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 탐정은 오늘도 이른 새벽부터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며칠 전 다방에서 양 마담과 그 일이 있고나서부터는 해가 뜨기 전 시간에 창고 방을 빠져나왔다. 혹시라도 그녀와 마주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그녀가 류 탐정에게 기습적인 입맞춤을 했었다. 그녀는 많이 취해 있었고, 심적으로 많이 힘든 상황이었으므로 그 행동이 온전한 정신으로 행해진 것인지는 류 탐정도 알 수 없었다. 또한 그녀가 그 일을 기억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직접적으로 물어볼 수도 없었을 뿐더러 그 날 이후로 류 탐정이 의식적으로 그녀를 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이후 이른 새벽에 방을 빠져 나온 류 탐정은 사건조사에도 열중하지 못하고 많은 시간을 다방 근처에 몸을 숨기고 양 마담의 행동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며칠간의 그녀의 행동에 미루어 짐작컨대 그녀는 그 상황을 기억하지 못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양 마담은 그 일이 있은 다음 날에는 몇 시간 늦게 다방으로 출근하였지만 이후에는 평소와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 일에 대해 어렴풋이 라도 기억나는 것이 있었다면 류 탐정에게 전화든 문자든 아니면 직접 방으로 찾아오든지 해서 뭔가 확인하려고 했을 터였다. 그러나 그녀는  그 어떤 연락도,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숙취로 고생한 듯한 첫 날 오전을 제외하고는 연일 특유의 쾌활한 미소로 마을을 활보했었다.

 사실 그 일에 대해 류 탐정만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을 뿐, 양 마담에게는 별일이 아닐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멍하니 생각에 빠져있던 류 탐정의 입술에 양 마담이 가볍게 키스를 한 것이 그날 일의 전부였다. 

 

 그날. 류 탐정은 그녀의 기습 키스에 놀라 바짝 얼어버렸고, 그녀는 잠시 입맞춤 후 고개를 떨어뜨리더니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잠이 들어버렸다.

 그렇게 십여 분이 지나자 부상당해 불편한 팔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잠든 그녀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자세로 안고 있던 류 탐정은 척추에 전해지는 무게감에 전신이 땀에 젖었고, 근육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양 마담이 깨지 않게 최대한 조심스럽게 천천히 소파에 뉘었다. 그리고 긴장감에 굳어서 삐걱거리는 몸을 천천히 풀면서 잠든 양 마담에게 덮어 줄만한 것을 찾아보았다.

 여름이라 굳이 이불이 필요하지는 않았지만 짧은 하의를 가려줄 무언가는 필요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잠든 양 마담이 깰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실내의 불을 켜지 않고 어둑한 상황에서 어항의 조명과 비상구 불빛에 의존한 채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차 쟁반을 싸기 위한 보자기 몇 개만 눈에 띄었고 제대로 덮을만한 것은 쉽게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준비실 구석에 접혀져 있던 고스톱 전용 모포가 눈에 들어왔다.

 혹시나 지저분하지 않을까 싶어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보았지만 엷은 섬유유연제 냄새가 세탁한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류 탐정은 모포를 펴서 그녀의 하반신을 덮어 주었다.

 

 양 마담은 아무런 미동 없이 쌕쌕 작은 숨소리로 잠들어 있었다. 그런 그녀가 잠든 소파의 옆 자리에서 우두커니 30분가량 앉아있던 류 탐정은 그녀가 한동안 깨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조용히 다방 밖으로 나왔다. 어두컴컴한 실내와는 달리 지상으로 향하는 계단에서는 밝은 빛과 무거운 여름의 뜨거움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는 다방 입구를 나서며 긴 한숨을 내 쉬었다. 혹시나 그녀가 깨어나는 것 아닌가하는 걱정과 그녀가 깨어나서 키스 이상의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에 숨조차 크게 쉬지 못했던 것이다.

