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제웅인형이다!'

솜털들이 파르르 일어선다. 사람의 형상을 본떠 짚으로 거칠게 엮은 그 흉물은 머리 부분만 삼베로 싸놓았는데 정수리 위치에 까만 피 얼룩이 선명했다.

"너 하나 죽이는 거야 일도 아니지만, 내게 특별히 득 될 것도 없지."
그는 천천히 진기 주변을 돌면서 말을 이었다.

"보아하니 눈치도 제법 빠르고 영기도 총명한 것 같아 널 내 제자로 거둬주려 한다. 네가 기수 놈을 대신하면 좋겠구나."

"제자? 내가 그것을 허락할 것 같나?"

"그놈 보기보다 강단 있네. 그것도 마음에 든다. 하지만 그건 네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란다."

도승은 제웅의 머리를 싸고 있던 삼베를 벗겨내 촛불 위로 던졌다. 불이 붙은 삼베조각은 역한 냄새와 함께 새까만 그을음이 일다가 '퍽' 불이 붙었다.

'조혼술?'
틀림없다. 동굴에서 본 제자 배기수의 모습은 영락없이 혼을 조종당하는 허수아비였다. 이거 위험하다.

"내 몸에 손가락 하나 댈 생각하지 마. 가만두지 않겠어."

그때, 신당 밖에서 어수선한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문가로 뛰어 올라와 조용히 섰다.

"도승님. 죄송합니다만 워낙 급한 일이라..."
동중의 목소리였다.

"내가 부를 때 까지 올라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기수가 갑자기 쓰러졌는데 의식이 없습니다."

도승은 소리 없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알았다. 됐으니 물러가라."

"하지만... 119를 부를까요?"

"됐다. 그냥 방에다 눕혀놓아라. 내 일을 마치는 대로 내려가 보마."

"알겠습니다."

소란스럽던 밖은 동중이 물러나자 다시 쥐죽은 듯 고요를 되찾았다.

"쓰잘떼기 없이 밥만 축내는 놈. 진즉에 뒈졌어야 할 목숨. 저놈이 실패하지만 않았어도 이 고생을 안 하는 건데."

중얼거리던 도승의 눈이 진기를 향했다. 교활한 그의 웃음에 진기는 숨이 턱 막혔다. 도승은 깨끗한 삼베와 동굴에서 썼던 피 녹이 달라붙은 단검을 양손에 들고 진기를 향해 다가왔다.

"안돼!"

진기는 사력을 다해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웬일일까. 언제 주술을 걸었는지 몸은 의지와 달리 썩은 나무처럼 뻣뻣하게 바닥으로 쓰러졌다.

"말했잖느냐. 네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도승은 무릎을 굽혀 쓰러진 그의 등을 찍어누르고 뒤통수에 칼을 들이밀어 머리카락 몇 올을 끊었다.

"이건 됐고...."

"내몸에 손대지 마!"

도승은 다시 칼을 진기의 목덜미로 가져갔다. 차가운 칼끝이 목에 닿는 순간 진기는 이를 악물었다. 눈앞으로 선영의 얼굴이 섬광처럼 지나갔다.
그때, 밖에서 다시 어수선한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도승은 흔들림 없이 칼끝으로 진기의 목 주위를 살살 간질이며 낮은 주문을 외웠다.

"대권대지엄 천중용왕봉호. 용왕신이시여. 여기 천노의 영혼을 가두어 봉헌하노니, 위대하고 무궁한 영권에 미력이나마 보태게 허락합소서."

차가운 칼끝은 진기의 뒤통수 아문혈 자리에서 멈춘 뒤, 피를 받기위해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으으음!"
도승의 입술 사이로 짓눌린 신음이 비어져 나왔다. 칼을 내리누르는 그의 손등으로 푸른 정맥이 파다파닥 돋았지만, 칼끝은 진기의 피부와 1밀리미터의 거리에서 마치 자석이 반대 극을 밀어내듯 그의 살가죽에 닿기를 강력하게 거부했다.

"뭐야. 이 새끼 이거…"

도승은 당황했지만, 어거지를 부리듯 두 손으로 칼을 고쳐 쥐고 누르기 시작했다. 목을 살짝 찔러 피를 얻을 셈이었다. 삼베를 적실 정도면 충분하다. 그런데 도무지 칼이 들어가지 않는다. 관자놀이로 핏줄이 불거지며 도승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제자고 나발이고, 죽여버린다!"

도승이 칼을 높이 들었다가 있는 힘을 다해 진기의 목을 찍었다.

"쨍!"
칼은 허공으로 튕겨 날아가 산신도가 그려진 벽면에 박혔다. 도승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진기와 벽에 박힌 검을 번갈아 보았다.

