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이 수군을 훈련시키고 배를 건조한 것도 조선시대의 강력한 중앙집권 특성상

 

정부의 승인이나 묵인없이는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을 겁니다.

 

아마 정부에서 일본의 침입설이 근거없다고 판단했으면 역모죄로 몰려서 사형당하기 딱 좋았을걸요.

 

신립이 나름 개전 초기에 상당한 병력을 모아서 탄금대에서 야전을 걸어본 것도 조선이 정말 무방비했으면 불가능했을 가능성이 높죠.

 

조선은 대비를 하긴 했는데

 

대규모 전쟁이 한참 없었고, 나름 당시 기준으로 상대적으로 인도주의적인 유교가 지배이념이라 백성에게 일정 이상의 가혹한 착취 및 징발을 전쟁 이전에 사전적으로 해서 대응하기는 어려웠다는 점이 있었고(침략해온 일본은 당시 유교가 그닥 지배이념으로 채택되지 않은데다가 전국시대를 거치며 내전이 점점 규모가 커지면서 가혹한 징발 자체가 일상적이었고 그에 따라 농민은 그냥 죽었다 봐도 될 정도로 착취당하고 있었으니...)

 

여진족 등 북방 이민족과 싸운 경험과 그로부터는 대규모 전면전에서의 실효성이 검증되기 어려웠던 제승방략으로 대변되는 당시의 전쟁 관련 제반의 군사행정이 일본의 수십만 단위의 대군에 대응하는 것과는 상당히 차이점이 컸다는 것이 문제였다고 봐야죠.

 

임진왜란 대비를 정부에서는 나름 열심히 했는데 일본의 침략이 패러다임을 뒤틀정도로 파격적인 사례여서 망했다고 봐야죠.