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 탐정 주위의 울음소리는 점점 잦아들고 있었다.

 맹수가 부르던 찬송가도 양 마담의 만류에 의해 그친지 오래였다. 하지만 류 탐정은 아직 물기가 덜 말라 축축한 골목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저....... 탐정님. 이제 그만 일어나세요.”

 양 마담의 걱정 어린 말이 귓전에 들려왔지만 류 탐정은 더더욱 그녀의 이야기를 따를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바로 자신이 세상 무엇보다 혐오하는 폭력을 휘둘렀기 때문이었다.

 비록 먼저 공격을 받았다 하더라도 상대는 지능이 모자란 청년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맹수의 공격을 유발한 것은 자신이 상황대처를 잘못했기 때문이었다.

 맹수는 양 마담의 비명에 반사적으로 류 탐정을 공격한 것일 뿐, 류 탐정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이나 악의는 없었던 것이었다.

 사실 류 탐정이 더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자신의 공격적인 행동이 단지 맹수의 공격에 대한 반격이 아닌 잊혔던 과거 기억에 대한 반발심에서 비롯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현장조사를 한답시고 호기 있게 나섰던 날. 흙바닥에 꼬라박혀 혼절한 후, 정신이 들기 전에 본 구박받는 동생에 대한 환청과 오늘 아침의 앰뷸런스 소리에 대한 공포, 그리고 방금 전의 매정한 기억들을 부정하고 싶은 행동.......

 사건 현장조사에서 머리를 다친 것인지 그 날 이후 잊혀졌던 기억의 파편들이 하나 둘 류 탐정에게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하나같이 마음에 상처가 될 만한 것들이어서 그는 한없이 날카로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어 곳곳에 숨어있던 습기가 하나둘 자취를 감추자 한여름의 터줏대감인 매미들이 목청껏 울어대기 시작했다.

 분명 도시의 매미소리와는 다른 어떤 운율이 느껴지는 소리였지만 류 탐정에게는 단지 귀찮은 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10여분의 시간이 흐르고, 골목길에 있는 사람들의 모든 시선은 일제히 류 탐정을 향해 있었다.

 아이들은 눈물이 얼룩진 지저분한 얼굴로 힐끗힐끗 류 탐정을 훔쳐보았고, 양 마담은 지긋하면서도 한편으로 애처로운 눈길로 류 탐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맹수만이 여전히 그에게서 시선을 뒤로 돌린 채 웅크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류 탐정도 더 이상 자신이 만들어 놓은 이 상황을 방관할 수만은 없었다. 총총히 매달린 눈빛을 외면하면서 천천히 일어났다.

 “괜찮으세요? 탐정님?”

 양 마담이 겨우 몸을 일으킨 그에게 다가오면서 물었다.

 “괜찮고 자시고 할 게 있나요. 제 행동에 놀라시지는 않으셨는지 모르겠네요. 죄송합니다. 특히 저 맹수라는 친구에게는 무척이나......”

 “아니에요. 맹수가 먼저 탐정님을 공격했잖아요. 그래서 제가 주의를 줬어요.”

 양 마담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냈다.

 “아닙니다. 그래도 제가 그래선 안 되었어요. 저 친구가 온전한 정신을 가진 친구도 아니고.......”

 류 탐정은 아까의 미친 듯이 광분한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말을 잇지 못했다.

 “.......”

 양 마담도 덩달아 할 말을 잇지 못했고, 또 다시 골목 안에는 시끄러운 매미소리만 가득 채워졌다.

 잠시 주저하던 류 탐정은 자신이 일으킨 사태에 대해 매듭을 지어야한다고 생각하고 맹수에게로 다가가서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의 손길에 맹수가 두려움을 느꼈는지 몸이 부르르 떨렸다.

 “맹수야. 미안해. 내가 잘못했다. 그만 일어나자.”

 “보....... 보혈의 증인.......”

 맹수는 고개를 돌려 두려움과 의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고는 류 탐정을 처음 만났을 때와 방금 전에 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보혈의 증인.’

 류 탐정은 맹수가 만날 때마다 그에게 그렇게 부르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맹수에게 어설픈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그의 두툼한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맹수가 웅크렸던 몸을 펴고 바닥에서 일어나자 보육원의 아이들이 우르르 그의 뒤로 돌아가 숨었다. 그리고 고개만 조금 내밀고 류 탐정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이어서 류 탐정은 양 마담에게 다가가서 조용히 귓속말을 했다.

 “안에 펼쳐진 상황은 보셔서 아시겠지만 맹수나 아이들이 보기에는 별로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랑 슈퍼주인 강 씨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개들은 죽어있었고, 보육원 할머니는 현관 앞에 혼절하신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강 씨 아저씨는 앰뷸런스를 타고 할머니와 함께 병원으로 갔고, 저는 남아서 상황을 전달하려 했는데 갑작스럽게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렸네요.”

