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고만 자고 일어나라. 자정 다 돼간다." 

찬수의 낮은 목소리에 진기는 가까스로 눈꺼풀을 밀어 올렸다. 확인하지 않아도 붉어진 눈알에 핏발이 성성할 것이다. 팔을 어렵게 비틀어 말려 올라간 티셔츠를 잡아당기며 상체를 일으켰다. 몇 차례 눈을 끔벅이며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지만 눈곱과 졸음으로 몽롱하게 번지는 시야로 수십 개의 뭉툭한 빛무리가 둥둥 떠다닌다. 

잠이 덜 깬 건가. 진기는 집게손가락을 말아쥐고 눈두덩을 꾹꾹 눌러 비볐다. 어느새 켜 놓았는지 바닥 가운데를 빙 둘러 자리 잡은 촛불이 좁은 방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열여섯 방향을 표시한 종이 위에 반듯하게 놓인 촛불들은 바람도 없는 방안에서 덩실덩실 기세 좋게 춤을 춘다. 

'아…. 그렇지. 치병 의식.'
진기는 익숙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묵묵히 옷을 벗기 시작했다. 찬수가 향에 불을 댕기고 위패에 몇 가지 부적을 붙이는 동안 진기는 남은 옷을 모두 벗어 가지런하게 개켜놓고 그 옆에 무릎을 꿇었다. 뜨끈한 구들과 촛불이 만든 온기가 넉넉했지만, 나체에 익숙지 않은 사람이 전라가 되었을 때 느끼는 헛헛한 한기가 있다. 소변을 보고 난 것처럼 잠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르신. 저는 준비 되었습니다."

"오냐. 나도 준비됐다. 바로 시작허자."

나신이 된 진기는 찬수를 향해 공손히 인사를 하고 촛불이 자리를 비워둔 원 안으로 들어가 엎드렸다. 찬수는 향로를 진기의 머리와 일직선이 되도록 놓고 쑥 가루를 반 줌 뿌렸다. 그리고 침구가 들어있는 죽통을 들고 그가 누워있는 촛불의 원 안으로 들어와 잠시 호흡을 가지런하게 골랐다. 
시간이 멈춘 듯 공기마저 가라앉자 곧바로 한 자 길이의 기다란 침이 진기의 머리 한가운데 백회혈에 꽂혔다. 순간 뜨끔했지만 아프지는 않았다. 뒤이어 후정, 풍부, 아문혈을 지나 목의 대추혈, 어깨 날갯죽지의 폐유를 거치고 척추 위로 자리 잡은 혈도로 거침없이 침들이 꽂혔다. 찬수의 시침은 빠르면서도 놀랍도록 정교했다. 허리의 명문혈을 지나 승부, 허벅지를 따라가는 은문과 위중, 장딴지의 승산과 축빈까지 훑고 뒤꿈치에 위치한 태종혈에 다다라서야 행렬은 끝이 났다.

전신을 가로지르는 두 갈래의 침열은 마치 긴장에 곧추선 고양이의 빳빳한 터럭 같아 보였다. 고개를 뒤로 밀고 눈을 찌푸려 침이 자리 잡은 형태를 보던 찬수는 흡족도 불만도 아닌 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는 원 밖으로 물러나 기름 먹인 향나무조각에 촛불을 붙여 연기를 피워올렸다. 손가락 하나 정도의 작은 나무토막이지만 불이 붙은 끄트머리로 폭주하는 기관차의 연통처럼 흰 연기가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그는 알아듣기 어려운 주술을 웅얼거리며 연기가 진기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고루 퍼지도록 나무토막을 사방으로 흔들었다. 협소한 실내는 금세 피어오른 연기로 가득 차 마치 수증기가 성성한 사우나를 연상케 했다. 촛불은 알전구처럼 빛무리를 두르고 허공을 떠다녔다. 
진기는 짙어지는 향냄새에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으며 몸이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하지만 침을 물고 있는 부위로 홧홧한 열기가 올라 피부가 따끔거렸다.

"요즘 특별히 몸이 더 힘들고 허지는 않았는가?"

"네. 뭐 크게 다른 건 없어요. 잠을 잘 못 자서 피곤한 거 빼고는."

"아직도 그 악몽을 꾸는가?"

"……"

"것 참. 이상한 일이로고. 왜 그것만 부적이 듣질 않는지. 몽마의 장난이 아니란 것인가. 아니면 자네가 간절허게 그 꿈을 부르는 것일지도 모르지."

"그럴 리가요." 
진기는 고개를 들어 찬수를 보려다가 움직이는 것을 단념했다.

"그런데, 어르신. 이 치병 의식은 꼭 해야 하나요? 올해는 특별히 이렇다 할 증상이나 통증도 별로 없었어요. 서너 달에 한 번씩 내려오기가 쉽지 않은데, 그냥 연말에 모아서 한 번에 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러다 초상나면?"

"에이 설마…."

"이놈아. 니 몸이 어데 보통 몸뚱이 드냐?" 
진기가 보든 말든 찬수는 정색하며 말을 이었다.

