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 탐정은 헐레벌떡 보육원의 입구에 도착했다.

 숨을 고르기도 전 네다섯 명의 아이들과 큰 덩치의 이맹수....... 그리고 낯익은 여자 한 명이 보육원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낯익은 여자는 바로 양 마담이었다.

 선두에 서 있던 아이들이 문 앞에 나타난 류 탐정을 보고 멈칫거리며 발걸음을 멈췄다.

 뒤이어 맹수와 양 마담도 아이들이 위치한 자리까지 다가와서 걸음을 멈췄다.

 “어.......?”

 “응? 류 탐정님 아니세요? 여긴 웬일이세요?”

 맹수의 말문을 막고 양 마담이 류 탐정에게 물었다.

 “그....... 그것이.......”

 갑작스러운 양 마담의 등장과 질문에 당황한 것도 있었지만 지금 보육원 안에서 벌어진 일을 제대로 설명할 방법을 류 탐정은 쉽게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 사이 양 마담이 아이들을 뚫고 류 탐정에게 다가섰다.

 맹수는 아이들을 끌어안고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중얼거렸다.

 “보혈의 증인.......” 

 맹수가 또다시 류 탐정에게 ‘보혈의 증인’이라는 말을 한 것을 되새겨볼 사이도 없이 양 마담이 류 탐정을 스치며 보육원 마당 안으로 들어서려고 했다.

 류 탐정이 그녀의 발걸음을 멈추려고 손을 뻗으려고 했지만 그녀가 향한 방향이 그가 부상을 입은 오른쪽 팔 쪽이라 급하게 몸을 회전해서 왼팔로 그녀를 막아섰다. 하지만 이미 그녀는 보육원 안의 상황을 다 봐 버렸다.

 “꺄악!”

 양 마담이 강한 비명과 함께 그 자리에 엉덩방아를 찧듯이 주저앉았고, 류 탐정이 그녀의 비명을 진정시키기 위해 무슨 말인가 하려고 하는 순간에 뭔가 ‘쿵’하면서 강한 충격이 그의 전신에 전해져왔다.

 ‘윽!’

 뭔가 비명을 내지를 틈도 없이 그는 바닥에 널브러졌고, 연이어 육중한 무게감과 함께 그의 목을 조르는 강한 힘이 느껴졌다.

 맹수가 류 탐정을 밀어젖히고 그에게 올라타서 강한 손아귀의 힘으로 그의 목을 짓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맹수야! 안 돼!”

 “내 주의 보혈은 정하고 정하다.......”

 연이어 양 마담의 날카로운 외침이 들렸고 그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찬송가와 함께 목에 가해지는 강한 압력으로 류 탐정의 혀가 목 안으로 말려들면서 점점 의식이 희미해졌다. 그리고 점점 아득해지는 의식 너머로 맹수를 흔들며 맹수의 손아귀에서 그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양 마담의 모습이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류 탐정의 시야는 갑자기 정전이 된 것처럼 한 점 빛도 없이 깜깜해졌고 주위의 소리는 물속에 잠긴 것처럼 먹먹해졌다. 그리고 깊은 심연으로 소용돌이치며 빨려 들어가는 기분을 느끼며 의식을 까마득해져갔다.

 

 그러기를 얼마가 지났을까?

 먹먹한 고막을 갉는 듯한, 쥐가 찍찍대는 듯한 소음이 점점 커지더니 그 소리는 사람들의 대화소리로 변했다.

 

 “안 된다. 저 녀석은 내가 어떻게든 맡으마. 제발 이러는 건 아니야.”

 어떤 중년 아주머니의 울을 섞인 절규가 들렸다.

 “제발 이러지 마세요. 더 이상 방법이 없잖아요. 저 녀석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아시잖아요. 이제 저도 이 집구석에서 나가면 도저히 엄마 혼자서 돌보는 건 무리에요.”

 “그렇다고 어떻게 네 동생을 그런 곳에 입원을 시켜? 그러면.......”

 “엄마! 저도 마음이 아파요. 정성이를 위해서는 이 방법 밖에 없어요. 저도 이제 임용되면 더 이상 여기에 있을 수 없어요. 이건! 우리 모두를 위해서는 이게 최선이에요.”

 이 대화는 분명 엄마와 류 정직 간의 대화였다.

 류 탐정이 잃어버린 기억의 한 조각이 불연 듯 떠올랐던 것이었다.

 그의 몸이 덜덜 떨리면서 눈물이 한없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런 그의 귓전에 새로운 목소리가 오버랩되어 들려왔다.

 ‘탐정님....... 탐정님.......’

 

 “탐정님? 정신 차리세요. 탐정님!”

