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수야!”

 류 탐정이 맹수에게 다가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 소리에 맹수가 시선을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멍한 표정이 점점 불안한 표정으로 바뀌더니 입을 열었다.

 “보혈의 증인.......”

 “아니야. 양 마담 아줌마가 그랬잖아. 난 보혈의 증인이 아니야.”

 “진짜요?”

 “그래. 어제는 내가 너무 미안했다. 내가 널 때린 걸 용서해 주겠니?”

 “어떤 거요?”

 “아, 내가 어제 보육원 앞에서 말이야.......”

 어제 보육원 앞에서의 일을 사과하려던 류 탐정은 맹수의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고는 이야기를 멈췄다. 그의 표정으로 보아 어제의 일을 제대로 기억 못 하고 있는 듯 했다. 어쩌면 심리적 충격이 너무 커서 그런 것은 아닌가 하는 자책도 들었지만 굳이 상대가 기억하지 못 하는 상황을 되새겨 이로울 것이 없다는 것을 방금 전 양 마담과의 일에서 느꼈기에 그 이야기는 그만 두기로 했다. 맹수는 멈췄던 걸음을 다시 떼면서 삼거리로 향했다.

 “그런데, 어디 가니?”

 류 탐정이 맹수와 나란히 걸으며 질문했다.

 “집에 가요. 흐흐흐. 아침 밥 먹으러.”

 “집에? 아 보육원에....... 그런데 어디 갔다가 오는 길이야?”

 “기도하고....... 아, 아뇨. 그냥 집에 가는 길이에요. 진짜예요.”

 ‘기도?’ 류 탐정은 분명 맹수의 이야기에서 분명히 들었다. 그러나 맹수는 황급히 그 사실을 부정했다.

 “원장님이랑 같이 갔다 오는 길이니?”

 “아뇨! 엄마는 같이 안 가요. 가면 큰일 나요. 나쁜 엄마가 되요. 그러면 너무 무서워요.”

 맹수는 노(老)원장을 엄마라고 부르고 있는 것 같았고, 류 탐정 판단으로는 그녀가 함께 동행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더불어 그녀가 맹수가 참여한 기도 모임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맹수야. 그런데 너희 보육원의 개들은 어떻게 되었어?”

 그는 어제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나온 개들의 사체가 맘에 걸려 맹수에게 물었다.

 “개? 강아지? 아, 우리 도돌이와 도순이는 시원해졌어요.”

 “시원해져? 그게 무슨 소리야?”

 “엄마가 시원한 방에 넣어두라고 했어요. 그래서 내가 그 방에 넣어줬어요. 거기는 내 마음대로 들어가면 안 돼요. 거기 내 맘대로 들어가면 보혈의 저주를 받는다고 했어요. 정말이에요.”

 ‘시원한 방. 보혈의 저주.......’

 류 탐정은 맹수의 이야기에서 자신이 설마 했던 끔찍한 추측이 실제로 벌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형 냉동고....... 동사(凍死).’

 물론 100% 물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맹수의 이야기를 통해 그가 의심했던 냉동고의 용도가 평범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개들의 시신 대신에 그 안에서 쭈그리고 앉아 죽었을지도 모를 김철규 사망사건의 현장 사진을 떠올리고는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그렇다는 것은 결국 김철규를 살해한 용의자 1순위는 보육원 원장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10년 전 집단 사망사건과 연관이 있음은 분명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녀가 10년 전 사건의 주범이든, 아니면 그 사건을 흉내 낸 모방범이든....... 바로 그때,

 ‘빡!’

 자신의 추리에 대해 생각을 다시 정리하던 류 탐정의 눈앞에 큰 소리와 함께 별이 번쩍했다. 그와 동시에 이마에 통증이 몰려왔다. 눈을 들어 앞을 바라보니 보육원 원장이 단장을 들고 다시 자신을 내려치려고 하고 있었다. 

 갑자기 등장한 그녀의 모습에 화들짝 놀란 류 탐정은 삼거리 반대 방향으로 냅다 뛰었다. 상식적으로야 나이가 든 할머니를 충분히 막아설 수 있었지만, 류 탐정의 본능이 그 자리를 벗어나라고 명령했다. 그녀가 살인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를 도망가게 만들었던 것이었다.

 “거기 서라! 이놈! 또 맹수에게 달라붙어! 이런 찢어 죽여도 시원찮은 놈! 거기 서!”

 조그마한 몸에서 나온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큰 소리가 류 탐정의 뒷덜미에 따라붙었다. 그는 그 소리를 양 팔로 휘저어 겨우 떨쳐내며 정신없이 뛰었다.

 한참을 그렇게 뛰고서야 진정이 된 류 탐정은 천천히 뜀박질을 멈추며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밤 동안 잠시 주춤했던 여름더위가 아스팔트를 타고 슬슬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고, 필사적으로 흔들어대던 사지가 갑자기 멈추면서, 팽창한 고막에서 심장이 쿵쾅거렸고 머릿속에서는 땀이 비 오듯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 쏟아지는 땀이 가격당해 생긴 상처에 닿아 몹시도 욱신거렸다. 

 막상 허겁지겁 도망친 류 탐정은 자신이 과거에 경찰이었다는 사실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고작 한 명의 힘없는 노파에게 도망쳐 그 먼 길을 달려온 자신이 너무 한심해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런 그에게 신도면 파출소가 눈에 들어왔다.

