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레이트 지붕을 불판 삼아 쉴 새 없이 쏟아진 태양의 복사열로 숨이 턱턱 막히는 창고방 안.

 땀에 흠뻑 젖은 류 탐정이 그나마 미지근한 자리를 찾아 모노륨 장판 위를 미끄덩거리고 있었다. 후끈한 열기에 창고방 구석구석에서 기어 나온 곰팡내까지 더해져 아침의 역겨운 사건현장을 떠올릴 만도 했지만, 그는 창고방에서 나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가 경찰서를 나설 때만 해도 주변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양 마담은 문방구 주인의 죽음과 자기 남편의 죽음과의 어떤 상관관계가 없나 의심하는지 류 탐정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치였고, 신 경위는 대외적으로는 비밀로 하고 두 사건을 연쇄 살인이라는 가정으로 수사를 시작하려고 그에게 동참을 요구한 상황이었다.

 '그게....... 일주일은 지난 것 같아요.'

 거기에 남편을 잃은 문구점 여주인은 불과 하루 전에 류 탐정에게 한 말과는 다른 진술을 하고 있었다.

 분명 사건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몇 시간이나 흘렀지만, 당장이라도 그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았던 양 마담이나 벌써 한참 전에 진술서 작성을 마쳤을 신 경위 모두 감감무소식이었다.

 '위이잉.'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몇 마리의 통통하고 힘찬 똥파리까지 가세해서 가뜩이나 날카로운 그의 신경을 긁어대고 있었다. 그래도 류 탐정은 창고방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자기최면을 하며 방바닥에 축 늘어져 있었다.

 파출소 앞에서 양 마담이 그에게 시간을 내서 다방에 와 줄 것을 부탁했고, 그도 그러겠노라고 대답도 했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옆에서 들은 신 경위는 그녀의 남편 사건과 이번 사건의 연관성에 대한 이야기는 함구하라고 엄포를 놓았었다.

 그런 상황에서 양 마담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방으로 찾아갈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다방에 들리지 않고 신도를 돌아다니다가 마주치는 날에는 그녀의 원망스러운 눈길을 감수해야 하는 부담감이 들어 몇 시간째 찜통 같은 창고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맹렬해지는 더위와 악취 때문인지, 아니면 윙윙대는 파리소리 때문인지 점점 정신이 혼미해져갔다.

 "그렇게 소심해서 뭘 해보겠다고? 뭐가 겁나서 썩은 내 풀풀 나는 무더운 방안에서 뒹굴고 있는 거냐?"

 아득해지는 의식 너머 어디선가 걸걸한 음성이 들려왔다. 목소리는 우물쭈물하는 그의 태도를 비난하고 있었다.

 "혼자 힘으로는 부족해? 내가 나서줄까?"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역시 아무도 없었다. 모골이 송연해진 류 탐정은 몸을 일으켜 책장에 등을 대고는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벌벌 떨고 있는 그 꼬락서니 도저히 참고 지켜볼 수가 없구먼!’

 그러나 목소리는 더욱 크게 들렸다. 그것은 밖에서 들리는 것이 아닌 그의 머릿속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모자란 자식! 그따위 정신상태로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아?’

 자신을 향한 힐난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 고막이 터질 정도로 크게 들렸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과거에도 이런 상황에 놓였던 것 같은 기시감(旣視感)이 들었다.

 ‘계속 그 꼴로 살 거라면 나가 죽어!’

 그 목소리는 과거 자신과 가족들에게 핍박을 가하던 아버지의 음성과 닮아 있었다. 그러나 그저 닮았을 뿐 분명 그의 아버지의 음성은 아니었다. 그때, 

 '딩동.'

 그의 지난한 기다림에 종지부를 찍게 해줄 휴대폰 알람소리가 방안 가득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머릿속을 가득 매웠던 폭압적인 음성도, 방 안 가득 아우성이던 더위도 일순간 잦아들었다. 그는 겨우 정신을 차라고 얼굴에 흥건한 땀을 천천히 쓸어내면서 문자 내용을 확인했다.

 '속은 괜찮아? 혹시 내가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 해.'