 류 탐정은 다방 입구 기둥에 등을 대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자 다방으로 향하는 지하 계단으로부터 약간 서늘한 바람이 느껴졌다. 그 바람이 척추골을 타고 흐르던 땀과 반응하며 서늘한 한기에 살짝 몸이 떨렸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입술에 엷게 남은 그녀의 부드러운 감촉이 되살아났다. 풍선의 표면 같이 탱탱하면서도 약간은 몰캉한 습기를 머금은 그녀의 입술을 다시 떠올리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류 탐정은 지난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여자와의 입맞춤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았다. 자신이 기억나지 않는 고등학교 이후부터 경찰관으로 근무한 기억 중에 혹시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 이전 과거에는 찌든 가난에서, 기억을 잃어버린 이후에는 심한 무기력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었던 삶이어서 여자친구라는 사치를 부릴 여유가 그에게는 없었던 것이었다.

 류 탐정은 머릿속에 떠오른 망상을 간신히 잠재우고 길 건너 공중전화박스로 향했다. 서둘러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다방 안에는 양 마담 혼자 술에 취해 잠들어 있었고 혹시나 다방에 누군가 침입하여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공중전화박스 안에서 다방 입구를 주시하면서 서산으로 넘어가는 여름 햇살을 온몸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도로를 지나치는 자동차가 흐트러뜨리는 매캐한 먼지가 더욱 짜증스러운 여름 저녁이었다. 여전히 뜨거운 날씨에 들어가는 이도 나오는 이도 없었고, 아직 해가 지려면 좀 더 시간이 있어야 했다.

 무작정 그렇게 기다릴 수는 없겠다고 생각한 류 탐정은 나름의 묘안을 생각해내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 그것은 공중전화로 다방에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류 탐정의 전화로 걸면 뭔가 그 상황이 다시 이어질 것 같았고, 그렇다고 밤새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었다.

 

 ‘뚜르르....... 뚜르르르르르르......’

 “여....... 보세요.”

 몇 번의 시도 끝에 양 마담이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류 탐정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 그녀가 깨어나는 것이 목적일 뿐 자신이 전화한 것을 밝힐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10여분이 지나자 그의 계획대로 그녀가 다방 밖으로 걸어 나왔다. 약간 비틀거리긴 했지만 그녀는 곧장 삼거리를 향해 걸어갔고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제야 안심이 된 류 탐정은 창고 방으로 돌아갔고, 그 후로 3일 간 양 마담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이른 새벽에 방을 나섰던 것이다.

 

 류 탐정은 방을 나서기 전에 거울 앞에 서서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우두커니 쳐다보았다. 며칠 면도도 하지 않아 수염이 까슬하게 자랐고, 신도로 내려온 이후 한 번도 머리 손질을 하지 않아 머리도 꽤 덥수룩하게 웃자라 있었다. 그리고 오른팔에는 때 묻은 붕대가 어설프게 감겨져 있었다. 시골이라 누구하나 신경 쓰는 사람이 없어서 그렇지 서울에서 이런 행색으로 돌아다녔다면 노숙자로 오해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붕대를 감은 손에 아귀힘을 쥐어 보았다. 약간의 통증은 있었지만 견딜만한 정도였다. 그는 언제 떨어질지도 모르게 겨우 붙어있던 반창고를 떼고 붕대를 풀어버렸다. 팔을 고정하기 위해 댄 반쪽의 깁스도 떼버렸다. 붕대와 깁스의 압박에서 벗어난 팔뚝의 혈관이 팽창하면서 팔이 약간 화끈거렸다.

 그는 손을 몇 번 쥐었다 펴 보았다. 크게 고통이 느껴지진 않았다. 의사가 미세골절이라고 했는데 그 짧은 시간에 붙었을 리는 만무하고, 왠지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벌기 위해 남을 속이는 일은 서울이나 시골이나 똑같다는 생각이 들자 씁쓸함이 느껴졌다.