 

 한편, 잠시 방에서 휴식을 취했던 선영은 아침 식사 후 김 집사가 주도하는 수시관련 과외에 경도와 참여했다. 김 집사는 어제까지 교육을 담당했던 과외선생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공백을 메꿨다. 어떤 면에서는 도리어 과외선생보다 뛰어난 면모를 과시했다. 특히 김 집사의 과외 수업에서는 경도가 어느 때보다 열심히 집중해서 수업에 임했다. 평소에도 반말을 하지 않는 그의 신사적인 태도에 경도는 어떤 불만도 보이지 않았고, 수업이 끝날 즈음엔 그의 열렬한 팬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선영은 그의 완벽한 수업에도 불구하고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계속 소희와 김 집사가 그동안 보여준 모습들이 영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선영의 마음에서는 여전히 경고를 보내고 있었고, 자신의 잃어버린 과거를 찾는 것이 맞는 것인지 하는 의문마저 들었다. 그렇게 어영부영 점심식사까지 마치고 자유시간이 되었다.

 그녀가 방에서 오후에 돌아볼 지역을 고민하고 있는데 노크소리와 함께  소희가 방으로 들어섰다. 

 “선영아. 아직 컨디션이 별로인 거야? 낯빛이 여전히 어둡네.”

 소희가 선영에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가 봐. 며칠 쉬어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직은 별로 안 좋네.”

 선영은 자신의 고민을 들키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그녀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쳤다.

 “그럼 오늘 오후 자유 시간에도 방에서 쉴 거야?”

 “글쎄. 아직 100% 컨디션은 아니지만 그래도 좀 움직이는 편이 좋을 것 같아. 계속 누워만 있었더니 더 몸이 처지는 것 같아.”

 “그래? 아무래도 그럴지도 모르지. 그럼 오늘도 신도에 갈 거야? 김 집사님한테 차를 준비시키라고 할까?”

 소희가 선영을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 오늘 그래도 첫 수업이시라 고단하실 테니. 내가 혼자서 가지 뭐. 계속 부탁을 드릴 수야 없잖아.”

 선영도 그 눈빛을 피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렇긴 한데 여기 버스가 거의 30분에 1대가 다닐까 말까야. 네 몸이 다 나은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내가 김 집사님께 말씀드려 놓을게. 그게 내 맘이 놓을 것 같아.”

 소희는 여전히 여유 있는 눈빛으로 선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 그냥 혼자 갈게. 물론 김 집사님이 너희 집 집사이시니 넌 그럴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나는 편하지 않아.”

 선영도 이번만은 소희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겠다고 속으로 다짐하면서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래? 네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김 집사님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고 계신 분이야. 어쩌면 너의 그런 사양이 그 분의 자존심에 상처가 될지도 몰라. 워낙 완벽한 분이니.......”

 소희는 자신의 톤을 유지하면서 선영의 판단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였다.

 선영은 소희가 말에 그녀가 정말 온실 속의 화초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이야기를 듣자니 절대로 자신과 같은 일반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녀에게 더욱 가시 돋친 말로 응수했다.

 “네가 사는 온실 같은 세상과 내가 사는 세상에는 큰 차이가 있어. 너에게는 너를 항상 챙겨주는 집사님이 계시지만 나에게는 집사는커녕 지금 우리 집의 형편에 이런 별장에서 생활은 어쩌면 평생 꿈도 꾸기 힘들어. 과외조차도 민주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지. 그게 나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야.”

 그런 선영의 이야기에 소희의 눈빛이 순간 일렁였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과연 지금까지 누구의 일상이 더 온실이었을까? 내가? 아니면 네가?”

 “그........ 그게.”

 선영은 지금까지 보지 못한 소희의 돌발적인 이야기에 당황하여 그녀의 이야기에 제대로 된 답변을 할 수 없었다.

 “평범한?”

 

 ‘똑! 똑! 똑!’

 소희가 무슨 이야기를 꺼내려는 순간 누군가 노크를 했다.

 “죄송합니다. 소희 아가씨 계십니까?”

 문 밖에서 묵직한 남자의 음성이 들렸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김 집사였다.

 “아, 네. 저 여기 있어요.”

 갑작스럽게 자신을 찾는 김 집사의 음성이 들리자 소희는 방금 전까지의 격양된 모습은 온대간대 없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버님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아가씨와 통화를 원하십니다.”

 “네. 바로 내려갈게요. 감사해요.”

 소희는 방금까지 선영에게 들어냈던 발톱은 찾아볼 수 없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러나 선영의 눈에 소희의 양 손에 미세하게나마 떨림을 느낄 수 있었고, 특히 길고 잘 다듬어진 다른 손톱과 달리 손톱 밑이 빨개지도록 짧고 울퉁불퉁하며 손질이 되지 않은 오른쪽 검지 손톱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런 선영의 눈길을 느꼈는지는 모르겠으나 소희는 양 손을 움켜쥐며,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 소희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선영은 소희의 움켜진 손이 그리고, 손톱 아래에 피가 날 정도로 짧은 그녀의 검지 손톱이 눈에 밟혔다.

분명, 눈에 밟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