 가지고 섬을 드나든다고 하니 그럭저럭 살만할 것이다. 어차피 천신대에 있어도 고립되어 살긴 마찬가지가 아니었던가. 오선은 섬으로 향하는 뱃전에서 편안한 얼굴로 바닷바람을 맞았다.

명화주가 그녀를 포기한 것일까? 아니다. 화주는 알고 있었다. 오선의 나이 꼭 스물이 되는 날.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신의 강림을 받게 된다는 것을. 자신처럼 무당이 되어 필요할 때만 선택받는 게 아닌, 오선과 위태천이 일체를 이룬다는 것을.
그때까지 부정 타지 않게 사람과의 접촉을 원천 봉쇄하는 감금이야말로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선택일 것이다. 비록 그것이 딸의 소망을 철저하게 무시한 선택이라고 할지라도.

그렇게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천신단의 교세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커졌다. 남해 일대에서는 천신단의 입김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그 위세가 대단했다. 천신단의 요직에는 경찰 간부, 대학교수, 의사 등 소위 엘리트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즐비했고 대천모를 신봉하는 그들은 천신단을 단단한 조직으로 만드는데 필드에서 자신들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했다.

섬은 사정이 달랐다. 오선은 그곳에서 하루가 다르게 피폐해졌다. 삶의 의미를 잃었고, 불현듯 찾아드는 신기에 경기를 일으켰다. 사람으로 나고 자라 가장 아름다울 나이였기에, 운명의 무게는 더 가혹하게 느껴졌을 터. 귀례는 손녀 같은 그녀가 그렇게 스러져가는 것을 바라보는 게 고통스러웠다. 
섬에 갇히고부터 귀례는 화주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모질게 굴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녀가 모시는 신은 자연의 질서 안에서 사람을 이롭게 하는 분이었다. 하지만 화주가 위태천을 모시고부터 신은 오로지 굴종을 강요하는 두려운 존재가 되고 말았다. 그것도 모자라 저렇게 예쁘고 여린 아이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신이라면….

신에게 의심을 품는 것이 무녀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녀가 모를 리 없다. 천벌. 천벌을 받겠지. 이제 살날이 얼마나 남았다고 생에 집착하겠는가. 오선의 행복한 모습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 사람답게 사는 모습을 한번 볼 수 있다면 죄책감에 괴롭던 긴 시간을 일시에 씻어버릴 수 있을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 대가가 천벌이라면 기꺼이 받고 말겠다. 귀례는 오선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 무릎을 끌어 맞은편에 앉은 명신에게 바싹 다가갔다. 그녀의 바람을 들은 명신은 펄쩍 뛰다가 오선을 보고 소리를 죽였다.

"엄마 미쳤어?"

"……너를 믿으니까 하는 말이야."

"대천모님이 어떤 사람인지 그렇게 당하고도 몰라요?"

"오선이가 스물이 되기 전에 나쁜 마음 먹을까 나는 너무 무섭다."

"오선이를 뭍으로 데리고 나가는 순간 엄마는 물론 나까지 죽어요."

"대천모님이 너는 신뢰하니, 모든 걸 내가 한 것으로 꾸미고…. 방법을 좀 찾아봐 줄 수는 없겠니?"

"몰라! 못 들은 것으로 할 테니 두 번 다시 내 앞에서 그런 소리 입에 담지 말아요."

명신의 눈에 눈물이 왈칵 고였다. 귀례의 마음을 몰라서 한 말은 아니었다. 명신도 오선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졌다. 태어나서부터 젖만 물리지 않았을 뿐이지, 기저귀 갈고 머리 땋아주며 딸처럼 키웠던 오선이 아닌가. 그녀에게 자유를 줄 방법이 있었다면, 귀례가 모진 생각을 하기 전 아마 자신이 먼저 나섰을 것이다.

"이 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마다 천지신명께 치성을 드렸다. 죽기 전에 한 번만이라도 내 기원이 멀리 가신 신령님께 닿을 수 있었으면…"

"엄마. 내가 방법을 찾을 때까지 괜히 딴생각 먹지 마세요."

