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대박 대박! 들었어?"

"무슨 말이야?"

"7반에 조수진이라고 있잖아. 그 왜 뚱뚱한 애. 걔 어제 체육동 창고 근처에서 귀신 봤대."

"에이 또 구라 아니야? 지난번에 혜라도…"

"아냐. 이번엔 진짠가 봐. 어제 거기서 귀신보고 기절해서 119에 실려 갔었대. 오늘 학교도 못 왔다는데? 지금 7반 완전 난리 났어."

"와... 나 소름."

주빈은 손톱에 말라붙은 매니큐어 얼룩을 긁어내다가 앞에 앉은 아이들의 호들갑에 피식 웃었다. 어느 여고에나 괴담 한두 개쯤 없는 곳 없듯, 새암여고에도 오래된 괴담 하나가 있었다. 신축된 본관 건물 뒤로 시멘트 블록으로 쌓은 오래된 단층 건물이 있다. 
체육동으로 불리는 이 건물은 새암여고 개교이래 여러 차례 단행된 교사 구조 변경 속에서 용케 철거를 피해 살아남은 유일한 건축물이기도 하다. 

깎아 세운 옹벽을 등진 지리적 위치도 그렇지만, 본관 건물의 그늘이 종일 낮은 콘트리트 지붕을 담요처럼 덮고 있어 볕 드는 시간이 야박한 곳이었다. 건물은 오래된 체육 교구나 학교 행사용 천막과 잡다한 소품 등을 보관하는 창고로 사용했는데, 특별한 용무가 없는 한 향하는 발길은 드물었다. 그렇기 때문에 주빈의 다크 서클은 물론, 학교의 문제아들이 대를 이어 아지트로 사용하던 역사적 장소이기도 했다. 

분위기가 딱 그렇듯, 새암여고의 괴담이 시작되고 자란 곳 역시 체육동이다. 30년 전쯤이던가, 당시는 일반 교실로 사용되던 그곳에서 한 아이가 목을 매달고 숨진 일이 있었다. 처지를 비관한 학생의 자살로 일단락되었던 사건은 오래지 않아 세간에 잊혀졌지만, 새암여고의 학생들에겐 시차를 두고 목이 꺾인 여자귀신을 봤다는 소문이 돌았다. 소문은 시나브로 학교의 공식 괴담으로 자리를 굳히고 오랫동안 질긴 생명력을 이어갔다.

서연이가 헐레벌떡 주빈에게 달려왔다.

"주빈아. 너 그 이야기 들었어?"

"뭐. 귀신 얘기?" 

주빈의 반응이 예상보다 시큰둥하자 서연은 답답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엔 진짜래. 수진이 그 귀신 봤다는 애, 나랑 좀 아는 사인데 내가 직접 통화했거든. 진짜래. 걔 지금 제정신이 아니야.
어제 응급실 갔다가 오늘 퇴원했대. 이제 학교 무서워서 못 오겠다고 울고불고 완전 깜놀."

"진짜?"

"응. 핸드폰을 체육동 근처에 떨어뜨린 거 같아서, 찾으러 갔다가 봤대. 거기 창문이 되게 높잖아. 거기 90도로 목이 꺾인…"

"꺄아!"

몸을 돌려 서연의 이야기를 훔쳐 듣던 아이들 몇 명이 귀를 막으며 비명을 질렀다.

"야. 이년들아. 니들 때문에 놀랐잖아!"

서연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주빈도 꺼림직한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체육동 근처를 가장 뻔질나게 드나든 사람 중 하나는 자신일 것이다. 만약 귀신이 있었다면 자신이 먼저 목격하지 않았을까. 사건의 진위와 별개로 생겨난 공포심은 그 자체로 강한 생명력과 전염성을 갖는다. 그것을 증명하듯 주욱 둘러본 교실 안은 상기된 얼굴을 하고서 귀신 이야기를 내뱉고 되 담는 아이들뿐이다. 주빈의 시선이 구석에 앉아있던 효진과 마주쳤다.

'효진이는 혹시 본 적이 있을까.'

효진이라면 자신 못지않게 체육동 주변에 머물렀을 것이다. 물론 자의는 아니었겠지만. 순간 주빈은 효진의 동공이 크게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소심한 효진이가 괴담에 겁을 잔뜩 집어먹은 것이 틀림없다. 그녀는 마치 주빈이 무슨 생각을 할지 앞질러 알아버린 것처럼 떨리던 눈을 황급히 돌렸다. 그리고 약속한 것처럼 동시에 둘의 시선이 명기의 자리에서 만났다. 타이밍도 절묘하지. 무슨 일인지 오늘은 명기도 학교에 오지 않았다. 효진의 표정이 절망으로 어두워질 때 주빈의 입꼬리 한쪽 끝이 묘하게 비틀려 올라갔다.

