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영이 성당을 나와 집 앞 골목에 도착하니 시간은 6시 30분을 지나고 있었다.

 여름 해는 아직도 남아있어 여전히 주위는 훤했다. 하지만 며칠 전 승찬이 영혼의 위령을 지켜본 골목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선영은 금방이라도 골목에서 승찬이가 뛰어나와 ‘누나’하고 반겨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미 승찬이는 먼 곳으로 떠나 버렸다.

 누군가를 떠나보낸 사람의 심정이 이러할진대 떠나는 영혼의 미련이 오죽하면 지박령이 되어 자신의 한이 서린 자리를 떠나지 못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영혼들에게 안식을 줄 수 있는 ‘위령’의 방법을 정원사에게 배우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한 현실이 아쉬웠다.

 

 사실 정원사가 다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가 선영에게 ‘위령’의 방법을 알려줬을 가능성은 거의 제로이긴 했다.

 선영이 조금이라도 위험할 수 있는 그 방법을 알려줄리 만무했기 때문이었다.

 

 집에 도착하니 선영의 엄마는 저녁 준비 중이다.

 “다녀왔습니다.”

 선영이 통상적인 귀가 인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엄마의 이야기가 발길을 잡았다.

 “이제 오니? 민주 엄마한테 전화 왔었다. 이번 방학에 지리산에 있는 친구네 별장에서 휴식 겸 수시 대비 캠프를 하기로 했다며? 그런 일이 있으면 먼저 이야기를 해주지 그랬니.”

 소희가 계획한대로 모든 일이 착착 진행 되고 있었다.

 

 “아, 오늘 그러자는 이야기는 있었는데 엄마나 아버지가 공부 방해된다고 그럴까봐 난 잘 모르겠다고 했어. 특히 아버지는 절대 허락 안 해주실 것 같아서.”

 선영은 엄마의 생각을 다시 한 번 확인하기 위해 부모님의 핑계를 댔다.

 

 “과외 선생님도 함께 간다고 하던데 반대할 이유가 있니? 내가 너희 아버지한테 이야기 잘 해 놓을게. 그동안 내신 때문에 많이 힘들었을 텐데. 이제 좀 여유를 가지고 수시 대비를 하면 좋지 뭐.”

 역시나 소희 생각대로 엄마는 과외선생님과 함께 간다는 부분에 대해 호의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어차피 과외비도 들지 않는데다 선영이 여행을 가지 않고 남으면 과외선생이 여행을 가면 혼자서 공부해야 한다는 것은 꺼려지는 것이었다.

 

 “맑은 공기 마시고 좀 쉬면서 수시 지원에 대한 방향을 잘 잡아 봐. 요 며칠 이런저런 일로 네가 너무 힘들어 하는 것 같아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거든. 이번 기회가 딱 좋은 것 같아. 그리고 네가 생각하는 사회복지학과도 좋지만 좀 더 건설적인 직업도 고민 좀 해 보고....... 우리 형편이 좋으면 모르지만 그렇게 남 돕는 일 하는 건 있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야. 너도 친구를 잘 만나서 과외도 무료로 하고 이번 캠프도 무료로 하지만 대부분의 세상일은 돈이 없으면 못 하는 것이 많아. 너는 아직 어려서 남을 돕고 하는 일에 관심이 있겠지만 그것도 돈이 없으면 힘들어. 그렇게 남을 돕고 싶으면 돈 많이 벌어서 남을 돕는 것이 백배는 쉽지.”

 

 선영은 부모님들이 계속해서 돈, 돈, 돈 하며 자신이 가고자하는 길에 대해서 반대하시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의 이야기에 반박을 하려하다가 참았다.

 결국 대화는 서로의 입장만 이야기하다가 기분만 상하고 끝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꿈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님은 그저 어린 나이라서 철이 없어 이러는 것으로 보일 것이고, 그렇다고 선영이도 자신의 의견을 확고하게 주장하기에는 반론의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번 여행은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으러 가는 여행인 만큼 이런 문제로 여행 출발 자체에 문제가 되게 하고 싶진 않았다.

 

 “2주면 좀 긴 기간이니 옷이랑 준비 단단히 하고.”

 “응? 2주?”

 선영은 며칠이라고 들었던 여행 기간이 2주라는 말을 엄마에게 듣고 잠시 당황해서 되물었다.

 “2주 아니었어? 민주 엄마가 그렇게 이야기하던데?”

 “아. 그....... 그게 그러자고는 했는데 가더라도 난 그렇게 긴 기간은 힘들 거라고 했거든. 그렇게 길게 허락해 줄 리도 없잖아?”

 선영은 겨우 임기응변으로 대답하고는 엄마에게 다시 허락에 대한 가능성을 물었다.

