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은 아까부터 시작된 작은 고통이 이제는 조금 커져 가슴을 쿡쿡 찌르기 시작 하는걸 느꼈다.

 

“돌아가라니까 그러네.”

 

“싫다고.”

 

대형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왜 안 간다는 거야? 거기까지 돌아갈 음식도 있고, 그 집에는 사는 사람은 이제 다 죽었고 거기에는 몇 달은 걱정 없이 보낼 먹을 게 잔뜩 있는데.”

 

“아, 나도 집에 가고 싶거든.”

 

“…….”

 

어색하게 웃으며 그는 죽은 사내의 가방에서 나온 먹을 것을 입가로 가져갔다. 

그는 헛기침을 하며 하던 말을 이어갔다.

 

“네가 왜 집에 가고 싶은지 이제야 알겠네.”

 

“그래….”

 

기수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이제야 알겠어…이제서야.”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작은 소리가 그의 손바닥에서 새어 나왔다.

 

“….”

 

다시 또 찾아온 정적에 기수는 몰려오는 슬픔을 밀어내기 위해 억지로 말을 꺼내었다.

 

“밤새서 걷자니까. 그럼 잘하면 지금쯤 도착할 수도 있었을 텐데.”

 

“됐어. 걸을 힘도 없다 이제.”

 

새까맣던 하늘이 어느 정도 밝아지기 시작했다. 비가 오고 나서인지 바람은 조금 찼다.

조금씩 옥죄며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쿡쿡 찌르던 고통은 이제는 쑤셔대는 것 마냥 아파오기 시작했다.

살짝 뜨거운 비린 맛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아, 비를 너무 맞았나? 춥다. 기수야 땔감 좀 구해다 주면 안 될까? 다리에 지금 힘이 없어서.”

 

“그래, 알았어. 금방 갔다 올게.”

 

황급히 뛰어가는 그의 모습에 미소를 유지하고 있던 대형은 그가 멀어질 때마다 고통에 파묻힌 거짓 없는 표정으로 바뀌어갔다.

 

이 정도면 오래 잘 참았지. 그는 숨쉬기가 버거워졌다.

이제는 입으로 들이쉬고 내쉬지 않으면 참을 수가 없을 것만큼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콱 조여 오는 심장에 그는 양손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 손 위로 피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 방울씩 떨어지던 피는 줄기가 되었고 이내 폭포가 되었다.

그는 다급하게 안주머니에서 하모니카를 꺼내 움켜쥐었다.

그제서야 불안하던 마음이 조금은 안정이 되었다.

 

이걸로 된 거야. 이걸로 됐어…. 그는 작별 인사는 하고 싶지 않았다.

마음속 깊은 곳에 닫아 놓았던 게 열려버릴까 봐. 그래서 미련이 남을까 봐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꽉 쥔 하모니카를 가슴에 댄 채 천천히, 천천히 허물어져 가는 그의 입가엔 옅은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기수가 나뭇가지를 두 손 가득 들고 도착했을 때 해는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시간이 꾸준히 흘러 어느새 해는 다시 지고 있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기수는 그동안 나무둥치에 기댄 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멍한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며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그는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그럴 힘이 남아 있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충격의 여파가 커서 그랬던 것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그저 그는 그의 옆에서 덤덤하게 앉아 있을 뿐이었다.

 

하루가 꼬박 지나고 다시 아침 동이 틀 때쯤에야 그는 기계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널브러져 있는 가방에서 아무거나 하나 꺼내 대충 씹어 삼킨 후 그는 땅을 파기 시작했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그는 그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표정 하나 없이 그는 땅을 파헤쳤다.

 

몇 시간이고 파내던 그는 사람 한 명이 들어갈 정도가 되자 옆에 누워 있는 대형을 안아 들려다 힘에 부쳐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끌어 조심스레 구덩이에 내려놓았다.

흙을 밀어 넣을 때마다 몸에 닿는 모레 소리가 그의 가슴에 후벼 들어왔다.

차마 볼 수 없어 고개를 숙이며 눈을 감은 채로 그는 천천히 구덩이를 채워 나갔다.

 

그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가방을 멘 채 그 자리를 떠났다.

허기져가는 것을 느낀 그는 가방에서 조금 탄 고기 한 덩이를 꺼내어 망설임 없이 입가로 가져갔다. 초점 없는 눈으로 그는 묵묵히 걸어갔다.

 

이제 정말 다 와서인지 주변에 남아있는 가게나 집들 자체가 줄어들었고 인기척이라고는 거의 나지 않았다.

 

대낮에 걷는 게 오랜만이라서인지 그는 내리쬐는 햇빛이 유난히 따갑게 느껴졌다.

손차양을 만든 그는 자신의 손에서 흙냄새를 맡았다.

대형의 냄새가 같이 나는 것 같아 그는 그늘이 내려왔어도 손을 거두지 않았다.

반쯤 정신을 놓은 채로 몇 시간을 그렇게 걷다가 그는 목이 탔는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물 있어?”

 

“…….”

 

들려오지 않는 대답에 무의식적으로 옆을 바라보려다 방향 잃은 고개를 그냥 숙였다.

씁쓸함과 허탈함. 공허함과 착잡함에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얼마 남지 않은 거리가 왠지 많이 남은 것 같았다. 