 그것은 슈퍼주인 강 씨의 문자였다. 류 탐정은 그의 걱정에 고마워해야 했지만 무더운 날씨 때문인지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의 머릿속에는 차가운 칡즙 안에서 미끄러지며 잘그락대는 각얼음이 생각났다. 바로 얼마 전 양 마담의 다방에서 얻어먹은.......

 신 경위의 연락도 기다리고 있다고 자신을 합리화하고 있었지만 사실 그가 기다린 사람은 양 마담이었다. 신 경위의 신신당부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연락을 해 왔다면 즉시 다방으로 달려가 마치 고해성서라도 하듯 이번 사건과 그녀의 남편 사건 사이의 연쇄살인 가능성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문자는 강 씨의 문자였고, 마치 몇 번의 배변 욕구를 겨우 참다가 도착한 화장실 문 앞에서 괄약근에 힘이 풀어지듯 그의 인내가 와르르 무너졌다.

 류 탐정이 허점을 보이자, 잠시 잠잠했던 환청과 더위가 득달같이 그를 덮쳐왔다. 더 이상 견딜 힘이 없었던 류 탐정은 창고방을 벗어나기 위해 출입문으로 내달렸다. 그러나 그의 무의적인 탈출 의지를 햇볕에 후끈 달아오른 철문이 가로 막았다.

 '철컥. 철컥.'

 더위에 지쳐 판단력이 무뎌진 그는 방으로 들어올 때 걸쇠를 잠근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마구 문손잡이를 흔들어댔다. 그러다가 마당에 침입한 이맹수를 쫓아나가다가 철문에 손이 베인 기억이 퍼뜩 떠올라 철제 손잡이에서 손을 떼고 움찔했다. 이제 거의 아물었지만 트라우마가 남은 손바닥 부위가 여전히 따끔거리는 것 같았다.

 ‘으갸갸갸드르느르크캬그라샤트카카......!’

 류 탐정의 귀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목소리는 이제 어떤 말인지 알아들을 수도 없는 소음으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폭발할 듯 뜨거운 열기 때문인지 그의 시야가 어둑하게 잦아들고 있었다.

 류 탐정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무릎을 꺾을 뻔 했다. 미련하게 참는 것보다 그편이 한결 덜 괴로울 것 같았다. 그러나 그 광기어린 목소리에 굴복하면 자신이 감당하기에 한참 버거운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불길한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그는 점점 흐릿해지는 정신의 끈을 겨우 붙들어 맸다. 그리고 가능한 최대한 길고 천천히 심호흡을 반복했다. 비록 후텁지근하고 곰팡내 나는 공기였지만 조금은 마음이 안정 되었다. 비로소 들어오는 길에 걸쇠를 잠근 것이 생각이 났고, 겨우 철문을 열고 창고방을 벗아날 수 있었다.

 

 마당에도 강렬한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지만 간간히 부는 바람이 옷에 젖은 땀을 증발시켜 한결 시원했다.

 ‘맴. 맴. 맴. 맴.’

  그리고 점잖은 참매미 울음소리에 머릿속을 지배했던 시끄러운 환청이 사그라지고 있었다.

 심신이 조금 안정되자 류 탐정은 말도 안 되는 자기만의 공상으로 창고방에서 전전긍긍했던 상황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만약 양 마담의 연락이 왔다면 애완견 마냥 쪼르르 달려갔을 자신을 생각하니 한심함을 넘어 비참함이 느껴졌다.

 그는 마치 열병에 걸린 환자처럼 양 마담에게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정상적인 의뢰관계에서는 피해야 할 상황으로 계속해서 치닫고 있었다.

 환청으로 들린 그 목소리가 다 옳았다. 온갖 강한 척, 있는 척, 아는 척은 다하고 있었지만 기실 그는 한없이 나약하고 불쌍한 존재였다. 그리고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다시 한 번 곱씹어 보았다.

 자신의 아버지의 목소리를 닮았지만 분명 다른 존재의 목소리. 확실한 기억은 없지만 과거, 특히 자신의 잃어버린 과거 어디선가 마주한 것 같은 목소리. 그리고 그 목소리에 굴복하면 틀림없이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감까지.......

 두 번 다시 마주치기 싫은 천적에게 자신의 은신처를 들킨 기분이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그를 찾아올 것이라는 생각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류 탐정은 땡볕 아래 마당 한가운데에 멍청하게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미 방 안에서 흘린 땀은 말라 까슬한 소금기로 변해 있었고, 작렬하는 햇볕에 의해 새로운 땀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그는 생각을 멈추고 마당 구석의 세면대로 걸음을 옮겼다.