"너….너 뭐야 이 새끼"

그의 볼이 경련으로 파르르 떨렸다. 그때, 문이 양쪽으로 왈칵 열리며 쩌렁쩌렁한 사자후가 신당을 통째로 흔들었다.

"이노~옴!"

혼비백산한 도승은 엉덩방아를 찧고 앉아 버선발을 버둥거렸다. 한복 바짓자락을 날리며 구찬수가 거침없이 들어섰다.

"괜찮은 거냐?"

"크흐흐. 괜찮아 보이나요?"
바닥에 볼이 눌린 채 진기는 희미하게 웃었다.

"미련한 놈…. 어째 이렇게 조심성이 없을까!"

"여기 있는지 어떻게 알고 오신 거에요?"

"내비개손이라고 했잖느냐.껄껄"

짓궂게 웃는 찬수의 손에 진기에게 줬던 것과 쌍을 이루는 향나무 조각이 들려 있었다. 필요할 때 가야 할 곳을 알려준다는 말은 찬수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였던가. 마당으로 도승의 제자들이 우르르 몰려드는 소리가 들렸다. 찬수가 오긴 했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설마 혼자?' 불안함이 다시 진기의 마음을 죄어올 때, 불쑥 낯선 얼굴 하나가 열린 문으로 들어왔다. 짧은 스포츠머리에 짙고 강직한 눈썹. 벌어진 어깨가 꽉 물린 가죽점퍼 차림의, 진기는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그의 시선이 쓰러진 진기에게 잠깐 머물다가 찬수에게로 향했다.

"어르신. 괜찮으시죠?"

"어이 강 형사. 내 걱정은 말고 밖에 애들이나 좀 단속해줘. 여기는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하고."

강 형사라고 불린 사내는 미소라고 말하기엔 부족한, 입 끝을 씰룩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밖에서 문을 닫아걸었다. 곧이어 문간으로 몰려든 도승의 제자들과 실랑이 벌이는 소리가 들렸다.

"너 뭐 하는 새끼야?"

"나? 형사질 하는 새끼다. 그러는 넌 뭐 하는 새낀데?"

"짭새라고 겁먹을 줄 알았냐? 뒈지고 싶지 않으면 당장 거기서 내려와라."

"후회할 거다."

강 형사가 댓돌을 딛는 소리와 동시에 동중의 외마디 비명이 들렸다. 곧이어 되돌아온 강 형사의 우직한 그림자가 신당 문 앞을 막아섰다.
얇은 장지문을 경계로 신당 내부는 팽팽한 긴장과 적막이 감돌았다.

"남도에 삿된 영을 부리는 자가 있다더니 바로 네놈이었구나."
찬수가 눈을 부라리며 도승을 꾸짖었다.

"넌 누구냐? 오라. 네놈이 저 젊은 놈을 사주해서 용왕제를 망친 장본인이구나. 이런 짓을 벌이고도 무사할 것 같나? 용왕님이 천벌을 내리실 거다!"

"천벌? 이놈 보게. 정신 차리려면 아직 멀었구나. 너 같은 놈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는지 모르느냐? 그런 놈이 감히 천벌을 운운해?"

"늙은 놈이 입만 살았구나. 오냐 내 당장 급살을 내려주마!"

도승이 신단 앞에 놓여있던 방울을 집어 들었다. 그때, 찬수가 얼음 지치듯 날렵한 보법으로 움직여 도승의 앞을 막더니 들고 있던 부채로 방울을 세차게 내려쳤다.
'펑' 요란한 파열음과 함께 수류탄 파편처럼 낱낱의 방울이 온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놀랄 짬도 없이 찬수는 왼손을 뻗어 도승의 목을 틀어쥐었다.

"이놈아. 늙었다고 무시하지 마라."

"커 커 컥. 이거 못 놔?"

도승은 두 손으로 자신의 목을 거머쥔 그의 팔목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찬수의 손아귀는 먹이를 덥석 문 짐승처럼 완강했다. 찬수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오른팔을 들어 부채 끝을 수평으로 세우더니 도승의 미간을 콕 찍었다.
'읔!' 위력적인 가격이 아닌데 도승은 무릎을 꺾으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디 깜냥도 안 되는 것이 대들어."

찬수는 쓰러져 넋이 빠진 도승의 머리를 부채로 다시 한번 때렸다. 가까스로 벽에 기대앉은 진기는 그 모습을 보고 픽 웃었다.

"웃는 거 보니 죽을 만큼 상한 건 아니구먼."

"어르신 가끔 보면 애들 같은 구석이 있으셔."

"껄껄껄.. 일단 요놈은 됐고…. 일이 커지기 전에 얼른 마무리하자꾸나. 괜찮겠나. 그 몸으로?"