 

 “나도 처음에는 너무 길다고 생각했는데 민주 엄마 이야기로는 2주 동안 수시 준비, 면접 준비 등의 스케줄을 이미 다 세워 뒀다고 해서 괜찮다고 생각했지. 왜? 엄마랑 오래 떨어져 있으려니 보고 싶을까봐 그래?”

 엄마가 실없는 농담처럼 건넨 말이었지만 선영은 마음이 약간 아려왔다.

 이번 여행은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으러 가는 여행이고 그것은 결국 자신의 과거에 대한 비밀을 덮고 싶은 부모님의 생각과 배치(背馳)되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부모님에게 자신의 행선지를 속이고 가는 반항적인 여행인 것이다.

 선영은 어쩌면 이번 여행에서 부모님이 자신에게 이야기 못하는 이유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이유가 별게 아니면 다행이지만 만약 그 결과가 자신의 가족에게 나쁜 영향을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라면 지금의 여행이 두고두고 후회로 남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잃어버린 과거와 그에 의해 파생된 악몽, 그리고 현실에서의 위협을 생각하면 그냥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현재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부모님들에게 모두 털어 놓는다고 해서 선영의 부모님들이 선영의 현재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이 문제는 자신이 해결할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선영은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설령 숨겨진 비밀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좀 있으면 아버지도 오실 거야. 같이 저녁 먹자. 이렇게 같이 저녁 먹는 것도 오랜만이지? 너도 내년에 대학에 입학하면 독립할 거고 이런 시간도 별로 없을 것 같아. 가서 씻고 와.”

 선영이 생각에 골몰해 있을 때 선영의 엄마가 말했다.

 “응.”

 

 선영은 욕실에서 간단히 씻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선영은 책상 앞에 앉아 소희에게 전화를 했다.

 몇 번의 신호음 후에 소희가 전화를 받았다.

 “나 선영이야. 아까 너희 집에 가기로 한 것 못 가서 미안.”

 “아냐. 난 민주가 우리 집에서 함께 계획을 짜자고 해서 그러라고 한 거야. 사실 우리가 갈 곳이 지리산도 아니잖아. 네가 약속이 있어서 빠지는데 나머지 사람끼리 뭉칠 이유야 없지.” 

 이번 초대 건으로 미루어 볼 때도 소희와의 관계 역시 민주의 외사랑 이었던 것 같다. 경도의 경우에서처럼 민주는 소희에게 목을 매고 있다. 그리고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소희에게 더욱 집착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런데 오늘 무슨 중요한 선약이라도 있었던 거야?”

 선영이 민주 생각을 잠시 하는 사이에 소희가 물었다.

 “아는 분 좀 만나러 갔었어. 그 분에게 이번 일에 대해 조언과 도움을 좀 받으려고 했는데 몸이 좀 안 좋으셔서 못 만나 뵈었어.”

 “어떤 분? 무척이나 의지하는 분인가 보네?”

 “아. 성당의 신부님이야. 그래서 종교적으로 퇴마에 관련된 도움을 좀 받을 수 있나 해서 갔었어.”

 선영은 정원사라고 하지 않고 신부라고 소희에게 이야기했다. 정원사라고 하면 왜 정원사에게 도움을 받는지, 그리고 그러다 보면 정원사의 능력에 대한 것까지 줄줄이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적당히 둘러댔다.

 

 “그랬구나.”

 “그런데 소희야. 이번 여행 기간이 며칠 아니었어? 엄마는 2주라고 하시던데?”

 선영은 길어진 여행 기간에 대한 질문을 했다.

 “며칠로는 부족하지 않겠어? 거기 가서 바로 답을 얻으면 좋지만 그렇지 못하면 더 시간이 필요할 거 같고, 이번 기회가 아니면 또다시 거기에 갈 수 있겠어? 그리고 민주나 경도, 그리고 과외선생님이 모르게 해야 할 테니 여행 시간을 다 조사에 쓸 수 없을 거야. 그래서 민주에게 이왕 가는 김에 좀 푹 쉬고 오자고 했고 공부는 과외선생님이 따라 가시니 괜찮을 거라고 했지. 물론 과외선생님 섭외도 완료.”

 소희가 선영이가 궁금해 하는 것까지 미리 정리해서 이야기 했다.

 정말 소희가 용의주도하다고 선영은 생각이 들었다.

 그 때,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선영의 아버지가 귀가한 것이었다.

 

 “소희야. 아버지 오셔서 식사하러 나가야 해. 나머지 이야기는 내일 학교에서 하자. 그럼 내일 봐.”

 선영은 소희의 전화를 끊고 거실로 나갔다.

 선영의 아버지가 현관에 구두를 벗고 거실로 들어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