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기는 오늘도 횡단보도 앞에서  파란불이 다할때까지 건너편 편의점을 바라보았다.

편의점 통유리벽 앞에 코를 박고 서서 실내를 들여다보는 사내를 지켜보고 있기때문이다.오십 가까이 되어보이는 남루한 차림의 사내는 고개를 돌려 건너편 진기를 노려본다.

그의 눈빛으로 일렁이는 원망과 두려움이 여과없이 드러난다. 진기가 미동없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는 천천히 걸음을 돌려 길모퉁이로 사라졌다. 그제야 진기는 다음 파란신호를 기다려 횡단보도를 건넜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아저씨. 오늘은 가을 날씨같아요."

"그러게. 아침 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해졌지?." 

진기는 편의점 주인 조진영과 인사를 나눈 후 즉석식품 코너로 갔다. 컵라면과 새벽에 먹을 간식거리 몇가지를 계산한 후 창가에 비치된 간이 의자에 앉았다. 라면을 먹는동안, 여고생 두명이 깔깔거리며 편의점으로 들어왔다. 

"명기 너 뭐 마실래?" 

"나? 왜 니가 쏠거야? 그럼 난 식혜."

"으이그, 촌년. 입맛도 꼭 지를 닮았어요."

"야. 임주빈. 넌 뭐 마실껀데? 얼마나 고상한거 마시는지 지켜보겠어."

둘은 키득거리며 음료수를 계산하고 총총 편의점을 나섰다. 
'좋을 때다.' 
진기는 픽 웃으며 라면 국물을 한모금 들이켰다.

손님이 더는 없자 진영도 카운터 안쪽의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편의점 바깥 세상에 멍한 눈을 던졌다. 진기는 바닥으로 잘박하게 남은 국물을 털어버리고 빈 용기를 재활용 쓰레기통에 넣은 후 계산대로 다가갔다.

"요즘 무슨 고민있으세요? 안색이 안좋아보이시네요."

"아니, 고민은 무슨. 그냥 피곤해서 그런거지."
진영은 헛헛한 웃음을 지었지만 눈가의 주름은 입을 따라 웃지 않았다.

"이상하게 하루에 몇번씩 가슴이 답답해지네.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것 같기도하고. 나이탓이야 나이. 항상 조심해야지 뭐."

"네. 그럼 수고하세요." 
진기는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고 편의점을 나섰다. 입구를 나선 진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계산대에 앉은 진영을 돌아 보았다.

다음날 저녁 진기는 같은 자리에서 여전히 편의점 유리벽에 코를 묻고 안을 들여다보는 사내를 보았다. 유심히 지켜보지 않았을 뿐이지, 그는 어쩌면 훨씬 오래전 부터 그자리에서 같은 짓을 되풀이했는지 모른다. 
확실한 것은 진기와 눈이 마주치면 그가 조용히 자리를 물린다는 것. 자신을 제외하곤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 편의점에 들락이는 손님들, 심지어 편의점 주인 진영조차 유리창에 코를 박고 안을 들여다 보는 그를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진기는 편의점에 들어가 온장고에서 캔커피를 꺼내 계산대앞에 섰다. 그가 다가오는걸 몰랐는지, 진영은 고개를 수그리고 양손으로 머리를 움켜쥔 채 앉아있었다.

"괜찮으세요 아저씨?"

"어? 어. 언제왔어? 괜찮아. 머리가 좀 지끈 거려서."

"무슨….안좋은 일이 있으셨죠? 요몇일 얼굴이 많이 안좋으세요." 

진기는 바코드를 찍은 후 커피를 건네받으며 조심스럽게 궁금증을 내비췄다. 단골이라 속을 좀 털어내도 되겠다 싶었던지, 진영은 한숨을 한번 쉬더니 입을 열었다.

"얼마 전 친구 놈 하나가 저 세상으로 갔어."

"아….." 
진기는 흘낏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유리벽에 붙어있던 사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자살을 했어. 지지리 못난놈. 살날이 얼마나 창창한데." 

