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최근 들어 실내에서 영기를 느끼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이상한 일이다. 실내에 붙은 사방진 수호부가 효력을 다한 걸까. 사방진 수호부는 사용한 후 기진하는 한시적 종류의 부적이 아니라고 강조하던 찬수의 말이 떠올라 고개를 갸웃했다. 거기다가 이 집은 풍수와 지기. 방향을 따져 잡귀가 범접할 수 없는 천혜의 요새, 명당 중의 명당이라고 직접 잡아주신 보금자리가 아니던가. 

말 나온 김에 집 이야기 좀 하자. 찬수의 성화로 처음 이 집을 보러왔을 때 진기는 적잖이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어진 지 2년도 안 된 신축 다세대 주택의 꼭대기인 5층. 다른 층들은 두 개의 가구들이 마주 보게 설계되었지만, 5층은 펜트하우스처럼 전 층과 옥상을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구조였다.
거기다가 지하철역도 10분 거리의 무려 역세권! 참나. 세상 물정 모르시는 노인네. 
이렇게 완벽한 조건의 집을 싫어할 사람 있겠냐만, 도대체 자신의 금전 사정을 조금이라도 알고 계신 지 적이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산에서만 계시는 노인이라 도심의 임대 시세나 최근 물가에 둔감한 것을 고려해도 이건 좀 심하다 싶었다. 이 정도 물건이면 임대 보증금은 고사하고 월세만도 돈백은 족히 넘을 텐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자신의 속내도 모르고 방이 마음에 차는지 얼굴이 짜부라지도록 흡족한 미소를 짓던 찬수 어르신의 얼굴이 생각난다. 
방을 둘러 본 며칠 후 초저녁 단잠에 빠졌던 진기는 집요한 전화벨 소리에 가까스로 눈을 떴다.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느냐. 응?"

"어르신? 무슨 일로 이 시간에 전화를…."

"며칠 전 봤던 집 있잖냐. 그 뭐냐 복쟁이가 펜트 뭐시기라고... 내가 딱 좋다고 했던."
"네. 알죠."
"내일 당장 짐 싸서 그리루 들어가라."
"…… 어르신 거기는요. 인터넷으로 보증금 알아보니까…." 진기는 오랜만의 꿀잠을 뺏긴 것도 그랬지만 돈 문제를 생각하니 슬쩍 짜증이 났다.

"아 잔말 말고 일단 들어가. 그냥 들어가면 돼."

"아니 그게요…."

자신의 절박한 주머니 사정에 대해 설명을 막 시작하려는데 수화기 너머로 이미 통화가 끊긴 기계음이 울렸다. 어찌어찌 이사를 마친 후 미비한 서류를 건네려고 들렀던 부동산에서 찬수가 그 방을 세로 빌린 게 아니라 매입을 했다는 사실을 듣고 진기는 깜짝 놀랐다. 
뭐지 이 노인네? 대체 돈이 얼마나 많기에 부동산을 한 번 보고 덜컥 사버린단 말인가. 행색은 아무리 잘 봐줘도 버섯이나 딸 법한 시골 영감인데, 백 년 묵은 산삼이라도 십수 뿌리 갖고 계신 걸까? 아니면 재벌 여럿을 단골로 물고 있는 용한 점쟁이? 미스테리한 영감님이라고 말할 수밖에. 디테일은 알 수 없지만, 덕분에 방세 걱정 없이 살 수 있어 다행이긴 했다. 

