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도 하루가 주어졌다.

최선을 다한 삶이든, 빈둥대는 삶이든 죽음을 향해 한 걸음 다가가는 것은 매한가지다.

 

 

힘들다. 지난번도 그랬다. 아니, 잠시 망각했을 뿐 매번 힘들었다.

자의든 타의든, 일 년에 서너 번씩 오르는 산이라면 조금은 수월할 법도 하지 않은가. 제기랄. 산을 처음 타는 사람 마냥 도통 걸음이 길들지 않는다. 산도 사람을 가려 들인다는 것에 손모가지를 건다. 산에게 간택 받은 사람들이 누군지는 몰라도 자신은 아니라는 것에 나머지 손목도 건다. 

경사가 험상궂은 산길로 접어들기 전까지만 해도 송골송골 맺히는 땀과 살짝 긴장된 허벅지는 기분을 적당히 달뜨게 했다. 원하던 산행은 아니지만, 봐라. 몸이 후끈하게 달아오른다. 호흡이 적당하게 빨라진다. 유산소 운동이 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건강을 생각해서 남들은 돈 주고도 한다는데. 생각난 김에 가까운 관악산이라도 주기적으로 다녀볼까? 어때. 추진기. 발동 한번 걸어볼 테냐?

 

한 시간쯤 지났을 때 진기는 비탈에 납죽 달라붙어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건강에 좋은? 그따위 나풀거리는 생각은 흔적없이 사라진 지 오래다. 끝이 없다. 거친 흙길이 러닝머신의 트랙처럼 줄기차게 내리 닿는다. 시선마저 옴팡지게 잡아당기는 경사로에서 걸음이라도 늦췄다가는 까마득한 아래로 주르르 밀려날 것만 같아 이를 악문다.

 

 2초도 머물지 못하는 잡생각들이 포말처럼 일었다가 사라지길 반복하는 동안 오른발 왼발의 선두경쟁은 기계적으로 계속됐다. 땀을 훔쳐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줄기차게 반복·재생됐지만, 손등은 계속 바지 언저리에서만 뭉그적거린다.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닦는 퍼포먼스도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갈래지어 흐를 때라야 쓰윽 훔쳐 탁탁 털어내는 게 폼나고 품을 들이는 의미가 있는 거지. 무방비로 장대비를 처맞은 것처럼 마른 자락 하나 없이 홈빡 젖었을 때는 말이다. 덜어내지도 못할 끈적이고 축축한 불쾌감을 굳이 손등과 공유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흐리고 따가워진 눈을 미간에 주름이 잡히도록 오지게 감았다. 눈가로 스며들었던 땀이 눈물 행세를 하며 흘러내린다. '두 시간이면 족할 거라고 하지 않았나?' 시골에서 두시간은 넉넉한 인심처럼 자투리가 붙어 있을까. 아니면 이곳에서는 삼 인분 같은 이인분이 아닌, 세시간 같은 두시간이 남의 속도 모르고 선심을 쓰는가. 땀으로 레깅스가 된 면바지 뒷주머니에서 휴대폰을 뽑아 얼룩을 문지르고 시계를 확인해 본다. 

역시 나다. 세시간 까지는 못 돼도 두시간은 좋이 넘었겠지 했는데, 마지막으로 꺼내 본 시각으로부터 겨우 15분이 지났을 뿐이고, 산자락 아래 차를 대고 출발해서 고작 1시간 45분을 걸었을 뿐이다. 답이 없다. 그저 걷고 또 걸어 올라갈 수밖에.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나오겠지. 삼십 분을 더 오르는 동안 시간 확인만 두 번을 더 했다. 도저히 더는 못 걷겠다.

 

"우와… 진짜 토할 것 같아." 

 

듣는 사람도 없는데 말이 튀어나온다. 진기는 눈이 가는 대로 모난 바위에 털썩 걸터앉았다. "아고고고고." 꺾어졌어도 아직은 20대인데, 40대의 생활 비명이 참 자연스럽게도 나온다. 몇 발짝 건너 평평하고 너른 바위가 있는데도 배기는 꼬리뼈를 꿈적거릴지언정 엉덩이를 다시 들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다. 