 

 

모든 것들이 허물어졌지만 익숙한 지형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해는 저물어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다니던 곳을 지나 그가 있었던 곳, 자주 놀던 곳들을 찾아 걸어 다녔다.

세상이 가려질 때쯤 그는 그들이 어릴 적 만들어 놓았던 아지트를 찾아가기로 했다. 

 

푸른 것들이 사방으로 퍼져있고 가운데 길게 돌담이 이어져 있고 그곳 가운데에 큰 나무가 하나 있는 곳.

대형이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 쇼생크 탈출의 벅스톤의 풍경과 같다고 좋아하던 곳.

그는 그곳을 기억을 더듬으며 조각을 모아 그려보았다.

 

영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거기엔 나무 옆쪽에 컨테이너가 하나 있다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멋모르는 어린 시절을 보내곤 했었다.

대부분 애들이 그렇듯 땅에 떨어진 멋있어 보이는 것들을 주워 가져다 놓고, 자신들의 장난감을 하나씩 가져오고 길가에 버려져 있는 소파를 둘이서 힘겹게 들고 가져다 놓았던 추억의 창고.

 

그 자리에서 그들은 꿈을 꾸었고 행복한 미래를 상상했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자신들은 우물 안에 있었다는 것에 좌절을 했지만 포기는 하지 않았다.

그 개구리는 밖을 나와 넓은 세상에 주눅이 들겠지만, 온통 처음인 것들로 가득 차니까.

모든 것에 가능성을 확인해 볼 수 있으니까.

 

넓었던 길에서 점점 좁은 길들로 바뀌어 갔다.

새소리만이 들리던 조용한 길을 지나 울창했던 불안정하게 기울어 있던 나무 사이에 있던 작은 나무 길을 지나며 기억을 되새기면서 하나하나 되짚어가니 어느새 세상은 어둠이 덮여져있었다.

 

돌담이었던 것은 전부 무너져 흩어진 채 있었다.

앙상하게 뼈만 남은 나무는 살아온 세월을 자랑하듯 그 노련함과 지혜로 자연과의 싸움에서 꿋꿋이 버텨내었다. 다행이게도 컨테이너는 나무에 의지해 무너지지 않아 있었다.

 

녹이 슬어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들어간 안은 먼지가 쌓인 채로 전부 그대로였다.

각종 잡동사니와 처음 왔을 때부터 있던 작은 철물들과 밧줄.

그는 소파에 있는 물건들을 치우고 거추장거리는 밧줄을 한쪽에 옮겨놓았다.

 

작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이 있는 자리에 앉은 그는 먹먹함에 한숨을 내쉬었다.

왜인지 오늘은 유난히 피곤했다. 가방을 베개 삼아 누운 그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꾹꾹 내리눌러왔던 감정들은 결국 서서히 밀려오더니 거센 파도가 되어 폭풍우가 돼 빠져나와 그를 휘감았다.

 

입을 앙다문 채 참으며 숨죽여 울던 그는 결국엔 북받치는 괴로움과 그리움. 먹먹함과 후회들이 몰려와 서럽게 전부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제 그는 지쳤다고 생각했다.

 

 

해가 하늘에 하늘 꼭대기에 올라와서야 그는 눈을 떴다. 말라버린 목에서는 물을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컨테이너 안의 답답한 공기에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어 그는 물병을 집어 든 채 문 밖으로 나오다 발걸음을 멈췄다.

 

“아….”

 

그는 자신이 잘 못 본 줄 알았다. 미간을 꾹꾹 주무르던 그는 다시 눈을 떠 바라보았다.

하지만 역시 그것은 그 자리에 있었다. 문 옆쪽에 작은 새싹 하나가 자라나고 있었다.

 

죽어버린 줄 알았던 세상이 다시 살아나려 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는 몇 번이고 주변을 둘러보고는 자리에 쭈그려 앉아 손에 든 물병의 물을 새싹 주변에 조심스레 뿌려주었다.

그는 동요하는 마음을 다잡았다.

 

조금씩 커져가는 삶의 희망이 부지수식 간에 폭발해 그를 덮쳤다.

그는 몇 번이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머리를 컨테이너 벽에 몇 번이고 박아대며 생각을 억지로 지운 그는 남아 있는 물을 마신 뒤 마음을 정리했다.

 

그리곤 안으로 들어가 어제 봐 두었던 밧줄을 소파 위 천장에 단단히 고정시킨 뒤 끝부분을 둥그런 모양으로 만든 뒤 묶었다. 그는 밧줄을 천천히 손으로 쓸어봤다.

 

그는 다시 시작되는 이 땅에 인간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손으로 시작해 그들로 인해 모든 것이 손댈 수 없는 지경까지 가버렸으니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너무 많은 것을 가졌다.

 

만족할 줄을 모르고 모든 것을 가지려 했던 사람들은 결국 원하지 않는 것들까지 얻게 된 것이다.

마음의 준비를 마친 그는 소파 윗부분에서 불안하게 서 있는 채로 밧줄에 목을 넣었다.

어쩔 수 없이 심장이 떨려왔다. 그의 바람대로 이루어지길 그는 소망했다.

 

그리고 다음에 눈을 뜰 땐 좀 더 젊음을 즐겨보길. 꿈에 다가가든 그렇지 못하든 끝을 봤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이제 끝낼 때가 되었다. 작별 인사는 사치였다.

그는 목에 걸쳐진 밧줄을 꽉 잡은 채 소파를 넘어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