하지만 돈보다 더 큰 선물이 그 집에 있었다는 것을 진기는 오래지 않아 알게 되었다. 외부에서 귀신을 보거나 만나는 고충이야 자신의 직업 특성상 어쩔 수 없다지만, 집에서까지 그들에게 시달리는 것은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다. 수호부는 귀신의 실체적 공격을 막아주지만, 그들의 등장까지 막지는 못했다. 
생각해보라. 젖은 빨래처럼 무거운 몸으로 집에 돌아왔을 때,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음습한 어둠 속에서 울고 있는 유령 따위라고 하면. 그 이물스러운 것들과의 동거는 자신처럼 귀신에게 무뎌진 사람조차 결국 날이 바짝 선 신경증 환자로 바꾸어버렸다. 피로감은 급격하게 쌓여갔고 몸은 쉽게 만신창이가 되어갔다. 
새집으로 이사를 하고 나서 진기는 이 비상식적 일상이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온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비록 악몽까지 물리치진 못했지만, 이만큼 평온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찬수의 배려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지난번 찬수에게 다녀온 후 -새 수호부까지 지니고 있는데도- 집안에 무언가 섞여든 것 같은 이질감이 종종 신경을 거스른다. 
컵라면과 삼각김밥으로 대충 저녁을 때우고 새로 온 메일이 있는지 확인했다. 읽지 않은 메일 36개. 받은 편지함을 열자 조잡한 부호들과 볼드한 서체, 자극적인 제목으로 클릭을 기다리는 심령·사령 카페들의 모임 공지와 광고 메일들이 화면을 주르륵 메웠다. 
훑어볼 것도 없이 전체선택 후 바로 삭제. 쯧쯧, 돈이 된다면 조상도 귀신으로 팔아먹을 작자들. 진기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퇴마 소설과 심령 드라마의 반짝 유행으로 온라인에 귀신 관련 커뮤니티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한풀 꺾였지만,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귀신'이란 비현실적인 존재에 오싹한 스릴감을 느끼며 열광했다. 

거기에 대단한 엑소시스트라도 되는 것처럼 전문가를 자처하며 자뻑에 빠진 심령 마니아들이 모였고, 동종의 호기심에 특별한 연대의식을 느끼는 것처럼 접근한 후 이성을 낚으려는 부류들도 많이 꼬였다. 
오늘도 심심풀이를 위하여 하나같이 귀신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재를 느끼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긴. 원래 취미나 오락이 목적인 커뮤니티에서 진지함을 찾는 게 '진지충'으로 몰려 따를 당하기 딱 좋은 모양새긴 하다. 
하지만 그런 비현실적인 것으로부터 고통을 받는 이들은 분명 존재한다. 그들의 공포감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구원을 바라는 일조차 당당하게 말할 수 없는 그들의 절박함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낄낄거릴 수만은 없는 것이다.

진기의 퇴마 블로그는 비공개로 전환된 후에도 매일 서너 건씩 호기심 충만한 신출내기들의 가입신청이 들어온다. 나름 잘 가려 승인을 해도 며칠 지켜보면 같은 광고 글로 게시판을 덮는 도배족, 한두 번 둘러보고 영원히 가라앉는 잠수족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블로그를 계속 업데이트하고 열어놓는 이유는 딱 두 가지였다. 드물게라도 귀신과 악령에게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의 간절한 연락이 올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을 반드시 구제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절망적 상황에서 뻗을 수 있을 마지막 구조신호를 자신이라도 발견하길 바라서였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의 이유는 자신 역시 보내고 있는 이 절망적 구조신호를 누군가 봐주기를 바라서였다.

스팸 메일함과 쪽지까지 꼼꼼히 확인하고 휴지통을 비웠다. 이번 달은 확실하게 공쳤다. 다행이다. 공치는 게 제일 좋은 팔자 좋은 퇴마사. 퇴마사? 헛웃음이 나온다. 어쩌다가 자신은 판타지에서나 등장할법한 직업으로 밥을 먹는 사람이 되어버렸을까. 
꺾어지긴 했어도 아직 20대의 타이틀이 엄연한 자신의 청춘이 아팠다. 
침대로 벌렁 드러누워 한동안 천장 벽지의 다이아몬드 패턴 개수를 세다가 시야가 멍해졌다. 정말 그 악몽은 찬수의 말대로 자신이 불러들이는 것일까. 답답하고 먹먹해진다. 그는 엄지손가락을 펴들고 가슴 한복판을 지그시 눌렀다. 손톱에 눌리는 아픔 따위 비교도 안 되는 깊고 묵직한 통증이 가슴 저 밑바닥을 느릿하게 치고 지나간다. 

'해원아. 아직 거기 있는 거지?' 

진기는 천정에 덩그렇게 달린 반투명 조명등 위로 해원의 얼굴을 떠올리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의 모습 뒤로 틀림없이 따라붙을 아픈 기억이 보고 싶은 욕망을 압도할 만큼 두려웠다.