 붕대를 풀어낸 팔은 며칠간 씻지 못한 탓에 땀과 먼지로 떼가 꼬질꼬질했다. 그냥 외출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 류 탐정은 마당으로 나가 그동안 불편한 팔로 제대로 감지 못했던 머리를 감고 오랜만에 면도를 했다. 그리고 팔의 때도 벗겨내니 복잡한 그 간의 생각들도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으며, 설령 기억한다 하더라도 그녀에게는 어쩌면 가벼운 장난에 불과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양 마담에게 류 탐정은 아직 솜털이 벗겨지지 않은 한낱 애송이에 불과할 것이었다.

 상대는 아무 관심도 없는데 혼자서 어쩔 줄 몰라 안절부절못한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부끄러웠다. 자신의 민망함을 어쩌지 못해서 사건 조사에 충실했어야 할 아까운 시간을 3일이나 허비했다는 것이 더욱 자신을 자책하게 만들었다. 이제부터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하겠다고 생각했다.

 머리의 물기를 대충 수건으로 털어 말리고 새로운 마음을 다지기 위해 머리도 좀 잘라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방을 나섰다. 등산화의 끈을 묶고 일어서려는데 대문이 벌컥 열리면서 양 마담이 마당으로 들어섰다.

 

 방금까지 아무 일도 아니라고 자기 합리화에 열중했던 류 탐정은 그 날 그 순간의 모습으로 얼어붙어 버렸다. 더불어 양 마담의 생글거리는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류 탐정님.”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양 마담이었다.

 “네....... 네.”

 그녀의 이야기에 류 탐정은 성의도 없고, 영혼도 없는 긍정의 대답만 연발했다.

 “여전히 날씨가 덥죠? 요 며칠 안 보이시던데 무슨 일 있으셨어요?”

 ‘정령 그녀는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기억은 나지만 별 일이 아니라는 뜻일까?’

 양 마담의 평상적인 질문에 바로 답을 생각하지 못 하고 류 탐정이 주춤거렸다.

 “혹시 그 날 일 때문에 그러시는 거예요? 전 아무렇지도 않으니 너무 그러지 마세요. 호호호.”

 양 마담의 이야기에 류 탐정은 그만 자리에 주저앉을 뻔 했다. 그의 생각과 달리 그녀가 그 날의 일을 다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저기....... 그 날 일은 제가 정말 죄송.......”

 “무슨 그런 말씀을요. 제가 좀 더 신중했어야 했는데 다 제 실수예요.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어쩔 줄 몰라 하는 류 탐정의 말허리를 끊으며 양 마담이 벌 것 아니라는 듯이 이야기했다.

 그는 닳디 닳은 그녀와의 입맞춤으로 전전긍긍하고 혼자서 오해하고, 이해하고 갖은 스토리를 만들어 낸 자신이 미칠 듯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양 마담에게 그는 한낱 장난감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그녀는 아무 일도 아닌 듯이 싸구려 웃음을 남발하면서 류 탐정을 놀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만은 언제나처럼 마냥 웃어넘길 수는 없다는 생각이 배알 깊숙이에서 치밀어 올랐다.

 

 류 탐정이 생각하기에 그녀의 분 냄새나는 웃음은 비록 진창에 빠져서 허우적대고는 있지만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살아온 자신의 인격에 대한 모독이었다. 고작 화류계 여자에게, 그것도 자신보다 10살 이상 많은 양 마담에게 잠시나마 호감을 가진 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생각되었다. 웬만한 일에는 허허실실 웃어넘기던 그의 얼굴이 순간 심하게 구겨졌다.

 항상 조심하고 남에 대한 피해의식에 절어있던 자신이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사실에 류 탐정도 내심 놀랐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 이 모습이 잃어버린 기억 속의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자 다시 한 번 신음했다. 그리고 한편으로 자신이 이 기분을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섬뜩했다. 

 

 그렇게 그의 흉심(胸心)이 꿈틀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