"서연아 귀 좀"

주빈은 슬쩍 고개를 기울여 서연에게 귓말을 속닥이면서도 명기의 빈자리에 눈을 떼지 못하는 효진을 응시하고 있었다.

4교시 체육 시간은 갑작스럽게 실내 수업으로 변경되었다. 체육복을 갈아입고 교실을 나서던 아이들이 궁시렁대며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조수진의 귀신 목격 사건도 있었지만, 이참에 체육동을 철거하자는 의견이 오전 교무회의에서 나왔다. 당장 철거는 힘들지만, 예정된 담장공사를 위해 용역이 오는 만큼 인력이 있을 때 체육 교구와 짐이라도 먼저 신관 창고로 옮기자는 급한 결정이 내려진 탓이다. 주빈은 인부들이 도착하기 전 잠겨있던 체육동 문을 열어둔 것을 기억했다. 이미 체육복을 갈아입고, 주빈 일당의 심부름을 갔던 효진만 수업이 바뀐 사실을 몰랐다. 그녀가 수업에 늦을까 봐 조바심을 내며 운동장으로 향할 때 계단에서 서연과 마주쳤다.

"시켰던 건 했어?"

"으…으응. 전해줬어."

효진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하고 재빨리 그녀를 지나치려 했다.

"참. 너 주빈이가 체육동으로 튀어 오래."

체육동이란 말에 효진의 낯빛이 일순 창백하게 변했다.

"그치만… 곧 수업 시작인걸."

"병신아. 너하고 주빈이 하고 체육 당번이라 공 가져와야 한대. 주빈이 혼자 하고 있으니 너 오는 대로 바로 튀어 오라고 그러더라."

"…… 정말이야?"

효진이 겁에 질린 눈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체육복 바지자락을 꽉 움켜쥔 채 파르르 떨고 있는 그녀의 손등으로 파란 힘줄이 도드라졌다.

"야. 장효진 너 지금 나 의심하는 거야?"

"…….."

"이년이 정말?"

서연이 팔을 들어 올리자 효진은 몸을 움츠리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갈게. 지금 바로 갈게."

"빨리 가 이년아. 곧 수업 시작해.
"
효진은 거의 울 듯한 얼굴을 하고 총총히 계단을 내려갔다. 혹여 중간에 새기라도 할까 봐 서연은 1층까지 따라 내려가 그녀가 체육동쪽 모퉁이로 돌아가는 것을 기어코 확인했다.
효진은 멀찍이 떨어진 거리에서 체육동의 녹슨 철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았다. 숨이 턱 막혀왔다. 평소에도 체육동 호출을 싫어했지만, 오늘은 그쪽 근처로 단 한 발짝도 들여놓고 싶지 않았다. 주빈이 서연의 귀에 속닥거리던 장면이 날카로운 모서리를 세워 신경을 긁었다.

명기와 가까워진 후 주빈이 벼르고 있다는 것을 그녀도 모르지 않았다. 지금 주빈의 호출이 그것에 대한 푸닥거리라면 샌드백이 되어 그녀가 원하는 만큼 기꺼이 맞아줄 수 있다. 단 그곳이 체육동 실내만 아니라면. 끈끈해진 침이 거친 들숨과 함께 목구멍을 막아 꺽꺽 소리가 났다.

명기에게 사실을 털어놓지 못한 후회감이 밀려왔다. 그녀에게 부탁했다면 최소한 함께 가주지 않았을까. 아닌가? 그 이야기를 듣는다면 명기도 자신을 이상한 애 취급하지 않았을까. 명기마저 자신을 외면하는 게 두려워 몇 번이나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말을 간신히 눌렀었다. 그래도 이야기를 했었어야 했다. 7반 아이가 보았다는 그것. 체육동의 뿌연 창을 통해 목을 꺾은 채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섬뜩한 얼굴을 자신은 이미 여러 차례 보았다는 사실을.

지금 이 순간 명기가 너무나 필요한데, 그녀가 학교에 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뼈저리게 아팠다.

"주…주빈아 나 왔어. 어디 있어?" 