"니 몸이 귀신들한테는 지옥문 아니냐. 들어가면 수십, 수백 년 품었던 원한과 함께 소멸하는 건데, 혼령이야 지옥문으로 빨려드는 순간 소멸되지만."

"되지만요?"

"오래 묵은 원한은 미미한 사념을 남기게 마련이여. 주인을 잃은 원한이 니 몸에 찌께기처럼 남아있다가 뭉치고 쌓이면 어떻게 돼? 그러면 반드시 몸을 상하게 하는 법이여. 그러니 부르믄 잔말 말고 후딱후딱 오니라."

그사이 연무는 매우 옅어져 촛불이 다시 또렷하게 보였다. 하지만 연기는 사라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진기의 등 위로 스멀스멀 뭉치더니 검고 두꺼운 먹구름처럼 변했다. 진기 등에 꽂혀있는 장침들은 공기 중으로 흩어지려는 검은 연기를 자석처럼 강하게 잡아당기고 있었다. 구름에 먹색이 짙어질수록 진기의 등도 화기에 노출된 맨살처럼 벌겋게 달아올랐다.

"옴반마니 사비아 조암 시아니 마타아…" 

찬수는 품속에 커다란 부적을 꺼내 촛불을 댕겼다. 모서리부터 천천히 타들어 가는 불꽃을 바라보며 주문을 외던 그는 부적이 절반 정도 남았을 때 새까맣게 뭉친 연기 한가운데로 부적을 재빠르게 던져 넣었다. 
'펑' 순간 유증에 불이 붙듯 커다란 화염이 일었다 사라졌다. 진기의 몸 위로 떠돌던 검은 연기는 불꽃과 함께 자취를 감추고 질량을 잃어버린 솜털 같은 재가 그의 등 위로 나풀나풀 내려앉았다. 등으로 후끈하게 전해지던 열기도 순간 사라졌다. 

그렇게 치병 의식이 끝났다. 삼십 분도 채 되지 않는 이 별난 의식을 위해 꼬박 6시간 차를 몰고, 세시간 가까이 탈진해가며 산을 오른 것이다. 텅 비어버린 가슴으로 허탈감과 안도감이 묘하게 뒤섞이며 스며들었다. 지금이야 이렇게 담담하게 치러내지만, 처음 식을 받던 날은 얼마나 놀라고 무서웠던가. 어서 일어나 옷을 갖추고 뒷정리도 도와드려야 하는데…. 진기는 손가락 하나 꼼짝하기 싫었다. 나쁜 기운만 빠져나가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찬수는 아무 말 없이 촛불과 늘어놓은 무구들을 치우고 이불을 가져와 그의 알몸을 덮어 주었다. 
'아. 속옷이라도 입어야 하는데…' 
진기는 엎드린 자세 그대로 까무룩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다.

이른 새벽 소나기가 지나갔는지, 깨끗이 씻겨나간 하늘은 채도가 두 단계쯤 높아져 눈이 시리도록 파랬다. 물기가 다 마르지 않은 잎사귀로 떨어진 햇살은 숱한 물방울보다 더 자잘하게 부서져 산란하게 흩어졌다. 관목과 수풀 사이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진기는 찬수가 들려준 분홍색 보퉁이를 어정쩡하게 들고 움막 문 앞에 서 있었다. 

노인이 되면 아랫사람에게 뭔가를 챙겨줘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게 생기는 걸까. 
됐다고 거듭 사양을 하는데도 막무가내로 꾸러미를 안기신다. 친정 왔던 딸 돌아가는 것처럼 뭘 이렇게 바리바리 싸셨을까. 내 생각해서 하시는 일이니 일단은 좋다. 다 좋은데, 왜 내용물만큼 포장에는 신경을 쓰시지 않는 걸까. 시대에 맞지 않는 보자기도 그렇지만, 그 보자기마저도 하필 분홍색이란 말인가. 쇼핑백, 하다못해 튼실한 비닐봉지에라도 넣어주셨으면 좋을 것을. 거기까지 요구하는 것은 받는 사람으로서 너무 염치가 없겠지. 아무튼, 트렁크에 남는 쇼핑백이라도 하나 있으면 싶었다.

"아휴. 많이도 싸셨습니다. 이걸 혼자서 다 먹으라고요?"

"어제 보니까 말린 나물 잘 먹더구먼. 표고하고 송이도 좀 넣었다. 먹을 만치만 물에 넣고 불렸다가 참기름하고 소금하고 조물조물 무치면 돼야."

"나중에 웰빙식당. 아시죠?"

"잡소리 그만하고. 다음엔 내가 그리로 갈 테니 그때야 또 보자. 몸 간수 잘허구."

"예. 그럼 어르신도 편히 계십쇼."

"아. 잠깐만 이거 받아가라. 내 어제 준다는 걸 깜빡했다."

찬수는 허리춤에서 낡은 종이봉투를 꺼내 진기에게 건넸다. 저런 봉투엔 으레 돈이 들어있게 마련이다. 돈이 아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거처 문제도 해결해주셨는데, 용돈까지 받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진기는 크게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휴. 어르신 괜찮아요. 정말 괜찮습니다."

