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원 현관 앞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선영의 손가방에서 진동이 울렸다.

 ‘삼거리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김 집사의 문자였다.

 휴대폰의 시간을 보니 3시 20분이었다.

 많은 사건을 한 번에 겪어 시간이 많이 흘렀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고작 몇 십분 밖에 지나지 않았다.

 간단한 응답을 문자로 보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전 이만 가봐야겠어요.”

 “아직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이는데 좀 더 쉬었다 가지 그래?”

 “일행이 삼거리에 도착해서요. 그리고 제 휴대폰번호 알려드릴 테니 연락하실 일 있으면 연락주세요. 평일 오후 1시에서 6시까지 통화가 가능하니 그 점 참고하세요.”

 류 탐정이 자신의 휴대폰을 선영에게 건넸다. 그리고 선영은 자신의 번호를 입력하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나는 남아서 보육원 아이들이 도착했을 때 이렇게 개들이 죽은 것과 할머니가 응급실에 간 상황을 설명해야할 것 같아. 그리고 혹시 가는 길에 힘들면 전화 줘.”

 “네. 그럼 다음에 봬요.”

 류 탐정이 골목 앞까지 나와 그녀를 배웅해 주었고, 선영은 보육원 골목을 나서서 삼거리로 걸음을 옮겼다.

 선영의 뒷모습을 보면서 류 탐정은 그녀의 믿기 힘든 이야기들을 곱씹어 보았다.

 귀신이 보이고, 잃어버린 과거를 간직한 여고생.......

 그녀는 현재의 불안전한 자신보다 더욱 위험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이미 그녀의 사건에 자신도 한걸음을 내딛은 상태이며, 당장에는 거절하였지만 결국 그녀를 돕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하늘하늘 멀어져가는 그녀의 애처로운 뒷모습을 보고 있는 류 탐정의 머릿속에는 김정호의 ‘작은 새’라는 노래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 가엾은 작은 새는 쓸쓸한 길을 그리운 집을 찾아 날아만 간다.......’

 

 삼거리를 출발할 때 무덥게 느껴졌던 날씨가 다시 반복되었지만 비에 온 몸이 젖은 때문인지, 아니면 개 짖는 소리의 환청으로 차가운 한기를 느낀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뜨거운 태양이 반가운 선영이었다. 그리고 혹시나 지박령이 나타나지 않을까 주위를 살피며 삼거리로 향했다.

 선영이 삼거리에 도착했을 때 젖은 옷은 어느 정도 말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별장으로 향하는 갓길에 김 집사의 SUV가 시동을 켠 채 서 있었다.

 그녀가 차로 다가가자 운전석이 열리며 김 집사가 내렸다. 그리고 비에 젖어 쭈글쭈글해진 그녀의 원피스를 보고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오면서 말했다.

 “이런, 아까 내린 소나기를 맞으신 겁니까? 제가 아가씨를 따라 갈 걸 그랬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김 집사가 차의 트렁크를 열어 큰 목욕타월을 꺼내서 선영에게 덮어주었다.

 “햇볕에 대강은 마른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아직 물기가 남아있으니 이걸로 좀 닦으시고 별장에 도착할 때까지 덮고 계십시오.”

 “네. 감사해요.”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닦으며 선영이 대답했다.

 김 집사는 조수석으로 선영을 인도하여 그녀를 차에 태우고 다시 운전석으로 탑승했다.

 “에취!”

 차 안 공기는 에어컨으로 인해 차가워서 수건을 덮었지만 선영은 한기가 느껴져서인지 가벼운 재채기를 했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바로 에어컨부터 끄겠습니다.”

 김 집사가 에어컨을 끄고 차의 모든 창문을 내렸다. 그리고 차를 출발시키며 선영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 좀 전에 비가 장대처럼 내리던데 그걸 피하지 않고 다 맞으신 것 같군요.”

 “아....... 그게 신도 분교에 갔다가 나오는 길에 소나기가 갑자기 내렸어요. 마땅히 피할 곳도 없어서 어쩔 수 없었어요.”