구역질을 죽이느라 눈을 질끈 감았다가 치떴더니 숲의 음영이 짙어지고 초점이 살짝씩 빗나간다. '빈혈인가. 아. 비타민 좀 챙겨 먹어야지.' 그런데 비타민과 빈혈이 관계가 있던가? 모르겠다. 몸을 추스른답시고 심호흡을 하는데 어째서 한숨으로 들린단 말인가. 

걷겠다는 의지도 날숨을 따라 빠져나간다. 십여 분 쉬면, 달아났던 기운이 전어 냄새를 맡은 며느리처럼 금방 돌아올 줄 알았다. 그러면 다시 씩씩하게 걸어야지. 한데 그 며느리는 돈 많고 젊은 돌씽을 만났는지 다시는 돌아올 생각이 없나 보다.

 

"거기 앉아서 뭐 하는 게야?"

 

시력이 겨우 닿는 경사로 끝자락에 홀연히 나타난 노인이 진기를 향해 소리쳤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다른 산을 맞대고 선 중턱도 아닌데 묘한 메아리를 만들었다. 진기는 대번에 그가 누구인지 알았다. 

들리지도 않을 작은 목소리로 '예' 대답하고, 보이지도 않을 미소를 샐쭉 지어 보였다. 호랑이가 나무 사이를 누비며 사냥감을 향해 돌진하듯 비탈을 내려오는 노인의 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축지' 까지는 아니어도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잰걸음으로 가파른 산길을 내리닫는 모습은 경이에 가까웠다. 

 

'와…. 노인네 진짜 빠르시네. 뭘 드시길래 저렇게 달릴 수 있는 거지? 진짜 호랑이 기운이네.' 

먹으면 호랑이 기운이 나는 씨리얼 생각에 생뚱맞게 침이 고였다. 무릎을 짚으며 후들거리는 다리를 일으키는 사이 노인은 비탈을 내려와 그 앞에 섰다.

 

"찬수 어르신. 그동안 별고 없으셨죠?"

 

"세 시면 올라온다는 놈이 아직도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우째?"

 

"아유…. 참 내 어르신도.  서울서 여기가 얼만데요. 가까운데 계시면 좀 좋아요? 계셔도 꼭 이렇게 먼…."

 

"이 놈 봐라.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아니 그렇잖아요. 서울 인근에도 명산이 얼마나 많은데요."

 

"시답잖은 놈. 누구 좋으라고? "

 

"뭐 그렇다는 거지요 흐흐흐…"

 

겸연쩍은 웃음에 찬수는 눈은 부라렸다. 진기는 그것이 역정을 가장한 반가움의 표현임을 알기에 배시시 얄밉잖은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웃기는. 싱거워 빠진 놈. 얼른 가자." 

 

찬수는 말릴 틈도 없이 진기의 배낭을 한쪽 어깨에 둘러메고 내려왔던 비탈로 빠른 걸음을 옮겼다. '앗! 저….' 나이가 세 배나 많은 노인에게 제 짐을 들리는 게 마음 편할 리 없었지만, 후들거리는 다리 꼴을 보니 체면 차릴 처지는 아니었다. 노구라고 해도 산에서의 운신은 어르신이 훨씬 우세할 테니까.  어쩌면 해마다 산삼 한두 뿌리씩 챙겨 드실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렇게 합리화가 되어야 마음이 한결 낫다. 그렇지 않은가?. 

 

다리를 흔들어 늘어붙은 피로를 떨어내고 찬수가 멀어져가는 비탈길의 끝을 물었다. 배낭 없는 몸이 홀가분한 탓인지, 휴식 후 조금 되찾은 기운 덕인지 걸음이 한결 수월하게 느껴졌다. 뭉툭한 대가리를 계곡으로 비쭉 내민 곰 바위 발치에 이르러 그들은 걸음을 멈추었다. 널찍하게 드리운 바위 그늘. 키 작은 소나무와 관목이 어우러진 아담한 숲을 울타리처럼 두르고 있는 찬수의 작은 움막이 모습을 드러냈다.

 

밤의 걸음은 산간에서 빨라지는가.