 “콜록! 콜록! 콜록!”

 목소리가 뚜렷해지며 류 탐정은 막혔던 숨이 트였고,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났다.

 그의 눈앞은 눈물에 가려져 희부윰하였고, 터져 나오는 기침소리를 가리기 위해 의식적으로 치켜든 오른 팔에서는 강한 진통이 느껴졌다. 

 다시 왼팔을 들어 입을 가리고 연신 기침을 내뱉은 류 탐정은 다시 살아있음을, 그리고 다시 생각난 과거의 기억이 가져다 준 떨림이 여전히 몸에 남겨져 있음을 느꼈다.

 겨우 기침을 멈추고 눈에 고인 눈물을 제거하자 눈앞에 걱정스러운 양 마담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뒤로 어렴풋이 거대한 몸집으로 뒤돌아서서 그와 마찬가지로 벌벌 떨면서 고개를 처박고 있는 맹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류 탐정은 순간적으로 눈에서 불똥이 튀며 벌떡 일어나 웅크린 맹수의 등에 발길질을 퍼부었다.

 “죽어! 이 병신 새끼야! 죽어!”

 “어흑! 내 주의 보혈은....... 컥! 정하고 정....... 컥!”

 맹수는 류 탐정의 발길질에는 연신 괴로워하면서도 전혀 반격할 기미 없이 일전의 찬송가를 불러대기 시작했다. 

 “류 탐정님! 이러시면 안 돼요. 제발 참으세요. 제발! 흑!”

 “너 같은 병신은 뒈져야 해!”

 양 마담이 눈물을 보이면서 류 탐정을 뒤에서 뜯어 말렸다. 하지만 그녀를 뿌리친 그의 발길질과 욕설은 멈추지 않았고 그가 힘이 다해 더 이상 발을 들 수 없을 때서야 겨우 발길질을 멈췄다.

 “우엥....... 엉....... 엉, 엉........”

 류 탐정이 정신을 차리고 나니 주변은 온통 울음바다였다.

 그 울음소리는 어린 보육원 아이들과 양 마담이 내는 울음소리였다.

 “내가 주께로........ 쿨럭! 지금....... 가오.......”

 그 와중에도 웅크린 맹수의 노랫소리는 끊어질 듯 끊어질 듯 멈추지 않고 들려왔다.

 

 류 탐정에게 자신이 저지른 갑작스런 행동의 결과에 대해 심한 자괴감이 밀려들었다. 

 그는 온 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며 골목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한 동안 골목에서는 울음소리가 메아리치며 그를 괴롭혔다.

 

 선영이 별장에 도착했을 때 친구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김 집사의 과분한 보호와 경고 속에 자신의 방으로 직행한 선영은 소나기에 젖은 옷을 벗고 뜨거운 물에 샤워를 했다.

 별장안의 시원한 온도도 온도였지만 보육원에서의 남은 한기를 털어내고 싶었던 것이었다.

 선영은 뜨거운 물이 온 몸에 쏟아지자 보육원에서의 불안했던 상황에서 온 두려움이 서서히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이 따뜻하고 안락한 환경을 벗어나서 맞닥뜨린 모든 일들이 현실이 아니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샤워 후  간단한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드라이기로 젖은 머리를 다 말렸을 때 쯤, 마당으로 친구들이 들어서는 소리가 들렸다.

 선영은 머리를 고무 밴드로 동여매고 거실로 내려갔다.

 거실에는 무더운 날씨 때문인지 다소 상기된 표정의 친구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밝은 표정의 소희와 민주와는 달리 역시나 경도는 뭔가 못마땅한 표정이 역력하였다.

 “선영이는 와 있었네? 벌써 씻은 거야?”

 “응. 아까 소나기를 좀 맞아서.......”

 민주의 질문에 선영이 대답했다.

 “그래? 아........ 아까?”

 민주의 대답을 듣던 선영은 친구들이 전혀 비에 젖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의아해하는 표정의 선영에게 소희가 말했다.

 “아. 아까 저 위에 있는 동굴에 갔었거든. 거기에 있을 때 비가 왔었지. ‘쿠르릉!’ 하고 난리더니 비가 꽤 왔나 보네? 그래서 동굴 밖 바닥이 축축했구나.”

 “아........ 그래. 하하하!”

 소희의 이야기에 민주가 맞장구를 쳤고, 역시나 경도는 뭐가 불만인지 못마땅한 표정을 지우지 않았다.

 “집사님 일 도와 드리는 건 힘들지 않았어?”

 소희가 선영에게 찡긋 눈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으....... 응. 난 그냥 따라갔다가 왔는데 뭐. 주변 구경은 재미있었어?”