 “네....... 그러셨군요. 종이포대에 덮여있긴 했지만 개의 모습은 충격적이었어요. 아이들이 봤다면 더 충격 받았을 거예요. 그런데 경찰서에 신고는 하셨어요?”

 “저도 신고를 할까 하다가 혹시 이 상황을 만든 범인이 보육원 안에 있는지 살펴보던 중에 아이들이 도착해서 이렇게 사단이 나고 말았네요. 지금이라도 신고를 해야겠죠?”

 류 탐정이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에 다소 안도하는 눈빛을 보이며 양 마담이 이야기를 이었다.

 “그런데 신고를 하면 보육원 원장님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네요. 남한테 뭐든 간섭 받기를 싫어하시는 분이라....... 사람이 상한 것도 아니고 개들이 왜 죽었는지는 모르는데 괜히 나섰다가 불호령을 내리시는 것은 아닌지 걱정돼요.”

 류 탐정도 사실 바로 신고를 하지 않은 이유에 그와 같은 이유도 있었다. 개가 죽은 이유가 남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사고인지도 정확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흠....... 그럼 애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 상태를 보여줄 수도 없고.......”

 “그거라면 걱정 마세요. 제가 잠시 애들을 맡고 있을게요. 다방에 어차피 손님도 없고, 한 쪽 자리에 쉬게 할 테니 상황이 정리되면 저한테 연락을 주세요.”

 “알겠습니다. 수고스러우시겠지만 그게 좋겠군요. 저는 강 씨 아저씨에게 연락을 해 보고 이후 진행상황을 지켜보겠습니다.”

 류 탐정의 이야기에 양 마담의 미간이 약간 찌푸려졌다.

 “네. 그런데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슈퍼주인 강 씨와 너무 가깝게 지내지 않으셨으면 해요. 언젠가는 분명히 류 탐정님에게 헤를 끼칠 것 같아서 조마조마해요.”

 양 마담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류 탐정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참고하도록 하죠.”

 알게 모르게 강 씨의 도움을 받고 있는 류 탐정으로서는 그를 매몰차게 거절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양 마담의 이야기를 무시할 수도 없는 이도저도 아닌 상황이 어색하고 힘겨웠다.

 “네. 그럼 저는 애들을 챙겨서 가 있을게요. 조심하세요.”

 양 마담은 류 탐정의 대답에 섭섭함을 감추지 못한 눈빛으로 이야기를 하고는 겁먹은 아이들에게 다가가 다독거렸다. 그리고 아이들과 맹수와 함께 다방으로 향했다.

 류 탐정은 멀어지는 양 마담의 뒷모습을 보면서 과연 강 씨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당장에는 그를 밀어낼 구실도 이유도 없었다. 양 마담의 이야기대로 나중에 그런 상황이 온다면 모를까 현재까지는 강 씨만이 마을에서의 유일한 조력자였다.

 착잡한 마음을 뒤로하고 보육원으로 발길을 옮기던 그때.

 ‘끼익!’

 큰길 쪽에서 차가 급하게 멈춰서는 소리가 들리고 연이어 인근이 시끌시끌해졌다.

 류 탐정은 가던 발걸음을 돌려 큰 길 쪽으로 향했다.

 

“이런! 쌍년아! 여기가 어디라고 고개를 들이미는 거냐? 이제 연놈들이 번갈아가면서 내 속을 뒤집으려고 해? 그래. 어디 죽어봐라. 이년아!”

 큰 길에는 원장 할머니가 욕을 퍼부으며 양 마담의 머리채를 잡고 흔들고 있었다.

 양마담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원장의 행동에 크게 반항도 하지 않고 고작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할머니! 그만 하세요.”

 류 탐정이 다가가 원장의 행동을 막아섰다.

 그가 뜯어말렸지만 이미 양 마담의 머리는 산발이 되었고, 그의 행동에 진노한 원장 할머니는 노기 가득한 목소리로 그에게 쏘아붙였다.

 “역시 네 놈도 이 년과 한패였구나. 진즉에 이럴 줄 알았지. 너희 잡놈들에게 분명 보혈의 저주가 내릴게야. 암! 아무렴!”

 그리고 양 마담에게 향했던 손을 류 탐정으로 바꾸고 그의 머리카락을 잡기 위해 허공에 손을 허우적거렸다.

 류 탐정은 손목을 잡고 겨우 막아서긴 했지만 방금 전까지 혼절해있었던 노파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억척스러운 힘을 느꼈다.

 “원장님. 그 분은 아니에요. 제가 인사를 시켜드리려고 왔다가 사고를 함께 목격하신 분이에요. 정말 이번 일이랑은 아무 상관이 없어요.”