"해야죠. 뭐. 다른 방법이 있나요?" 

진기의 웃음에 씁쓸함이 묻어났다. 찬수는 따라 웃지 않았다.

"그 상태면 스스로 결계진을 만들기 힘들 텐데."

"예. 일어설 힘도 없는걸요. 내키진 않지만… 예전에 하던 대로 하시죠."

진기가 체념하듯 앉은 채로 두 팔을 내밀었다. 찬수는 묵묵히 진기를 바라보다가 결심한 듯 바랑을 뒤져 나일론 밧줄을 꺼냈다. 그리고 그가 내민 손을 시작으로 진기의 몸을 꼼꼼하고 단단하게 옭아맸다. 그동안 진기는 몸을 비틀어 밧줄이 묶인 상태를 점검했다.

'대단한 노인네셔. 뭘 이렇게까지 꽁꽁 묶었나.'

"흉물은 어디 있지?"

진기가 고개를 돌려 눈짓을 했고, 찬수는 벽면에 단단하게 박혀있던 칼을 한참 동안 노려보았다. 그가 숨을 깊게 들이켜고 칼을 벽에서 뽑아 들자, 칼은 '웅-웅-'방 안의 공기를 흔들며 울었다. 칼을 바짝 움켜쥔 찬수의 손이 진동으로 떨렸다.

"흉한 기운이다. 참으로 흉하구나."

진기 곁으로 다가온 찬수는 진기와 눈을 맞췄다. 진기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두 눈을 감았다. 그의 호흡이 가늘게 떨렸다. 찬수가 칼을 진기의 가슴으로 가까이 가져가자 칼은 마치 살아있는 듯 그의 명치를 벗어나려고 이리저리 삐쳤다. 그럴수록 찬수도 호흡을 되게 하며 움켜쥔 손으로 더 많은 힘을 실었다. 마침내 칼끝이 진기의 명치께에 바짝 붙었고 진기의 입은 고통으로 벌어졌다.

"아…. 아으으으으…."

칼끝이 셔츠를 물고 진기의 살갗에 닿았다.

"우우우우웅~~"
칼의 울음에 방이 흔들렸다. 

곧이어 칼날에서 검고 진득한 액체가 핏방울 솟듯 배어 나오더니 칼끝으로 모이고 진기의 명치로 꿀럭꿀럭 흘러들었다. 찬수는 칼을 뒤로 확 잡아챘다. 진기의 명치에 머리가 물린 악령의 몸통이 산 낙지처럼 주르륵 딸려 나왔다. 악령은 한데 뒤엉킨 뱀들처럼 시커먼 몸통을 사방으로 꿈틀거리며 달아나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그 힘의 반동에 진기의 몸이 꿀렁꿀렁 움직였다. 
그때 찬수가 재빠르게 진기의 뒤로 돌아가 오른손 검지와 약지로 등 한복판 두 개의 혈도를 동시에 찔렀다. 악령의 발악이 마치 정지화면처럼 멎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진기의 몸 안으로 주르륵 빨려 들어갔다.

진기는 고개를 떨구고 요동을 멈췄다. 모든 상황이 끝난 것처럼 고요했지만 찬수는 굳은 표정을 풀지 않고 진기 앞에 정좌했다. 그때, 진기의 눈이 번쩍 떠졌다. 온통 핏빛으로 붉어진 눈에서는 형광이 번들거렸다. 찬수도 지지 않고 눈을 부릅뜨며 살벌한 그의 눈빛을 맞받았다.

"날…여기서 꺼내. 당장…. 지금 당장…!."

진기의 입으로 흘러나오는 소리였지만, 그것은 진기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악령이 호통칠 때마다 진기의 몸이 부자연스럽게 뒤틀렸다.

"미혹한 사람을 홀려가며 얼마나 오래 이승에서 머물렀는지 모르겠지만, 이곳은 네가 있을 곳이 아니다. 돌아가라!"

찬수는 눈조차 깜빡이지 않고 엄하게 악령을 꾸짖었다.

"미천한 인간이…. 감히 신을 우롱하는구나…너희는 다 죽는다."

"돌아가라. 돌아가 네가 지은 모든 업보와 함께 소멸하거라."

"으으으으으… 제발 날 내보내 줘. 부탁이야. 힘을 주겠어! 네가 원하는 힘을!"

"네 이놈!! 그런 사탕발림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상하게 했느냐!"

"가만두지 않겠어! 죽인다! 죽이고 만다!"

