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그 아이는 거지꼴이 되었어. 엄마라는 그늘 아래 있을 때도 희한한 피부색 때문에 놀림을 많이 당했는데 엄마까지 죽은 이후에는 정말 몰골이 말이 아니었어. 떼가 꼬질꼬질했고, 들고 다니던 인형은 썩었는지 푸르스름한 이끼인지 아니면 곰팡이인지 모를 것이 잔뜩 껴 있을 지경이었으니까. 특히 남자 어른들을 보면 슬슬 피하면서 눈치를 살피곤 했지. 보혈파가 사회사업이니 어쩌니 하면서 고아들을 잘 돌보는 편이었는데 유독 그 아이는 그렇지 않았어. 다른 직분을 다 내려놓고 고아원 원장을 하던 정지선 원장도 그 아이만은 거두지 않았어. 사실 그 애 엄마만 아니었으면 자신이 뒷방 늙은이가 될 일도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을 거야.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아이가 유독 춘식이 형님의 딸이랑 친하게 지냈어. 그래서 형님이 딸 명희에게 그 아이와 놀지 말라고 했는데, 명희도 엄마나 동생이 정상이 아니다보니 집이랑 멀어지고, 도리어 그 아이랑 더 친해진 것 같았어.”

 “그럼. 그 아이 말고 춘식이란 분의 딸과 같이 다닌 다른 아이에 대해 생각나시는 것 없는지요?”

 류 탐정은 강만수의 이야기하는 태도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선영이일지도 모를 제 삼의 아이에 대해 아는지 물었다.

 “응? 다른 한 명? 음. 어디보자. 그래. 한 명 더 있었지. 몹시 몸이 약해서 입술이 파랗게 보이던 아이였는데........ 응? 그 아이는 배신자 새끼 자식이잖아? 그런데 탐정님이 그걸 어떻게 알아?”

 강만수가 다시 눈을 부라리며 류 탐정에게 덤벼들 것 같은 기세로 되물었다. 그는 분명 그 아이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 이야기 역시 여기 강 씨 아저씨에게 들었습니다. 과거 10년 전 쯤에 아저씨 슈퍼에 흰 피부의 아이와 춘식 씨의 딸 그리고 다른 한 명의 여자아이가 함께 들렸다고 하셨습니다.”

 류 탐정의 이야기에 강만수는 강 씨에게 눈빛으로 이야기의 진위에 대해 묻는 눈치였다. 강 씨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류 탐정의 이야기가 사실임을 확인해 주었다.

 “그랬구먼. 그 배신자 놈은 형님이랑 그 아이를 없애는 임무를 함께 한 녀석이야.” “네? 그, 그런.......”

 조그맣고 힘없는 소녀를 없애기 위해 성인 남자가 두 명이나 동원되었다는 사실에 류 탐정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뭐. 나도 그 임무 이야기와 그 임무를 함께 할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당신처럼 놀라긴 했어. 하필 그 아이를 제거하기 위해 선택된 사람이 그 애와 가장 친한 친구들의 아버지라니....... 교단이, 아니 그 성녀님이 뭔가 단단히 마음먹으신 것이 있지 않고서야 그럴 수가 없지 않느냐고 형님이랑 이야기한 기억이 나.”

 류 탐정은 강만수의 이야기를 통해 엽기적인 상황의 본질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과거 TV에서 본 어떤 장면을 떠올리고, 이것이 보혈파의 조직 관리의 기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TV에서 보았던 한 사이비 종교단체의 행태와 닮아 보였다. 그 종교단체는 신도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신도들을 범죄의 공범으로 만들고, 그 단체의 본질을 깨닫고 떠나려는 사람들에게 범죄에 연루된 사실을 폭로한다는 협박으로 신도들의 이탈을 막았었다. 

 만약 지금 이야기하는 상황이 TV 속 상황과 같은 수법이라면, 보혈파의 방식은 TV속 사이비종교단체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악랄하고 잔인한 것이었다. 평범한 범죄도 아닌 자신의 자식과 가장 친한 아이에 대한 교살 명령으로 조직원 간의 결속을 다지게 하고, 이탈을 방지했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 중에 한 명이 어쩌면 선영의 아버지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강만수에게 그 사람의 직접적인 신상에 대해 질문했다.

 “혹시 그 사람의 이름을 아시는지요?”