 선영은 보육원에서 있었던 일을 김 집사에게 숨겼다. 괜한 걱정거리를 더 남겨봤자 이후 신도에 대한 조사에 걸림돌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다음부터는 제가 아가씨를 모시고 다녀야할 것 같습니다. 이 일을 소희 아가씨께서 아시면 틀림없이 불호령을 내리실 겁니다.”

 차가 파출소 앞을 지날 때 건널목에서 아까 삼거리에서 마주친 지박령이 건들거리며 지나가는 차를 살펴보고 있었다. 선영은 눈길을 파출소 쪽으로 피하며 김 집사의 이야기에 답했다. 

 “아니에요. 그러시면 제가 더 부담이 되요. 아저씨까지 따라 오시면 더 집중할 수도 없을 것 같고요. 겨우 비에 젖은 것뿐이에요. 우산을 준비하지 않은 제 실수에요.”

 “아까 제체기를 하시던데 감기기운이라도 있으신 것 아닌지요?”

 “괜찮아요. 아까 차가운 에어컨 때문에 기침이 났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달리는 차 안으로 무더운 공기가 빨려 들어와 드라이기 같은 효과를 낸 덕분에 선영의 겉옷은 거의 말랐고 속옷은 아직 덜 말라 조금 찝찝하긴 했지만 남자인 김 집사님 앞에서 티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저 묵묵히 참았다.

 “그나저나 잃어버린 기억에 대한 단서는 좀 찾으셨는지요?”

 “아, 왠지 신도분교의 교문이 어딘지 낯이 익어서요. 그래서 거기에 다녀왔어요.”

 “그러시군요. 다른 학교 교문과 다르게 나무문으로 된 것이 인상적인 학교죠. 그래서 아가씨의 눈길을 끌었을지도 모르겠군요.”

 “네. 그 나무문이 낯설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 안을 둘러보다가 세면대에.......”

 선영은 김 집사의 이야기에 대답하려다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자신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교문이 나무문인 것을 어떻게 김 집사가 알았을까 하는 점이었다. 왠지 께름칙한 생각이 든 선영은 김 집사에게 그 이유를 바로 물었다.

 “그런데 아저씨. 신도 분교의 교문이 나무문인 것은 어떻게 아셨어요? 제가 아까 이야기했던 가요?”

 “아....... 그것이....... 별장이 근처이고 같은 생활권이어서 작년엔가 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건 왜 물어 보시는 거죠?”

 김 집사가 약간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이내 이유를 설명했다.

 “그렇군요. 김 집사님도 예전에 신도에 오신 적이 있나 싶었어요. 그랬다면 제 과거의 기억을 찾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아쉽네요. 그리고 아직은 뚜렷하게 이거다 싶은 과거의 기억은 없네요. 좀 더 자주 다녀 봐야 할 것 같아요.”

 선영은 김 집사의 이야기에 답하면서 분교 안의 세면대에서 발견한 손자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다 말았다.

 김 집사의 얼버무리는 듯한 대답에 확실히 짚어낼 수는 없었지만 뭔가 의구심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정말 김 집사가 뭔가 숨기고 있다면 그것을 알기 전에 자신이 알게 된 사실을 밝히지 않기로 했다. 그것은 소희와 다른 친구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는 사이 차는 냇가를 끼고 언덕길을 올라가고 있었고 멀리 별장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선영이 삼거리를 돌아 모습을 감추자, 류 탐정은 보육원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열어 보았다.

 혹시나 개들을 죽인 범인의 지문이 남아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옷으로 왼손을 감싸고 닫는 면적을 최소화하여 문을 열었다.

 개들이 죽고, 할머니는 혼절했으며, 앰뷸런스 소리까지 들렸는데 보육원 내부에 누군가 있었다면 기척이라도 보였을 테지만 아무 기척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그래도 누군가 안에 있는지 확인을 해 보려고 보육원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의 형광등은 모두 꺼져있었고, 아래쪽 신발장에는 실내화만 가지런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위쪽 신발장에 몇 켤레의 운동화가 보였지만 최근에는 신지 않았는지 먼지가 덮여있었다.

 “누구 없어요?”

 류 탐정의 목소리가 텅 빈 공간에서 약간의 메아리와 함께 돌아왔다.

