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혈의 증인은 그....... 그러니까.”

 “영감. 내가 이야기하는 게 낫겠수. 당신이 이야기하기에는 좀 그런 이야기잖아.”

 할아버지가 무슨 이유에선가 이야기를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할머니가 말을 자르고 나섰다.

 “보혈의 증인이라는 건, 보혈파가 신도들을 단속하려고 말 안 듣는 사람을 죽여서 신도 중 한 사람을 보혈의 증인으로 만드는 비밀의식이야.”

 “네? 사람을 죽인다구요?”

 선영은 할머니의 이야기에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그래. 우리도 하마터면 그 짝이 될 뻔했지. 내놓을 재산이라도 있으니 목숨을 붙여 놓은 거였지만....... 아까 이야기한 저 양반 손목이 저렇게 된 이야기가 바로 그 의식 때문이었어. 학생이 보았다는 그 귀신 이야기만 아니었으면 입 밖에도 내기 싫은 말이야.”

 계속된 할머니의 이야기에 큰 충격을 받은 선영은 할아버지의 의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할아버지가 쉽게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람을 죽이는 것도 끔찍한 일이지만, 더 끔찍한 건 따로 있어.”

 “네?”

 “모두 그 사람을 죽이는 일에 함께 했다는 징표로 그 집회에 참여한 모든 신도의 이마에 죽은 사람의 피를 묻혀. 그러면서 모두가 함께 한 일이고, 죽은 사람에게 누명을 씌워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리화를 하지. 나중에 보혈파가 뭔가 잘못된 것 같다고 생각하고 탈퇴를 하려고 하면 그 일로 협박을 해. 뭐, 일단 배신을 하면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먼저 갖게 되니, 그걸로 협박할 일도 많지 않겠지만.......”

 선영은 10여 년 전 보혈파의 경악스러운 행태에 크게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렇게 자신들의 과거를 숨기고, 선영에게 이야기하지 않은 이유 또한 보혈의 증인이라는 의식이 큰 몫을 한 것임에 틀림이 없을 터였다.

 그 다음으로 자신이 베스트 프렌드인 민주와 경도가 생각났다. 그들 역시 유사한 강요 또는 협박에 의해 그 무리 속에 함께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오지랖일수도 있지만 소희 역시 그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과는 어떤 원한이 없을 텐데 자신을 신도로 데려오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한 그녀의 행동을 설명할 길은 그것 밖에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보통은 제물이 될 사람에게 교묘한 방법으로 죄에 대한 자복을 하게하고, 죄를 사한다는 명목으로 옆구리를 칼로 찔러서 피를 흘리게 해서 죽여.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의 고난을 흉내 내는 거지. 학생이 봤다는 그 선생의 귀신이 바로 그 결과이겠지. 미쳐 돌아가는 상황에서는 그 모든 짓이 성녀가 하는 이적(異跡)으로 보이게 마련이고, 아까 학생이 말한 예지력이니 그런 것이 거의 다 그렇게 조작되었던 거야.”

 선영은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보혈파가 어떻게 사람들을 현혹시키는지 알 수 있었다.

 “보혈파는 그런 거짓된 기적으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사람들을 모아 그들의 재산을 가로챘어. 그때 성녀의 초능력으로 불치병도 고치고, 정신병도 낫게 한다고 해서 전국에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거든. 어쩌면 학생 부모님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한 명이었을 거야.”

 선영은 아니라고 하고 싶었지만, 자신이 10여 년 전에 귀림에 있었다면, 보혈파와 관련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우리 역시 그 의식을 통해 배신자로 낙인이 찍혔고, 몹쓸 짓을 당했지. 그리고 그 이후의 일은 아까 말한 그대로야.”

 이야기를 하던 할머니가 입술을 꽉 깨물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런 그녀의 눈에 눈물이 비치는 것을 선영은 보았다. 그녀는 할머니가 어색할지도 모른다는 슬며시 고개를 돌려버렸다.

 “다 지난 일이야. 이제 괜찮아. 그래도 이렇게 우리 둘 모두 살아 있잖아.”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요? 그것들만 아니었으면 우리가 지난 10년간 그 고생을 안 해도 되었을 텐데. 억울하고 분통이 터져 그때 일만 생각하면 속에 천불이 난다고.......”

 할아버지의 위로도 할머니의 역정 앞에 아무 소용이 없어 보였다.

 “하여간 그 짓거리를 다시 시작했다니 보혈파가 또다시 과거의 악행을 반복하려고 하는구먼.”

 “할머니, 그럼 경찰에 신고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래야겠지. 하지만 정말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또 어떤 일이 벌어질 건지 좀 더 알아 봐야 해. 보혈파가 그리 녹녹한 족속들이 아니야. 과거에도 그런 해괴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위세를 떨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야. 아무리 단속을 해도 이탈자는 있기 마련이었고, 그 사람들이 경찰에 가서 보혈파에서 일어난 일들을 다 이야기했지만 제대로 된 조사한 한 번 안 받았어.”

 할머니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해괴한 일이라는 게 그 집단 사망사건을 이야기 하시는 거죠?”

 “그렇지. 그 일은 아무리 수단이 좋은 보혈파라도 어찌할 수가 없는 일이었어. 거의 20명 정도가 죽었다고 했으니....... 우리는 그때 갇혀있어서 정확한 상황을 보진 못했지만 그 당시에 TV에도 나오고 난리였다고 하더군. 신도들에게는 휴거니 어쩌니 단속을 했지만 결국 사람이 그렇게 많이 죽은 상황을 단속할 수는 없었던 거지.”

