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바탕의 화면을 접하자, 상언 씨는 아무래도 좋다고 여겼다.
인터넷을 켜고 사이트에 들어가 겨우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생각해내 로그인을 했을 때는 걱정이 없어지는 듯 했다. 
나름 기분이 차분해진 그는 평소에 하지도 않을 이메일과 쪽지를 하나하나 체크하기로 했다.

예상했던 대로 산처럼 쌓인 광고들이 상언 씨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나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 
혹여나, 하고 기대를 해보면 온갖 사이트와 불법 도박 광고뿐이다. 

"다 그런 거지, 다 그런 거야..."

한 마디 탄식을 내뱉은 후엔 하나하나, 차츰차츰 이메일을 지워가는 상언 씨였다. 
보다보면 광고만 오는 건 아니었는지 면식이 있는 사람들의 이메일도 보인다.

"잘 지내냐, 결혼식인데 꼭 네가 와줬음 해."
"야, 답장 좀 하고 살아라. 진짜 벼르고 벼른다." 같은 시답잖은 내용물들이 그거다. 
남이 본다면 행여 친한 지인들이 보낸 이메일 같다만, 딱히 그런 건 아니다. 
특히 답장을 하라는 쪽은 누군지 알 수조차 없는 이상한 사람.

"하아, 도움 되는 건 하나도 없는 건가."

언제부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동아줄을 바라던 걸까. 
단순간도 바란 적이 없지 않았던가. 언 씨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뭐랄까, 진짜 능력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쪽지도 마찬가지로 결국 오늘의 희소식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 일이라곤 도움이 될 지 시간만 까먹을지 모르는 글짓기가 전부였다.

"저기, 이제 문 닫아야 하는 데요."
"네, 알겠습니다. 이제 곧 끄고 나갈 게요."

이래도 하루는 또 흘러갈까. 아니면 언젠가 땅이 무너지고 하늘이 꺼지는 재앙이 일어날까. 
자전거를 끌고 나오는 상언 씨는 하루하루가 불안하기만 했다. 공원의 중반 쯤 이르렀을 때, 걷기가 그렇게 힘들어서 주저앉고는 왜 자신이 자전거를 타지 않고 걸어왔는지 의문을 가지기까지 했다.

사실 평소에 적적하더거나 고민이 많을 때는 자전거 어딘가 고장난 것처럼 삐걱삐걱 거리는 것 같아 차마 타지 못하던 버릇이 있었지만, 자신이 그런 버릇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잊어버린 듯 했다.

“집에 들어갈 면목이나 있나...”
"고민이 없는 하루는 있어 본 적이 없지만"

상언 씨가 나지막이 중얼거리자 곧 그 말을 잇듯이 뒤편에서 걸어오고 있는 남자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양복을 입고 있지만 옷가지가 흐트러지고 넥타이는 아무렇게나 풀려진 남자는 고주망태가 되어 있었다.

“생각이 없는 하루는 종일 있어서 이성이 남아날까 두려워.”

“술에 취하신 건가...사람이 있는데도 이렇게 부르시네.”

“그래도 이렇게 살아간다는 게, 난 정말 사랑받고 있구나.”

“사랑받는 삶을 부르시는 건가.”

사랑받는 삶은 벌써 십 년도 더 전에 나온 옛날 곡이다. 
자금난에 시달리던 한 가수가 우여곡절 끝에 만든 노래로 바람같이 퍼져나간 히트곡으로 유명하다. 그 가수는 사랑받는 삶을 만들고 한동안 공연을 다니다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고 이 후 경찰의 잇따른 수사에도 불구하고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힘든 일이 있으면 어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지, 정말.”

“오, 꽤나 고음까지 올라가시는 데...”

“생각해보면 사랑받는 삶, 그래, 사랑받는 삶을 나는 살고 있구나.”

“생각이라...”

상언 씨는 왜 그렇게 자신이 글쓰기에 매달렸는지 다시 한 번 돌이켜 보았다. 의외로 꽤 단순한 계기에서 비롯되었던 시작이었다. 자신이 어리고 자아가 형성되기도 전에 썼던 글씨를 보고 “상언이는 글을 참 잘 쓰는 구나.” 라는 아버지의 한 마디 때문이었다. 사실, 그게 아니면 이렇게까지 글쓰기에 매달릴 필요가 없었다. 초등학생 때, 누구든 한 번씩 빼먹기 마련인 일기를 하루도 빼먹지 않고 써간다거나 중학생 때, 독후감을 그렇게 잘 쓴다는 칭찬을 듣기 위해 책을 몇 번이고 다시 읽는다던가 고등학생 때, 생각보다 글을 못 쓴다는 평가에 마음앓이를 하며 몇 번이고 필사를 하는 이유도 다 그 한 마디 칭찬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상언 씨는 부정할 수 없었다.

“내 삶이 끝나가는 때, 그 때가 이 사랑 끝나는 날일 테니, 그 때까지 살아가련다.”
“사랑, 사랑인가.”

사랑,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굉장히 추상적이지만 하나의 정답이 아닐까.
상언 씨는 일어섰다. 그러자 그 양복 아저씨는 순간 놀라, “아이구, 깜짝이야.” 라는 소리를 지르며 부끄러웠는지 멀리까지 뛰어 가버렸다. 황망한 아저씨의 행동에 상언 씨는 자전거를 타고 마치 그 뒤를 쫓듯 힘껏 밟아나갔다. 집에 가자!

“가서 계속 살아가야지.”

집에서는 상언 씨의 어머니가 기다린다. 잔소리도 어김없이 나왔다.
그래도 괜찮다. 사람은 죽지 않고 살아간다. 잔소리도 사랑이 없음 나오지 않는다.
“엄마” 하고 상언 씨는 말한다. “왜” 라고 묻는 어머니에게 상언 씨는 말했다.
“저 좀 한 번만 믿어주세요. 아르바이트도 다시 다니고 열심히 살아볼 테니까, 저 다시 한 번 믿어주세요.” 그런 상언 씨에게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묵묵히 밥을 푸는 상언 씨의 어머니는 반찬을 덜어 식탁에 올려놓고, “먹자.” 라는 말만을 남겼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