"뭐? 뭐가 괜찮다는 거냐? 너 설마 돈을 기대한 거냐?"

진기는 속내를 들킨 것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봉투를 받아 손바닥으로 털자 안에서 나무토막 하나가 툭 떨어졌다. 찬수가 짓궂게 웃으며 이죽거렸다.

"돈이 아니라서 서운한 게냐? 이놈아 나 먹고 죽을 돈도 읎다.컬컬컬"

검지 길이의 장방형 나무토막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부호와 글자가 새겨져 있고 오랫동안 공들여 기름을 먹인 듯 표면으로 반들반들 윤이 났다.

"이게 뭡니까 어르신?"

"지니고 댕겨. 요긴히 쓸 때가 있을 거여."

"수호부 같은 건가? 어제 새로 써 주신 부적 있잖아요."

"아니야. 이건. 그 뭐라느냐 내비개손…인가. 그런 거랑 비스무리 한 거야."

"네?"

"아무튼, 필요할 때 길을 알려줄 거라 그 말이여. 절대 잊어버리지 말고 잘 간수해."

"이런 거 말고 좀 근사한 금강저나 호신 무기 같은 건 없어요?"

"시끄럽고 얼른 가. 나도 일 보러 가야하니께."

'내비게이션?' 진기는 의아해하며 나무토막을 돌려보았다. 
진기는 능선으로 올라가는 찬수에게 허리를 깊게 숙여 인사하고 비탈을 타박타박 내려왔다. 역시 산은 내리막이 수월하고 걷기 좋다. 굳이 가려보지 않아도 눈가는 모든 곳이 푸근하고 아름다웠다. 똑같은 길이었을 텐데 산을 오르던 어제는 왜 보지 못했을까.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 보지 않으려고 해도 보이는 것. 삶의 공식은 여전히 난해하기만 하다.

산허리를 거칠게 감아 도는 비포장길을 반 시간이나 달려 겨우 도로다운 아스팔트 길을 만났다. 딱히 서두를 일도 없으니 천천히 가자. 쉬엄쉬엄 달리다가 고속도로에 오르면 서울에는 넉넉잡아 4시 전에 떨어질 것이다. 차창으로 널찍하게 펼쳐진 들판과 유순해 보이는 야산이 마음을 안온하게 가라앉혔다. 바람에 섞여든 풀냄새가 좋다. 

찬수에게 힘드네 어쩌네 어리광을 부렸지만, 진기는 사실 이렇게 한 번씩 시골로 내려오는 게 나쁘지 않았다. 의식하지 않지만 늘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의 끈이 조금은 느슨해진다랄까. 교차로에서 정지신호를 받고 찌뿌둥해진 몸을 힘껏 뻗어 기지개를 켰다. 
아무리 변두리 국도라지만 도로가 이렇게 한적하다니. 양방향 틈새 없이 꽉 막힌 올림픽대로 위에서 가끔 이런 한적함을 상상하곤 했다. 출근시간대 차 한 대 없이 활주로 같은 올림픽대로라… 신나겠지. 파란불을 기다리다가 신호등 위로 덧대어 올린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좌회전 남전(해수욕장). 직진 고속도로(서울 방면).

'남전 해수욕장…'
간밤의 꿈이 기포처럼 뽀그르르 떠올랐다. 바다. 눈물을 매단 소녀. 꿈 탓일까.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그러고 보니 바다를 못 본 지도 몇 해는 된 것 같다. 무엇이 그렇게 바쁘다고 좋아하던 바다조차 잊고 살았나. 해원이를 잃고부터인가. 그래. 바다를 좋아한 것은 해원이였지. 해원이가 좋아해서 나도 바다가 좋았던 거지. 이정표의 날렵하던 글씨들이 뭉툭하게 번졌다.

"빵빵!" 
언제 신호가 초록으로 바뀌었는지, 또 언제 뒤로 서너 대의 차가 꼬리를 물고 섰는지 룸미러로 그를 다그치는 차들이 보였다. 진기는 급하게 악셀을 밟았다. 교차로를 반쯤 가로질렀을 때 그는 깜빡이도 넣지 않고 핸들을 왼쪽으로 크게 틀었다. 뒤에 바짝 붙었던 검정 세단이 급브레이크를 밟았다가 신경질적인 엔진 소리를 내며 튀어나갔다. 
진기는 미안한 마음에 살짝 손을 들어 올렸지만 검은 세단은 이미 서울 방향으로 사라진 후였다. 괜히 핸들을 틀었나 살짝 후회됐지만, 다시 차를 돌리기도 마뜩잖았다. 

종종 뭔가를 충동적으로 저지르고 후회를 한다. 하지만 어쩌랴. 후회는 일을 저지르고 났을 때만 잠깐씩 상기할 뿐이다. 바다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었나? 멍하니 20여 분을 목적도 잊은 채 달렸다. 어느새 길은 거친 콘크리트 길로 바뀌어있었고, 그 콘크리트 길도 끝날 무렵 낮은 언덕 왼편으로 바다가 수줍게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