귀례가 물끄럼한 눈으로 명신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화주를 만나 잃어버렸던 것들이 이제야 조금씩 보이는가. 친딸이면서도 신을 모시느라 돌보지 못했던 진짜 혈육. 그 아이가 지금 눈물을 훔치며 자신의 안위에 마음을 졸이고 있다.

명신이 하룻밤을 보내고 돌아간 다음 날, 늦은 아침 귀례와 오선은 섬의 작은 해변을 말없이 걸었다. 식사를 마치면 으레 운동 삼아 걷는 코스지만 명신이 다녀간 후, 오선은 이불을 뭉개면서 한사코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았다. 혹여 지난 밤 모녀의 이야기를 엿들었을까. 혼자 두는 게 불안하여 싫다는 그녀를 강제로 끌다시피 데리고 나온 터였다.

아침 내내 짙었던 구름이 걷히며 햇볕이 수면과 모래사장으로 눈부시게 떨어졌다. 오선은 멀찍한 수면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녀가 보는 것은 절망일까. 아니면 그 너머에 있을지도 모를 티끌 같은 희망이었을까. 아니었다. 귀례는 깜짝 놀라 눈을 문지르고 오선과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낯선 배 한 척이 섬을 향해 둥실둥실 밀려오고 있었다.

"여기도 사람이 사네요?"

우연호가 모래로 뛰어내리며 그들에게 인사했다. 오선은 놀라 귀례의 등 뒤로 숨었고, 귀례역시 불편한 몸을 꼿꼿이 세워 오선을 가렸다. 곧이어 작은 통통배의 엔진을 끄고 연호의 선배인 길창준도 모래밭에 섰다. 그들의 가슴엔 보기에도 묵직한 수동 카메라가 하나씩 걸려 있었다.

"창준이 형. 여기 무인도라고 안 했어요?"

"어. 그런데 사람들이 계시네. 안녕하세요?"
창준은 벙거지 같은 모자를 벗고 귀례를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뉘시오 들?"

"아. 예. 저희는 사진학과에 다니는 대학생인데, 예전에 이쪽에 근사한 무인도가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배를 빌려 온 건데…."

"여기는 지금 주인이 있는 섬이니 얼른들 나가시우."

귀례가 경계의 빛을 풀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 두 사람은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면서 난처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 예. 죄송합니다. 그런데 저희가 이곳 사진을 찍으려고 서울서 어렵게 내려왔거든요.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사진만 조금 찍다 가면 안 될까요?"

"그러세요. 괜찮죠. 할머니?"

오선이었다. 그녀가 선뜻 앞으로 나서며 손사래를 치려던 귀례의 팔목을 잡았다. 귀례는 놀란 눈으로 오선을 보았다. 호기심. 반가움. 설렘. 완전하게 사라졌다고 믿었던 생기가 지금 그녀의 눈 속에서 무섭게 움트는 게 보였다. 귀례는 가슴이 털컥 내려앉았다.

'이건가? 내 기도에 응답하신 걸까.'

그녀는 급작스러운 현기증에 하마터면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연호가 불편한 그녀의 몸을 눈치채고 성큼성큼 다가와 귀례를 부축했다.

"할머니, 괜찮으세요?"

오선의 안내로 그들은 섬을 돌며 사진을 찍었다. 셔터를 누르는데 정신이 팔린 창준과는 달리, 연호는 뷰파인더로 보이는 숲과 바다가 조악한 그림처럼 보였다. 처음 귀례 뒤로 숨던 오선을 본 순간부터 그는 떨리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했다. 
섬에 온 목적은 잊은 지 오래고 순례나 창준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온 신경은 오직 오선만을 향하고 있었다. 풍경을 담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던 뷰 파인더는 사실 사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멀찌감치 물러선 그녀 언저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본능적으로 끌린다는 말은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인가. 오선도 연호가 싫지 않은 눈치였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점심때가 되어 귀례가 다리를 자춤거리며 언덕으로 올라왔다. 창준이 가방에 넣어온 필름 8통을 다 쓰는 동안 연호는 처음 넣은 필름 한 통도 소진하지 못했다는 것을 오선의 집에 도착해서 알았다.