주변을 여러 차례 둘러보았지만, 주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주빈을 찾아 짐승의 아가리 속 처럼 어둡고 축축해 보이는, 매를 맞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던 '그것'이 있던 체육동 안으로 들어갈 용기는 없었다. 녹슨 철문 바깥에 숨어 떨리는 목소리로 계속 주빈을 불렀다.

"들어와. 안에 있어."

"너무 어두워 주빈아. 불은….."

"몰라 전기가 나갔나 봐. 얼른 들어와서 이것 좀 같이 들어."

"…….."

"야! 장효진. 내 말 안 들려?"

위치를 가늠할 수 없는 어두운 실내에서 모습 없는 주빈의 목소리가 시퍼런 날을 세웠다.

"아…알았어. 드..들어가 지금. 너…. 진짜 거기 있는 거지?"

효진은 떨어지지 않은 발을 체육동 짙은 그늘 속으로 조심스럽게 밀어 넣었다. 오래된 나무 바닥이 그녀의 신중한 걸음에도 끽끽 신음을 냈다. 어두운 시야 속에 위태롭게 쌓여있는 메트와 질서 없이 포개진 뜀틀이 자꾸 제 형상을 벗어나 괴괴한 무언가로 변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눈에 보이는 사물들을 하나씩 손으로 짚어가며 상상이 상식을 넘지 못하도록 사투를 벌였다. 침착하자고 수백 번을 되뇌었지만, 자신의 다짐은 두꺼운 벽 저편에서 뭉개지는 소리처럼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하는 공허한 독백이 그녀의 신경이 극도로 날카롭게 만들었다. 숨이 가빠온다.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아 그녀는 오른손으로 가슴을 누른 채 더딘 걸음을 옮겼다. 
미운 주빈이지만, 지금 자신 앞에 나타나 준다면 세상 그 누구보다 더 반가울 것 같았다.

"주빈아. 어디 있어? 주빈아."

"끼이이이익"

녹슨 철문의 마찰음이 고막을 긁고 지나간다. 효진은 온몸에 소름이 돋아오르며 눈앞이 노랗게 변했다. '안돼! 안돼!' 목구멍으로 비명이 솟구치기도 전에 육중한 철문은 기어이 "쿵" 소리와 함께 닫혔고 시야는 완전한 칠흑으로 뒤덮였다.

"꺄아아아아악!"

효진은 비명을 지르며 문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 나오다가 바닥에 헝클어진 배구 네트에 발이 걸려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체육동 뒤편, 옹벽 틈에 숨어있던 주빈이가 달려 나와 철문을 닫고 걸쇠를 가로질렀다.

"으아아아아아! 주빈아 살려줘! 으아아아악"

형체도 알 수 없는 시커먼 악령이 자신의 발목을 놓아주지 않는다. 그녀는 발목에 엉킨 그물을 질질 끌고 기다시피 철문까지 갔다. 그 시커멓고 육중한 철문을 주먹으로, 손톱으로 심지어 머리로 미친 듯이 때리고 긁었다. 패닉에 빠진 그녀의 비명은 도살장에서 망치를 맞는 돼지의 비명처럼 처절하고 기괴했다.

"성공했어?"

멀찌감치 숨어서 지켜보던 서연이가 주빈에게 달려왔다. 주빈은 비명이 새어 나오는 체육 동을 턱으로 가리키며 히죽거렸다.

"개 같은 년. 명기한테 붙어서 우릴 우습게 봤다 이거지."

"명기년도 조만간 똑같이 한번 해주자."

"가자. 수업 늦겠다." 

둘은 서둘러 본관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늘이 끝나는 모퉁이 앞에서 서연이 우뚝 멈춰섰다. 사람의 것 같지 않은 처절한 효진의 비명이 그녀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그냥 이렇게 두고 가도 괜찮을까...?"

"걱정마. 곧 일하는 사람들이 올 테니까. 그보다 나 체육한테 욕 처 듣겠다. 얼른 가자."

주빈은 망설이는 서연의 등을 떠밀며 모퉁이를 돌았다.




"지낼 만 허냐?"

"……."

점심으로는 아직 이른 11시. 갈빗집의 넓은 홀을 통째로 빌린 듯 명화주 일행을 제외하고는 손님이 없었다. 가게 주인은 원래 인상이 그런 것인지 우왁스러워 보이는 손님들 때문인지 잔뜩 주눅 든 얼굴을 하고 주문을 받기 위해 서 있었다. 메뉴판에서 눈을 뗀 명화주가 맞은편에 덩그러니 앉은 명기를 바라보았다. 명기가 눈썹을 위로 한번 치켜 올릴 뿐 대답이 없자 명화주는 메뉴를 덮으며 말했다.

