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영이 학교의 쪽문을 열고 다시 도로로 나온 시간은 오후 2시 50분.

 그녀는 저녁 6시까지 자유 시간이었지만 신도면 삼거리에 대한 오늘의 조사는 그만하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 넓은 동네도 아닐뿐더러 더운 날씨로 인해 별로 나다니는 사람도 없었고, 삼거리 슈퍼에서 탐정과 그의 조수를 만나고 신도 분교에서 새로운 기억의 조각을 찾은 것만으로도 성과는 충분하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선영은 휴대폰을 꺼내서 김 집사에게 전화를 했다. 그러나 잠시 신호가 가다가 전화가 끊겼다.

 ‘딩동.’

 ‘잠시 후 전화 드리겠습니다.’

 메시지 수신음과 함께 김 집사의 문자가 왔다.

 그녀는 그의 문자에 ‘오늘 볼일은 다 봤어요. 삼거리에서 기다리습니다.’라는 문자를 남겼다. 그리고 삼거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혹시 시간이 남는다면 삼거리 슈퍼의 탐정에게 들러 자신의 상황을 어떻게든 납득시키고 자신을 대신해서 조사를 맡길 수 있는지 물어나 볼까하는 생각도 있었던 것이다.  

 

 ‘우르르르릉.’

 갑자기 먼 산 너머에서 천둥소리가 들렸다.

 선영이 고개를 들어 산을 바라보니 화창하다 못해 눈이 시리도록 푸른 머리 위 하늘과 달리 천둥소리가 들리는 쪽 하늘에는 높게 발달한 구름이 어슬렁어슬렁 산을 넘어 오고 있었다.

 조만간 한바탕 소나기가 내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별장에서 출발할 때의 화창한 날씨로 우산을 챙기지 않은 선영은 소나기를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종종걸음으로 삼거리를 향해 바삐 걸음을 재촉했다. 

 선영이 조만간 내릴지도 모를 비를 피하게 위해 땡볕 아래에서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자니 숨이 차오르고 온몸에서 땀이 배어 나왔다. 그리고 이정도 더위라면 좀 볼썽사나워도 차라리 비에 흠뻑 젖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가 그렇게 더운 날씨에 대해 불평을 속으로 토로하며 걸어가고 있을 때 산을 넘어선 구름은 점점 선영이 있는 쪽으로 번져오고 있었다. 그리고 구름의 아랫자락으로 뿌옇게 치맛단을 내린 것은 틀림없는 빗줄기였다.

 

 ‘콰과과광!’

 천둥소리는 더욱 크고 가깝고 무겁게 들리며 산 정상 쪽에서 번개가 내리치고 있었다.

 번개가 칠 때마다 구름을 머리에 쓴 산이 카메라 플래시에 얼굴을 껌뻑이고 있었다.

 선영이 종종걸음으로 교문을 출발한지 5분여가 지났지만 삼거리에 다다르려면 아직 5분은 더 지금의 속도를 유지해야 할 것 같았다. 땀이 젖어 몸은 더 무거워졌고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지금까지 서두른 것이 아까워 좀 더 속도를 높였다.

 

 ‘삐뽀. 삐뽀. 삐뽀.’

 그때 삼거리 쪽에서 구급차 한 대가 나타나더니 선영이 가는 쪽으로 멀리 보이는 약국 앞에서 정차했다.

 선영은 더운 날씨 어떤 시골 어르신이 일사병으로 쓰러지셨나 하는 걱정스런 상상을 하며 삼거리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앰뷸런스는 사이렌을 멈추더니 구급대원으로 보이는 주황색의 복장의 사람들이 응급용 스트레쳐카를 밀면서 골목으로 들어갔다.

 선영이 거의 앰뷸런스에 가까워졌을 때 약국 안쪽의 골목이 소란스러워지면서 스트레쳐카에 누워있는 백발의 할머니와 구급대원들, 그리고 두 명의 남자가 골목 입구로 나왔다. 그리고 그 남자들은 선영과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바로 류 탐정과 그의 조수 강 씨였다.

 선영의 눈에 비친 류 탐정은 걱정스러우면서도 뭔가 께름칙한 표정이었고, 그의 조수 강 씨는 놀라면서도 약간은 강 건너 불구경을 즐기는 듯한 표정이었다. 

 

 “저기 무슨 일이죠?”

 선영이 간신히 숨을 고르며 그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아. 아까 그 아기씨네? 그게 말이지.......”

 슈퍼주인 강 씨가 말을 꺼내려다 아차 싶었는지 류 탐정의 눈치를 살피고는 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으며 말을 아꼈다.

 “아가씨가 관여할 일이 아닌 것 같네요. 그냥 가던 길 가세요.”

 류 탐정 역시 선영의 물음에 답을 주지 않았고 그녀를 사건 밖으로 밀어냈다.

 선영은 그들에게 다시 물어보려고 했지만 괜한 수고일 것 같아 그만두었다. 대신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 골목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곳에는 철 대문이 반쯤 열려 있었고 대문 기둥에 ‘보혈의 집 보육원’이라는 빛바랜 명패가 걸려 있었다.