진기의 목울대로 핏줄이 터질 듯 솟아올랐다. 결박을 벗기위한 처절한 몸부림에 얼굴마저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찬수는 눈을 감고 천천히 경문을 암송했다. 도도한 경문이 낭송되자, 진기는 감전된 사람처럼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머리카락은 불쑥불쑥 치솟다 가라앉고, 검붉은 코피가 주르르 흘러나왔다.

"뭐하느냐! 저놈을 죽이고 나를 여기서 꺼내 다오! 너에게 내 모든 힘을,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주마. 제발 저놈을!"

진기의 표독한 눈빛이 찬수의 어깨너머 떨고 있던 도승의 눈에 닿았다. 도승은 핼쑥해진 얼굴로 깨어진 접시 조각을 급히 집어 들었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느냐!"

"사.살려주십시오!"
찬수의 호통에 도승은 접시를 떨어뜨리고 찬수를 향해 엎드려 빌었다.

"으아아아아아........."

이승의 것이 아닌, 해괴하고 끈적한 비명은 공간을 흔들고 뱃고동 멀어지듯 천천히 사라졌다. 마침내 진기는 모든 힘을 소진한 듯 사지가 풀어지며 거친 숨을 토해냈다.

"보냈느냐?"

"네…. 갔습니다. 완전히."

"애썼다."

찬수가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그의 몸을 죄던 밧줄을 풀었다. 그리고 급하게 쓰러지는 그의 상체를 받쳐 반듯하게 바닥으로 눕혔다.

"이제 편안히 눈 좀 붙여라. 뒷일은 우리가 알아서 하마."

"어르신. 이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밖에서 강 형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오게. 다 끝났네."

문이 열리자 강 형사를 앞질러 만신창이가 된 선주가 달려왔다. 선주는 누워있는 진기를 보고 왈칵 눈물을 쏟았다.

"아…. 저 괜찮습니다. 아직 안 죽었어요. 흐흐"

진기는 그녀를 안심시켜 주고 싶어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저 대무당이란 자가 살인교사를 했던 모양입니다. 날이 밝으면 좀 더 조사해 봐야겠지만 수상한 구석이 하나둘이 아니에요."

"수고스럽겠지만 좀 캐보게."

"저… 형사님이라고 하셨나요?" 진기가 천정을 바라보며 강건웅 형사를 불렀다.

"음?"

"찬수 어르신. 저 칼, 형사님 좀 빌려주세요. 그리고 형사님. 칼날에 남은 혈흔을 좀....."

"DNA 검사 말인가?"

"네. 남쪽 해안에 절벽을 끼고 따라가다 보면, 작은 동굴이 있어요. 그곳에 어린아이의 유골이 있을 겁니다. 20년 전에 저자가 귀신의 힘을 얻으려고, 제물로 아이를 살해했어요. 유전자 감식이 가능하다면 피 얼룩과 대조해 보세요."

"음."
강 형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칼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참. 선주 씨 선주 씨도 내일 강 형사님과 함께 가세요."

"네? 무슨..."

"언니... 찾았어요."

진기는 거기까지 말하고 눈을 감았다. 찬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도승은 아이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다.

꿈을 꾸었다. 어두웠지만 바닷바람이 시원했다. 그리고 그곳에 눈물을 매달고 있던 소녀, 선영이 서 있다. 그녀의 얼굴에 눈물은 없었다. 대신 풋풋한 미소가 입가에 어렸다. 진기는 한쪽 무릎을 꿇고 선영을 폭 끌어안았다.

'애썼다. 참말 애썼다. 이제 동생이랑 조카는 행복하게 잘 살 테니 너도 그만 쉬렴.'
선영이 사라지고 난 뒤에도 진기는 그곳에 서서 훈훈해지는 해풍을 오랫동안 맞았다.

이튿날 오후, 서울로 올라가는 진기의 차 운전석에는 강 형사가 앉아있었다. 진기는 조수석 의자에 몸을 기대고 창밖으로 멀어지는 바다를 아련하게 바라보았다.

'산사람도 사람을 죽이는데, 죽은 사람이 사람을 살리는구나......'

"고생 많았네. 큰일 날 뻔했어."

"감사합니다."

"진기라고 했던가? 친구 말이 맞데. 오전에 해안 절벽 쪽으로 관할 형사들과 함께 갔었는데, 백골 시신이 여러 구 있더라고. 도승인가 하는 그 박수는 바로 연행됐어. 자포자기했는지 스스로 모든 걸 자백하더군."

"그랬군요. 다행이네요."

"찬수 어르신 말로는, 그치가 원래부터 나쁜 사람은 아녔을 거라고 하시며 혀를 차시더군.

진기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잠이 들더라도 악몽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 좀 자 둬. 서울까지 가려면 한참 걸리니까." 
강 형사는 시선을 차창 밖으로 돌리며 악셀을 밟았다.


2부 우는 소녀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