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그는 잠에서 깨어났다.

오늘이 며칠인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지금이 몇 시인지도 모르는 게 이제는 조금은 익숙해진 것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눈을 뜬 그 상태 그대로 천장만을 바라보고 있다가 상체만 일으켜 옆에 있는 창가로 시선을 옮겼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걸 보니 아침이 오려면 아직 먼 것 같았다.

 

그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떤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침묵. 너무도 엄숙하여 차마 작은 소리조차 낼 수 없게 만드는 압도적인 고요함이 건물 안과 창 너머 모든 것들을 지배했다. 썩어버리고, 죽어버린 것들뿐인 밖은 공포감을 심어주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불과 한 달 정도 전만 해도 모든 것들이 생기 있고 아름다우며 깨어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세상은 모두 죽어버렸다.

모든 걸 창조하고 그를 추앙하던 위대한 신조차 외면한 이 땅에 그는 아직 살아있다.

옆에 있는 친구와 어딘가에 자기들처럼 떠돌아다니는 남은 생존자들과 함께 말이다.

어쩌다 이렇게 파국으로 치달았을까. 그는 소리 없는 한숨을 내뱉었다.

 

모든 건 순식간이었다. 이례적인 엄청난 지진이 세계적으로 나타났고 그것은 수많은 건물들을 무너뜨렸고 그중에는 원자력 발전소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아무리 안전한 곳에다 지었다고 안전성을 보장했어도 꼭지가 돌아버린 자연의 형벌은 그것을 비웃는 것처럼 가볍게 부숴버렸다.

그 여파로 아비규환이 된 온 곳에는 결국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방사능이 퍼져나간 것이다. 그건, 그건 차마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대량의 방사능은 사람들을 말려 죽였다. 어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활자 그대로 그것이 온 세상을 덮는 순간 사람과 동물, 식물까지 모두 다 순식간에 말라비틀어지더니 그대로 가루처럼 부서져 먼지가 되어 바람에 흩날려졌다.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TV에서 봐왔듯이 세상의 종말은 예고 없이 순식간에 찾아와 모든 것을 앗아가 버렸다.

우리는 미래를 예측했지만 예측했다는 자만 때문에 안일해져 버렸던 것이었을까.

대책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죽어버린 이 땅에서 그들은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다. 생존자들은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했던 것이나 영화에서 봐온 것과는 다르게 생존자들은 서로 돕지 않았다.

 

“···.”

 

거기까지 생각한 그는 몸을 한차례 떨었다. 그때 그 광란의 날들은 아직도 치를 떨게 만들었다. 순간 오한이든 그는 흘러내린 때 묻은 낡은 담요를 끌어당겼다.

 

물론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다. 땅은 생각보다 작았고 무너진 건물들로 인해 멀리서 뭐가 있는지 알아보기 쉬웠다.

그 결과 사건이 발생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꽤나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처음에 자신들과 별다를 게 없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 공감하고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는 것에 모두는 기뻐했다. 하지만 그건 오래가지 못했다.

늘 봐오던 것과 다르게 방사능에 덮인 세상엔 탄생이란 게 없어졌기 때문이다.

 

새롭게 태어나는 생명은 없었고, 그래서 먹을 것들은 한정되어 있었기에 그들은 합치지 않았다.

서로 경계하며 의심하고 밀어내며 적대시하며 서로를 노리고 살인과 약탈이 전부가 되었다. 그래서 그는 이 땅은 죽었다고 생각했다.

불운하게 살아남은 자들은 합치기는커녕 그나마 몇 명씩 있던 무리들이 거기서 갈라지고, 갈라진 그곳에서 배신과 음모 속에서 다시 갈라지며 모래알처럼 흩어졌다.

그리고 그건 이 땅과 함께 죽어간다는 것이겠지.

 

그는 고개를 돌려 잠들어있는 친구의 모습을 본 후 조용히 주머니에서 약통을 꺼내 열어보았다. 세 알. 그 게 전부였다.

 

죽음에 대한 공포나 두려움 같은 건 오래전에 지워졌지만, 가슴 한 켠에 아주 작게 삶의 갈망이 남아있는 건, 사람의 깊은 내면에 있는 살고자 하는 본능 때문일 것이다.

작은 희망 때문일 것이다. 어딘가에 싹을 틔우고 있을, 다시 새 생명이 깨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바람.

어쩌면 지금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얼마 가지 않아 발견될 수도 있다는 그런 망상 때문에 그는 삶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혼자가 아니라는 점과 스스로 생을 마감할 만큼 용기가 없다는 점.

그는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후자 쪽이 좀 더 비중이 크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건 안식처가 되어줄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것.

미쳐버린 세상에서 같이 미쳐버리지 않게 서로를 붙잡을 수 있다는 것. 유일하게 다행인 점이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옆에 있는 그도 아마 같을 것이다.

고개를 돌려 다시 본 창밖으로는 어느새 어둠이 조금 걷혀져 있었다. 조금 있으면 새벽 동이 틀 터였다.