 선영이 철 대문에 뭔가 그려진 것 같아 자세히 살펴보려는데 ‘후두두둑’하는 소리와 함께 알밤만한 빗방울이 곳곳에 떨어졌다.

 떨어진 빗방울이 마른 바닥에 둔탁한 소리와 함께 주변에는 텁텁한 먼지 냄새를 풍겨왔다. 

 선영도 코끝을 간질이는 먼지 냄새에 잠시 정신이 팔려있던 그때.

 

  ‘파바바밧! 우르르르 꽈광!’

 강한 섬광이 커튼처럼 시야에 가득차고 심장이 쪼그라들 듯한 커다란 천둥소리가 선영의 고막에 내리꽂혔다.

 ‘지이이이잉.’

 ‘으르르르르! 컹! 컹! 컹!’

 이명과도 같은 소음이 들리고는 천둥소리는 맹견의 으르렁 거리는 소리로 치환되었다. 

 골목 안 보육원 안에서부터 큰 개의 미친 듯이 짖는 소리가 점점 커져가면서 선영을 위협하였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을 치지다 돌부리에 걸려 뒤로 쓰러질 뻔 했다.

 아찔한 순간, 쓰러지는 그녀를 누군가 겨우 잡아 주었다. 바로 류 탐정이었다.

 “아가씨 왜 그래요? 괜찮아요?”

 류 탐정의 물음에 선영이 자세를 바로 세우며 말했다.

 “저....... 저기 큰 개 짖는 소리 안 들리세요?”

 선영이 골목 안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개 짖는 소리? 거기 개들은 우리가 도착했을 때 이미 죽어있었는데?”

 슈퍼 주인 강 씨가 놀란 토끼 눈을 하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선영이 강 씨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방금까지 들렸던 큰 개의 짖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하늘에서 쏟아지는 억수 같은 장대비가 대지를 시끄럽게 두드려대고 있었다.

 

 “네? 죽었다고요? 방금 개 짖는 소리가 크게.......”

 선영은 자신이 분명하게 들은 개 짖는 소리에 대해 다시 한 번 반문하려다가 뒷덜미가 서늘해짐을 느꼈다.

 혹시 그 소리도 자신에게 보이는 그것들과 같은 종류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다는 건 그 미친 듯이 짖어대던 개들의 혼령도 보인다는 의미였다.

 선영은 사람들의 혼령이 보이는 것도 미칠 지경인데 미친개들의 그것까지 보게 된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직접 확인해 보는 것은 별로 권하고 싶진 않지만 문 앞에 있던 개들은 죽어있었어요. 그 개들이 죽어서인지 모르겠지만 할머니도 쓰러져 계셨고.......”

 류 탐정은 한껏 기세가 강해진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몸에 힘이 빠진 선영을 골목 한편의 건물 처마 밑으로 부축하면서 말했다. 그러나 선영은 혹시나 철 대문을 통해 굵은 빗줄기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금방이라도 뛰쳐나올지도 모르는 거대한 개의 혼령에 대한 공포로 몸을 덜덜 떨며 가급적 대문에서 멀어지려고 했다.

 선영이 불안과 공포에 휩싸이자 류 탐정은 자신이 대문과 등지고 서서 그녀의 어깨를 양손으로 감싸고, 강 씨에게 개들을 죽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보라고 눈짓을 보냈다.

 강 씨도 그 눈짓을 이해했지만 혹시나 거품을 물고 쓰러져있던 그 개들이 다시 살아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부르르 몸서리가 쳐졌다. 그래도 류 탐정의 명령을 거절할 수 없는 조수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쏟아지는 소나기를 겨우 플라스틱 부채로 가리고 어느 때보다 조심스럽고 느릿한 발걸음으로 대문 안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잠깐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뒤돌아 고개를 저어 류 탐정에게 여전히 개들이 죽어 있음을 알려주었다.

 “개들은 역시 죽어있습니다.”

 류 탐정이 선영에게 개들의 죽음을 알려 주었다. 그러나 그녀의 어깨에서 전해지는 떨림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류 탐정은 선영의 이야기와 태도에 심한 이질감이 들었다.

 죽은 개의 짖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도 그렇고, 혹시 잘못 들었다면 개들이 죽은 걸 확인한 시점에서는 안도를 해야 하는 것이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여전히 공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개 짖는 소리에 무슨 트라우마라도 있나? 아니면 단지 겁이 많아서 그런 것인가?’

 류 탐정이 이유를 곱씹어보는 동안에도 선영은 대문 쪽으로 시선을 고정시킨 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혹시 개들의 죽음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선영에 대한 류 탐정의 의혹은 더욱 커져만 갔다.

 그래서 먼저 그녀가 슈퍼에 나타난 이후부터 자신과 강 씨가 보육원 앞마당에서 끔찍한 광경을 목격한 순간까지의 상황을 다시 되짚어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