여섯 시도 안 된 초저녁, 코발트 빛이 산자락을 겹겹이 두르고 진득하게 자리를 잡았다. 산등성 너머 근근이 버티던 삭은 태양이 꼴딱 숨을 넘기기 무섭게 낮의 공식적 종료를 선언하듯 검푸른 셔터가 완고하게 내려왔다. 불쏘시개를 핑계로 좁은 움막 밖으로 나온 진기는 낯설고 농밀한 어둠에 그만 몸이 굳었다. 

 

사위는 필요 이상 어두웠다. 여기저기 흘러든 출처 모를 반사광과 편광이 버무려진 밋밋한 도심의 어둠과는 차원이 달랐다. 문명인은 태생적으로 어둠다운 어둠을 만나는 일이 드물다. 진짜를 마주할 때, 대상이 없는 그 이물스럽고 원시적인 공포감이 스멀스멀 기어 나와 심장을 바짝 틀어쥔다. 

초점이 어디에 맞았는지도 모를 먹먹한 어둠의 가운데를 응시하고 있자니 급한 한기와 함께 털끝이 비죽비죽 솟는 게 느껴진다. 무엇이 두려운 걸까. 귀신? 재난? 아니면 갑자기 튀어나와 목덜미를 덥석 물어뜯을 맹수?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무엇이 되었든, 그 모든 것들 뒤에 버티고 선 것이 죽음이란 것을 부인할 길이 없다. 

고통은 차치하고, 죽는다는 게 도대체 어떤 것인지 저 암흑처럼 내막을 알 수 없다는 게 정말 두려운 거다. 구색은 갖추어야겠기에 말라 비틀어진 관목 가지 몇 개를 주워들고 두리번거렸다. 몇 걸음 어둠으로 걸어 들어가면 쓸만한 땔거리가 꽤 있을 것 같은데 발은 선뜻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저녁을 먹자는 찬수의 목소리가 반갑고 고맙다. 그는 서둘러 움막으로 돌아갔다.

 

진기와 천수는 돋을새김 한쪽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낡은 소반을 마주하고 앉았다. 보기에도 거친 잡곡과 살점 하나 없는 풀떼기 삼 찬의 궁색한 상이었지만, 시장이 반찬이라 그런가. 아니면 무공해·유기농이라 그런가. 진기의 수저는 틈 없이 바쁘게 움직였다. 입안을 제멋대로 굴러다니는 보리 알곡은 숫기 없는 고분고분한 쌀보다 확실히 씹는 맛이 있었다. 고봉으로 올린 밥이 뚝딱 사라지자 진기는 달라붙은 밥풀 알을 입안으로 밀어 넣으며 빈 그릇을 쑥스럽게 내밀었다.

 

"서울서 굶고 다니냐?"

 

"어르신. 진지하게 드리는 말씀인데 서울에 식당 하나 오픈하실 생각 없어요?"

 

"껄껄껄. 왜 나물 밥맛이 괜찮냐?"

 

"요즘은 웰빙이 대세라 이런 게 잘 돼요."

 

"나 해 먹고 사는 것도 번거로운데 남까지 해 멕여 살리라고? 아서라."

 

찬수는 불려놓은 숭늉을 그릇 가득 떠주며 웃었다. 나중에 조그맣게 식당이라도 하나 내고 평범하게 살 수 있을까. 변두리라도 좋고, 매상이 좋지 않아도 그만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그릇을 받아든 진기의 초점이 숭늉과 함께 살짝 흔들렸다.

 

"그래. 그간 일은 많이 했는가?"

 

"예…. 뭐 그럭저럭."

 

"그래 몇이나 보냈고?"

 

"음……. 대략 여섯쯤 되는 것 같은데요."

 

수를 헤아려 보느라 들어 올린 시선이 컴컴한 천정에 닿았다. 어둠은 어디에나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실감하며 그는 이런 비상식적인 일을 덤덤하게 말하고 있는 자신이 낯설었다.

 

"보호부는 이제 기가 다 했을 건데 여태 지니고 있는가?"