 수도꼭지를 틀자 처음에는 미지근하던 물이 점점 시원하게 변해갔다. 그 차가운 물에 머리를 담갔지만 가슴속에 지펴진 화기는 쉬 꺼지지 않았다.

 요 며칠은 그가 탐정이라는 새로운 출발을 결심한 후, 가장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든 나날이었다. 경찰을 그만두게 된 그 시기보다 몇 곱절은 힘들다는 것을 실감하는 중이었다.

 그 당시에는 오로지 자신이 힘든 것은 자신의 무능력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경찰이라는 직업만 내려놓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신도에 와서 사건을 수임한 후부터는 단지 그의 회피나 포기로 종료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자신과 얽힌 과거의 기억, 과거의 사람, 현재의 사람, 주변의 사람 등 많은 고려사항들이 그를 옥조이고 있었다.

 어쩌면 서울에서의 계속된 뼈아픈 실수의 고리를 끊기 위해 한적한 시골의 사건을 수임 받아 왔지만, 현재 자신은 여전히 과거의 연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고 류 탐정은 생각했다. 언제든 자신이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날에는 가까이에서는 신 경위가, 그리고 정신병원에서는 그녀석이, 머릿속에서는 그 목소리가 공격을 시작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순간이라도 방심하였다가는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는 무저갱에 빠져버릴 것 같았다.

 어떻게든 그의 몰락을 학수고대하는 그들의 기대, 우려, 비아냥거림의 연쇄를 끊어야 했다. 양 마담의 따뜻한 온기에 정신을 놓아서는 안 되었다. 그 순간 그의 이성이 마비되어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어 버릴 것이다.

 류 탐정은 연거푸 차가운 물을 머리에 끼얹으며 자신의 마음을 다잡고, 다잡았다. 그런데 현재 자신이 걱정하고, 정신이 팔린 일 이외에 뭔가 빠트린 것 같은 꺼림칙한 생각이 계속 들었다.

 도대체 무엇인지 생각나지 않는 그 뭔가가 그의 머릿속을 다시 어지럽혔다.

 양 마담에 대한 자신의 마음은 그런대로 눌러 담았다. 신 경위에 대한 반감도 일단 접어 두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고려하지 않은 뭔가가 있는 것 같은 불편함이 가시지 않던 그때.

 그의 뇌리에 떠오른 한 명이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선영이었다.

 사건현장의 끔찍함에 놀라고, 눈앞에 보인 양 마담의 눈짓에 허우적대고 있는 사이. 그녀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과 비슷하게 과거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 신도로 왔고, 그 과거가 자신이 조사 중인 사건의 중심이 되는 보혈파와 관련이 있으며, 귀신이 보인다는 믿기 힘든 능력에 자신만 알고 있는 하얀 피부의 소녀를 다시 그 자리에서 환영으로 보았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지금까지 연락이 두절된 여고생. 바로 선영이었다.

 그는 어쩌면 겨우 여고생인 선영에게 양 마담에게서 느끼는 것과 유사한 감정을 느껴서는 안 된다는 자기강박으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선영이 배제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자신이 목도한 엽기적인 사건에 미루어 혹시 선영에게도 뭔가 나쁜 일이 생긴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런 선영의 현재 상황을 생각하자, 자기 연민 또는 비하에 빠져 허우적대는 자신이 다시 한 번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자신이 조사하는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야 없지만, 우선 그녀의 안위를 다시 한 번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류 탐정은 하루 종일 갈팡질팡하고 우유부단했던 자신의 모습이 어릴 적 술을 마시지 않은 온화한 모습의 아버지가 읽어 준 몇 안 되는 동화 중 하나인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겁쟁이 사자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 잃어버린 과거의 기억을 찾기 위해 신도에 온 선영은 도로시 같았다.

 신도라는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겁없는 도로시....... 아니, 선영. 그리고 그녀를 무사히 일상으로 돌려보내기 위해서 겁쟁이 사자에게 필요한 건 바로 용기였다. 그리고 지금의 복잡한 연쇄를 끊어야 할 그에게도 필요한 바로 그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