 “그렇군요.”

 선영은 신도의 위치를 찾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그 사건의 기사를 보고 오한과 환영에 시달린 상황이 떠올라 몸서리가 쳐졌다. 직접 경험한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써늘한 기억은 어쩌면 평생 잊히지 않을 것 같았다.

 “학생이 보혈의 증인의 희생자 귀신을 봤다니 학생이 가진 능력은 정말인가 봐. 좀 무서운 능력이긴 하지만 대단한 걸?”

 할아버지가 뜬금없이 선영의 능력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어쩌면 아픈 과거의 상처를 헤집고 있는 할머니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방법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무슨! 물론 학생이 한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그렇지. 하지만 학생이 귀신을 본 것이 아니고, 그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 그러니까 보혈파 중에 한 명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져. 거기서 본 일을 우리에게 귀신을 본 것처럼 이야기할 수도 있는 거니까. 그래도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 사실 우리 같이 힘없는 늙은이 두 명을 어찌하자고, 다시 비밀리에 실행되고 있는 보혈파의 비밀을 까발릴 필요는 없을 테니.......”

 할머니의 이야기에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좀 쉬어. 더 궁금한 거야 피차 더 있겠지만, 이제 날도 어둑해지네.”

 할머니가 선영의 방 한편에 난 봉창을 바라보며 말했다. 선영도 창호지로 마감된 방문을 통해 날이 어두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네. 저를 구해주시고, 또 힘드셨을 텐데 아픈 과거 이야기도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뭔, 그런 소리를....... 아픈 사람을 다짜고짜 몰아 세워서 내가 더 미안해. 늙은이의 노파심이라고 이해해 줘.”

 “아니에요. 제가 더........”

 “아, 이제 둘 다 되었어. 서로 미안하다고 하다가 날 새겠구먼. 선영 학생도 쉬어야 되니 우린 그만 나가자고.”

 할아버지가 두 사람 사이의 반복되는 사과의 말을 말리고 나섰다.

 “그래. 좀 쉬어. 뭐 필요한 거 있으면 큰 소리로 외쳐. 나나 이 영감이나 가는귀가 먹어서 TV소리를 높이고 있어서 잘 안 들리니까. 좀 있다 밤에 들리도록 할게.”

 할머니는 다시 선영에 대한 걱정과 배려의 말을 남기고 할아버지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선영은 다시 쪽창이 난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노부부와의 대화를 되새겨 보았다.

 먼저 소희가 가졌다는 능력도 조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조작이라고 하기에는 선영의 악몽에 등장하는 동요를 알고 있었다는 것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것도 방금 깨어나기 전에 꿈에서 하얀 피부의 소녀가 부른 바로 1절과 2절이 뒤바뀐 그 동요를 똑같이 불렀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했다.

 그것은 소희의 능력이 정말이거나, 자신의 악몽 속 틀린 동요를 알고 있던 사람이거나 아니면 기억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들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자신의 능력을 보인 것은 단지 그 순간뿐이었다. 만약 그 능력이 진짜라면 다른 상황에서도 그 능력이 보였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다음으로 누군가에게 들었다는 가정은 어느 정도 가능성은 있었다. 단지 선영과 하얀 피부의 아이 윤주가 부른 것과 같이 1절과 2절의 순서가 바뀌었다는 것까지 기억하고 알려준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녀에게는 마지막, 동요를 알고 있던 사람이라는 가정이 가장 와 닿았다.

 선영의 머릿속에는 세 명의 어린 소녀가 떠올랐다. 까르르 넘어가는 소녀들의 웃음소리, 신도 분교의 수돗가 아래 찍힌 작은 세 개의 손바닥 자국, 그리고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른 기억, 방금 전 꿈에서 본 하얀 피부의 소녀, 단발머리의 소녀, 병약한 소녀.......

 그 중 윤주라는 소녀는 선영이 귀림을 찾아 갔을 때 환영으로 보였으므로 이미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그리고 나머지 이름을 알 수 없는 단발머리의 소녀와 병약한 소녀 중 한 명이 선영이고, 나머지 한 명이 소희일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소희라는 이름은 왠지 익숙하지 않았다. 그리고 꿈속에서도 그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세 명의 소녀 중 한 명이 소희라면 하얀 피부의 소녀도 아니고, 병약한 소녀도 아닌 단발머리의 소녀일 거고 선영은 생각했다.

 100% 확신은 할 수 없지만, 아무래도 병약한 소녀가 과거의 자신일 거라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부모님이 신의 능력이 아닌 인간의 조작에 의한 가짜 기적을 진짜로 믿고 보혈파가 되었다면, 그리고 그런 말도 안 되는 기적에 목매게 되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병약한 자신이 그 이유였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선영의 부모님들은 그녀가 건강한 지금도 여전히 항상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고 있다.

 그것은 그녀가 어린 시절 병약했고,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겨 겨우 건강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선영이 죽을 뻔 했다가 기적같이 회복한 날인 1월 14일을 제 2의 생일로 기념하는 것 또한 그와 같은 이유에서였다.

 선영은 현재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살고 있다. 우연이든, 기적이든 보모님의 절박한 바람이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었다.

 다만 자신을 위해 부모님들이 그런 비인간적이고, 엽기적인 의식에 참여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선영은 항상 무뚝뚝하지만, 매사에 조심하라고 호통에 가까운 주의를 주는 아버지의 말투가 그립게 느껴졌다. 그리고 거의 일주일 째, 아무런 연락도 없는 딸 때문에 걱정을 하고 계신 건 아닌지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