진영은 슬픔보다는 자책. 자책보다는 노기에 가까운 표정으로 시시각각 얼굴을 바꾸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아저씨 상심이 크셨겠어요."

"아니! 잘 죽었는지 모르지. 살아갈 용기가 없는 놈은 세상에 폐가 안되게 일찍 뒈지는게 나을지도 몰라."

진기는 순간 오싹함을 느꼈다. 유리벽을 돌아본 순간, 얼굴이 시뻘겋게 변한 그 사내가 유리벽을 뚫고 들어올듯 바짝 붙어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진기가 엉거주춤 문을향해 몸을 돌리자 사내는 이내 어둠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진영은 진기가 이야기를 불편해하는줄 알고 겸연쩍게 말했다.

"내가 쓸데없는 소리를 했네. 미안해."

"아니에요. 아니에요. 언제 한가하실 때 저랑 소주나 한잔해요 아저씨." 

진기는 손사래를 치며 무안해하는 그를 달랬다. 진영은 고마운지 그를 향해 벙긋 웃어보였다. 편의점을 나와 건너편 3단지 아파트 입구로 들어갔다. 단지를 가로질러 집로 향하던 진기는 마음에 걸리는게 있는지 빠르게 다시 입구로 내려왔다. 그는 밖으로 나가지 않고 철제펜스의 그늘에 숨어 건너편 편의점을 훔쳐 보았다. 

예상했던대로 붉은 얼굴의 사내는 다시 유리벽면에 붙어 서 있었다. 진기는 잠시 눈을 감고 펜스의 콘크리트 기둥에 뒤통수를 통통 부딪쳤다. 굳이 부탁받지도 않은 일에 끼어드는게 옳은지 판단이 서지 않은 탓이다. 짧은 생각끝에 마음을 정했는지 그는 단지 밖으로 나가는 대신, 4단지로 이어지는 보행로를 따라 달렸다. 4단지 출입구로 나가면 사내가 늘상 사라지던 골목의 반대편으로 닿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한 것이다.

진기의 예측은 맞았다. 사내가 사라지는 골목안에서 다시 갈라지는 샛길 모퉁이에 숨어 기척을 죽인지 삼십 여분 지났을까, 마침내 그가 골목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오는게 보였다. 그는 창백한 얼굴로 정체모를 소리를 우물거리며 골목안을 이리저리 배회했다.

갓 스물쯤 되 보이는 청년 하나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골목으로 들어섰다. 사내는 청년을 아는지 반가운 얼굴로 그의 곁에 바짝 붙어섰다. 그리고 청년의 귀에 얼굴을 바짝대고 뭐라고 요란하게 떠들었다.무슨 이야기를 한 것일까, 진기는 청년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그러나 말을 듣기는 커녕 청년은 그의 존재조차 알아채지 못한 눈치다. 청년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 유유히 골목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인적이 사라지자 사내는 또 혼자 웅얼웅얼 우는소리를 하며 골목을 걸었다. 진기가 모퉁이에서 나와 그를 불렀다.

"거기 아저씨. 편의점을 들여다보던 분 맞으시죠?"

사내는 눈을 크게 뜨고 진기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터질듯한  붉은색으로 바뀌더니 진기를 향해 죽일듯이 달려왔다. 진기는 침을 꼴깍 삼키며 수호부가 들어있는 뒷주머니를 툭툭 만졌다. 손톱을 바짝 세우고 달려들던 사내는 그를 건드리지 못하고 하늘로 솟구쳤다가 바닥으로 내려왔다.

"너는 내가 보이지?"

"네. 보입니다. 똑똑히 보여요."

"가까이 오지마! 너는…뭔가 달라. 너는 사람이냐?" 
사내는 진기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오들오들 떨었다.

"아저씨. 자살하신 친구분 맞죠? 저 앞 편의점의... 사정은 모르겠지만 이제 훔쳐보는 짓은 그만두시죠."

"자살? 자살이라고?" 

자살이라는 말에 흥분한듯 울그락 불그락 그의 얼굴색이 요란하게 변했다.