그때 '드르륵' 바닥을 두드리는 마찰음이 들렸다. 손이 닿는 곳에 있던 스마트폰을 들어 메시지 확인을 했다.

'새 메시지가 없는데 뭐지?'

그때 다시 '드르르륵' 미세한 진동 소리가 들렸다. 
진기는 몸을 일으켜 실눈을 뜨고 식탁 위를 노려 보았다. 그쪽에서 소리가 났던가. 빈 라면 용기와 쭈그려 뭉쳐진 삼각김밥 비닐봉지. 그리고 아무렇게나 놓인 열쇠뭉치. 거기서 소리가 났나? 그럴 리가. 진기는 열쇠꾸러미를 집어 들었다. 
'봐라. 진동할만한 물건이 없잖은가.' 
차 키. 현관 열쇠. 서랍장 열쇠와 조그만 우편함 열쇠. 그게 다다. 바로 그 틈에 손으로 격한 진동이 흘러들었다. '헉'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 열쇠 꾸러미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따르르르르"

떨어진 열쇠뭉치는 라미네이트 마룻바닥 위에서 더 큰 소리를 내며 진동했다.

'열쇠고리!'
 진기는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막았다. 

찬수가 주었던 향나무 조각이 시야 한가운데로 꽂혔다. 혹시 잃어버릴까 체인을 걸어 열쇠고리에 달아 두었었지. 진기는 나무토막을 눈 가까이 치켜들고 다음 진동을 기다렸다. 나무토막은 관심을 독차지하는 게 부끄러운지 꼼짝하지 않았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지만, 변화는 없었다.

'착각이었나?'

나무토막에 단단히 고정했던 시선이 풀어지는 것과 동시에 등 뒤로 싸늘한 공기와 비릿한 냄새가 느껴졌다. 귀 뒤로 머리칼 한 올의 섬뜩함이 지나간다.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거기에 누가 섰을지 확신했다. 
눈물을 달고 있던 소녀. 직감 그대로였다. 
찬수를 만나러 갔던 날 꿈에서 본 그 소녀. 피부는 꿈에서 본 것처럼 파리하고 여전히 구슬만 한 눈물방울 두 개를 매달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사방진 결계를 뚫고 이 방에 들어올 수 있었을까. 소녀는 진기와 눈이 마주치자 어깨를 들썩거리며 다시 울기 시작했다. 꿈과 다른 것이 있다면 그때는 해무가 가득한 바닷가였고, 지금은 자신의 방이라는 것 정도.

"너였구나. 기억이 나."

"………."

"그런데 어떻게 이곳에 왔지?"

"……."

"맘대로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닐 텐데 어떻게 들어온 거니?"

소녀는 눈물만 흘릴 뿐 대답이 없었다. 한참 동안 그녀를 바라보던 진기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뭐 그거야 그렇다 치고. 어떻게 알고 왔는지 모르겠지만 잘 찾아온 것은 맞다. 들어와라. 이제 편하게 돌아가라."

해칠 의사가 없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진기는 눈을 감고 양팔을 넉넉히 벌려 소녀가 자신의 몸으로 들어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소녀는 뒤로 주춤 물러나더니 다시 울기 시작했다. 진기는 뻗었던 팔을 접어 팔짱을 끼며 어린 동생을 타이르듯 말했다.

"잘 들어. 이승에 미련을 가지고 있어 봐야 너만 힘들어. 마음이야 어떻든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요"

"무슨 억울한 사연인지 알 수 없지만 이제 다 잊고 편하게 가지 않을래?"

"……세요."

"뭐라고?"

"살려 주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실내의 공기를 미세하게 흔들었다. 하지만 소리에 입체감은 없었다. 마치 혼선된 전화 노이즈의 틈을 간신히 비집고 나온 플랫한 단음처럼.

"살려달라고?"

그럼 아직 죽은 아이가 아니란 말인가? 
진기는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걸 느꼈다. 아직 살아있다면, 그리고 이렇게 혼이 몸을 나와 있는 거라면 빨리, 한시라도 빨리 아이를 구해야만 한다. 
진기가 급한 마음에 소녀를 향해 성큼 다가가자 소녀는 두려운 듯 또 한걸음 물러났다. 창백하고 가는 팔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키는 그녀의 눈에서 다시 구슬 같은 눈물이 후두두 떨어졌다.