 “그 사람? 배신자? 글쎄....... 기억이 안 나는 걸. 기간도 오래되었지만, 별로 나랑은 친한 사람도 아니어서 전혀.......”

 류 탐정은 그 남자가 선영의 아버지라는 것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강만수가 계속 이야기하는 “배신자’라는 단어가 그의 뇌리에 남았다. 혹시 그 말의 의미가 배신자라고 불린 남자의 임무 거부에 의해 반인륜적인 범죄가 무산된 것은 아닐까하는 한 가닥 희망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남자를 왜 배신자라고 부르시는 거죠?”

 류 탐정의 질문에 강만수는 피식 웃음을 지어보이며 대답했다.

 “그 새끼 형님을 배신하고 튀었어. 형님이 그렇게 챙겨주고 보살펴 줬는데 정말 검은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는 옛말이 그른 게 하나 없었어.”

 “그럼 결국 그 사람이 임무를 포기했다는 건가요?” 류 탐정은 자신의 생각이 맞기를 기원하며 다시 물었다.

 “무슨 그런 개소리를 하고 있어? 임무는 둘이서 잘 갔다 왔거든? 물론 돌아온 몰골이 말이 아니긴 했지만.......”

 강만수는 짧은 시간에 마신 술에 취기가 오른 얼굴로 류 탐정의 말을 받아쳤다.

 “그럼. 결국 그 아이를 그 두 사람이 헤쳤다는 말씀인가요?”

 류 탐정은 자신의 추리가 빗나간 것도 짜증이 났지만, 그 두 사람이 결국 그 일을 행했다는 것에 대한 분노로 강만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목에 핏대를 세우고 외쳤다.

 “이 양반, 흥분했구먼. 왜 덤비기라도 하려고? 아, 그게 아니지. 설마 그 배신자라는 말이 그냥 임무를 포기하고 도망쳐서 그런 줄 알았어? 그랬으면 다행이지. 그 새끼 완전히 완전 양의 탈을 쓴 배신자였다니까?” 강만수도 붉어진 얼굴 못지않게 뻘건 핏대가 선 눈으로 류 탐정의 시선을 지르밟으며 응수했다.

 “어이 조카. 또 그러네. 또! 이러면 정말 다음에 공짜 술은 한 방울도 없어! 왜 이렇게 흥분하고 난리야?” 류 탐정과 강만수 사이에 이상기류가 감지되자 강 씨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그의 순발력이 괜한 시비 거리를 예방하는 순간이었다.

 “아, 죄송해요. 삼촌. 으으으. 나도 이 버럭질을 고쳐야 하는데.......”

 강만수는 자신의 머리를 주먹으로 몇 대 쥐어박고는 강 씨의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며 대답했다.

 “그건 주사야 주사. 그건 더 심해지기 전에 자제해야지. 그러다 나중에 큰 사단난다. 정말.”

 강 씨는 대화 끝까지 평정을 유지하는 목소리로 훈계의 말을 이어갔다. 강만수도 강 씨를 정말 삼촌이라고 여겨서 그런지, 아니면 장기간 제공해 온 동동주 때문인지 그저 잠자코 있었다.

 “자. 하던 이야기나 계속하지.”

 상황이 좀 가라앉자, 강 씨는 강만수에게 다음 이야기를 재촉했다.

 “음....... 그런데 어디까지 이야기했었죠?”

 강만수는 술에 취한 탓인지 자신이 하던 이야기를 바로 이어가지 못했다.

 “임무하고 배신자 이야기. 어이구.”

 강 씨가 그의 기억력을 책망하며 하던 이야기가 뭔지 귀띔해 주었다.

 “아. 그랬죠? 그럼 먼저 임무 이야기부터 할게요. 임무 내용은 이미 이야기를 했으니 알거고, 그때 그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할게요.”

 과거의 기억을 더듬는 강만수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춘식이 형님도 그 임무만은 거절하고 싶었지만 파수대 수장이라는 직분이 있었고, 임무를 함께 한 배신자 녀석도 그 임무를 못하겠다고 벌벌 떠는 바람에 도저히 자기도 못하겠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고 했어요. 결국 형님과 그치는 임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거지. 내가 형님에게 같이 동행해 주겠다고 했지만 형님은 극구 사양하시더라고. 그런 저주받을 짐은 나눠지는 게 아니라고.......”