"그새끼가 그렇게 말하던가. 자살이라고? 아니야! 그 자식이 날 죽인거야! 그자식이 날 죽였다고!!"

'무슨 말이지? 자살한 것이 아니란 말인가!'
그렇다면 편의점 아저씨가 친구를 살해했다는 건가. 진기는 망치로 얻어맞은듯 머리가 띵 울렸다.

"그놈은 반드시 내가 죽일꺼야.반드시 내가 죽일꺼야!" 

분노에 골목 이곳저곳을 미쳐 날뛰던 사내는 메아리만 남긴채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진기는 사내의 말에 휘둘려 그를 소멸시킬 좋은 타이밍을 놓쳤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편의점 주인이 정말 그를 살해한거라면 어떻게하지? 경찰에 신고를 해야하는걸까. 믿음의 추는 귀신쪽으로 기울었다. 망자는 적어도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진기는 소주병을 들어 공손하게 진영의 빈 술잔을 채웠다. 
진영은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혼자 소주 두 병을 비웠다. 술이 줄어드는만큼 그의 눈도 게슴츠레 풀어졌다. 그는 공허한 눈을 들어 4차선 도로 건너 자신의 편의점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알바생이 일을 잘하는지를 확인하는것인지, 아니면 죽은 친구라는 그 사내의 잔영이 보이는건지 진기는 알 수 없었다. 
사건의 실체를 추궁할 마음은 없다. 어설픈 개입이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또다른 원망을 낳을수도 있으니까. 이유야 어떻든 산 사람은 살아야하고, 구천을 떠도는 이는 잘 설득해서 보내야 하지 않을까. 망자의 억울함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참회. 진영으로부터 참회의 마음을 끌어내는게 오늘 그와 함께 술을 먹는 진짜 이유였다.

"내가 죽였어."

"네?" 
진기는 뜬금없이 튀어나온 진영의 고백에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그놈. 병수 말이야. 내가 죽인거나 마찬가지야."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참 대책없는 놈이었지… 평생을 나한테 빌붙어 살았어 그자식. 고아였던 나를 아들처럼 키워주신 병수 부모님 얼굴을 봐서라도 병수 그놈한테 잘할수 밖에 없었어. 

천성이 나쁜 놈은 아니었는데… 진짜 친구라면 서로에게 모든걸 다 해줘야 한다고 믿었던 아둔한 놈이었지. 젊고 혈기왕성했을때야 우정을 위해 뭔들 못했겠나. 그놈도 나도 서로한테 그렇게 극진했지. 

하지만 인생이란게 어디 그런가. 결혼을 하고 내가 책임져야할 살붙이들이 생겼는데도 놈은 변함이 없었지. 내가 변했다고 서운해하며 그 빌어먹을 진짜 우정을 강요하는 놈이 부담스웠어. 돈 빌려줘, 보증도 서 줘, 내 살 깍아 주면서도 싫은소리 한 번 한적 없어. 그래도 철들면 이런 내 희생을 알아 줄거라고 철썩같이 믿었지. 

그런데 달라지는게 없더군. 끝이 없었어. 당장 내 코가 석잔데 그놈의 우는 소리먼저 들어줘야했던 내속이 어땠는지 그놈이 알기나했을까? 그것도 모르고 또 손을 벌리는 놈이 진짜 친구고 ,그런게 그놈이 말한 진짜 우정인가? 니미럴!" 

진영은  진기가 따라 준 술잔 대신 병을 들어 소주를 벌컥벌컥 목구멍으로 들이부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맹세코 마지막 이라더군. 이번 사업에 자신의 목숨을 걸었다고 마지막으로 딱 한번만 더 도와달라고. 그놈이 알았을까 내가 전세금 때문에 대출을 받아놓은걸. 
태어나서 처음으로 불같이 화를 냈지. 내가 할 수 있는 욕이란 욕은 그날 다했을꺼야 아마. 난 그놈이 정말 악마같았어. 파멸의 구렁텅이로 떨어질거면 저혼자 떨어질 것이지, 기어코 나까지 끌고 들어가려는…. 가서 뒈지라고 했어. 뒈지든 말든 이제 정말 끝이라고. 
병수 그놈. 그렇게 절망적인 얼굴은 그때 처음봤어. 터질듯 얼굴이 씨뻘개져가지고 뭐라고 말도 못하고 벌벌 떨더니 나가더군."