"어떻게? 어디로 가야 널 구할 수 있지?"

진기는 두리번거리며 소녀가 가리킨 방향을 가늠하려 애썼다. 배낭을 찾아 급한 대로 필요하다 싶은 것들을 마구 때려 넣고 옷장을 열어 잡히는 대로 재킷을 꺼내 어깨에 걸쳤다. 테이블로 돌아왔을 때 소녀는 그 자리에 없었다.

"어디로 간 거야? 어딘지 알려줘야 할 거 아니냐!" 

답답함에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그때 테이블 위에 그대로 두었던 열쇠고리가 다시 부르르 진동했다. 순간 머릿속이 번쩍하며 찬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내비게이션...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줄 거야.' 
진기는 열쇠꾸러미를 들어 올렸다.

"너. 그 안에 있는 거 맞지?" 

나뭇조각이 다시 부르르 떨렸다. 
그제야 진기는 소녀가 어떻게 결계의 영향을 받지 않고 이 방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는지 이해가 갔다. 진기는 열쇠 꾸러미를 점퍼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서둘러 방을 나섰다. 
막상 차에 올라 시동까지 걸었지만, 나뭇조각을 보고 정확한 위치를 캐물을 수도 없으니 난감하기는 여전했다. 진기는 열쇠고리에서 빼낸 나뭇조각을 들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소녀를 처음 본 것은 아마 찬수를 만나던 날 꿈속. 해무. 파도. 바닷가.

"남전 해수욕장!" 
자신도 놀랄 만큼 큰 목소리였다. 
그래. 그날 서울로 올라오며 근처 바닷가를 들렀었지. 그곳과 혹시 연관이 있는 걸까? 냉큼 대답이라도 하듯 향나무 조각이 심하게 떨렸다. 진기는 주저 없이 악셀을 꾹 밟았다. 차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어둠을 갈랐다.

내비게이션 시계가 밤 9시를 알렸다.

"목적지까지 5분 남았습니다."
진기의 급한 마음과 달리 내비게이션 안내 멘트는 차분하고 상냥했다. 

서울부터 한숨도 쉬지 않고 달렸다. 이 야심한 밤에 마을에 도착하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아이가 있는 곳이 해안가 바위틈이라도 된다면 저 어둠 속에서 어떻게 찾아낸단 말이냐. 진기는 창밖으로 입체감을 잃어버린 짙은 어둠을 노려보았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마을이 가까워질수록 나뭇조각은 쉴 새 없이, 그리고 점점 격하게 떨리고 있다는 거다.

어둠과 침묵 속에 가라앉은 마을을 볼 거라는 상상은 보기 좋게 깨졌다.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두운 산모퉁이를 돌자 기다렸다는 듯 요란한 북소리와 함께 여기저기 환하게 불을 밝힌 어가들이 마치 다른 세상처럼 나타났다.

'무슨 일이지. 마을잔치라도 있는 건가?'
이미 도로를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눌러앉은 차들 때문에 마을 안쪽까지 들어가긴 무리겠다. 그는 겨우 자투리가 남은 갓길에 차를 세워두고 훤하게 등을 밝힌 백사장으로 바쁘게 내려갔다. 

백사장 입구부터 늘어선 오색 만장들이 바닷바람에 요란하게 춤을 추었다. 커다란 천막이 세워졌고 마을로부터 끌어온 전선이 문어발처럼 갈라지며 끝 꼭지마다 전구 하나씩을 물고 기둥에 매달렸다. 심야에 뜬 오징어잡이 배를 눈앞에 둔 것처럼 천막주위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밝았다. 백사장 한가운데 높다랗게 세워 올린 장대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커다란 원을 이루고 둘러서 있었다. 장대 끝에 묶인 길고 흰 천들은 갓 잡아 올린 갈치처럼 미친 듯이 퍼덕였고 거친 펄럭임과 짝을 이루는 북과 징 소리가 고막을 쨍쨍하게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