 건달의 의리가 느껴지는 이야기였지만, 류 탐정에게는 그 임무 자체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자신도 그와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모든 불의를 물리치고 정의로운 선택을 했을 것이라는 자신은 없었다. 보혈파라는 조직의 압박과 자신의 지위, 가족의 안위를 포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에는 분명했다.

 “아이를 찾아 나선 그날은 무척이나 눈이 많이 내린 겨울밤이었어. 대부분의 신도들은 예배당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었는데 그 아이는 거기 없었대. 평소에도 예배가 끝나고 아이들끼리 모이는 시간에나 모습을 드러내곤 했을 뿐 보혈파 예배에는 거의 참석하지 않았거든. 명희나 그 배신자의 딸은 꼬박꼬박 예배에 참석했으니 예배 시간 동안에는 혼자서 예배당 주위를 배회하고 다녔다고 그러더군.”

 류 탐정과 강 씨는 조용히 강만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때, 먼 산 너머에서 천둥이 우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출발할 때 쨍쨍했던 날씨는 어느새 몰려든 구름으로 주변이 어둑어둑해지며 당장이라도 비를 뿌릴 것 같았다.

 “춘식이 형님과 그 배신자는 다른 신도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기도 중에 조용히 예배당을 빠져나왔대. 그리고 예배당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그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지 뭐야. 그래서 앞마당에 세워진 봉고차를 끌고 귀림 입구 쪽을 둘러보기로 했대. 그래서 차에 타고 귀림을 벗어나 막 신작로에 접어들려는 순간 길 가운데에 뭔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고 하더군. 그것이 바로 그 아이였대.”

 ‘콰광!’

 어둑하던 주위가 갑자기 하얗게 번뜩하더니 멀지 않은 곳에서 바로 천둥이 이어졌다. 

 “으악!”

 이야기에 집중해있던 세 명의 남자가 천둥소리에 놀라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여름날의 후텁지근함은 여전했지만, 이야기에서 전해지는 기괴함으로 천둥, 번개가 하늘에서 내리는 심판과도 같이 느껴졌던 것이다.

 “휴....... 십년감수했네. 그 순간에 벼락이 칠게 뭐람.”

 강 씨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그러게요. 진짜 깜짝 놀랐네요. 흐흐흐.”

 강만수가 자신이 남들에게 놀란 모습을 보인 것이 겸연쩍은 듯이 머리를 긁적이며 웃음을 흘렸다.

 류 탐정은 누구보다 놀라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저 속으로 침만 꿀꺽 삼켰다. 그에게는 현장조사에서 빗면을 급하게 내려가다 실족한 상황이 떠올랐던 것이었다. 그때도 번쩍하고 번개가 쳤고, 시야가 아득해지며, 흰 옷의 소녀가 아른거렸던 것이다.

 그 순간이 떠오르자 류 탐정은 무더운 날씨에도 한기가 느껴지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그런 류 탐정의 모습을 알아차린 강 씨는 혹시나 그가 몸이 안 좋아서 그런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비가 올 것 같은데 방에 들어가서 이야기를 계속하는 건 어때?”

 강 씨가 눈짓으로 잔뜩 찌푸린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방에 들어가실 생각은 꿈도 꾸지 마세요. 거의 몇 달을 안 치우고 살아서 발 디딜 틈도 없어요. 이제 할 이야기는 얼마 남지 않았어요. 빨리 끝낼게요.”

 강만수는 집에 사람을 들이기도 싫었지만, 두 사람, 그중에도 특히 류 탐정에게 자신의 방을 공개하여 새로운 꼬투리를 잡힐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겉으로야 강한 척, 무시하는 척 했지만, 겁을 먹는 것 같으면서도 자신을 경찰에 알리네, 어쩌네 하며 자신의 과거를 캐는 그가 껄끄러웠던 것이다.

 “네. 그러시죠. 미리 약속도 잡지 않고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그러는 건 실례인 것 같습니다.”

 류 탐정도 강만수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쳤다. 과거의 생각으로 정신이 약간 혼미해지는 것도 같았지만, 그보다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기 때문이었다.

 “류 탐정도 그렇게 생각한다면야, 그러지 뭐.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

 강 씨는 여전히 류 탐정이 걱정이 되었지만, 그의 결정과 판단을 믿고, 따르는 것이 조수의 본분이라고 생각하고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