 선영은 자신의 사소한 거짓말에 괜히 찔리는 기분을 느끼며 친구들의 오후일과에 대해 물었다.

 “우린 재미있었는데 경도는 영 아닌가 봐. 아까 동굴에서 잠깐 혼자 뒀는데 뭐가 무서웠는지 난리도 아니었어. 크크크.”

 민주가 경도에게 눈을 흘기며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우이씨.......”

 경도는 얼굴이 뻘게지며 뭐라고 하려다가 꾹 참는 느낌이었다.

 “민주야. 그만 해. 우리가 좀 심했어. 호호호.”

 소희가 경도의 눈치를 살피며 민주의 이야기를 막아섰다.

 그녀의 이야기에 경도가 분을 삭이며 자신의 방이 있는 이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방문이 ‘쾅!’하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 있었는데 경도가 저래?”

 경도의 태도에 의아한 선영이 남은 친구들에게 물었다.

 “아. 그게 우리가 잠깐 장난을 쳤거든. 경도 혼자 동굴 속에 두고 둘이서 잠깐 어디에 피해 있었거든. 근데 얼마 후 경도에게 돌아갔는데 빠짝 쫄아있더라고. 크크크.”

 “민주야. 우리가 심했어. 소나기도 오고 천둥도 치고 했는데 혼자 뒀으니 아무리 남자라도 그랬겠지. 거기에 우리 걱정도 많이 했다잖아.” 

 민주가 통쾌하다는 듯이 말했지만 소희는 조금은 경도에게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 그래. 소희 말이 맞긴 하지. 그래도 뭘 봤다나? 들었다나? 참 경도 표정이 볼만했어.”

 “민주야. 그만 하자. 응?”

 “아....... 알았어. 그러자.”

 민주가 여전히 감흥에 젖어 이야기를 이어가려고 하자 소희가 단호하게 말을 맺었다.

 선영의 생각에 민주는 그동안 경도에게 맘 졸이고 당했다고 생각한 것을 소희를 만나고 나서부터 복수를 하고 있는 것이 즐거운 듯 했다. 그러나 민주는 경도에 대한 마음을 접은 것은 아니며, 도리어 그것을 용인해주고 응원해주는 소희에게는 몹시도 추종을 넘어서 복종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자신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상대에 대해서는 괴롭힘으로라도 관심을 갈구하고, 자신보다 강한 상대에게는 한없이 약해지는 민주가 갈수록 더욱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선영은 민주의 이야기에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뭘 보고? 뭘 들었다?’

 분명히 민주의 이야기에서 경도가 다른 친구들에게 뭔가 보거나 들었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이야기였지만, 선영은 자신이 현재 겪고 있는 일들을 고려했을 때 그냥 우스갯소리로 치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다시 민주에게 그 이야기를 꼬치꼬치 캐물으면 보나마나 경도가 힘들어한 상황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것이 뻔해 보였다. 그리고 경도에게 물어봐야 자신이 걱정하고 있음에 대한 걱정만 가중시킬 뿐, 그 상황에 대해서 속 시원하게 털어놓을 것 같진 않았다.

 결국 소희를 통해 사건의 진위를 파악해야겠다고 선영은 판단했다. 혹여 소희의 이야기에서 의문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경도에게 넌지시 물어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이다.

 

 이후 소희가 민주를 떠밀다시피 방으로 들여보냈고, 자신도 샤워를 하고 오겠다며 방으로 향했다.

 선영은 그들이 다시 거실로 돌아오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서 생겼을지도 모를 기이한 현상은 잠시 접어두고 떠올리기 싫지만 그래도 외면할 수는 없는 보육원에서의 일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보았다.

 그녀에게 들렸던 소리는 분명 귀신의 소리가 아닌 과거 기억의 소리였다. 그리고 그렇다는 건 자신이 과거의 어느 시점에 그 보육원에도 방문했었다는 것이었다.

 선영은 휴대폰을 열어 세면대에서 찍은 세 손자국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앙증맞은 그 손자국을 보고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비록 악몽의 중심에 있는 그 마을을 찾지는 못했지만 신도의 근처로 오고 나서부터 과거의 잃어버린 기억들이 하나 둘 떠오르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그리고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이 가는 방향에서 자주 눈에 띄는 류 탐정의 존재를 다시 떠올려 보았다.

 선영이 찾고 있는 곳을 알고 있음에도 그곳의 위치를 밝히지 않는 탐정....... 

 그녀는 지금은 보육원 사건에 대해 선영에 대한 의혹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지만 머지않아 반드시 자신을 도와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영은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런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에 열중하고 있는 그녀를 김 집사가 현관 쪽에서 벽에 몸을 기댄 채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