 양 마담이 머리채를 잡혔을 때는 보이지 않던 슈퍼주인 강 씨가 노(老) 원장 앞으로 나서며 류 탐정을 변호하고 나섰다.

 “강 씨. 저 인간은 얼마 전에도 찾아와서 맹수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했어. 그 가여운 것이 아는 것이 뭐가 있다고 그 애한테 뭔가를 캐내려고 했었지. 그런 인간을 어떻게 곱게 볼 수 있어?”

 원장의 이야기에 잔뜩 주눅이 든 표정으로 강 씨가 말을 이었다.

 “단지 사건을 조사하러 서울에서 오신 분이에요. 얼마나 착하신데요. 절대 맹수에게 헤를 끼치실 분이 아니에요.”

 강 씨의 이야기에 류 탐정은 속으로 뜨끔했다. 강 씨의 이야기와 달리 방금 전에 맹수에게 무차별 폭력을 가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래봐야 그 밥에 그 나물이지. 다 그 조사도 저 양 마담 년이 시킨 것이고, 결국 그게 다 우리 보혈의 집의 이름에 먹칠을 하려고 하는 짓임에 틀림이 없어.”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공정하게 조사할 겁니다. 제 양심에 걸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원장 할머니의 근거 없는 비방에 류 탐정이 발끈하고 나섰다. 그 말마저 참는 것은 자신이 탐정이 된 근본적인 이유를 부정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염병할....... 지랄하고 자빠졌네. 이 더러운 세상에서 뜬금없는 양심타령이야? 네가 그렇게 깨끗하냐?”

 노(老) 원장의 일갈에 류 탐정은 다시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 역시 지울 수 있다면 지우고 싶은 과거의 기억 속에서 자신의 동생에게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었기 때문이었다. 

 “아. 제발 그만하세요. 정말 이 분은 그러실 분이 아니라니깐요. 원장님 좀만 참으세요.”

 류 탐정이 잠시 할 말을 잃었을 때 강 씨가 그를 두둔하고 나섰다. 그리고 한참의 실랑이와 겨우 정신을 차린 양 마담이 자리를 뜨고 나서야 노(老) 원장의 노기는 조금씩 수그러들었다.

 

 그 이후에도 한동안 강 씨는 류 탐정에 대한 변론을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원장님 정말 이 분은 죽은 김 씨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오신 거라니까요. 절대 양 마담 편이 아니에요. 제가 이렇게 같이 다니는 것 보면 모르시겠어요?”

 “자네같이 실없는 인간의 말을 어떻게 믿어?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인사가....... 그만 해.”

 강 씨의 노력 덕분인지 아니면 보육원 원장이 제풀에 지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거의 감정이 가라앉은 것을 류 탐정은 느낄 수 있었다. 

 양 마담은 조심하라고 했지만 역시 강 씨 덕분에 류 탐정도 정신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그래서 방금 전 보육원에서의 사건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죄송하지만 보육원의 개들은 왜 죽은 건가요? 누가 일부러 죽인 건가요?”

 원장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먼저 특유의 꼬장꼬장한 눈빛으로 류 탐정을 꼬나보았다. 그리고 눈빛을 삭히며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탐정이라더니....... 이것도 무슨 대단한 살인사건처럼 보이나? 그냥 뒈진 거야. 아까 생선 먹다 남은 걸 줬더니 가시가 목에 걸린 모양이지.”

 류 탐정은 원장의 대답에서 왠지 모를 체념 같은 것을 느꼈다.

 “에이. 그게 말이 되요? 저 큰 개들이 겨우 생선가시에.......”

 강 씨가 이때다 싶었는지 원장의 이야기에 토를 달고 나섰다.

 “그럼 내가 거짓말이라도 한다는 겐가? 됐고, 강 씨랑 거기 희멀겋게 생긴 탐정 양반. 나 좀 도와 줘. 맹수야. 넌 동생들 여기서 잠깐 보고 있어. 너희들은 오빠 말 잘 들어야 한다. 알겠지?”

 류 탐정은 노(老) 원장이 이야기에서 급히 대화를 매듭지으며 뭔가 숨긴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괜한 도발로 그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 봐야 더 얻을 것이 없는 것도 자명해 보여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네.......”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맹수를 비롯한 아이들의 힘없는 대답소리가 들렸다.

 노(老) 원장은 아이들에게 옅은 미소를 보이고는 보육원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류 탐정과 강 씨도 군말 없이 그녀를 따라 보육원 마당으로 향했다.

 

 보육원 마당 안에는 여전히 평범하지 않은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류 탐정과 강 씨는 원장의 지시에 따라 마당에 널브러진 개들의 주검을 아이들의 눈에 띄지 않는 보육원의 뒤쪽으로 옮겼다. 그리고 뒷마당의 창고에서 산업용 냉장고의 모터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