 

"이거 약발 떨어진 지 꽤 됐어요. 어르신도 예전만 못하신 거 같아요"

 

천수는 밉지 않게 눈을 흘기며 진기가 두 손으로 공손하게 내민 낡은 부적을 낚아챘다. 오랫동안 펴지 않은 채로 보관했는지, 접힌 네 귀퉁이가 닳아 반들반들했다. 찬수는 천천히 부적을 바로 편 후 끄트머리에 촛불을 당겼다. 

오래된 괴황지는 불붙기가 무섭게 나풀거리는 껍질이 되어 연기를 따라 허공에서 흩어졌다. 미리 준비해 두었는지 오래된 족보처럼 실로 엮인 책 틈에서 빳빳함이 살아있는 샛노란 부적을 꺼내 진기에게 건넸다. 진기는 세뱃돈 받듯 공손하게 두 손을 내밀어 부적을 받아 들었다.

 

"접어도 되지요?"

 

"아니면, 이마에 붙이고 다닐라고?"

 

"크크크 어르신 예전 강시 영화 좀 보셨나 봐요."

 

"치병은 자정에나 할 거니까 피곤하믄 구석에서 한숨 자든가."

 

"예. 그러잖아도 배가 부르니 졸음이 쏟아지네요. 설거지만 대충 마치고 좀 쉴게요."

 

진기는 부적을 조심스럽게 접어 지갑에 넣었다. 소반을 물린 후, 가까운 도랑으로 내려가 그릇 두 개를 박박 닦았다. 방으로 돌아오자 구석에 이미 두툼한 이불이 깔렸다. 그는 양말을 벗어 하나로 잘 뭉친 후 배낭 앞주머니에 쑤셔 넣고 자리 위로 벌렁 드러누웠다. 

이곳저곳 쑤시거나 결리지 않은 곳이 없다. 그래도 누우니 콧구멍으로 낮은 숨이 배시시 빠져나오며 입꼬리가 올라갔다. 배기는 몸을 뒤척일 때마다 이불에서 오래 묵은 노인의 냄새가 올라왔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찬수는 선반에서 모서리가 닳아 윤기가 반들거리는 나무상자를 내렸다. 뚜껑을 열어 골동품처럼 보이는 책과 요령, 향 따위 무구들과 기다란 대통을 차례로 꺼내 소반 위에 가지런하게 진열했다. 책을 펴들고 촛불로 바짝 다가앉자 비루하게 굽은 그의 등이 좁은 방 반절을 어둠으로 덮었다. 

 

'어르신을 만난 게 벌써 4년 전인가….' 

기억을 쫓아 시간을 거스르다 보니 눈이 풀리며 졸음이 엄습했다. 이렇게 몸이 녹신 거릴 때마다 손바닥으로 식은땀이 배는 게 찝찝하다. 잠드는 것이 두렵다. 잠을 간절하게 원하는 육체의 본능과 잠들기를 거부하는 의지는 늘 주도권 다툼을 벌였다. 

결론부터 말해 이기는 것은 항상 본능이지만 의지는 한 번도 그 무력한 반항을 포기하지 않았다. 가위에 눌린 사람처럼 수면과 각성 사이에서 통제되지 않는 사지의 뻗댐으로 최후의 저항을 하다가 불식 간에 잠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이것이 진기가 잠드는 방식이다. 운이 좋아 꿈을 꾸지 않는다면 그럭저럭 평범한 아침을 맞을 것이다. 하지만 꿈을 꾼다면 필경 그날의 일을 다시 겪을 것이고 꿈속에서도, 꿈을 벗어난 현실도 자괴라는 곰팡이가 마음을 까맣게 뒤덮은 끔찍한 하루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잠드는 것이 두려웠다.

 

그 날은 4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꿈속에서 모든 감각의 날을 가파르게 세워 오늘보다 더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살아가는 동안 끔찍했던 순간을 한없이 되풀이해야 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엿 같은 것인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아니. 공포의 진원은 그 상황의 반복적 목도가 아닐지도 모른다. 꿈이라도 이골이 날 만큼 겪고 또 겪은 일이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그 시간이 들이닥칠 때, 부질없는 희망에 매달려 버둥대는 자신으로 돌아가는 일. 어떤 여지도 허락하지 않는 철옹 같은 무력함을 매번 확인하는 일은 삶의 의지도. 굳건한 신념도. 미래의 희망까지도 말끔하게 도려내 철저히 짓뭉갠다. 