"생갈비 갖다 줘."

식당 주인은 몇인 분인지, 식사나 냉면은 시킬 것인지, 다른 일행은 어떻게 할 것인지 감히 묻지 못하고 숨은 의중을 살피느라 선 채로 눈을 끔벅였다.

"생갈비 2인분하고 식사 내오시면 돼요." 

일행 중 서 있던 여인이 화주를 대신해 나긋하게 말했다.
메뉴판을 상장받듯 황송하게 받아든 주인은 주방으로 신속하게 사라졌다.

"대학 갈 때까지는 사고 치지 말고 얌전하게 지내라."

"할머니! 누가 사고를 친다고."

명화주는 눈가에 주름을 모으며 따끔한 눈빛을 쏘았다. 명기는 눈빛의 의미를 알아차린 듯 얼굴이 화끈했다. 무안했던지 시선을 피해 벽에 붙은 '대가족 특가' 프로모션 포스터로 눈을 돌렸다. 광고 속에는 화목한 가족 3대가 푸짐하게 차려진 상을 앞에 두고 활짝 웃고 있었다. 다분히 작위적인 광고지만 그녀의 눈은 한동안 손녀로 분한 모델의 화사한 얼굴에 머물렀다.

"알았으니까, 사람들 학교로 보내지 마요. 사람 난처하게."

"나름 챙겨야 할 일이 있어서 한번 가 보라 한 거니 그리 알아라. 더는 갈 일 없다."

오랜만에 만나는 할머니와 손녀의 살가운 모습이라곤 없었다. 스테인리스 그릴이 달린 널찍한 호두나무 원목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은 대화보다 빈번한 침묵을 주고받았다. 공기가 지나치게 어색해지면 명화주는 또 툭 한마디를 던졌다.

"생활은. 방은 따뜻 허냐?"

"다 좋아. 이모할머니가 한 달에 한 번씩 와서 다 봐주시는데 뭐."

명화주의 옆에 공손하게 서 있던 조명신이 인자한 웃음으로 명기의 시선을 받았다.

"요즘 뭐 이상헌 일은 없었고? 갑자기 혼절한다든가."

"없어. 아픈 사람도 아닌데 기절을 왜 해. 그런데 이런 거 물어보려고 학교까지 빠지라고 한 거야?"

"서울 올라온 김에 점심이나 같이해."

명화주는 고소하게 버무린 숙주를 집어 잘근잘근 씹었다.

"갈래." 

명기는 자리에서 발딱 일어섰다.

"점심 먹고 가라고 하시잖냐."

명화주의 뒤에 태산처럼 버티고 선 엄광목이 얼굴의 흉터를 일그러뜨리며 징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명기는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자리에 앉아 수저를 집어 들었다.

"괴롭히는 애들 있으면 얘기해라."

"아저씨 말곤 없어요."

명기의 되바라진 대답에 광목은 반짝이는 금니가 드러나게 웃었다. 입꼬리를 따라 그의 흉터가 바늘에 걸린 고기처럼 끌려 올라갔다.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마친 명기는 명화주 일행과 헤어져 거리로 나왔다. 점심시간에 맞춰 거리로 쏟아져나온 직장인들의 분주한 왕래 속에서 명기는 잠시 길을 잃은 사람처럼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가족. 왜 그 단어가 머릿속에서 유영을 멈추지 않는 걸까. 할머니와 함께 있으며 불뚝불뚝 고개를 쳐들던 고독감은 아이러니하게도, 혼자 되고서야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억지로라도 씩씩해지고 싶었다. 두려운 미래 따위 오든 말든, 그냥 열심히 살고 싶다. 그녀는 액세서리 점 쇼윈도에 반사된 자신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고 보니 학교에 결석을 미리 알려놓고도 교복을 입고 나왔다는 걸 깨달았다. 집으로 갈까? 아니면… 방향을 주저하던 그녀는 어제 효진이가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이 생각났다. 몇 번을 주저하며 하려고 했던 말, 그러나 결국 꺼내지 못했던 그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학교가 끝나면 효진이를 불러 조용히 물어봐야겠다. 남의 걱정까지 챙길 오지랖은 아니지만, 효진이라면 조금 도와줘야 하지 않겠나. 명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학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