"음식이 정말 맛있어요. 여기서 이렇게 맛있는 점심을 먹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너스레를 떠는 창준과는 달리 연호는 심란한 마음에 음식을 목으로 넘기기 힘들었다. 살면서 이렇게 지속적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던 적이 있던가. 오선과 함께 있는 일분일초의 시간이 소중한데, 그 소중함의 무게가 마음을 이렇게 짓누른다. 
애가 탔다. 곧 헤어져야 하는 시간이 올 것이고, 그렇다면 자신은 미련 없이 섬을 떠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다. 그럴 수 없다. 생떼를 부리고 싶은 아이처첨 연호는 울고 싶어졌다. 식사가 끝나자마자 사진을 찍기 위해 부리나케 일어나는 창준과 달리 연호는 마루에 앉아 엉덩이를 뭉그적거렸다. 그것을 간파했을까. 귀례의 눈이 번쩍 빛났다.

"자네 나랑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네?"

연호가 엉거주춤하게 귀례와 창준을 번갈아 보았다. 창준은 초조하게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그는 연호의 망설임을 이해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카메라를 들고 혼자 언덕으로 향했다. 그가 멀찌감치 사라질 때까지 마당으로 긴 침묵이 흘렀다. 오선 역시 귀례가 무슨 말을 하려고 그를 잡았는지 알 수 없어 연호만큼 초조한 눈으로 귀례를 바라보았다.

"우리 오선이를 좀 도와주시게."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자네가 이곳에 온걸 난 신령님의 응답이라고 믿네. 제발 우리 오선이를 도와주시게."

귀례는 연호의 손을 덥석 움켜잡았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오선의 운명에 대해 구구절절 털어놓기 시작했다. 
연호는 혼란스러웠다. 귀례의 황당한 이야기를 과연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설령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고 해도 자신이 오선을 지켜줄 수 있을 것인가. 20대의 그가 감당하기에 귀례의 부탁은 너무 버거웠다. 그는 긴 침묵 끝에 낮은 신음을 뱉았다. 오선이 연호 옆에 무릎을 꿇고 그의 팔을 콱 움켜잡았다. 그녀의 그렁그렁하던 눈물이 마룻바닥으로 후두두 떨어졌다.

"오빠. 부탁이에요. 저를 데려가 주세요. 이곳만 아니면 돼요. 제발 저를…."

흐느끼던 오선이 연호의 무릎 위로 무너지며 서럽게 엉엉 울기 시작했다. 연호는 그녀의 눈물에 옷이 촉촉해지는 것을 느꼈다. 가슴이 울렁거렸다. 합리적 사고 따위가 중요한 것인가. 가슴을 그토록 떨게 했던 그녀가 지금 품에서 이토록 서럽게 울고 있는데.
자신만이 오선을 이 수렁에서 구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곧 확신으로 변했다.

'운명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운명적인 만남이란 이런 것이구나.'
연호는 천천히 손을 뻗어 오선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그녀의 눈물을 훔쳐주었다.

"내가 지켜줄게. 걱정 말아요."

섬 뒤로 불타는 노을이 걸렸고 오선의 짐 가방을 든 연호가 뱃머리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로맨스보다 현실적 걱정이 앞선 선배 창준은 시동을 걸며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해변을 훑고 간 파도 자국을 경계로 마주 선 오선과 귀례는 말없이 한동안 서로를 껴안았다. 
이것이 마지막이 될 거라는 두려움이 그들의 말문을 막았던가. 차가운 파도가 두 사람의 발목을 핥고 지나간 후에야 마침내 귀례는 몸을 물려 오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이 가라. 아가. 잘 살아라. 니 에미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가서 행복하게 살아라. 꼭 행복하게."

"할머니……."

오선의 눈물을 묵묵히 닦아주는 귀례의 주름진 얼굴로도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꼭 지켜달라는 당부의 눈빛을 받은 연호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귀례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배는 곧 출발했고, 노을이 놓은 불에 타들어 가듯 점점 검어지고 작아졌다. 오선은 선미에 걸터앉아 다시는 볼 수 없을 귀례와 섬을 두 눈에 새겼다. 
연호는 그 광경이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워 자신도 모르게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오선이 다가와 바람에 날리는 머리를 연호의 가슴에 묻었다. 수평의 경계에 가까스로 걸렸던 빛이 사라질 무렵, 섬도 그들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