깨고 나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어제 같은 오늘이 칙칙한 얼굴로 그를 반길 것이다. 그렇게 오늘을 살면 다시 어제 같은 내일이 또 버티고 섰겠지. 그놈 뒤에 다시 그놈…. 가뭇가뭇 보이는 찬수의 등이 산처럼 넓게 느껴졌다. 따뜻하다. 안전하다. 오늘은 마음 놓고 눈을 감아도 될 것 같다.

 

가마득한 곳으로부터 파도 소리가 다가왔다. 앞으로 치고 나온 밀물이 썰물로 돌아가지 않고 맴돌던 자리에서 다시 밀물로 들어오는 것처럼 소리는 차분하게 거칠어졌다. 면도날처럼 섬뜩하고 차가운 해수가 발목을 긋고 지나간다. 속을 건드리는 비릿한 해초 냄새. 축축하고 텁텁한 해무가 사방에 내려앉아 독특한 폐소의 공포를 유발한다. 

꿈이다. 꿈인 것을 알고 있다. 어떤 꿈이든 그날이 아닌 것에 일단 안도했다. '톡톡' 진기는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돌렸다. 예상치 못한 인기척에 놀란 것이 아니라 등에 닿은 누군가의 손가락이 소름 돋도록 차가웠기 때문이다.

 

'누구…?'

 

거기에 열 살 남짓의 작고 파리한 소녀가 울고 있었다. 

처음 보는 아이. 촌스러운 단발머리에 헐렁한 옷가지로 삐져나온 팔과 다리는 잘 마른 장작개비 같았다. 진기가 숨을 들이켤 때마다 퀴퀴한 물비린내가 올라왔다. 

 

'너 누구니. 왜 여기서 울고 있어?' 

 

하지만 소녀는 대답하지 못하고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처럼 어깨가 들썩거리도록 격하게 울었다. 파도 소리는 이렇게 요란하고 거친데, 소녀의 울음만 음 소거를 당한 것처럼 소리가 없다. 그렁그렁 차고 넘친 눈물이 굵은 방울을 이루어 소녀의 볼에 위태롭게 매달렸다. 더 바라보고 있다가는 그도 왈칵 눈물이 솟구칠 것 같았다.

 

' 울지마라…꼬마.' 

 

진기는 한쪽 무릎을 굽혀 앉았다.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감싸고 양 엄지로 볼로 흘러내린 눈물을 닦아주었다. 하지만 물체 위로 영사된 그림처럼 눈물은 그의 손가락 위에서 부유했다. 방울져 부자연스럽게 매달린 눈물은 몇 번을 문질러 보아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제야 동공 속이 텅 비어 시선을 실종한 소녀의 눈이 보였다.

 

'넌 누구지?'

 

'…….'

 

'왜 나를 찾아왔니? …넌 이 세상 사람이 아니구나. 그렇지?'

 

'…….'

 

파도 소리가 잦아드는 듯싶더니 방향을 알 수 없는 먼 곳에서 웅웅거리는 울림이 들렸다. 지면도 살짝 흔들렸던가. 소리를 쫓아 돌아가던 시선에 희미하지만, 먼 갯바위가 걸렸다. 여기가 어디지? 해무가 옅어지는 틈이 생길 때마다 거뭇한 바위들이 몇 더 보였다. 바닷가 어디쯤인 것은 확실한데 도무지 장소를 특정할 수가 없다.

 

시선이 잠시 떠났다가 돌아온 자리에 소녀는 없었다.

 '아!' 언제 떠났는지 소녀는 저만치 멀어져 해무와 함께 희미해지고 있었다. 눈을 살짝 찌푸려도 이제 그게 소녀인지, 바위인지 잘 구별이 되지 않는다. 발목까지 올라왔던 바닷물도 그녀를 따라 저만치 쓸려 내려간 모양이다. 해무는 다시 짙어졌다. 

 

'나는 갈 수 없어.' 

진기는 선 자리에서 힘없이 손을 흔들며 읊조렸다. 소녀는 안개와 하나가 될 때까지 몇 번이고 이쪽을 돌아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