담요를 접어놓은 그는 친구를 깨운 후에 주변을 살피려 산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앞을 보기보다는 좌우를 조심스레 살피며 천천히 걸었다. 발자국이 생겼는지, 멀리서 누가 지켜보는지 살피며 바로 앞에 보이는 돌멩이들을 발로 한 곳으로 대충 발로 차가며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강단 있게 부러지지 않은 채 앙상하게 뼈만 남은 몇몇 죽은 나무들 사이로 몸을 가린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망원경 하나를 꺼내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왼쪽, 정면, 오른쪽 ···그리고 뒤. 눈에서 떼 주머니에 넣으며 그는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제서야 안심이 된 그는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천천히 내려왔다.

 

세상에 빛이 조금씩 자리를 차지해 가는 이른 시간에 그들은 일찍 아침을 먹었다

물론 샤워 따위는 하지 않았다. 마실 물조차 없었고, 지리상으로 주변에 강이 있는 곳이 아니었다

 강을 발견했다손 치더라도 그곳에 담겨 있는 게 물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오염된 강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 덕에 그들은 한 번도 몸을 물을 묻혀보지 못했다.

언제나 그랬듯 통조림과 나름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기 위해 먹는 견과류 한 줌, 물을 조금 타 마시는 거로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떴다.

 

“···.”

 

“···.”

 

그들은 애써 침묵을 깨려 하지 않았다. 없는 음식을 아껴 먹느라 말하는데도 에너지가 빠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저 숟가락이 통조림 바닥을 긁는 소리만이 날 뿐이었다.

그렇게 그들이 짐을 정리하고 자리를 뜨기까지 나눈 대화는 일어나, 밥 먹자, 가자. 뿐이었다.

 

그들이 아침 일찍 출발하는 데는 낮 시간 동안 조금만 걷기 위함이었다.

대략 늦봄쯤 되었을 계절인 현재 해가 완전히 떠오르고 나서부터는 꽤나 후덥지근했다.

그리고 그것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는 것을 머지않아 그들은 깨달았다.

최대한 걷기 편할 때. 이른 아침과 해가 저문 저녁때쯤에 그들은 최대한 돌아다녔다.

 

거리는 어딜 가나 휑했다. 나뭇잎 하나조차 남아있지 않은 거무튀튀한 나무들과 짙은 갈색으로 이제는 생명이 자라지 못하는 땅들. 늦봄의 바람은 훨씬 건조하고 물기가 없었다.

걷는 길의 풍경은 방향만 제외하고는 너무도 비슷해 같은 곳을 맴도는 듯한 기분마저 느끼게 해 더욱 괴기스러워 무언의 압박감과 갑갑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묵묵히 걷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주변에 동화돼 빛을 잃어 흑백이 되어버릴까 봐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이야기를 끌어내었었다. 하지만 이제는 할 이야기도, 그럴 가치도 느끼지 못했다. 역시 사람의 적응력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유했고 빨랐다.

아니면 이미 주변에 덮여졌을지도.

 

“이제 갈 데가 없는 것 같지?”

 

들려오는 말소리에 고개를 돌려 본 친구의 얼굴은 상당히 초췌해져 있었다.

살 수 있을 정도로만 먹었고 탈진이 오지 않을 만큼만 마셔서 입술은 메말라져 있었고 눈동자는 늘 흐리멍덩해 있고 움푹 들어간 볼과 빠질 대로 빠져 볼품없는 몸을 보고 있자니 말문이 막혔다. 

물론 자신도 그와 다를 바 없겠지만.

 

“그러네.”

 

“가고 싶은 곳이라도 있어?”

 

그는 생뚱맞다고 생각했다. 가고 싶은 곳이라니. 지금 이 마당에 그런 곳이 있을 리가 없었다. 먹을 것만 충분하다면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은 것이 지금의 마음이지만 그런 기적은 일어날 리가 없지. 그랬다면 애초에 이런 사달이 나지 않았을 것이다. 가고 싶은 곳?

 

“글쎄.”

 

“딱히 없으면 다른 큰 도시로 ···.”

 

친구 역시 딱히 큰 관심을 가지는 것 같지는 않았다. 가만히 있으면 그대로 굶어 죽으니 어디로라도 마트가 많은 곳으로 옮겨 다녀야 했다.

이제는 무언가를 기대하지도 못하는 현실이 되었다. 괴로운 희망 따위는 이미 말라버렸다.

 

희망은 좋은 것이라고, 좋은 건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어느 영화의 명대사는 거짓말이었다.

늘 선택의 갈림길에서 돌아가야 할 때 확신하지 못하고 갈팡질팡 고민을 하게 했던, 그래서 늘 대부분을 후회로 밀어 넣던 그 애증의 희망은 믿지 못할 만큼 사라져버렸다. 깨끗하게. 목표가 없는 이 흙빛 같은 삶에서 이렇게까지 발버둥 쳐야 할까? 남은 것들은 점점 더 줄어가는 게 눈에 보인다. 이건 아마 시한부 같은 삶. 그리고 유예기간은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가고 싶은 곳 ···마지막은.

 

“돌아갈래?”

 

“뭐?”

 

“집 가는 거 어떻냐고.”

 

“······ .”

 

들려오지 않는 대답에 그가 돌아봤을 때, 친구는 멈춰 서 있었다. 뭔가 잘못 본 듯한 얼굴을 한 채.

경직된 친구의 모습에 그는 빨리 뛰기 시작하는 심장과는 반대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