 그의 생각대로 보육원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류 탐정은 아무도 없는 공간에 그것도 초대받지 않은 곳에 혼자 서 있자니 묘한 긴장감이 들었다.

 그런 의도는 아니었지만 마치 물건을 훔치러 들어온 도둑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선영에게는 보육원의 상황을 아이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남는다고 하였지만 사실 보육원과 자신이 수임 받은 사건의 사망자와의 연관성이 없는지를 찾는 것이 애초의 목적이었으므로 도둑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류 탐정은 신발을 벗고 보육원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소나기를 그대로 맞은 탓에 양말도 흥건하게 젖어서 바닥에 물기를 남길 것 같아 양말도 벗었다.

 왼손만으로 물에 젖은 양말을 벗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겨우 양말을 벗어 뒷주머니에 넣었다.

 양말 아래 허옇게 불은 그의 맨발이 드러났다.

 그는 발에 남은 물기를 자신의 바지에 문질러 닦고 신발장에 놓인 실내화를 하나 꺼내서 신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는 큰 거실을 중심으로 몇 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2층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나무 계단 층계의 입구는 녹슨 자물쇠로 굳게 닫혀있어 한동안 사용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거실과 맞닿은 방문 중 일부는 문이 열려 있었다.

 열려진 문 안에는 2층 침대가 2조씩 들어있는 것으로 보아 보육원 아이들이 생활하는 방이었다.

 닫힌 문은 한 곳을 제외하고 모두 잠겨 있었으며 그 방에는 간단한 사무집기와 서류들이 있는 것이 혼절한 할머니가가 사용하던 집무실로 보였다.

 좀 더 자세한 조사를 하고 싶었으나 괜히 개들이 죽은 사건 조사가 이루어질 경우 조사의 혼선을 줄 것 같아 더 이상의 조사는 포기했다. 그리고 지금 류 탐정이 행하는 모든 행위는 엄밀하게 이야기해서 무단침입이었기에 더더욱 조사를 이어갈 수 없었다.

 현재 상황에서는 이 정도가 최선이라고 생각한 류 탐정은 다시 입구로 돌아왔다.

 

 현관문을 나선 그는 보육원 외부에 대한 조사를 이어나갔다.

 회벽으로 이루어진 보육원 벽을 따라 뒤로 돌아가자 창고로 쓰이는 슬레이트 지붕의 건물이 하나 보이고 아이들이 타는 것으로 보이는 자전거들과 리어카가 한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창고로 보이는 건물의 문은 걸쇠만 결려 있을 뿐 잠겨있지는 않았다.

 류 탐정은 걸쇠를 풀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는 작은 창문으로 인해 어두웠다. 점점 시야가 적응이 되었을 때 그의 눈앞에 거대한 산업용 냉동고가 눈에 띄었다.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여전히 가동 중임을 알 수 있었다.

 냉동고로 다가간 류 탐정은 조심스럽게 냉동고의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후텁지근한 공기를 밀어내며 차가운 냉기가 쏟아져 나왔다.

 안에는 각종 육류가 차곡차곡 보관 중이었으나 그 크기에 비해 내부에 빈공간이 너무 많았다.

 겨우 이 정도의 육류를 보관하기 위해 이렇게 큰 냉동고를 가동한다는 사실이 낭비라는 생각이 드는 류 탐정이었다. 그리고 그의 뇌리에 사망자의 검시 관련 자료가 떠올랐다.

 ‘저체온에 의한 심정지....... 짧은 시간에 비해 심한 시신의 부패 정도.......“

 류 탐정은 설마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만약 그의 추리가 맞는다면 이것은 실로 엄청나고 엽기적인 사건임에 틀림이 없었다.

 

 혼란에 빠져 있는 그의 귓전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보육원 아이들이 골목으로 들어서고 있는 것 같았다.

 류 탐정은 얼른 창고 밖으로 나와 마당을 향해 뜀걸음으로 이동했다.

 잠시 뛰었을 뿐인데 가슴이 쿵쾅거리며 심하게 요동질 쳤고, 다친 팔의 욱신거림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더운 날씨와 반대로 서늘한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