진기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포장으로 축 늘어진 진영의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그놈이 다녀간 날 밤에 녀석한테 문자가 왔어. 남은거 다 정리하고 얼마 안되지만 빌린돈 조금이라도 갚고 죽겠다고. 어릴 때 자주 가서 놀던 동네 야산이있어. 우리가 살던 집 골목을 쭉 따라 끝가지 가면 산의 초입이 나오지. 
그 앞에서 길이 갈라지는데, 오른쪽으로 가면 전봇대 근처에 묻어둔 돈 가방을 찾을거고 왼쪽으로 가면 전봇대에 목을 메단 자신을 발견할 거라고." 

취기 때문인지, 아니면 기억 때문인지, 진영의 얼굴에 노기가 서렸다. 관자놀이의 정맥이 불뚝 움직였다.

"목숨 가지고 우정을 시험해? 미친 새끼! 정신없이 차를 몰아 그곳으로 갔지. 아무리 미운 놈이라고해도 죽는다는데 어떻게 안 갈수가 있냐 말이야. 갈림길에서 볼것도 없이 왼쪽을 향해 달렸어. 
혹시라도 벌써 죽었으면 어쩌나 싶어서. 피가 마르더군. 그렇게 숨이 차 오는데도 쌍욕이 튀어나오더라. 욕뿐만 아니었어. 달리는데 자꾸 시야가 흐려져. 눈물이 콸콸 쏟아지더라구. 혹시 이새끼 진짜 죽으면 어쩌나 싶어서."

"너무….늦으셨나요?" 

진기가 결론을 알고 있다는듯 말했다. 진영은 정색하고 붉게 충혈된 눈으로 진기를 바라보았다.

"없더라구. 도착한 전봇대에 그놈이 없어. 혹시 다음 전봇대를 의미하나 싶어 또 뛰었지. 거기도 없더라구."

"그럼 혹시 오른쪽 길 전봇대쪽에….?"

"내가 그놈을…… 뒈졌는데도 아직 저주하는 이유가 뭔지 아나?"

"……."

"다음날 놈의 시체가 발견됐다고 연락을 받았어. 그런데 그놈 목을 매단 곳이 갈림길 중간이 보이는 야산 중턱이었어. 무슨 뜻인지 알겠어? 이놈은 애초부터  나를 갖고 놀 생각이었던거야. 
그렇게 평생 우정을 떠들었으면서도 내가 돈을 향해갈지, 자기를 향해 갈지 내가 오는걸 가운데 숨어서 지켜본거야. 그런 놈을 나는! 끝까지 친구랍시고!"

둘은 새벽2시가 되어서 포장마차에서 나왔다. 진기가 부축을 하는데도 그는 팔을 뿌리치며 비틀비틀 자신의 편의점쪽으로 걸어갔다. 진기는 그가 넘어지지는 않을까 한동안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진영이 걸음을 멈추고 진기를 향해 몸을 돌렸다.

"웃기지도 않지…원하는대로 달려갔는데 왜 약속을 어기고 죽었을까. 이해할 수가 없었어. 녀석이 가고 몇일 후에 놈이 목을 매단 곳에 갔다가 보았지. 
그놈이 섰던 자리에서 바라보면 내가 달려간 방향이 오른쪽인거 아나? 돈을 찾아 정신없이 달렸다고 생각했겠지 멍청한 새끼. 죽어 마땅한 새끼…"

그것은 우정이었을까, 아니면 집착이었으까. 원한은 그런것이다. 믿는것이 사실이되고, 사실이 되었기에 그것을 다시 믿는다. 진기는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밤바람이 제법 차가와졌다. 추운것은 비단 바람 때문만은 아닐것이다.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는 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